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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 8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해 라호르박물관을 보고 이슬라마바드로 가 파이잘 모스크와 Margalla Hills Islamabad View Point 및 주변 공원을 본 뒤 이슬라마바드에서 숙박하는 일정이다.
버스를 타고 라호르박물관 정문에 도착했는데 20여 분을 기다려도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파키스탄 현지가이드와 길잡이가 버스에서 내려 정문 수위실 근무자들에게 갔다 버스로 돌아와 오늘 아침 박물관 천정이 무너져 위험해 관람이 불가하다고 한다. 웬만하면 under desk로 관람을 요청했으나 상급기관의 관람 불가 지시를 받은 박물관장이 끝내 관람을 허락하지 않아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라호르박물관은 간다라 미술품들을 많이 진열한 유명한 박물관으로 카라치 국립박물관, 페샤와르 박물관과 더불어 파키스탄 3대 박물관이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할 당시, 이곳에 있던 많은 간다라 불교 작품들이 인도로 옮겨져, 지금 인도 캘커타 인도박물관, 델리 국립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다. 건물은 낡았지만 내부 진열은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간다라와 회교 미술, 티벳불교 미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준의 명품들이 전시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라호르 박물관의 꽃은 간다라 불교미술작품들이다. 간다라미술은 페샤와르박물관에 많지만, 이곳엔 거기에 없는 세계적 명품이 있다. 바로 부처고행상과 쉬리바스티의 기적 조각상이다.
검은 돌의 아름다운 윤기에 6년 동안 온갖 고행(苦行)으로 앙상한 얼굴에 감도는 고요한 법열(法悅)의 미소, 단정하고 위엄있는 모습의 대각 직전 해탈의 피골이 상접한 싯다르타를 묘사한 최고의 걸작이라는 부처고행상과 커다란 4각형 석판 중앙에 초전법륜(初傳法輪)의 손 모양(手印)을 한 부처님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돼 있고, 주변엔 협시상 등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조각돼 있는 명작 쉬라바스티의 기적을 못 보게 된 게 한없이 아쉽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이 라호르박물관에 있는 두 명품 조각상이기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멀리 파키스탄 독립 기념탑이 조인다. 이 독립기념탑은 디자인이 독특했다. 대체로 어느 나라든지 모뉴먼트는 오벨리스크 형식을 취한다. 4개의 꽃잎이 바닥 한가운데에 있는 피라미드 조형물을 감싸 안고 있다. 흰 무늬를 새긴 갈색 꽃잎들은 꼭대기에서 날카로운 끝을 안쪽으로 모아 서로를 향해 오므리고 있다. 그러니 가운데 아래 검은색 조형물이 더욱 더 보호를 받고 있는 듯 보인다.
라호르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는 385㎞로 비행기로 가면 5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우리는 5시간이 넘게 걸려서 육로로 간다. 미니버스 2대로 출발을 하는데 파키스탄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형버스로 이동이 어렵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거리가 좀 멀더라도 비행기보다는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을 선호한다. 라호르 시내도로는 중앙분리대가 보이지 않고 도시 곳곳을 흐르는 소하천이 그 역할을 하는 곳이 많으며 국경도시답게 도시 곳곳에 군부대가 많이 보인다. 도시중심을 벗어나자 고속도로 입구까지 무장한 경찰이 버스에 동승한다. 파키스탄은 단체 관광객 보호를 위해 현지 여행사가 단체관광객을 유치할 경우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하고 경찰이 단체관광객 버스에 동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23년 기준으로 1,300만 명이 넘는다는 라호르 어디를 둘러봐도 벽돌을 굽는 곳 외에는 공장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공장이었던 곳은 거의 폐기되었는지 녹이 쓴 철기둥과 허물어진 지붕만이 가끔 흉물스럽게 보인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조사해 보니 계속되는 인도와의 분쟁으로 핵무기 개발 및 유지에 국가예산의 65%를 국방비로 소비해 다른 나라들보다 문맹 퇴치, 전기 보급, 정교분리 등이 수십 년이나 더 늦어졌고 정치 혼란과 내전, 막장인 치안 등으로 인해 국민 경제는 답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그나마 인더스 강이 흐르는 비옥한 펀자브 평야에서 나오는 풍부한 농산물과 중동 및 한국 등 외국에 나가있는 파키스탄 노동자들의 송금액이 GDP의 1/3에 달하는 등 경제의 구조적기반이 취약한 상태라지만 사실 파키스탄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서 한국보다 훨씬 잘 나갔을 때도 있었으며 이후 방글라데시 독립과 오일쇼크, 군사독재, 교육부재 등의 여파로 성장 잠재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2000년대까지도 인도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높았으나 경기침체로 인도는 물론 방글라데시, 히말라야 오지 산악국가 네팔에게까지 1인당 소득을 역전당하고 말았다.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네팔이나 제조업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에 비해 제조업 여건이 좋지 않아 성장세가 뒤쳐지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와 대홍수까지 겹치며 사실상 최빈국으로 전락해 IMF에 구제금융을 받는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으나, 최근 유전이 대량 발견된 점으로 보아 성장 가능성은 높다.
