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간의 휴가
나 순 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연상하며 4차원의 공간을 뛰어넘는 휴가를 결정한다.
“학교 방학과 함께 학원도 한 달간 휴원하겠습니다. 왜냐면 연수도 받아야 하고 건강검진도 있어서 그러하니 양해 바라며 개학과 함께 다시 복귀하겠습니다.”
“한 달 동안 모든 수입 포기하고 영과 육신의 쉼을 가질까 하니 동의 바랍니다”
처음 문구는 학원의 학부모님께 보내는 휴가계획서였고 두 번째 문구는 남편에게 하는 통보였다. 허용된 가운데 27일의 4차원적인 휴가를 얻게 된다. 그것도 무급휴가를 받은 셈이다.
꼭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두근거림과 설렘 가득한 마음이다. 웨딩마치가 울리는 가운데 발을 내딛는 신부의 벅찬 떨림이 있는 기분이다. 다만 이 기분이 휴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는 장담할 수가 없지만 출발하였다.
첫 번째 휴가는 장소가 반타의적으로 정하여졌다. 내 지역을 벗어난 지역에서 내가 필요함을 청하니 어찌할 수 없이 5일간을 허용했다. 휴가비가 충당된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받아드렸다. 초등학교 방학 기간 방과 후 특강이다. “그래, 낯선 곳에서 첫 번째 휴가라고 생각하고 즐겨보자”
그러나 5일간의 그곳 휴가는 마음의 여유로움으로 즐길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한 공간에 디지털 피아노 9대가 설치되어있는 곳이다. “야! 이런 곳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작은 음량이라도 9대가 움직이면 모두에게 소음이 된다. 그리고 헤드셋을 끼우고 하면 건반 위에서 손가락 장난이 심하므로 통제 불가이다. 한 시간씩 배정된 인원도 10명이 넘어 그 와중에 다른 쪽에서는 이론을 다루어 진행해야 하니 서로에게 원만한 상황이 아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런 결론 하나를 얻는다. 어떤 분야이든 발전을 가져오려면 그것에 대한 기대효과를 생각하면서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는 전문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담당교사는 좋은 교사의 기질은 충분하게 보였지만 이 분야에 전문인은 아닌가 보다.
국가든, 기업이든, 단체든지 방향의 키를 제시할 수 있는 전문인이 따로 있다. 그래야만 서로가 함께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의 전문인, 교육 기획의 전문인이 키를 잡고 연구하게 될 때 원활한 발전이 온다는 사실 그리고 삶의 산실이 되어 자아실현과 타인을 위한 배움의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어디 이곳 학교에서만이 보이는 잘못된 실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교육의 현장에서 이보다 더 큰 혼란을 가져오는 일들이 있다. 교육부의 전문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판단으로 해마다 입시제도가 틀어지고 교육자들이 제대로 교단을 지킬 생각이 없어지게 만들고 있다.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교육현장이 무너지고 혼란이 있는 것이 진정 무엇 때문인지 인지하였으면 좋겠다. 교육부 장관이든 현장 교육을 맡은 수장이든 좀 더 전문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전인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휴가는 고창과 정읍을 찍고 광주까지 3일간의 병원 휴가에서는 얻는 것이 더욱 많다.
“아주 좋습니다. 스트레스 줄이고 잘 드시고 운동하시고 아프면 약 잘 먹고 검진 잘 받으면 됩니다.” 대학병원 교수가 나에게 주는 처방전이었다.
