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302a 인간에 대한 앎에서 나오는 교육과 수업 수업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
이 책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학교 개교 후 루돌프 슈타이너가 교사진을 대상으로 행한 세 편의 연속 강의가 실려 있다. 1부의 총4회 강의는 '명상으 로 이루어낸 인간학'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발도르프 교육학 기본서인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중에 하 나다. 원래는 개교 후 몇 달 지나지 않아서 한 강의를 보충하려는 의도였는데 인지학 협회와 학교 일로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이 4회 강의에 그쳤고, 실제 보충 강의는 1921년 여름에 이루어졌다. 2부의 2회 강의는 1922년 학년 말인 6월에 고등부 신설 1년 후 사춘기 교육 문제를 짚어보는 내용이고, 1923 년 10월의 3회 강의에서는 발도르프학교 교사상을 이야기한다.
3년에 걸쳐 각기 다른 계기로 이루어진 9회 강의가 하나의 단행본으로 편집된 것은, 아동과 청소년의 발달 상황 자체에 의해 요구되는 교사의 자세, 의 향에 관한 내용이 하나의 실마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학교 교사들은 모두 루돌프 슈타이너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교사 회의 내용이나 교육학 강의를 읽다 보면 수업이 공립학교와 별로 다르지 않거나 발도르프 방법론을 곧이 곧대로 적용하는 수준에 그친 듯 하고, 루돌프 슈타이너가 그런 상황을 접해야 하는 자신의 심정을 여러 형태로 바꾸어 설명한다. 그런 묘사 중에서 내가 수십 년 전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 을 때 그림으로 떠올라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 게 두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1부 세 번째 강의 초반에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여러분이 온갖 원리와 공식으로 이루어진 과학으로서 교육학을 공부한다고 가정합시다. 이 경우가 교육 예술을 위해 의미하는 것은 영양 섭취에 있어서 타인이 이미 일정 정도 .까지 소화한 음식물을 선택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1부 네 번째 강의에 나온다. "교육학 책을 읽고나서 여러분이 학교에서 하고 싶은 수업을 하겠다면, 이는 미학책을 읽은 다음에 화가가 되고 싶은 경우와 똑같습니다. 그렇게 해봤자 되는 게 없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행여나 학교 교 사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친절하게 돌려서 이야기한 것을 사실주의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남이 먹고 적당히 소화해서 토해 놓은 것을 먹거리 로 삼는 사람과 독창성 부재로 남의 그림을 베끼기만 하면서 대단한 예술가라도 되는 듯 으시대는 사람,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게 풀뿌리 밖에 없으니 옆동네 최부자가 맛난 고기음식 먹다 체해서 토한 것을 자식에게 먹이는 부모가 있다면, 사람들은 뭐라할까? 그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배가 고파 정신 나간 게야, 대략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인지학 혹은 인지학적 인간학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현 교육 사정이 너무 열악하니 이상적으로 보이는 발도르프 방법론으로 '우리애들'을 가르치고 싶어한 부모와 교사를 통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게 한국 발도르프학교라 는 정황은 물질 세계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혐오스러운 일을 영적, 정신적 차원에서는 태연하게, 그것도 대단히 훌륭한 과업의 기수라도 된다는 듯 뿌듯한 기분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상적이고 영성적이라 자부하지만 사실은 순전히 물질주의적 의향에서 나온 활동이라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 하면서 말이다.
현재 400권까지 이른 루돌프 슈타이너의 강의서와 저술물을 마음대로 구입해서 읽고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독일도 별로 다를 게 없는 실정이니, 인 지학적 기반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어떻든 뭔가 좀 해보려 애쓰는 사람들을 탓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불 교는 부처가 득도하고 대략 1000년이 지난 후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골고타 신비가 일어나고 160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한국에 전해졌다. 그러면 그 세월 동안 부처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르고 산 한국 사람들의 처지는 불쌍한 것인가? 물질주의적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지학을 하 는 사람은 시야가 그 보다는 조금 더 넓어야 한다. 낮에 활동한 다음에는 반드시 잠을 자야 인생을 영위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이 세상에서 얼마 동안 산 다음에는 반드시 정신세계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 아니, 거꾸로 봐야 맞다. 인간의 고향은 정신세계고, 물질 세계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만 얻는 능력을 위해 잠시 지상을 방문한다고 해야 한다. 다음 지상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보통 사람은 정신세계에서 대략 600여 년을 보내면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정 신 존재들을 만나 배우고, 능력에 따라서는 이 세상에서 하는 것보다 월씬 더 많이 다른 사람을 돕기도 한다. 불교와 기독교가 천년 넘게 지난 다음에야 한 국에 도착한 것은 그 동안 정신세계에서 고차 존재로부터 그 가르침을 배운 사람들이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는데, 그것은 옛사람들의 지혜가 아니라 근시안에서 나온 말이다. 교육은 겨우 백년 짜리 사안이 아니다. 교육은 적어도 천년지 대계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방법론을 가지고 -카르마니 뭐니 인지학적 용어까지 들먹이며- 지금 당장 우리애들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이것도 일종 의 자아 충족적 동기에 속하는데- '정신 없는' 행동파가 되기 보다는 현생에서 차분하게 인지학을 꿰뚫어 정신세계에서 긴 세월동안 돕는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는게 훨씬 더 이성적이지 않은가?
옛시대에는 정신세계에 대한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숙명에 순응하고 느리게 살았다. 공기가 아리만적 정신성으로 꽉 찬 요즘에는 인 터넷으로 이른바 인지학적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어서 비행기타고 오락가락하는 것도 구시대적 발상처럼 보이니, 지금 당장 뭐를 좀 하지 않 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날마다 호흡할 수밖에 없는 아리만적 정신들에 인지학을 통해 내적 힘을 키워 맞서겠다고 자유롭게 결정하는 인간을 바로 현재 미하엘 시대에 선한 정신들이 바란다는 것을 발도르프학교 교사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 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이 한국 발도르프학교 교사들 사이에 인지학과 인지학적 인간학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명상하고 체화하려는 분위기가 생기는 계 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출판 시기가 불명확했던 이 책이 기대치않게 일찍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은, 개교 10주년 기념서를 내기로 결정하고 학교 장기발전 위원회 부모님들 과 함께 출판 비용을 떠맡은 무등 자유 발도르프학교 장승규 선생님 덕분이다. 기념의 해인 올해 안에 나올 수 있도록 서둘러 교정을 봐주신 최수진 님을 비롯해 푸른 씨앗 식구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 책의 출간과 무등 발도르프학교 열살 생일을 함께 축하하게 되어서 더 커진 기쁨을 <루돌프 슈타 이너 원서 번역 후원회> 회원들과 나누고 싶다.
첫댓글 사실 여기는 열심히 배우는 100년짜리 학교이고, 배운 것을 나누며 진짜로 사는 세상은 저기 천년짜리 세상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 물질 세계가 진짜라고 생각해서 여기서 어떻게든 헐레벌떡 정신없는 행동파로만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전혀 모른 채, 그냥 한다. ㅠㅠ
인보앎 3강을 읽다가 이 글이 생각나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