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전통과 행함의 삶길
박 영신
(2026년 예람교회 사경회/8월 8~9일/ 주제: “복음과 역사, 교회, 그리고 나")
1. 복음 - 소수
저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인 ‘복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 믿음의 전통은 저를 ‘소수자’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이에 적대하는 ‘다수’의 한가운데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다수와 ‘더불어’ 살면서도 그에 ‘맞서’ 살아야 했던 여정, 그것이 제가 걸어온 삶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저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시기와 계기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복음을 품은 믿음의 사람은 누구나 이 땅의 외로운 소수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역사 - 증언
우리가 그동안 함께 해온 ‘교회사 공부’를 통해 소중한 진리를 다시금 깨쳤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했던 믿음의 선조들은,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언제나 따돌림과 짓눌림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현실 체제를 굳게 지키려는 세력에게 하나님의 뜻은 당혹스러운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따르는 이들에게 공연히 ‘세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반사회-반체제’ 무리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그 극치였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펼쳐진 역사의 길에서도, 주의 뜻을 펼치려 했던 ‘복음 운동’은 끊임없이 역사 속에서 체제 권력의 억압을 받았습니다. 출교와 파문을 당하고 교수대 앞에 섰으며, 수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서 나그네와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발자취는 단순히 빛바랜 지난날의 기록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유산은 믿음의 지침이자 격려이며 위로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걷는 이 소수자의 ‘반사회-반체제’ 길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강력한 생명력입니다.
3. 교회 – 예배
우리는 이 땅의 소수자로서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복음’ 공동체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절기에 따라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하고, 우리가 주 안에서 한 몸임을 확인합니다. 이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어져 온 거룩한 전통입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주님을 가장 높이 찬양합니다. 다른 어떤 것을 우리의 찬양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기도드릴 때마다 우리는 주님 밖에 다른 어떤 것을 붙잡고 섬겨왔던 삶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높이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끄실 성령의 권능을 간구합니다.
이 예배의 전통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비로소 참된 하나가 됩니다. 이 전통은 단순히 형식이나 규범을 고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을 높이며 세상에 맞서는 거룩한 저항의 삶을 살아가라는 요청입니다. 현실을 두둔하며 세대를 본받으려는 삶의 태도를 거부하고, 우리 자신을 날마다 갱신하라는 하늘의 명령입니다. 이 전통은 우리 삶에 거룩한 긴장을 자아내는 강력한 생명의 힘입니다.
4. 나 – 삶
복음은 세상의 원리를 뒤흔들고 이에 거스르는 진리를 선포하는데,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세상과 짝하며 어울리려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로마서 12: 2) 하신 바울 사도의 가르침과 달리, 어느새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춰가고 있습니다. 소수자다움의 깊은 맛을 잃고 다수의 일원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복음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또 새깁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며,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 삶의 깊은 물음을 내놓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 한계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어깨동무하며, '참 이웃'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예람교회가 소중히 가꿔온 ‘열린 대화’이자 ‘풍성한 나눔’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습속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나’로 거듭납니다.
5. 맺으며
우리는 복음을 믿는 소수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예람교회는 이 소수자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소수자는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힘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늘 다지고 다지듯, 우리는 저마다의 삶터와 일터에서 일당오십, 일당백의 용사로 살아갑니다. 나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소수자의 역설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복된 삶의 기회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