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흥사는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 운수스님이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동림사(棟林寺)라고 불렀다고 구전되어 내려온다. 운흥사의 사명에 관련해 전설이 하나 있다.
당시 운흥사는 3개 군에 걸쳐 있고 특히 청도와 대구 사이의 길목에 자리해 있었다. 창건 당시에는 산 정상에 사찰이 자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풍족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귀찮아하는 주지스님은 “연못을 메우면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다”는 꿈 속에 나타난 어느 노인의 말을 따라 그대로 연못을 메우니 갑자기 어디선가 하얀 학이 나타나 몇 번 구슬피 울고는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 때부터 운흥사는 인심을 잃어버려 손님이 뚝 끊어지고 사찰의 살림이 점차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운흥사는 절을 곡산(谷山)으로 옮기고 ‘수암사(藪巖寺)’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역시 신도가 찾아오지 않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절 이름을 운흥사로 바꿨다. 그랬더니 운흥사는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고 옛 명성을 이어가게 됐다고 한다.
운흥사측은 사찰의 창건에 대해 운흥사 뒤편 최정산 850m 지점 100만편 부지에 최초로 가람이 생겼으며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조선 광해군-영조 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1760년(영조 36) 무렵 간행한‘여지도서(輿地圖書)’대구부(大邱府)의 불우(佛宇)조에는 최정산 운흥사가 실려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창건 후 조선 정기 이전의 절에 역사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사명 유정(泗溟 惟政)스님이이 이곳에 머물며 3백 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워 무찔렀다고 한다. 또 1620년(광해군 12) 무념(無念)스님이 중창했고, 1751년(영조 27) 치화(致和)스님이 중건하면서 사명을 운흥사로 바꾸었다.
현대에 이르러 1955년 윤조스님이 후불탱화를 모셨으며, 1966년 영봉스님이 대웅전을 보수하고 요사채를 옮겨 지었다. 1972년 초우스님이 삼존불을 개금한 뒤에 신도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1976년 설극 재문스님이 선방과 선불장(選佛場)을 새로 지었고 1984년 석등 2기, 1992년에 단청 등의 보수를 실시했다. 1998년 종각을 조성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흥사 안내석
운흥사 입구
운흥사 전경
운흥사 요사
운흥사 요사
운흥사 대웅전내
운흥사 대웅전내 지장탱
운흥사 석불좌상
운흥사 요사
운흥사 대웅전
운흥사 대웅전 문살
운흥사 대웅전 벽화
운흥사 대웅전
운흥사 수조
운흥사 삼성각
삼성각내 칠성탱
삼성각내 독성탱
삼성각내 산신탱
운흥사 종각
운흥사 찾아가는 길
운흥사로로 가려면 먼저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에서 나와 앞산순환도로로 향하는 신천대로를 이용한다. 신천대로에서 앞산순환도로로 향하는 이정표를 보고 도로가 끝나는 지점으로 약 10여분 정도 달리다 보면 앞산순환도로 사거리가 나오는데 우회전하면 앞산순환도로로 진입하고 직진하면 가창면 방면이다. 여기에서 가창 쪽으로 직진해 실개천을 왼쪽에 끼고 약 10여분 달리다 보면 왼편에 가창면사무소가 나온다. 가창면사무소를 지나면 바로 우회전해 가창댐으로 가는 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를 타고 5분 정도 달리면 작은 다리가 나오고 다리 왼쪽에는 식당과 함께 작은 길이 나 있오는데 이 길을 이용해 5분 정도 오르다보면 또 갈림길이 하나 더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길을 이용하면 운흥사에 당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