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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Winter Sundays” by Robert Hayden (1913~1980)
여국현 (시인/ 영문학 박사)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누구는 시인과 누구는 시와 대화하는 것이라 합니다. 또 누군가는 시 속에 펼쳐지는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를 통해 전해지는 새로운 생각과 이미지를 경험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그 모두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제게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와 시를 읽는 나 자신의 이야기가 만나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 또 하나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읽는 다른 시인의 시 속에서 제 이야기가 보이는, 제 이야기가 겹쳐지는 시가 때로 아주, 몹시 좋습니다. 2021년 1월을 여는 이 시가 제게는 바로 그런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버트 헤이든(Robert Hayden, 1913. 8~1980.2)의 「그 겨울의 일요일」“Those Winter Sundays”입니다.
시인, 수필가, 교육가로 활동했던 로버트 헤이든은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계관시인이었지요. 그는 흑인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50년대를 거쳐 오면서도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애가 더 두드러진 시들을 발표하면서 ‘흑인 시인’보다는 ‘미국 시인’이 되길 원했지요. 이런 입장과 태도 때문에 1960년대 특히 일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평가들로부터 ‘엉클 톰Uncle Tom’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백인들에게 비굴하게 구는 흑인을 비난하는 말이었지요.
하지만 정작 그의 시에는 자신을 포함한 흑인들의 비루하고 힘든 삶은 물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말콤 X를 포함한 그들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심한 불화와 끔찍한 가난, 자신의 지독한 근시로 인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개인적 불행 또한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1966년 <세계 흑인 예술 축제>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흑인의 정체성을 부정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는 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는 늘 그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 볼 「그 겨울의 일요일」은 물론 그의 대부분의 시에는 그 자신은 물론 흑인 공동체의 삶의 애환이 진솔하고도 담담하게 그러나 통렬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Sundays too my father got up early
and put his clothes on in the blue-black cold,
then with cracked hands that ached
from labor in the weekday weather made
banked fires blaze. No one ever thanked him.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 옷을 걸치고,
주중의 비바람 속 노동으로 인해
쩍쩍 갈라터지고 욱신거리는 손으로
묻어둔 불씨를 피운다. 누구도 그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읽을 때마다 이 시는 참 아픈 시입니다. 시인에게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제게도 그렇습니다. 첫 연부터 생생하게 보이는 공감각적 요소들이 그 아픔을 더욱 또렷하게 합니다. 주중에는 물론 일요일까지 쉬지 못하고 일을 나가야 하는 아버지는 ‘검푸른 추위’ 속에 일찍 옷을 걸쳐 입습니다.
‘blue-black’의 뜻은 ‘짙푸른’이지만 저는 글자 그대로 ‘검푸른’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검푸른 추위’라니! 어떤 추위인지 느낌이 오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읽을 때마다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그저 마음의 고통이 아니라 제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 고통이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검푸르뎅뎅한’ 아픔이 느껴지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한 장면 속에는 어릴 적 남동생이 있습니다. 강원도가 고향인 저와 제 남동생은 어린 시절, 겨울이 되면 발이 성하지 않았습니다. 변변치 않은 신발로 얼어붙은 논밭을 뛰어다니며 썰매를 타거나 눈 쌓인 초등학교 정문 가파른 길을 비료포대를 타고 내려오며 놀다 보면 발에 동상이 걸리곤 했지요. 특히 동생 녀석은 유난히 동상에 잘 걸렸습니다. 같이 밖에서 놀아도 녀석의 발은 늘 저 먼저 겨울을 알고 오래오래 그 겨울을 아프게 달고 살았지요. 겨울 초입이면 징후가 보이다가 1월이나 2월은 엄지발가락과 발 전체가 퉁퉁 부어 지내곤 했지요. 푸르뎅뎅한 그 겨울의 흔적.
엄마는 그런 동생을 위해 겨울 내내 마늘 대궁을 삶고 또 삶았어요. 마늘 대궁 우려낸 물이 동상 걸린 데 좋다고 그 우려낸 물에 매일 밤 녀석의 발을 담그고 있게 했지요. 짙은 갈색의 물에 담근 녀석의 발은 글자 그대로 ‘검푸르뎅뎅하게’ 퉁퉁 불어있었지요. 가끔 놀리고 가끔 나무라면서도 내 발은 근질거리고 아팠지요. 지금도 퉁퉁 부었던 그 발과 마늘 대궁 우려낸 짙은 갈색의 물과 좁은 방안을 가득 떠돌던 그 눅눅하고 미끈한 내음을 기억합니다.
