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문학의 창을 비추는 등대/최금녀 시인
그 넓은 품속에 詩를 안고
권현수 시인
최금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새천년이 막 시작되었을 즈음, 문학아카데미 시축제의 뒤풀이 마당에서였다. 방산 선생님은 이미 상석의 끝, 참석자들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담배 연기에 싸여 복분자 잔을 비우고 계셨다.
당시 권현수는 방산사숙의 초년생이었으니 미처 다듬지 못한 시들로 매시간 깨지는 중이었으니 저 말석에 앉아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때, 품이 넉넉해 보이는 귀부인 풍의 여류 시인 한 분이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단정하게 다듬은 머리도 우아하고 잘 손질된 피부의 결이 주름 하나 없이 고와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중년 시인이었다. ‘이런 대선배분이 말석에 앉으시다니’ 속으로 생각하며 “선생님, 저기 저 박제천 선생님 계신 상석으로 가시지요?”라고 건의하였다. 당시에는 강우식, 민용태, 오탁번, 문효치, 김여정선생님 등 때로는 유안진, 허영자, 문태준선생님까지 보이는 아카데미 전성기였으니 상석은 꽤 화려하였다. 그랬더니 그분은 크게 손을 저으시며 “아휴, 그런 자리에는 못가지요. 여기가 마음 편합니다. 잘 봐주세요”하는 것이었다. 아주 푸근한 미소에 자만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겸손한 자세라 듣는 나도 편안해지는 어조였다. 그 후로도 최금녀 시인을 가끔 보았지만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하다가 가시니 참 멋진 시인이라고 감탄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62년도에 일찍 소설로 등단했는데 부군의 정치활동을 내조하시느라고 문단을 떠났다가 98년도에 시인으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당시의 나도 소설에서 시로 창작의도를 바꾸어 고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문청시절부터 마가렛 미첼이나 다자이 오자무 같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나이듦이 초조하여 평생이 보장된 직업까지 중도 하차하고 용맹정진하던 중이었는데, 뜻밖에 화계사를 드나들며 참선을 하게 되면서부터 소설이 영 씌어 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라 엄청 방황하였는데 우연히 아카데미 김선호 시인을 알게 되어서 방산사숙의 박제천 선생님을 의지처 삼아 시인으로서의 길을 다듬고 있던 중이었으니 비슷한 경험의 동류의식 같은 것도 있었을 터였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최금녀 선생님의 행보를 보면 눈이 부셔 따라가기가 숨이 가쁠 정도이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문예지에 수시로 이름을 올리니 그 시들을 어떻게 다 써내는지 궁금할 정도이고 여행기 등 산문집도 거뜬히 소화해 내면서 벌써 시집이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등 8권. 시선집 2권에 활판시집까지.
『길 위에 시간을 묻다』 등 산문집. 일본어역 시집 『その島を胸に秘めて』, 영역 시집 『Those Pink Hands』 등. 총 13권의 서적을 상재하였다.
더욱 감탄스러운 일은 그렇게 부지런히 써내는 시들이 그저 그렇고 그런 시들의 질적 쌓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길지 않은 시적 여정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문단의 흐름을 잘 읽고 체득해서 시기적절하게 그 포맷을 바꾸어 가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초기 시들을 보면 단정한 외향과는 달리 가슴을 활짝 열고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감성을 서슴없이 드러내어서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이 극적이기도 하다. 시인은 ‘고대의 주술가’가 아닐까 자문하면서 마치 작두에 올라선 무당이라도 된 것같이 쓴 “자화상”을 보자
“늦으막하게 내린 신끼로 굿을 치고 다니며/ 선무당 사람 잡는 소리가 등을 훑어 내리고/ 옷 속으로 식은땀 쭉쭉 흘린다 // 세상만사 굿 한 방이면 끝나는 듯/ 작두날 위에서 물구나무서며/ 신끼 휘두르니 위태위태하다.”(「자화상」부분) 게다가 “시라는 독화살을 받고/ 맹독이 전신으로 퍼져나고”(「큐피트의 독화살」부분) 있으니 “물 좋은 시”를 찾아서 그 독을 풀어야 한다고 진단하면서, 그 독을 풀어서 “마지막 영혼의 증표로/ 영정 사진 놓을 그 자리에/ 사진 대신 육필 시 한 편 놓기를 바란다.”(「육필시 한 편」 부분) 고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실로 대담한 자기 노출이고 용기 있는 선언이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등단 20년을 넘기며 지금까지의 시풍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지난 2022년 6월 선생님은 공초문학상을 수상하며 박제천, 신경림, 신달자, 나태주를 잇는 문단의 원로 시인으로 당당하게 그 이름을 올린다. 그 수상작인 “서쪽을 보다”는 “노년기에 쓴 젊은시”라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의 찬사와 주목을 받았는데 서울신문 공초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선생님이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늦깎이로서의 자격지심에 바뀐 시의 흐름을 읽고 시의 체질 개선을 위하여 젊은 시인의 시집들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하였다. 가까이에서 전해 들은 바로도 찬사를 받는 시인이나 젊은 시인의 시집들을 밤을 새우며 읽고 배운다는 것이다. 젊고 싱싱한 ‘낯설게 하기’ 시작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절차탁마의 시기가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시마(詩魔)에 걸렸다고 스스로 탄식하며 그래도 붓을 놓지 못하고 시를 쓰던 역사상의 인물 ‘이규보’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권현수도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배우고 시도해 보려고 무척 노력하였지만 언어구사의 시스템이 젊은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시도는 지금도 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할 뿐인데 그 시작법을 익히고 능숙하게 활용하여서 좋은 시로 큰 상을 받기까지 하니 그 당찬 노력과 도전 정신은 후학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자세임이 분명하다.
