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신흥사는 635년(신라 선덕여왕 4) 3월에 명랑조사(明朗祖師)가 창건하였으며, 당시의 명칭은 건흥사(建興寺)라 칭했다고 전한다. 명랑조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당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했으며, 679년 호국도량인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한 인물이다. 신라시대 건흥사의 창건주가 호국불교를 지표로 삼은 명랑조사였다는 사실을 통해, 그 후신인 신흥사가 사천왕사와 같이 호국도량으로 창건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신흥사에 대한 기록과 문헌은 전하는 바가 없으며, 절의 사기(私記)만이 전해질 뿐이다. 이에 따르면 678(문무왕 16)년에 신라가 만리성을 쌓는 동안 신흥사에는 승병 100여 명이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고 하므로, 이 절이 초기부터 승병과 관련된 호국도량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을 모아 왜구에 항거하였으며, 정유재란 때에도 울산왜성 1차 전투에 승병들이 참가하여 호국의 의지를 불태웠다. 왜군에 의해 울산이 함락되었을 때 지운(智雲) 스님을 비롯한 승병 백여 명이 기박산성의 의병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이때 절에서 군량미 3백석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흥사는 울산지역에서 승군을 동원한 유일한 사찰로서, 울산지역 승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경주까지 폐퇴하는 과정에서 결국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1646년(인조 24)에 승병활동의 공을 인정받아 경상좌병영 병마절도사 이급(李伋)을 발기인으로 하여 혜종(慧宗)이 중창하였다. 한편 요사에서 신흥사 중창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암막새 기와가 발견되었는데, 기와에 새겨진 명문에는 1654년(효종 5)이라는 연대가 새겨져 있어 1646년의 중창 이후 지속적인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686년(숙종 12)에 화재로 인해 다시 개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1904년에는 지장계(地藏契)가 조직되어 후불탱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이후 근대까지 그 사세를 유지하던 신흥사는 또 한번의 시련기를 겪게 된다. 신흥사가 자리한 함월산은 울산지역의 높은 산으로, 6.25사변 당시 특히 남부군 남도부의 활동지였다. 이때 신흥사는 빨치산의 은거지였던 전라도 지리산 자락의 여러 사찰들처럼 수많은 경전과 판각이 사라지고 폐허가 되면서, 또 한번의 수난을 겪게 되었다.
현재의 신흥사는 신라시대 고찰이라고 하지만 거의 폐사가 된 상태로 근래까지 그 터만을 유지하다가, 1991년 산옹당 지은(山翁堂 智隱) 스님이 부임하면서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근래에는 1999년 부임한 현담스님이 축대를 보수하고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삼성각을 비롯하여 적묵당ㆍ신성루 등 요사를 증축하여 옛 가람을 복원하고 있다.

신흥사 입구

신흥사 입구에 서있는 보호수

신흥사 신성루

신흥사 신성루

신흥사 요사

신흥사 요사

대웅전에서 바라다본 신성루

신흥사 대웅전

신흥사 대웅전

신흥사 대웅전내

신흥사 삼성각

신흥사 삼성각

신흥사 삼성각내 칠성상

신흥사 삼성각내 독성상

신흥사 삼성각내 산신상

신흥사 삼층석탑

신흥사 응진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로 원래 신흥사의 구 대웅전으로 635년(선덕여왕 4) 명랑조사(明朗祖師)가 건흥사(建興寺)의 대웅전으로 건립했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646년(인조 24) 병마절도사 이급(李扱)에 의해 신흥사가 창건될 당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1646년에 건립된 후 1752년(영조 28)에 서봉화상이 중건하였으며, 1998년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응진전으로 보수하였다.
건물 외부는 낮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얹고 두리기둥을 세운 모습으로, 기둥 위로 1출목, 2익공의 공포를 결구하였으며, 공포에 용두와 연봉을 장엄하였다. 건물 전면은 2ㆍ4분합의 빗꽃살창과 나한도를 단청하여 불전 장엄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삼면의 외벽에는 산수화를 비롯하여 화조도를 그려 넣었다. 편액은 1998년 사문 기현(沙問 寄玄)이 썼으며, 주련 4기가 걸려 있다.
건물 내부는 어칸 중앙에 내진(內陣)을 형성한 특이한 구조로, 후불벽과 맞닿은 곳에 일자형 불탁을 배치하고 어칸 내진에 운궁형 닫집을 가설하였다. 불탁 위에는 근래 옥석(玉石)으로 조성된 석가삼존상과 18나한상을 배치하였으며, 모두 호분으로 장엄하여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응진전은 외형이 비록 소박하지만, 내부 천정과 공포의 화려함에서 조선후기 불전의 장엄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신흥사 응진전내

신흥사 응진전내 나한들

신흥사 응진전내 나한들
신흥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울산으로 들어오는 길이 가장 빠르고 찾기도 쉽다. 서울ㆍ부산ㆍ대구ㆍ대전 등 대도시에서 출발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서울산 나들목 또는 언양 나들목을 통해 울산 고속국도로 접어들어 삼호 공업로타리에서 울산공항 방면으로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신복로터리에서 신흥사까지는 25㎞거리로, 울산공항(중구청) 방면으로 진입하다가 삼호교를 건너 7번국도 경주방면으로 접어들면 된다. 이곳에서 경주방면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호계를 지나 신천동이 나오며, 그곳에서 매곡동으로 진입하면 신흥사 표지판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새로 난 경주방면 국도를 따라 산을 넘으면 함월산 산등성이로 신흥사의 산길이 나타난다. 표지판을 보고 비포장인 산길을 따라 승용차로 15분정도 들어오면, 낙서암을 지나 신흥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