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五感)으로 그리는 풍경화

[심재호]

오감(五感)으로 그리는 풍경화

  어제는 장맛비가 한바탕 내렸다. 습기를 머금은 햇살이 앞산을 넘고 개울을 지나 감나무 아래 도랑에 와 닿는다. 대(竹)밭에서 흘러나온 조그만 경사진 도랑물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제법 세차게 흘러간다. 어제만해도 누런 흙탕물이었는데…… 어느덧 맑아진 물은 햇살을 머금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흐른다.

  “이 정도 물살이면 물레방아 놀이를 할 수 있겠다.”

고방(庫房)에 보관해둔 감자 중 길쭉하게 생긴 주먹만한 감자를 한 개 골랐다. 그리고 마당 한 켠에 버려져 쌓여있는 바지락조개 껍질을 네 다섯 개 골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칼로 감자 양쪽을 반듯하게 잘라내고 볼록하게 나온 부분을 다듬었다. 그리고 길이 방향으로 한가운데를 꼬챙이로 뚫고 구멍이 헐거워질 때까지 감자 속을 파냈다. 다듬어진 감자에 한 방향으로 돌아가며 조개 껍질을 꽂았다. 마지막으로 싸리비에서 뽑아낸 매끈하게 빠진 꼬챙이를 감자에 끼웠더니 근사한 감자물레방아가 완성되었다.

  발바닥은 이미 땀으로 질척이고, 까망고무신 안쪽 바닥은 바나나 껍질처럼 미끄럽다. ‘잘 돌까?’라고 생각하며 도랑으로 힘껏 내달렸다. 도랑물의 낙차가 있는 곳에 돌멩이로 감자물레방아를 고정시켰다. “야! 돌아간다”. 뱅그르르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감자를 보면 그 때 느꼈던 감자의 촉감, 냄새, 모양, 물보라, 맑고 시원한 물소리 등 오감으로 기억된 나 만의 풍경화는 마음속에 수채화처럼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오감(五感)교육”이라는 말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육계나 학부모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오감교육이란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자극함으로써 뇌와 정서 발달을 촉진하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14년 10월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표된 오감교육 관련 학위논문은 429편에 이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몇 가지 논문을 제외하면 유아부터 초등학생 연령의 교육과정에 집중되어있으며, 놀이체육, 음악, 미술 등 활용범위가 넓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비가 그쳤다. 거실 베란다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새벽녘 내린 여름비로 곱돌산의 숲은 상쾌한 공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빗물에 젖어 생기를 더한 나뭇잎은 아직도 빗방울을 똑 똑 떨어뜨린다. “아들 뒷산갈래?”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토요일 오전이라 딱히 할 일이 없는지 마다하진 않는다. 우산을 챙겨 들고 3분 남짓 걸어 산자락에 도착했다.

  “음, 공기가 참 상쾌하네!” “아들, 숨을 한 번 깊이 들이 쉬어봐, 숲 속 향기도 맡아보고…...” 둘은 눈을 지긋이 감고 숨을 깊숙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여름숲의 향기를 맛 본다.

  곱돌산을 오르며 아이가 자연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이 나무는 소나무, 밤나무, 버드나무, 은사시나무, 상수리, 굴참나무, 떡갈나무, 산오리나무, 계수나무, 감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 자귀나무……. 이 꽂은 진달래, 철쭉, 개나리, 벚꽃, 애기똥풀, 붓꽃, 뱀딸기…… 등 눈에 보이는 나무와 꽃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무의 껍질도 보고 만져보게 했다. 좀 더 나아가 잎 맥의 형태에 따라 나란히맥, 그물맥 그리고 쌍 떡잎, 외떡잎 각 잎의 모양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고, 잎의 위치에 따라 돌려나기, 어긋나기 등 잎의 배치가 다른 이유 등에 관해 중. 고등학교 때 배운 모든 지식을 동원해 마치 숲 해설가인양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등성이에 올라 잠시 숨을 돌리며 “아들, 눈을 감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보렴...... 바람소리, 각 종 새소리 등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람이 각 물체를 통과할 때 그 소리와 느낌은 다르다. 대나무 숲에서 들을 수 있는 죽풍, 소나무 숲 속의 솔바람, 작은 산들바람에도 사시나무의 잎이 소리 내며 떨리는 것에 비유해 ‘사시나무 떨 듯 한다’라는 말이 유래했다.

  비록 오감교육이라는 단어를 접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2003년 아이가 6살 때부터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까지도 함께 즐기고 있다. 벌써 열여덟 살이 된 아들은 이젠 제법 자연을 보고 즐길 줄 아는 아이로 성장했다. 몇 일전 등굣길에 나는 “와! 드디어 화랑로 플라타너스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네, 정말 곱지?” 라고 했더니, 아이는 “아빠, 지금 단풍의 느낌이 인상파미술의 색감과 비슷하네요!” “그러게 네 말을 듣고 보니 프랑스 화가 모네(Monet)의 색감과 비슷한 느낌이네.” 

어린 시절 보리밟기, 보리 베기, 모내기, 벼 베기, 타작 등 농사일이 솔직히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되돌아 보면 그렇게 많이 체험하며 자랐기에 지금은 소박한 글감이 있고 또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아이와 함께 오감으로 즐기며, 기업으로 주신 아이를 양육하며 더불어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 힘들었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이젠 아름다운 시골 풍경화로 마음속 캔버스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아름다운 새로운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 곱돌산은 퇴계원 극동아파트 바로 뒤편에 있는 산으로 퇴뫼산(해발 372m)과 연결되어 있음.

[심재호]

오감 활용 (교육)은 유아기와 초등학생 시절이 가장 중요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감을 통한 체험, 관찰, 창의적 생각, 글쓰기, 자녀교육,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오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속적으로 성숙해가는 삶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을 단풍을 마음껏 느끼고 즐기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응환]

그 아비에 그 아들입니다, 오감을 지나 저물어 가는 가을을 감상한 산듯하고
즐거웠던 주말이었군요! 단풍의 남행열차는 만추라는 정상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허대희]

아주 맑은 기분을 주는 글이네요.
냇물보다 맑고 단풍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습니다. 그림도 멋있고요.

[심재호]

네, 맑은 기분을 느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 가을 다 가기 전에 화사한 단풍을 마음에 간직할 기회를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