또 하나의 검푸르뎅뎅한 기억. 그건 제 몸의 기억이지요. 십 년도 훨씬 더 전인 어느 해 겨울, 설악산을 올랐지요. 아무런 계획 없이 한계령 보겠다고 후배와 떠났다가 마음이 바뀌어 가장 빠른 오름길인 오색약수터에서 올랐지요. 폭설이 내리고 꽁꽁 언 산길을 아이젠도 없이 오를 수 없어 식당에서 겨우 구한 싸구려 아이젠을 하고. 오를 때는 어찌어찌 올랐고 내려올 때도 그냥저냥 잘 내려왔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다 내려와 아이젠 벗고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다가 삐끗하는 사달이 났지요. 발목과 무릎이 심하게 접질렸는데 달리 도리도 없고 견디며 서울에 왔고 견딜 만해서 견뎠지요. 그러다 그 주말에 방학 특강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다시 한 번 삐끗. 같은 자리를 조금 더 심하게 삐었습니다. 처음엔 죽을 것 같더니 참으니 참아지더군요.
미련퉁이처럼 괜찮겠거니 그냥 둔 것이 화근이었지요. 토요일, 일요일, 주말 내내 발목이 부으면서 쑤셔대는 아픔이란! 저는 사람의 발목이 그렇게 부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시푸르뎅뎅한 색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눕거나 엎드리거나 어떤 자세를 취해도 발목은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문틈으로 바람 한 자락만 스쳐도 수백 개의 바늘이 한꺼번에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으로 꼬박 밤을 새고 결국 응급실을 찾았지요. 고름과 섞인 피를 빼며 의사가 그러더군요. “왜 좀 더 있다 오시지요. 좀 더 있었으면 잘라내도 이상할 것 없었겠는데.” 물론 과장에 농담이 섞인 말이었겠으나 그냥 과장만은 아니겠다 생각될 정도로 발목의 고름은 짙고 뻑뻑해보였고, 그 죽은피와 고름을 빼는 내내 눈물도 좀 뺐습니다. “blue black cold”란 표현은 저에겐 이렇게 다가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의 아픔과 고통은 추억으로만 남고 감각은 기억의 바람으로 스치지만 사라지지는 않더군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blue black”이란 단어를 입으로 읊조릴 때마다 제게는 언제나 이 두 기억들이 발목과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엄습합니다. 화자가, 또 시인이 느꼈을 아버지의 ‘쩍쩍 갈라져’ ‘욱신거리는’ 고통은 제겐 시 속의 고통만이 아니라 제 몸과 마음의 이런 고통이 됩니다.
그렇게 쩍쩍 갈라지는 손으로 가족들 덜 깬 일요일 새벽, 일을 나가기 전 아버지는 밤 새 줄여놓았던 화롯불의 불씨를 살려 환하게 밝혀 놓으시네요.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아버지의 일. 잠든 가족들 가운데 누구도 그에 대해 ‘감사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던 걸까요.
잠시 생각해봅니다.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 시점의 시인의 마음을. 손톤 와일더(Thornton N. Wilder, 1897~1975)의 『우리읍내』Our Town의 주인공 에밀리Emily를 생각해봅니다. 죽은 에밀리가 돌아와 다시 보는 단 하루의 삶. 그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가는 엄마에게, 관객들에게 에밀리는 외치지요.
“오, 엄마, 단 한 순간만이라도 진짜 나를 보는 것처럼 나를 봐줘요...사람들 가운데 누구라도 살아있는 동안,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 동안 삶을 깨달은 적이 있을까요?”
Oh, Mama, just look at me one minute as though you really saw me...Do any human beings ever realize life while they live it?—every, every minute?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무심하게 보냅니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늘 그런 것처럼 보냅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된 화자, 시인의 마음은 어떨까요. 우리가 너무 늦게 알게 되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I'd wake and hear the cold splintering, breaking.
When the rooms were warm, he'd call,
and slowly I would rise and dress,
fearing the chronic angers of that house,
나는 잠 깨어 쪼개지고 부서지는 추위를 들었다.
방이 따듯해졌을 때, 그가 불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입는다,
그 집에 가득한 만성적인 분노를 두려워하며
이제 화자에게 추위는 다시 소리와 촉각의 감각으로 전해집니다. “쪼개지고 부서지는 추위!” 이 추위는 제게 또 다른 장면을 불러옵니다. 역시 아픔과 고통의 감각입니다. 물론 이 구절에서는 “아버지가 피우는 불 때문에 밤 새 얼어있던 추위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겠습니다만 제겐 “쪼개고 부술 듯 맹렬한” 아픈 추위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하나는 나뭇가지가 갈라지고 부서지는 소리로, 다른 하나는 내 몸의 어떤 기억으로.
