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사(高山寺) 는 홍성 서쪽 방면의 서해 바다와 닿을 듯한 곳, 나지막하고 경사 완만한 청룡산(靑龍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유서깊은 사찰로, 정성들여 쌓은 돌계단을 따라 사찰로 올라가면 보물 제399호로 지정된 자그마하고 독특한 대광보전(大光寶殿)을 만날 수 있다.
청룡산이 고산(高山)이라고도 불렸던 까닭에 절 이름도 고산(高山)이라 하였다. 230m밖에 되지 않은 산을 ‘높은 산’이라 부른 것은 낮기 때문에 오히려 높다고 이름 붙임으로써 산의 기세를 높이려 한 옛 사람들의 역설적인 감흥을 느끼게 한다.
본존불을 모신 석조좌대(石造座臺)를 통해 고려시대의 흔적을 살필 수 있으며, 대광보전 공포의 짜임이나 석조좌대에 핀 연꽃 등은 모두 고산사의 욕심 없는 아름다움이다.
고산사 입구
고산사 돌담
신축중인 고산사 당우
고산사 대광보전 현판
고산사 대광보전
보물 제399호
대광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세부적인 특징과 팔작지붕의 특징 등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심포 계통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창방(昌枋) 위에 얹힌 평방(平枋)의 존재와 건물 내부의 우물천정 구조 등 다포계 건물의 요소도 함께 지니고 있는 매우 특이한 건물이다.
건물의 기단은 막돌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낮게 쌓아 올렸으며 그 안을 흙으로 채우고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초석을 올려놓았다. 초석 위에 올린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이 엿보이는 원형기둥이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가 놓이고 이 주두 위에 공포가 자리하고 있는데, 공포를 구성하고 있는 소로 중에 굽받침이 있는 고식의 소로가 섞여 있어 주목된다. 공포의 세부수법은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형태이다. 단청은 하늘빛을 주로 띄고 있어, 단정한 하늘색 창호와 빛바랜 단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법당의 내부에는 중앙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봉안되어 있고, 본존불의 좌우에는 작은 크기의 석조아미타여래좌상(石造阿彌陀如來坐像)과 석고대세지보살좌상(石膏大勢至菩薩坐像)이 각각 모셔져 있다. 불화로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뒤에 봉안된 아미타후불탱((阿彌陀後佛幀)을 비롯하여, 신중탱(神衆幀)ㆍ지장탱(地藏幀)ㆍ칠성탱(七星幀) 등이 모셔져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과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을 혼합하여 꾸몄으며, 중층(重層)으로 조성한 닫집은 내부를 네 칸으로 나누고 포를 구성하여 천판(天板)을 받았다. 천판에는 황룡과 청룡이 서로 휘감은 채 아래를 향해 있으며, 좌우 허주 끝의 연화조각에는 극락조가 각 1마리씩 매달려 있다. 현재 대광보전은 보물 제39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광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머리형태는 나발이며, 육계는 뚜렷하지 않지만 2개의 계주를 표현하였다. 상호는 둥근 형태이고 귀는 어깨에까지 이르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이며, 벌어진 가슴 부분 아래로는 군의(裙衣) 주름과 매듭이 조각되어 있다. 수인은 오른손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대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중지를 구부리고 있다. 전체 높이는 52㎝이다.
이 불상에서 1967년 복장품이 발견되었는데, 이에 의하면 1543년(중종 38)에 조성된 불상이라 한다. 복장품의 유형은 불사리(佛舍利)ㆍ후령통(喉鈴筒)ㆍ경전(經典)ㆍ주옥류(珠玉類) 등 4종이다. 불사리는 총 7립으로 불상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주황색과 하늘색 비단 겹보자기로 싼 유리 사리병에 들어 있었다. 사리병은 높이 2㎝, 너비 1.9㎝로 아래위에 구멍을 뚫고 이를 향목(香木)으로 막았다.
후령통은 각각 한지로 싸고, 그 표면에 동ㆍ서ㆍ남ㆍ북ㆍ중이라 주서(朱書)하여 5색실로 묶은 주황색ㆍ하늘색ㆍ흰색ㆍ자주색ㆍ황색의 5색 비단에 싸인 채 발견되었다. 한지 속에는 동ㆍ서ㆍ남ㆍ북ㆍ중의 다섯 묶음을 결합하여, 그 가운데 내후령통(內喉鈴筒)을 놓았다.
고산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대광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오른쪽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머리에는 나발이나 육계의 흔적이 없고 얼굴형태는 방형이다. 목에는 삼도가 있으나 뚜렷하지 않고, 귀가 커서 어깨에까지 이른다.
불의는 통견 형식으로 착의되었으며, 벌어진 가슴부분의 밑에는 군의주름만 표현되었다. 수인은 오른손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대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중지를 구부린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하였다.
고산사 대광보전내 신중탱, 산신탱, 칠성탱
고산사 삼층석탑
대광보전 앞 왼쪽 편에 자리한 삼층석탑은 전체 높이 218㎝로, 2중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만들고 상륜부를 형성하였다. 하층 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으며 기단석과 초층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모각되어 있다.
탑의 모든 부재가 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고 옥개석(屋蓋石)의 층급받침이 3단으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갑석(甲石) 및 옥개석은 모두 부분적으로 파손된 상태이며 3층의 옥개석은 거꾸로 얹혀져 있기도 하다.
초층 탑신에서 급격히 줄어든 2층 탑신과 약간 높게 남아 있는 2층 기단, 일직선으로 이어진 추녀선과 반전효과가 나타나는 낙수면 등 여러 요소에서 신라 석탑의 잔영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고산사 요사채
고산사 석조여래입상
뒷편 축대 쪽에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높이는 219㎝이며, 근래에 만든 석조연화대좌(石造蓮花臺座) 위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의 형태는 소발(素髮)이며 육계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상호(相好)는 살이 올라 둥글게 처리되었고 귀는 어깨부분까지 길게 내려왔으며, 목에는 삼도(三道)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이며 두껍게 처리하여 신체의 굴곡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목에서 무릎에 이르기까지 U자형의 옷주름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였다. 수인(手印)은 홍성지역에 남아 있는 다른 불상과 마찬가지로 오른손은 내려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은 구부려 가슴 앞에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하고 있다.
고산사 찾아가는 길
홍성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보령 쪽으로 12km 정도 가면 광천역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 96번 지방도로를 따라 9km 정도 가면 결성면에 이른다. 결성농협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8번 군도를 따라 1km 정도 가면 결성농요전수관이 있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2번 군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왼쪽에 고산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km 정도 가면 고산사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