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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주택이 흔하던 시절, 족제비는 안방의 천장까지 침입했다. 나이든 분들은 천장에서 족제비와 시궁쥐가 쫓고 쫓기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소리에 잠을 설친 기억이 날 것이다. 이는 족제비가 천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게 아니라 쥐를 쫓아(또는 찾아) 천장까지 가게 된 것이다.
족제비는 농경지와 개천이 흐르는 인가 부근에 많다. 특히 양계장이나 닭을 풀어 키우는 곳을 좋아한다. 이는 병아리를 훔쳐 먹기 위함이 아니라 사료가 풍족해 쥐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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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족제비 똥. 족제비 똥은 가늘고 길다. 주로 강가의 바위나 쓰러진 나무 위 등 두드러진 곳에 똥을 배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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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는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오래된 가옥이 밀집한 곳에서는 낮에 돌아다니는 경우도 잦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되었지만 한때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난곡에서는 골목을 횡단하는 족제비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곳엔 시궁쥐가 많았고, 당시까지 쥐약이 흔히 팔리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작은 섬에 족제비 방사는 위험한 모험
수산시장에도 족제비가 자주 나타난다. 이는 족제비가 생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곳에 시궁쥐도 많기 때문이다. 족제비는 산간지역에도 산다. 대체로 산간지역의 족제비는 크기가 작은 경향을 띠는데, 이는 먹이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먹이 크기가 작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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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둑에서 먹이를 찾는 족제비. 논둑을 따라가며 들쥐나 개구리, 뱀을 찾는다. 먹이는 냄새로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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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가 쥐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나 그밖에도 다양한 먹이를 먹는다.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쥐는 족제비의 먹이가 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다람쥐와 드물지만 청설모도 포함된다. 풀밭에 둥지를 짓는 꿩의 알이나 갈대와 작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작은 새들의 둥지도 턴다.
뱀과 개구리, 곤충도 자주 먹으며, 얕은 물에 들어가 물고기와 가재도 잡아먹는다. 낚시터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먹다 버린 빵과 과자, 컵라면과 사탕, 고기 반찬도 먹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산딸기와 오디, 감과 같은 연한 열매도 좋아한다.
족제비가 양계장에 침입하면 한 번에 여러 마리의 병아리나 중병아리를 죽여버릴 수 있다. 이는 족제비뿐 아니라 대개의 육식동물에게도 해당되는데, 삵이나 너구리에 비해 피해는 크지 않다. 아마도 몸이 작기 때문일 것이다. 달걀도 능숙하게 훔쳐 가는데, 그 자리에서 깨먹지 않고 아래 송곳니로 끼워서 운반한다.
족제비는 기본적으로 단독형 동물이다. 교미시 암수가 만나는 경우나 새끼가 독립하기 전까지를 제외하면 전적으로 홀로 산다. 크기가 작고 매년 새끼를 길러야 하는 암컷은 좁은 행동권을 소유한다. 수컷은 여러 암컷을 포함한 넓은 행동권을 가진다. 4~5월경 교미기를 거친 암컷은 6~7월경 4~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가을이면 어미로부터 독립하는데, 이 시기에 자주 차에 치여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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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드킬을 당한 족제비. 새끼를 기르고 있는 바쁜 암컷이나 갓 독립해 제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어린 족제비가 자주 교통사고를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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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많은 곳에 족제비가 이주하면 눈에 띄게 쥐가 감소한다. 때문에 쥐를 퇴치하기 위해 족제비를 이주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족제비가 한 지역의 쥐를 완전히 퇴치하지는 못한다. 족제비가 쥐를 감소시키면 족제비 또한 먹이 부족으로 번식률이 낮아지고, 먹이가 더욱 빈곤해지면 남은 개체도 그 지역을 떠난다. 이윽고 쥐가 새롭게 유입되거나 쥐가 급속히 증가한다.
이와 같이 생태계는 증감을 반복할 뿐 한 쪽이 다른 쪽을 말살시키는 쪽으로 진화된 게 아니다. 다만 예민한 생태계인 무인도나 작은 섬에 족제비를 도입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작은 섬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갈매기나 바다 쇠오리 같은 바닷새의 둥지를 공격해 새끼와 알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다. 때문에 작은 섬에 쥐가 폭증한다고 해서 족제비를 방사시키면 쥐를 퇴치하기는 커녕 다른 수많은 종을 잃게 된다. 사람들이 쥐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인 것이다.<계속>
/ 글 사진 최현명 조경·동물연구가·<야생동물 흔적도감>(최태영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