오래전 부모님들과 겨울 백암을 간 적이 있지요. 일찍 잠 깬 새벽, 이따금 산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여왔지요. 창문을 열고 궁금해 하는 제게 아버님이 그러셨어요. “니는 제게 뭔 소린지 모르제? 나가 보면 안다.” 방을 나와 산 뒤 오솔길을 따라 갔지요. 제법 큰 나무들이 전나무며 소나무들이 하얀 눈을 잔뜩 이고 서 있었지요. 겨울 아침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사선으로 비껴드는데 문득 한 가지가 “찍! 뚜두둑! 뚝!” 하며 떨어졌습니다. 겨우내 눈이 잔가지에 쌓이고 얼고 또 녹았겠지요. 그러다 바로 그날 아침 햇살에 얼었던 가지 마디마디에 쌓인 눈얼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는 것이었어요. 그 소리란! 잔가지는 작은 소리를, 큰 가지는 큰 소리를. 제 귀를,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며 끊어져 떨어지더군요. “breaking, splintering”은 제게 그렇게 다가옵니다.
다른 한 장면. 겨울과는 아무 관계없는 감각의 경험입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조교를 하며 학업을 시작한 이듬 해 지방에서 수련회를 했지요. 그런 모임이 흔히 그렇듯 밤새워 행사도 하고 잘 놀고 아침에 남학생들과 축구를 했지요. 열심히 했지요. 그러고 보니 그땐 그랬군요. 다들. 뭘 그리 죽기 살기로 했는지. 시합 도중에 공을 놓고 달려들던 대여섯 명이 부딪혀 뒤엉켜 넘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래 깔렸지요. 일어나긴 했는데 오른쪽 어깨가 몹시 아프고 팔이 뒤로 돌아가지 않더군요. 수련회 분위기도 있고 해서 그냥 괜찮다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는 내내 좀 아팠지만 어찌어찌 잘 참고 그렇게 며칠을 불편한 채 다녔군요. 그러던 어느 특강수업 시간. 수업 내내 불편했지만 달리 도리도 없어서 오른 팔을 안 쓰고 수업을 하던 차에 깜빡했나 봅니다. 몸이란 게 그렇더군요. 칠판에 뭔가를 써야하는 순간이 왔는데 의식도 하지 못할 순간에 오른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젖혔지요.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화끈거리면서 어질해지더니 오른 팔과 어깨에 엄청난 아픔이 달려들더군요. 마이크를 든 손을 떨구고 주저앉았던 것 같습니다.
잠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앞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지나고 누군가 쫓아 나왔는데 나중에 간호사이던 학생이라고 했습니다. 제 팔을 주무르고 이것저것 살펴주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이런저런 말을 묻고 나더니 팔을 움직여 보라 하더군요. 그날 부딪힌 이후 내내 돌아가지 않던 팔이 뒤로 돌아가더군요! 조금 뻐근하고 통증은 있으나 큰 아픔은 없이. 그 학생이 말하더군요. 그때 어깨가 탈구되었던 것 같다고, 그게 다시 제자리로 들어간 것 같다고, 다행이라고. 새살이 탈구된 자리를 차고 앉아 굳었더라면 수술로 긁어냈어야 했을 것이라고. 얼마 지나 포항에 내려갈 일이 있어 내려가자 아버지—사실, 사고가 나던 그 주말에 부모님이 집에 와 계셨다가 어깨가 불편한 채 돌아온 제 모습을 보고 내려가셨지요. 아버지는 몇 번인가 전화로 병원에 가보라 말씀하셨지요— 권유로 병원에 가 엑스레이를 찍으니 탈구되었던 흔적이 그대로 담겨 나오더군요. 그 뒤로 아주 오래, 탁구를 치거나 볼링을 할 때면 가끔 오른쪽 팔이 탈구되는 불쾌한 경험을 했지요. 그러나 한참 지나니 탈구된 팔을 스스로 넣게도 되더군요. 멜 깁슨이라는 배우가 나오는 『러셀 웨폰』이라는 영화의 한편에서 첫 장면이 기억납니다. 포박된 채 자루 속에 담겨 바다 속으로 버려진 그가 어깨 탈구를 이용해 포박을 풀고 나오는 장면이 있지요. 과장일지는 몰라도 영 틀린 말은 아니겠다, 생각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소리입니다. 그때 그 교실에서 내 어깨가 다시 들어갈 때 나던 그 소리. 컸습니다. 사람 몸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딱!’ 어쩌면 고통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소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뭔가가 세게 부러지는 것 같은 마이크에 증폭되어 더 크게 강의실을 울리던 그 소리! ‘breaking’하는 그 소리 말이지요. 이 시의 저 부분을 읽을 때면 그때의 감각은 잊었지만 그 소리만큼은 아주 선명하게 듣습니다.
아버지가 피운 화롯불로 집은 이제 따듯해집니다. 화자는 일어나 옷을 입지만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집에 가득한 만성적인 분노’. 시가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 집’this house이 아니라 ‘그 집’that house이지요.
