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진료실에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연세는 60대 중반이셨는데, 첫눈에 보기에도 참 곱고 아름다우셨습니다. 평범한 외출복이라고 하기엔 색감도 화사했고, 옷맵시에도 생기가 돌아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옷차림이었습니다. 무슨 좋은 약속이라도 있으신가 싶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춤을 출 때 입는 옷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표정에는 약간의 수줍음과 기쁨이 함께 어려 있었습니다.
친구분들과 연습실에 가서 지루박, 부르스를 배우고 추는데, 그 시간이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 속에는 단순한 취미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몸이 움직이고, 사람들과 웃음이 오가는 시간. 누군가에게 춤은 그저 운동이 아니라, 삶이 다시 환해지는 한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몇 달 전,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춤을 추다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삐끗하셨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 걷기도 힘들어 침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개운해지지는 않았고, 결국 MRI까지 찍게 되셨습니다. 검사 결과는 반월상 연골 파열! 그 진단을 들으셨을 때의 마음이 어떠셨을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지금 통증은 아주 심한 편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무릎이 뻣뻣하고, 앉았다 일어설 때 불편하며, 저녁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은근히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을 듣다 보니, 정작 더 크게 전해지는 것은 통증 자체보다도 불안이었습니다. “더 안 좋아질까 봐 걱정입니다.” 그 한마디에는 몸의 아픔만이 아니라, 그 분이 즐거워하는 시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실려 있었습니다. “요즘 사는 재미가 그건데요.”
나이가 들면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작은 불편도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무엇이 삶을 붙들어주는지를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 해야 할 일이 삶을 이끌었다면, 어느덧 세월이 흘러가고 나면 좋아하는 일이 삶을 지탱해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산책이, 또 누군가에게는 춤과 노래가 그렇습니다. 리듬에 맞춰 몸이 반응하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무릎과 발목, 허리와 몸 전체가 함께 버텨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무릎 하나가 아프다는 것은 단지 관절 하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기뻐하던 삶의 일부분이 함께 흔들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성악을 떠올려 봅니다. 노래는 겉으로는 목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숨, 횡격막, 목과 어깨의 이완, 허리와 다리의 지지, 몸 전체의 균형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한 음이 편안하게 열립니다. 좋은 발성이란 목의 기술이기 전에 몸 전체의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몸이 굳으면 소리도 닫히고, 몸이 부드러우면 목소리도 한결 자연스러워집니다.
치료를 마치고 나가시면서 그분은 무릎이 조금 부드러워진 느낌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차분히 치료해보기로 하셨습니다. 단지 통증을 줄이는 것을 넘어 다시 춤을 출 수 있다는 믿음을 몸에 천천히 되돌려드리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숨을 들이마시고, 소리를 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다시 느끼게 됩니다. 무대 위의 한 소절도, 연습실에서 붙드는 한 음도 모두 몸 전체의 도움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더 좋은 소리를 고민하지만, 그보다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은 오늘도 내 몸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가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음악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 좋은 사람들과 한 곡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참 귀하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춤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몸이 허락한 기쁨 위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몸이라는 악기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조금 더 아끼고 돌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춤을 출 수 있고, 오늘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첫댓글 몸이 아픈것도 싫지만
춤을 출수 없게 될까하는 두려움ᆢ
그 두려움에 저도 제 몸을 좀 더 열심히 챙깁니다^^
어느 분이 제게 하신 말씀중에
주님께서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이웃 사랑도 뜻하지만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는 거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거 같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서 자신도 사랑으로 돌봐야겠습니다^^
춤이든, 노래이든 삶의 활력소를 불어 넣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희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빚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 희망이 열정을 만들어 가고 그 열정으로 다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기에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비타민 같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