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들어온 바다
- 손해일 「새벽바다 안개꽃」, 김철교 「파도와 발자국」 읽기
김철교(시인, 평론가)
1. 바다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간 삶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고대부터 경외의 대상이자 삶의 터전으로 항상 우리 가까이에 여러 가지 신화로 호흡을 같이 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포세이돈은 올림포스 12주신 중의 하나이며, 제우스 동생으로 ‘거친 바다의 지배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딧세이아」에서 트로이전쟁이후 인간 영웅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을 장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움을 사서 10년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를 떠돌게 된다.
동양설화에서는 용왕님의 위세가 대단하다. 신라 임금 석탈해는 용궁 출신으로 알로 태어났으며, 심청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사람들이 용왕에게 잘 봐달라는 이런저런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적지 않다.
오늘날에는 과거와 같은 바다의 신비는 옅어졌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시적(詩的) 이미지로 살아있고, 현실적으로는 자원의 보고(寶庫)로 미래 인류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고 있다.
2. 손해일 「새벽바다 안개꽃」 읽기
바다는 육지가 그리워 출렁이고
나는 바다가 그리워 뒤척인다
물이면서 물이기를 거부하는
모반의 용트림
용수철로 튀는 바다
물결소리 희디희게
안개꽃으로 빛날 때
아스팔트에 둥지튼 갑충(甲蟲)의 깍지들
나도 그 속에 말미잘로 누워
혁명을 꿈꾼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덧없는 날들을 어족처럼 데불고
시원(始原)의 해구(海溝)로
우리가 어느 바닷가 선술집에서
불혹을 마시고 있을 때
더위먹은 파도는 생선회로 저며지고
섬광 푸른 종소리에 피는
새벽바다 안개꽃
손해일 「새벽바다 안개꽃」 (『한국문학의 100년을 열다』, 시문학사, 2021) 전문.
이 시를 쓴 손해일 시인의 해설에 의하면 “어느날 서울 친구들과 해운대 바닷가에서 술추렴으로 지샌 새벽녘에 해돋이와 함께 몰려오는 윤슬의 장관을 안개꽃으로 비유했다. 고층 아파트에 갑충처럼 끼어 살자만 아스팔트문명의 무미건조함을 벗어나 심해의 말미잘처럼 시원의 순정한 삶을 갈망한다는 내용이다.”(손해일, 『빛을 위한 탄주』, 2022, 신아출판사)
시인이 바다를 보며 순정한 삶을 갈망하듯이, 필자는 ‘예술의 전당’을 방문할 때는 의례, 전시된 어린아이들의 그림 앞에 서서 어린아이들의 순정한 마음을 읽는 기쁨이 있다. 모든 예술작품은, 지적인 내용이나 도덕적인 깨달음 보다는 순정한 예술가의 마음을 전달하기에 알맞춤하다. 예술작품은 수용자 각각의 무의식에 접선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위안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똑같은 감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인정받는 예술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주는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신의 완벽한 예술작품인 자연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이 시에서도 그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정한’ 마음을 아름다운 새벽바다 이미지를 동원하여, 시인에게는 물론 독자에게도 기쁨을 준다. 손해일 시인에게 ‘섬광 푸른 종소리에 피는/ 새벽바다 안개꽃’으로 살아난 해변가에 부서지는 파도가, 답답하고 분주한 우리 모두의 삶을 시원(始原)의 세계로 인도하여 큰 위로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3. 김철교 「파도와 발자국」 읽기
수많은 발자욱이 해변에 어지럽다
바다는 하얀 포말을 밀고 당기며
열심히 다림질하여
갈색 비단을 펼쳐놓는다
사람들은 그 위에
발자욱을 다시 찍는다
수천 년을 바닷가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발자욱과 파도의 밀고 당김
김철교 「파도와 발자국」 (『내가 그리는 그림』, 시선사 2021) 전문.
정재영 시인은 “파도가 발자국을 지우는 모습을 ‘다림질하여’라고 하는 것이나, 흔적인 지워진 모래를 ‘갈색 비단을 펼쳐 놓는다’는 표현은 예술적으로 형상화 구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시를 만들 때 잘못된 부분을 지우고 수정하는 행위를, 파도가 모래에 찍히 발자국을 지우는 행위로 은유함에서, 인간의 죄를 지워주는 신적인 행위와 닮았다”고 이 시를 읽고 있다.(「정재영의 명시산책」, 『기독교한국신문』, 2014.08.04.) 이미 예술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수용자의 것이어서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이든 무방하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며 지내왔으나, 자연은 인간이 준 상처를 나름대로 치유하며 보존해왔다. 그러나 이제 자연은 너무 병이 들어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고 있다. “땅을 다스리고 살아라.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들과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세기 1장 28절)라는 미명아래, 인간은 바다를 개발의 대상으로 괴롭혀왔다. 바다를 시로 불러들여 다독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