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경기도 도민평화통일 현장체험 교육사업 <마음 잇기, 평화 공감> 의 첫 활동으로 강연을 들었다.
이화여대 사학과 이선우교수의 '전쟁, 평화,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이다.
강사님은 강의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봅시다"
라고 제안했다.
대부분 한반도 지도를 그렸다.
강사님은 우리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다며 휴전선을 일깨워 주었고
우리의 상황과 불일치한 현재를 살고 있음을 인식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범주는 어떻게 될까요?
라고 질문했다.
또
"내가 왜 이것을 모르지?"
하고 물음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1교시에는 한국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교시에는 전쟁의 끝? 휴전협상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학교 교육에서 배운대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진공을 개시했다.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1시간 이상 연속적 공격을 했다.
북한군은 왜 남침을 했을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지만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연합국의 관리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안타깝게도 한반도의 독립은 승전국들의 전후 구상 속에 설계가 되어버렸다.
북위 38도 이북의 한국은 소련군 극동사령관에 항복하고,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은 미국 육군 태평양 총사령관에게
항복하는 결정안이 내려졌다.
그럼 38선은 어디일까?
지도에서 선을 긋는 것은 쉽지만 땅과 산, 강과 길에 38선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12개의 강, 75개이상의 샛강, 수많은 산봉우리가 단절되었다.
미군이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음에 스스로 놀랐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해서 6·25전쟁이라고 부르고 한국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은 즉각 참전을 결정했고 유엔은 맥아더를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대한민국 이승만대통령은 한국군 작전권한을 유엔군사령관에 이임했다.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참전, 유엔군 흥남철수 등이 이루어지며 1951년 6월경부터 전선이 고착되었다.
1951년 6월 23일 휴전 협상 개시하여 2년간 회담이 지속되는 동안 우리 민족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했다.
총 765차례의 회의를 했는데 주요 쟁점은 군사분계선을 어디에 두는가?와 전쟁포로 송환문제였다고 한다.
전쟁포로 송환문제가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핵심 쟁점이었다고 한다.
공산측은 전원 본국 송환을 주장했고 유엔군측은 자원 송환을 주장했다.
"북한으로 돌아갈 것인가?"
"남한에 남을 것인가?"
"제3국으로 갈 것인가?"
이럴때 그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했을까? 하며 질문을 주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을 두고
"총과 탱크만 싸운 전쟁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고 평가했다.
전쟁은 끝나고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대치한 두 나라.
대한민국과 북한인민민주주의공화국!
분단은 고착화하고 있다.
정치와 분단을 이용해 정치적 긴장이 높다.
영토와 마음의 분단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나라, "우리"는 무엇인가?
울림을 주는 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