노인으로 분류되는 내 나이에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있다. 세계적으로 오래전부터 노인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으나 나는 항상 강건한 청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도 10%가 되는 노인 인구 속에 나도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23%로 길가에서 5명을 만나면 그중에 1명은 70세 이상이라고 한다. 앞으로 100세 시대라 하지 않는가? 병원에서 90세가 되어가는데 중병의 수술을 받고 몸을 다시 추스르고 움직이는 어른을 보면서 건강하게 100세까지 잘 산다는 것은 돈과 건강이 합쳐져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자산 수명도 100세까지 늘어나는데 나의 자산 수명은 언제 바닥이 날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 죽음이라 했는데 그때까지 과연 자산 수명이 건강 수명을 견인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노후 인생을 고민하여 보았다. 자산 수명이 건강 수명을 늘리는데 큰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늘 안타깝기만 했다. 나도 치과 치료를 하면서 깨달았다. 노인에 들어가게 되자 치아가 고장이 나서 결국 임플란트를 2개나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잇몸이 약하여 대학병원에서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서 “ 교수님 있다가 보험 적용되면 해야겠어요. 괜찮을까요?” “네 괜찮지요. 그런데 죽을 날은 오늘인데 내일 약 쓴다는 격이지요. 몇 년간 잘 못 드신다면 건강에 금이 가기 때문에 그때까지 참으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고 웃으셨다. 노인들은 병원비 생각 때문에 참다가 큰 병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자산 수명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지 무엇이 있겠는가. 몇 개의 병원을 오가는 것으로 몇 일간 휴가를 보내면서 얻은 것은 자산 수명을 어떻게 건강하게 잘 운영해야 할 것인가이다.
세 번째 휴가는 이틀간은 “연수”라는 동네에 머물렀다. 성격이 질질 끌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24강의 두 개를 이틀에 걸쳐 종일토록 듣고 최종 시험으로 마무리를 했다. 코로나라는 것 때문에 교육이라든지 연수라는 것을 현장에 가지 않고 ‘줌’ 이나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회의까지도 ‘줌’으로 진행하면서 결제도 온라인으로 하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갈수록 인간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데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생의 삶이 만들어지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오해가 깊어지는 일들이 생기고 속임수를 써도 그냥 넘어가는 일들이 자주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편한 것만 찾다 보면 그로 인한 피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편한 것만 찾다가 지구를 망가트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한 걸음도 걷지 않고 편하게 차로 움직이다 보니 온실가스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고 플라스틱 재료를 편하게 쓰고 버리니 지구의 생물들이 먹고 지구가 먹고, 그리고 나도 먹어 병명도 모르는 병들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침입하고 있는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편하여지려고만 하는 나의 생활 방식도 바꾸려고 생각해 본다.
네 번째 휴가는 남아있는 나머지 시간은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휴가를 즐기는 일이라 생각하며 아주 편하게 최고로 느긋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이 하는 말
“더는 꼴을 못 보겠네. 설거지도 안 하지 청소도 안 하지 빨래도 안 하지 더욱 보기 싫은 것은 세수도 안 하고 부스스한 것이다.” “나 휴가잖아?”
“빨리 씻고 옷 입어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이렇게 수시로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 산책이라도 하려고 하면 텁텁하고 기운이 떨어져서 집 나오면 개고생이니 그냥 집으로 가자고 보채는 나를 못 이기고 그냥 집으로 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반복하여 휴가가 끝났다. 국가의 수장인 윤석열 대통령은 한 주간의 휴가에서 복귀하면서 ”낮은 자세로 국민의 뜻 세심히 살피고 국민의 뜻 받들겠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낮은 자세! 국민의 뜻! 이란 주인이 아니라 일꾼으로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주인의 기준에 맞도록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27일간의 휴가 여정을 마치고 일상을 복귀하는데 인터뷰 청하는 사람도 없지마는 자신에게 말한다. 어떤 옥죄임에서 벗어나 남을 이롭게, 나를 행복하게,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비록 이렇게 27일의 일정은 오늘 끝났지만 오랜 시간을 집에서 에어콘을 틀지 않아도 선풍기 한 대로 족함을 알았고 책장을 넘기거나 서부영화 무술 영화를 수없이 보았고 엎드려 전화기와 친구 하면서 자유롭게 보냈던 시간 들이 그저 좋았다. 잠깐의 쉼으로 욕심 없는 행복이 가득하게 쌓였고 여태껏 못 보았던 행복이 보였다.
나는 역시 백수로 빈둥빈둥 노는 것이 적성에 딱 맞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