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일기념의 날로서 경축해야 할 날입니다. 또한 대신사님으로부터 천명을 받아 세상을 살려나갈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평생을 도산검수속에서 자기를 불쏘시개로 쓰신 위대한 신사님의 숭고한 삶을 기리며 만분의 일이라도 따라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신사님의 뜻을 바르게 행하는 것일까도 교령님의 기념사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부암 심고 제163주년 지일 기념사
공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내외 동덕 여러분!
오늘은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지 163주년이 되는 지일(地日)기념일입니다. 포덕 4년(1863) 수운대신사께서 용담정에서 관에 체포되기 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창생을 구제할 무극대도의 심법(心法)을 해월신사에게 전해주시며 다음과 같은 결시를 내리셨습니다.
“용담수류사해원 검악인재일편심(龍潭水流四海源 劍岳人在一片心)”이 결시를 받아 도통이 전수됨으로써, 억눌려 있던 낡고 병든 세상이 다시 개벽되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생명과 평등, 자유와 평화가 숨 쉬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새 시대가 용트림을 하며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월신사께서 “대저 도는 때를 쓰고 활용하는 데 있나니”라고 하신 뜻을 깊이 헤아려, “오만년의 미래를 밝히는 표준”이 되도록 우리의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새롭게 다져야 하겠습니다.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천도교 제2세 교조이신 해월신사의 삶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피어난 한 떨기 생명의 불꽃이었습니다. 옥중에 계신 대신사님을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건네주신 담뱃대 물뿌리 속 심지에 적힌 ‘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혐극이 없고(燈明水上無嫌隙) 기둥은 마른 것 같으나 힘은 남아 있도다(柱似枯形力有餘)’라는 영소의 구절과 ‘나는 순히 천명을 받을 것이니(吾順受天命) 너는 멀리 달아나라(汝高飛遠走)’는 말씀은 유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비록 내가 죽더라도 천도는 영원히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니 너는 살아서 천도를 보전하여 창생을 구하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교임이 분명합니다. 그 명교에 따라 신사께서는 관의 지목과 탄압 속에서도 머무르는 곳마다 노끈을 꼬고 짚신을 삼으면서 살을 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셨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면 머무르는 곳마다 감나무를 심으면서, 오로지 스승님의 명교를 받들어 도
를 보중하여 창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험고를 견뎌내셨습니다. 신사께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험산(險山) 준령(峻嶺)을 누비셨습니다. 그 속에서도 흩어진 도인들을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함으로 품어 안고, 무너진 조직을 재건하셨습니다.
해월신사께서는 피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대신사님께서 직접 남기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원본 두루마리를 보자기에 싸서 당신 살보다도 더 소중하게 등에 지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해월신사를 ‘최보따리’라고 불렀지요. 무게로 가늠할 수 없는 대신사님의 글을 한 순간도 소흘히 다루지 않고 자기 몸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포덕 21년과 22년에 걸쳐 강원도 인제에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함으로써 세상이 빛을 보게 한 것입니다.
해월신사님의 위대함 중 하나는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윤리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바로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삼경(三敬) 사상입니다. 사인여천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의 삼경은 각각 분리된 덕목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사상입니다. 정성을 다하고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울님을 믿으면 온 세상이 하나로 화하여 한울세상이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사인여천의 가르침은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던 조선 시대에 매우 혁신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사농공상의 신분적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한울님과 같은 존엄한 존재”라고 선언한 것은 당시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은 인식의 대
전환이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그리고 인권의 가치는 이미 160여 년 전 해월신사님의 가르침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
해월신사님의 이 한마디는 당대 가장 연약하고 억압받던 어린이의 권리를 우주적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선구적 발자취는 소춘 김기전·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운동으로 이어져 우리 민족의 앞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와 인공지능, 우주 탐사 등 기술의 발전이 첨단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인간 소외와 극단적 이기주의, 무한 경쟁이 남긴 상처가 깊게 패어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전쟁으로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으며,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웃 간의 단절은 날로 심화되고, 자본패권의 끝없는 탐욕과 기후 위기는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라는 생명의 터전 자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바로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해월신사님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삼경(三敬) 사상은 길을 잃은 현대 사회가 나가야 할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자 생명줄이며 지금 당장 우리의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무너진 동귀일체의 정신을 복원할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생명 철학입니다.
