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의 궁체 정자
신웅순 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교수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베틀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심심할 때면 베를 짜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왔다갔다 하는 북이 참으로 신기했다. 북이 물오리처럼 날렵하게 드나들어야 베가 맵씨있게 짜여진다. 베틀 소리는 밤하늘 까마귀 소리 같고 달빛 비친 창 밖의 귀뚜라미 소리 같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거미가 짜는 그물은 또한 어떠한가.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것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이슬도 달빛도 바람도 다 거기에서 걸린다. 그만큼 정밀하고 정교하다.
유정 선생의 글씨가 그렇다. 그녀의 정자를 보면 김삿갓 시「비단짜기」가 떠오른다. 왜 그 시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북이 드나드는 모습은 물오리처럼 날렵하고
소리는 진나라 밤하늘에 우는 까마귀 소리 같기도 하고
달빛 비친 창 밖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 같기도 한데
베 짜는 재주는 처마 끝의 그물 짜는 거미와도 같도다.
- 김삿갓의 「비단짜기」일부
필자가 유정 선생의 궁체 정자를 만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학교에서 딸아이가 가락 초등학교 소식지「가락 소식」을 들고 왔다. 내 영혼에 화살을 쏜 범상치 않은 표제 글씨, ‘가락소식’. 정통으로 쓴 궁체 정자 글씨였다. 필자가 그 동안 생각해왔고 찾아 헤매었던 글씨였다. 학문을 하면서도 필자는 늘 아름다운 궁체 글씨를 갈망해왔었다. 그 글씨의 주인공이 지금 필자의 서예 스승, 유정 선생이다. 이렇게 해서 유정 선생과 필자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유정의 정자는 고요한 물결이다. 한 획, 한 점, 한 숨소리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면서도 행간에는 강물이 흐르고 때로는 돛단배도 떠 있다. 흰구름, 흰바람도 데불고 다닌다. 그렇게 흐트러짐 없는 여유가 그녀에게는 있다.
오세영 시인의 시 ‘들꽃’.
‘더 이상 백지에 펜을 긋지 않는다. 한 문장의 이랑도 컴퓨터 없이는 갈지 못하는 내 원고지의 빈 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빈 들인지 모른다. 유전자가 조작된 청보리만 무성한 빈 들인지 모른다.
전통을 바탕으로 창조적으로 천착해가는 현대 서예가는 과연 얼마나 될까. 많은 서예가들이 혹여 유전자가 조작된 무성한 청보리밭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떠났던 종달새가 돌아오도록 우리는 그 무엇도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보리밭을 정성껏 가꾸어야한다.
유정 선생의 한글 궁체 정자 글씨.
유정 김명자의 궁체 정자
봄비와 봄바람이 들녘에다 막 그리고 간 그림 같다. 가을비와 가을 바람이 산녘에다 막 쓰고 간 편지같다. 하얀 눈과 겨울 바람이 강가에서 막 부르고 간 노래 같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규. 유정의 한글 궁체 정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남끝동 회장저고리 차림으로 난간에 기대 선, 잠자리 날개 같은 세모시 옷을 입고 하늘에 기대어 앉은, 다가가면 포르릉 날아가 어디선가에서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그러한 기다림, 우아함, 아쉬움. 이것이 유정의 한글 궁체 정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주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 한글을 어떻게 써야 가장 값지고 애틋하게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후손들에게 모시옷 같은 아정하고도, 서러운 정서를 물려줄 수 있을까. 참나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서예의 숙명이라면, 필자는 이제 눈발 날리는 ‘이소’라는 혹독한 시간을 견디어내야 한다.
오세영의 시 ‘들꽃’, 유정 선생의 한글 궁체 정자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산은 높고 강은 깊었다.
- 『서예문화』(2012.2),13쪽.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