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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7일(토)~(3일째... Zubiri~ Uterga: 37.2km
순례자숙소: R.P. del pardon Ana Calvo- '우테르가' 사설 알베르게, 10유로)
오늘은 '주리비'에서 '우테르가'까지 37.2km의 긴 여정이다.
어제 못걸은 5.3km를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온 카미노 친구들이라면야 언제든 다시 여기에 올 수 있는 여유가 있겠지만
나처럼 머나먼 한국에서 온 경우라면(평생에 한 번...)
어쩔 수 없이 미리 짜논 계획에 맞출 수 밖에 없는 일정인 것이다.
아침 8시에 출발하여 불밝힌 '마그네시타'공장을 지나 30여분 걸어가니
앞서 누가 무거운 베낭을 짊어지고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차마 앞 모습은 찍을 수가 없었는데 키크고 잘 생긴 어느 청년이 왼쪽 무릎을 가리키며 울상을 짓는다.
손을 치켰다 올렸다 하는 것을 보니 아마 '피레네' 산맥을 넘을때 무리했던 모양이다.
과신이 화를 부른것일까.
참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니 'No Santiago'라며 포기해야 할 듯 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내게 'Thank You'라며 고마운 인사말을 전해온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브라질'이라고 한다.
순간 연민의 정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완쾌를 비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작고 아담한 '에스퀴로츠(Esquirotz)' 마을을 지나는데 어느 집 담벼락에 걸린 '제랴늄' 꽃들이
아래쪽 작은 수레와 어우러져 미적 감각을 뽐내고 있다.
가을철이라 그런진 '제라늄'꽃이 지천에 매달려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
스페인 마을 어디를 가든 베란다나 창가에 내걸린 형형색색의 꽃들을 바라 보노라면
이곳 사람들의 정서적 감각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는 ...?
한적한 이길의 평온함이 고즈넉하다.
길섶에 펼쳐진 소박한 풍경들이 한점 그림인 듯 하다.
마음 여유롭다.
한시간쯤을 걸으니 '이로스(Irotz)' 마을의 어느 작고 멋스런 바(Bar)가 나타난다.
그곳 주인장의 털털한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어떻게 저런 멋스런 바(Bar)를 꾸며 놨는지...
시원하게 생맥주 한잔과 빵두개...
그리고 미국에서 왔다는 미소가 예쁜 '애쉴리'와 불가리아 부부와 함께 추억 한장을 남겼다.
소롯한 산길과 저멀리 보이는 얕은 산이 마치 제주의 오름을 닮아있다.
세상 태어나자마자 그 오름과 올레길을 신나게 오르고 걸었었다. 어머니의 포근한 품속을 닮은 그 길...
이젠 제주올레길 어디를 가든 고향의 향수가 나를 반기는 듯한데 먼 이국에서 떠올려보는
유년시절의 그리움이 애틋하기만 하다.
두어시간 후 '자발디카' 마을 작은 바(Bar)가 있는 오르막 길을 지나가는 데 누가 '올라'하며
반갑게 인사를 전해온다.
바로 그저께 '론세스바예스' 수녀원에서 함께 묵었던 캐나다에서 온 '캐서린'이다.
금발 미인인데가 늘 밝은 표정을 지닌 카미노 친구이다.
그 후 한시간여를 걸어 산등성이를 오르는 초입에서 다시 만났는데 발을 절뚝 거린다.
무릅을 가리키며 몹씨 아프단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사진한장을 같이 찍고선 '제주올레 작은쉼터' 뱃지를 건네니 아주 고마워한다.
먼저 길을 떠난후론 둘다 어떻게 그 길을 걷고는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길을 걷다보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랄까!
그런 상항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물론 카미노 친구들의 마음이 모두 다 그러할 진대...
걸어걸어 'Arre'마을 돌다리를 건너 동네에 들어서니 작지만 깨끗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얼굴에 늘 웃음을 달고 사는 듯 하다.
'아레(Arre)'를 벗어나면 바로 '비야바(VillaVa)' 마을로 이어진다. 길 옆 작은공원 벤치에 잠시 발품을 내려놓으니 스스로
내려앉는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그냥 이곳에 쉬었으면 좋으련만 가야할 길이 멀고도 긴 여정인지라...
한 30여 분을 걸어 '블라다(Burlada)' 도심에 도착 후 사진 몇 장을 찍고선 그곳을 빠져 나온다. '아레'부터 시작해서
마을과 중소도시가 연이어 있어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헷갈린다. 배가 출출한데 그냥 '팜플로나'에 들어가서 먹기로
했다. 종종 잰걸음을 재촉한다.
'블라다'는 '팜플로나'로 들어가기 직전의 중소도시이다.