「서쪽을 보다」와 함께 「이층」은 “최금녀가 노년기에 쓴 첫 번째 젊은 시들”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녀의 시세계가 새로운 미학적 차원으로 넘어가는 출발점”이라고 문단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층”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남편과 함께 ‘서쪽을 보는’ 황혼의 시기에 너무나 싱싱한 ‘사랑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두근거린다’라는 사랑의 원초적 감정을 그대로 살린 구절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계단에 서서 당신을 열어 볼 때가 있다
이층은 소리와 햇살이 가득 찼다
멈춘 듯 저녁이 먼저 오고 멈춘 듯 내가 다녀간다
가끔씩 기쁜 저녁도 지나간다
아래층 불빛이 이층까지 노오랗게 올라간다
층계를 밟는 불빛들은 두근거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 베란다를 좋아하는 모과나무는
노오란 잎새를 몰고 찾아온다
첫눈 없는 크리스마스를 맨손으로 만진다
이층은 쉴 새 없이 흐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아래층과 이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를 끄듯 커튼들을 닫는다
해가 뜨지 않는 일층에
없는 듯
내가 남아있다
- <이층> 전문
시인은 지금 이층 계단 아래 ‘두근거리며’ 서있다. 아래층의 불빛이, 남편이 있는 이층까지 노오랗게 올라간다. 굴곡진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완숙한 여인의 무디어진 듯한 그러나 여전히 싱싱한 감성으로 불빛을 따라 올라가는 시인의 가슴은 남편을 생각하며 ‘두근거린다.’ 식은 듯 시든 노오란 불빛도 처음 만난 그날처럼 싱싱하게 ‘두근거린다.’ 모과나무의 노오란 잎새마저 ‘두근거리며’ 크리스마스를 만진다. 첫눈이 없어도 소녀처럼 여전히 ‘두근거리는’ 크리스마스의 불빛이다.
시인은 전쟁과 탈북, 그 험난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증인으로서 “이중의 장금장치 너머 제 사소한 삶이 고스란히 재현된 일종의 제단 같은”(2021년 12월호 현대시 시인과의 대담에서) 이층 계단에 서서 성숙하여 승화된 여인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최금녀 선생님의 부군인 신경식님은 김영삼대통령 시절의 장관으로서 국정에 참여하였고 또한 4선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도 크게 기여한 원로 정치인이신데 선생님과는 대한일보 기자 시절에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멋진 연애담도 전해지고 있다. 이길원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신 장관님은 60년대 청주의 청년 문학동아리 ‘푸른문’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셨다고 하니 아마도 그런 문학적인 감성이 두분 사랑의 밑바탕이 되었으리라.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 한편의 멋진 사랑시로 두 분의 사랑이 더욱 빛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시인으로서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은 책임과 의무가 넘치는 문단의 일도 앞장서서 해나가니, 여성문학인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을 2회나 연임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PEN) 등 자문위원으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함경남도 영흥, 실향민으로서의 염원으로 탈북문인 뒷바라지에 큰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내 남아있는 날의 첫날”이라는 경구가 있다.
이 말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유명한 말과는 또 다른 울림을 주는데 그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첫날, 첫걸음, 첫소식 등등. 우리는 새해 첫날이 되면 미처 이루지 못한 일들, 미루고 미루어서 하지 못한 일들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다짐하면서 힘을 내어 보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곳간의 열쇠마저 넘기고, 손주들의 재롱 속에 저물어 가는 늦은 나이에 “남아있는 날의 첫날” 그 소중함을 깨닫고 온 열정을 다하여 시인으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내는 선생님의 시적 여정에 새삼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내게 된다.
선생님, 지금처럼 20여 년 전의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시로 만날 것을 믿으며 응원합니다. 여여하소서.
2003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시간을 너머 여기가 거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