라호르를 벗어나자 끝없는 평야지대가 나타나는데 밭에는 이미 수확이 끝난 밀밭, 옥수수, 감자, 수박 등 농작물을 심은 밭과 군데군데 소, 양, 염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어, 지금까지 머릿속에서만 생각해 왔던 파키스탄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파키스탄은 테러하는 모습과 여성들을 억압하는 모습 그리고 산악지대만 보아왔기 때문에 이런 평야에서 우리와 같이 농사를 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넓은 평야와 평화로운 들판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지도에서 보니 라호르는 펀자브 평원의 중심에 있는 도시로 이슬라마바드로 2시간 넘게 걸리는 젤름 강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다. 참고로 펀자브란 말은 페르시아어로 다섯 개의 강(젤름강, 첸 나브강, 라비 강, 수틀 레지강, 비스강)을 의미한다고 하며 이 강들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을 하는 강들이다.
버스는 거리가 더 멀더라도 시간이 덜 걸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우리나라의 휴게소처럼 자주 있는 것이 아니고 편리하게 돼 있지도 않다. 두 시간 정도 걸려 11시 경 휴게소(Bhera Motorway Service Area)에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니 휴게소란 곳이 주유소 한 곳과 서너군데 식당, 편의점, 유료화장실이 시설의 전부로 우리나라 국도변 휴게소와 비슷하다. 기온이 40도에 가깝고 햇볕이 따가울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서 내뿜는 복사열도 대단해 밖을 걸어 다니기 힘들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휴게소 식당을 둘러보니 마땅한 음식이 눈에 띄지 않아 좋아하지는 않지만 KFC에서 햄버거 세트(1,580루피, 한화 약 9,000원)를 사먹는다. KFC는 현대식으로 쾌적하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온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버스에 오른다. 도로를 따라 유칼립투스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고 도로 너머로는 평원지대에 버려진듯한 황무지가 이어진다. 저 황무지에 햇볕이 풍부한 이곳 특성을 고려해 태양광시설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거나 가뭄에도 잘 크는 밀을 재배해 파키스탄 경제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가자 평원지대가 끝나고 젤름 강이 나타나고 강을 건너자 산악지대가 펼쳐지면서 버스는 구불구불한 고개를 넘어간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도로의 일부구간을 한국 건설업체가시공했으며, 지금도 대우버스가 제일 훌륭한 대중교통이라고 한다. 고개를 넘어서자 우측으로 멀리 파키스탄의 임시 수도였던 라왈핀디가 보이고 산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세 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 이슬라마바드의 파이잘 모스크에 도착한다.
라호르박물관에서 10시에 출발해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30분으로 오는 도중 펀자브평원을 지나고 고원과 산맥을 지나왔는데 구글지도를 검색해 보니 그 곳이 칼라치타 산맥과 포트와르 고원이다.