과거를 찬미하는 데 그치는 역사는 박제된 유물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기념은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우리 시대의 생생한 언어로 되살려, 미래의 비전을 창조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다가오는 포덕 168년은 다시 개벽의 실천가이셨던 해월 최시형 신사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200주년이 되는 감격스러운 해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기념의 해를 맞아 가정과 교단이 새롭게 출발하고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상처받고 분열된 현대 사회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사람이 곧 한울님이 되는 행복한 생명 공동체를 이 땅에 복원하는 거대한 문화적, 정신적 ‘다시 개벽’의 운동이 또 한 번 펼쳐져야 하겠습니다.
이 여정에는 해월신사님의 위대한 정신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문화, 학술, 교육 프로젝트가 함께 합니다. 이는 사인여천과 삼경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실천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에 우리는 오늘 163주년 지일기념일을 뜻깊은 출발점으로 삼아, 전 교인은 물론 뜻을 함께하는 깨어있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성금과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해월 최시형 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념사업은 단순히 신사님의 탄신을 기념하는 행사를 넘어 해월신사님께서 평생을 통해 실천하신 사인여천과 삼경의 가르침을 오늘의 시간 속에서 새롭게 구현하고, 생명과 존엄, 공생과 평화의 가치를 미래 세대와 세계 인류에게 전하는 역사적 실천의 행사가 될 것입니다.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인여천 비전 선포식」은 해월 사상의 현대적 가치와 인류 보편의 비전을 국내외에 천명하고, 해월 정신을 국민과 함께 공감하는 살아 있는 문화로 확산시켜 나가는 다짐의 장이 될 것입니다. 묻혀 있는 천도의 유적을 발굴하고 망실된 유물을 복원하여 스승님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나가겠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든 노력은 해월 신사님의 숭고한 뜻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이자, 천도교가 인류의 미래를 향해 제시하는 생명·평
화·상생의 비전을 실현하는 역사적 발걸음이 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잊어버리고 잃
어버렸던 ‘한울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영성 회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원대한 비전은 결코 중앙총부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바로 전국의 교인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정성 어린 땀방울과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이 강물처럼 모일 때, 비로소 혼탁한 세상을 다시 개벽하는 거대한 생명의 바다가 될 수 있습니다.오늘 제163주년 지일기념일을 맞아, 우리 모두 해월신사님의 그 숭고했던 구도의 정신과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한 무한한 공경의 마음, 모심의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으로 상처 입고 신음하는 자연을 아끼고 보호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지구환경을 살려내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한울님을 믿고, 사람을 공경하며, 만물을 아끼는 경천, 경인, 경물의 삶을 소리 없이 실천합시다. 우리들의 이 작은 걸음걸음이 바로 대도 중흥의 진정한 시작이며, 해월 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업의 가장 완벽한 완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몸을 하나로 모아 동귀일체로 나아간다면 해월신사님께서 그토록 애타게 꿈꾸셨던 이 땅의 한울 세상은 마침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선열들이 남겨 주신 숭고한 유산을 든든한 발판으로 삼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전진합시다.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서 뜨겁게 숨 쉬는 한울님의 빛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역이 됩시다.
끝으로, 공경하는 이 땅의 모든 한울님과 하루하루 정성으로 신
앙생활을 하고 계시는 모든 동덕님의 가정에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이 선물처럼 전해져서 만사여의(萬事如意)하시기를 심고(告) 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7(2026)년 8월 14일
천도교 교령 박 인 준 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