그리 멀지않은 길을 얼마쯤 걸어오니 '팜플로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막다레나(Puente de Magdalena)' 다리
가 나타난다.
몇몇 카미노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망중한.. 그리 무엇이 바쁠손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부탁하여 돌다리 쉼팡에서 포즈를 잡았다.
가을 햇살 포근히 지친 나그네를 감싸안고 있다.
강물에 비친 단풍의 반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머물러있다.
'팜플로나'는 아주 큰 도시이다. 3일 만에 보는 도시풍경이라 조금은 얼떨떨하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산페르민' 소몰이 축제와 투우가 이곳에서 벌어진다.
매년 7월 6일 정오부터 14일 자정까지 150여 개의 행사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두개의 행사가
백미중 백미라고 한다.
더욱이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유명한 '나바라'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마침 그곳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날의 주인공 새신랑과 들러리 친구들의
세련된 옷맵시가 영화 속 한장면인 듯 하다.
저쪽에서 골목길을 따라 결혼 축하 전통복장을 한 무리가 오길래 사진한장을 같이 한장 찍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단장인 듯 한 사람이 흔쾌히 허락해준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들 큰 소리로 '꼬레아'하며 활짝 함박웃음과 박수를 쳐준다.
기분 최고 엔돌핀이 팍팍 솟는다^^!
이길에서 큰 행운을 만났네요.
'팜플로나' 시내 외곽을 빠져나갈 즈음 목도 축일 겸 어느 바에 들렀는데 주인장 외모가 동양인이라 어느 나라냐고
물었더니 'China'라고 한다. 나보고 '재팬'이냐고 물어와 조금은 기분이 그랬지만^^, 한국이라고 하니 '오'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이국에서 어린 아들 키우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학생시절 내겐 '샘터'라는 작은책이 늘 손에 들려있었다.
그속에 나오는 '가족'의 일상적인 푸근한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곤 했었다. 가족의 소중함...
무엇을 더 보태어 말하랴!
'팜플로나' 시내를 빠져나와 'Cizur Minor' 마을을 스쳐지나고(5km) 이어지는 오르막 길을
한참을 걸은 후 언덕 쉼터에 올라 지나온 동선을 담아본다.
멀리 '팜플로나' 전경이 아득하다.
얼마를 걸었을까(6.9km)...
작고 아담한 '사라키에기(Zariquiegui)' 마을을 지나다가 역시 '론세스바에스' 성당 수도원에서
만났던 여러명의 카미노들이 노상 탁자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나를 보더니 십여년만에 만나는
가족처럼 아주 반갑게 '하이파이'를 나누며 맞아준다.
자기들은 '페르민' 고개를 넘기전 이 마을의 알베르게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 발을 멈추었단다.
그들의 여유가 부럽기만 하다.
역시 사진 한장을 찍고선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속 가파른 산길능선이 이어진다.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는데 마음이 초조하다.
멀리 풍차의 기세가 등등하게 서있다.
'사라키에기(Zariquiegui)'에서 30분 정도(2.1km) 걸어올라 산등성이 정상에 올라서니 세찬 바람과
넓디넓은 산야 풍경이 다가오는 바로 바람의 언덕 '페르돈' 고갯마루가 펼쳐진다.
'페르돈'... 용서와 사죄가 공존하는 그곳...
서쪽으로 향해 서있는 순례자 군상의 무리들이 이세상 땅끝으로 향하는 무언의 염원을 담아내는 듯 하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산티아고' 먼먼 길을 동행하는 진솔한 벗들이 될 수 만 있다면...
그곳에 먼저 차를 타고 구경 와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친절히 말을 건네온다.
'부엔 카미노'!...
몇장의 사진을 담고 자갈 투성이인 언덕을 내려오다 언덕 중간쯤에 서있는 이정표 표지목에
추억한올을 새겨 넣었다.
'제주별방진 다녀가다. 2015년 10월 17일'...
뒤돌아보니 '페르돈' 언덕이 저만치 멀어져있다. 풍차의 큰 울림만이 들려오는 듯...
날이 저물어간다. 마음이 급한데 가도가도 마을이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게 다시 한시간을 더 잰 걸음으로 재촉하니(3.7km)오늘의 목적지 'Uterga' 마을 초입이 나타난다.
저녁 6시가 다돼서야 도착한 것 같다.
날이 어스름하다.
알베르게에 가기전 동네어귀 나무밴치에서 베낭을 풀어놓고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인 후
한참을 앉아있었다.
내가 원하고 동경하여 이길을 왔건만 괜시리 서글퍼진다.
몇일이나 지났을까...
벌써 보고픈 토끼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내작은 집 그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