자기를 알아주는 벗이 없다면 자기를 알아주는 뜻을 누가 밝히며, 뒤에 죽는 사람의 말이 없다면 먼저 죽은 사람의 행실을 누가 알 것인가. 나는 살아 있고 공은 죽었으니 어찌 차마 공의 뜻과 행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공의 휘는 사정(思正), 자는 자중(子中), 호는 농와(聾窩), 관향은 무안(務安)이다. 원조(遠祖)는 섬(暹)으로 고려 현종을 보좌하여 훈업(勳業)이 드러났고 관직은 좌복야였다. 이후로 벼슬이 계속 이어졌는데 조선에 들어와 형조 판서 의룡(義龍)이 있었고 이후로도 벼슬이 끊어지지 않았다. 7대를 내려와 호가 초정(草亭)인 군수 응선(應善)에 이르러서는 인조 반정 후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곧바로 은진 현감에 임명되었는데 바로 공의 5대조이다. 증조의 휘는 창하(昌夏)로 가선대부 증 이조 참판이다. 조부의 휘는 징(澄)이니 한성 우윤이다. 부친의 휘는 이문(履文)이니 호는 고심재(古心齋)이고 관직은 장령인데 문장으로 세상에 드날렸다. 모친은 숙인 한산이씨(韓山李氏)로 현감 운근(雲根)의 따님이다. 공의 백부 첨지 휘 진문(震文)이 풍산홍씨(豊山洪氏) 지평 중정(重鼎)의 따님에게 장가들고 이어서 장흥고씨(長興高氏)에게 장가들었는데 두 부인 모두 자식이 없어 공을 후사로 삼았다.
공은 숙종 계사년(1713) 3월에 태어나고 지금 주상 정미년(1787, 정조 11) 1월 7일에 세상을 마치니 향년 75세였다. 3월에 광주 경안(慶安) 망령동(望靈洞) 곤좌(坤坐) 언덕에 안장하였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예의 재능이 있어 세상에서 기동(奇童)이라고 일컬었는데, 자라서는 세도(世道)가 위태함을 보고 나아가 벼슬할 뜻이 없어 과거 공부에 전념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많이들 애석하게 여겼다. 공은 지극한 행실이 있어서 부모에게 효순하여 뜻을 받들기에 어긋남이 없었다. 생가와 양가의 부모상에 모두 3년 동안 소식(素食)을 했으며, 제사의 의식에 근엄하여 정성과 공경을 다하기에 힘썼으며, 날마다 반드시 새벽에 가묘에 배알하기를 노년에 이르도록 폐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눈으로 본 바다.
고심재공이 지평 현감에 재임하던 중에 병으로 체직을 기다리느라 관가의 일이 많이 밀렸는데, 공이 여러 아전들과 각방(各房)의 문서를 고찰함에 아전들이 털끝만큼도 감히 속이지 못했으니, 당시 나이가 13세였다. 장로들이 듣고 경탄하기를, “이 아이는 육조(六曹)의 낭관을 겸하여 맡을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귀로 들은 바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에 힘을 기울여 작게는 의식의 절도로부터 크게는 의심스러운 글의 깊은 뜻까지 명백하게 분변하고 해석하였다. 수학(數學)에 깊은 조예가 있어 곱하고 나누고 더하고 빼는 것으로 시작하여 천원(天元), 개방(開方), 정부(正負), 구고(句股)의 산술에까지 환하게 살펴서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보학(譜學)에도 능하여 동방의 대성(大姓)을 관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고 희귀한 성과 드문 파까지도 또한 능히 묻는 대로 답하여 사람들 가운데 자신에 세계(世系)를 모르고 족적를 잃은 이들이 많이들 와서 자문을 구했으니, 참으로 옛적에 이른바 육보(肉譜)라고 하겠다. 이것은 모두 공이 공부를 하여 실력을 쌓은 것이었다.
특히 경륜에 능하여 항상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데 삼대(三代)를 법으로 삼지 않으면 모두 구차할 따름이다.”라고 하여 담론하는 바가 옛날을 참작하고 지금에 의거하여 모두 조리에 들어맞아 근거가 있었다. 아, 공은 남보다 뛰어난 행실과 세상에 드문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마침내 한 번도 시험해보지 못하고 초야에서 늙고 말았으니 탄식할 일이다. 공의 저술로 《가례작통(家禮酌通)》 4권, 《산학지남(算學指南)》 2권, 《백씨보략(百氏譜略)》 수십여 권이 집에 보관되어 있다.
부인은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세광(世光)의 따님이고 부제학 해(瑎)의 증손녀이다. 공과 같은 해에 태어나고 영조 임신년(1752) 5월에 임종하였는데, 2남 2녀를 낳았다. 다음 부인은 사천목씨(泗川睦氏)로 상주(尙周)의 따님이다. 기유년(1729, 영조 5)에 태어나고 신사년(1761, 영조 37) 9월에 임종하였는데, 자녀가 없다. 두 부인은 천안(天安) 모산면(毛山面) 유좌(酉坐)에 안장되었다. 아들은 처순(處順)과 처현(處顯)이고, 맏딸은 안정록(安鼎祿)에게 출가했는데 바로 나의 아우이고 둘째딸은 김령(金坽)에게 출가했다. 처순은 아들이 없어 처현의 아들을 후사로 삼았다. 처현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명진(命鎭)은 처순의 양자로 나가고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안정록은 3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경연(景淵), 경하(景夏), 경사(景思)이고 딸은 성효철(成孝喆), 한수운(韓秀運), 이명억(李命億)에게 출가했다. 김령의 양자는 세기(世箕)이다. 드디어 다음에 명을 붙인다.
재능은 있으나 행실이 없는 이가 혹 있으며 / 人或有有才而無行
행실은 있으나 재능이 없는 이가 혹 있으니 / 亦或有有行而無才
재능과 행실이 걸맞지 않음이 오래일세 / 才行之不相稱久矣
공은 둘을 다 겸했으면서 / 公能摠貫而兼有
마침내 초야에서 궁하게 마쳤네 / 竟窮歿於荊榛
명이 불운하고 / 命之屯矣
때가 비색해서이니 / 時之否矣
누구를 허물하리오 / 將誰咎乎
[주-D001] 천원(天元) : 산술의 한 가지. 오로지 개방(開方)의 옛 산법(算法)을 중시하는 것으로서 그 법이 옛 구장(九章)의 방정(方程)에서 나왔는데, 천원(天元) 일(一)을 빌어 미지수를 대신 하기 때문에 ‘천원’이라고 일컫는다고 함.[주-D002] 개방(開方) : 수학 용어. 수(數) 또는 식(式)의 근(根)을 구하는 방식인데, 평방근(平方根)을 구하는 산법.[주-D003] 정부(正負) : 수학 용어. 정호(正號)와 부호(負號). 정호는 ‘더하기’ 부호이고, 부호는 ‘빼기’ 부호임.[주-D004] 구고(句股) : 구장(九章) 산술의 한 종류. 삼각형의 직각에 짧은 변을 고(股), 긴 변을 구(句), 빗변을 현(弦)이라 하여 사물의 고심(高深)ㆍ광원(廣遠)을 계산하는 방식.[주-D005] 육보(肉譜) : 당(唐) 나라 조주(趙州) 사람 이수소(李守素)의 별명. 씨성학(氏姓學)에 밝아 세상에서 살아 있는 족보라는 의미로 ‘육보’라고 불렸는데, 우세남(虞世南)이 함께 인물을 논하다가 감탄하기를 “육보가 정히 두렵다.[肉譜定可畏]”고 한 일이 있음. 《唐書 卷一百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