이슬라마바드를 가기 전 라왈핀디가 보이는데 라왈핀디는 1959년~1970년까지 파키스탄의 임시수도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1960년대에는 파키스탄의 수도가 라왈핀디로 배웠다. 라왈핀디는 기원전 바티족이 수도로 삼았던 고대도시 가지푸르로 불리던 곳으로 14세기 몽골침입으로 파괴된 후 가카르족 대장 잔다 칸이 재건해 그에 의해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고, 현재도 파키스탄의 군사, 산업, 교통 등의 중심도시라고 한다. 고대 도시임에도 둘러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
ㅇ 파키스탄 기념비
이슬라마바드로 들어가는 길에 파키스탄 기념비가 보인다. 2007년도에 지어졌으며 미래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라고 한다. 이슬라마바드를 찾는 사람은 이곳을 대부분 들르는데 이곳에서 보는 이슬라마바드의 경치가 좋고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1947년 독립 당시부터 1959년까지 파키스탄의 수도는 카라치였다. 그러나 그 위치가 남쪽으로 치우쳐 있고 사막인데다, 바다를 끼고 있고, 인도와 너무 가까워 안보상 위험항 제2도시 라호르도 고려대상에서 제외하여 완전히 새 수도를 만들기로 하고, 인도 국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정치적으로 파키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아자드 카슈미르에 인접한 위치로 지정했다. 도시가 건설되는 동안 라왈핀디가 임시 수도가 되었고 1970년 드디어 수도를 이슬라마바드로 옮기게 되었다. 도시건설에는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하였다고 하며 수도의 이름은 국가의 이념을 반영하여 '이슬람의 도시',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이슬라마바드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슬라마바드는 숲속의 도시로 다른 나라 수도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도시계획 당시부터 공원을 위주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넓은 도로주변으로 가끔 건물과 주택이 보일 뿐 온통 공원과 숲 밖에 안 보인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샤 파이잘 모스크다. 모스크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모스크 입구가 나오고 이곳에서 신발을 벗어 신발함에 넣는다. 입구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분수대와 코란이 새겨진 돌 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모스크는 로켓 모양의 첨탑 4개와 각 방향으로 8개의 박공 비슷한 지붕이 있는데 이는 사막의 베드윈 텐트를 상징한다. 5,000㎡ 대지위에 88m의 4개의 미나레트(탑)과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본관과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흰색으로 건축되어 있다. 본관 밖의 아름다운 정원과 넓디넓은 대리석 바닥은 태양열에 뜨겁게 달궈져 신발을 벗은 상태로 걷기가 어렵다. 모스크 안에는 코란도서관, 이슬람학교, 지아 대통령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내부에 기둥이 없는 본관은 예배를 볼 때 외에는 문이 잠겨 있어 내부 관람은 불가능해 광장과 본관 입구만 간단히 둘러 볼 수밖에 없다. 가이드 하룬이 ㅡ모스크에 대한 상식 몇 가지를 알려준다. 먼저 모스크의 미나렛에 대해 설명하는데 미나렛 1개인 모스크는 족장이나 마을 유지가 세운 것이고, 미나렛이 2개인 모스크는 지역 공동체 등에서 세운 모스크로 제일 많으며, 미나렛이 3개인 모스크는 없고 미나렛이 4개인 모스크는 왕이 세운 모스크고 미나렛이 6개인 모스크는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이며, 미나렛이 7개인 모스크는 메카의 하람성전의 모스크로 미나렛이 많을수록 모스크의 권위가 높다.
이슬람에서 초승달은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을 때 무함마드가 알라신으로부터 최초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알라신의 진리가 인간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상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모스크와 국기에 초승달을 넣는다.
어린이 도서관 입구 아래 왼쪽에 ”READERS ARE LEADERS“라는 책을 읽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는 문구와 오른쪽 아래에 "ALLWAYS STRIVE TO LEARN SOMETHING USEFUL.(언제나 배우기를 노력하는 것이 유익하다.) ”라는 는 영어가 왜 아랍어가 아닌 영어로 되어 있을까 하다가 파키스탄도 영국의 식민지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이잘 모스크 관람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파이잘 모스크 뒤편에 있는 마르갈라 힐스 국립공원(Margalla Hills National Park)으로 간다. 입구부터 원숭이들이 관광객을 맞이하는데 15분 쯤 걷자 이슬라마바드 시내를 한 눈으로 전망할 수 있는 다마네코 전망대(Daman-e-Koh Observator)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슬라마바드 시내는 넓은 도로인 7th Ave를 중심으로 좌우에 군데군데 숲속에 둘러싸인 건물이 보이고 우측 산록에 파이잘 모스크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도중 파키스탄기념비를 보러 갔는데 입구에서 군부대의 통제로 볼 수 없었고 인근의 프리엔드십 가든 샤카르 파리안을 들렀는데 그곳에는 각국 정상들이 파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기념식수를 한 곳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기념식수를 했다고 관리인이 이야기해 관리인과 함께 둘러보았으나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트뤼키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회교권 국가 정상들의 기념식수만 있을 뿐 한국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곳은 찾을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 대통령이 파키스탄을 방문한 적은 없고 파키스탄 대통령은 2~3회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호텔 주변을 찾아보니 중국 음식점이 보인다. 이곳에도 중국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 중국어로 된 간판들이 많이 보인다. 방을 배정받고 방으로 들어가 룸메이트에게 외식을 하자고 하니 그는 역시 방에서 한국에서 가져 온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한다. 다른 일행들과 로비에서 만나 같이 식사하러 가려고 했으나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아 할 수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 라면으로 저녁을 먹는다.
이슬라마바드도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가기 위해 거쳐 가는 도시로 이곳에서의 관광계획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샤 파이잘 모스크를 보는 것으로 내일부터 본격적인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출발하는데 이곳이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파키스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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