‘만성적인 분노’의 정체는 충분히 짐작할 만합니다. 여전한 차별이 존재했던 당시, 흑인 주체들이 가질 수밖에 없던, 일요일에도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 분노, 충분히 짐작됩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 점을 지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분노’에 화자, 시인 자신의 사적인 분노 또한 담겨있다고 봅니다.
시인은 태어나기도 전에 남편과 헤어진 시인의 어머니 품을 떠나 마찬가지로 가난한 헤이든 부부(Sue Ellen Westerfield and William Hayden)에게 입양이 되었습니다. 양부모는 가난과 함께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과 함께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 헤이든에게는 상처로 남은 어린 시절을 선물합니다. 이 시는 바로 그 양아버지에 대한 시입니다. 애증이라고 할까요. ‘만성적인 분노’는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분노와 함께 그 당시 집에 가득했던 양부모의 다툼과 그 속에서 어린시절 시인이 느꼈던 아픔이 함께 표현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화자가 느끼는 그때의 분노와 지금 이 시에 담긴 화자의 마음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지금은 사라진 화자의 분노와 두려움은 그때 저렇게 퍼렇게 살아있었던 것이겠지요, 매일 아침. 이제 마지막 연입니다.
Speaking indifferently to him,
who had driven out the cold
and polished my good shoes as well.
What did I know, what did I know
of love's austere and lonely offices?
무관심하게 그에게 말을 건넨다,
추위를 몰아내주고
내 구두 또한 윤이 나게 닦아놓은 그에게.
내가 뭘 알았겠는가, 뭘 알았겠는가
부성애의 그 준엄하고도 외로운 일들에 대해.
‘무심한’ 그때의 화자는 몰랐습니다. 아버지 자신이 다시 일을 하러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먼저 일어나 밤새 가득했던 ‘집안의 추위를 몰아내고’ 아들의 구두까지 닦아놓은 아버지를, 그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 와서야 알고 느끼게 되는 그 마음, 어땠을까요. 두 번이나 반복한 3행의 ‘내가 뭘 알았겠는가, 뭘 알았겠는가’라는 구절은 그런 화자의 회한과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담고 담담한 듯 깊고 애절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토록 ‘준엄하고 고독한 일’이었음을 이제 와서야 화자는 알게 된 것이지요.
‘일offices’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이라도 되는 듯. 사실 그렇기도 하지요. 어디 화자와 화자의 아버지뿐이겠습니까. 여러분과 저, 우리의 아버지들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또 이미 아버지가 된 많은 우리도 화자와, 시인과 같지 않을까요.
사실, 아버지라는 존재, 특히 현대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함께 연상되는 느낌은 어머니라는 존재와는 사뭇 다른 것이 사실이었지요. 어머니라는 명사에 담긴 따뜻하고 애틋한 긍정의 요소보다는 가부장적 억압과 연관된 무언가 부정적인 소원한 요소가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이르면 그 어색함은 좀 더해지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헤이든의 이 시는 남다른 여운과 울림을 줍니다. 두 딸의 아비가 된, 그리고 아버지라 부를 존재가 사라진 아들인 제게는 더욱.
하지만 어디 아버지-아들만일까요. 오르내리 가족에 대한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생각해봅니다. 제가 제 수업 중 하나인 <영문학개론>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늘 기말과제로 내는 주제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20-30대를 재구성하는 인터뷰를 하는 것입니다. 학기 중 일정한 시간 동안 부모님과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통해 부모님의 청년기를 재구성하고 공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한 번은 부모님의 삶에 대해, 그분들의 청춘과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곁에 안 계신 아버님의 자리가 허전하게 다가온 제 안타까운 경험 탓만은 아닙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자 남자,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자 여자로 지금 그들과 같은 시기를 거쳐 온 그분들의 삶을 함께 생각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문학교육의 가장 큰 부분 가운데 하나는 채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인생 가운데 우리가 아는 부분은 어느 시점이 지난 뒤뿐이지요. 그분들의 그 전의 삶, 특히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그때,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같은 시간을 지나오던 그때 그분들의 삶은 자식인 우리에겐 깜깜 세상이기도 하지요. 가끔 그 사실이, 어느 순간은 아주 많이 슬프고 또 죄송하지요. 되짚어 묻고 싶어도 어느 순간 그러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문득 깨닫는 시간이 오고 난 다음이라면 그 마음이란.
저는 이것저것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SNS에도 일기장 비슷한 데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때, 문득 지금 내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나에게 그때는 어땠어?라고 묻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번호에는 다른 시를 다룰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21년 1월호라 조금 더 밝은 시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詩』가 1월호이긴 하지만 12월말 경 발행이 될 것이고, 그 무렵이 선친의 기일 어름입니다. 이 시를 선택한 이유이며, 시 해설보다 에피소드로 가득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시의 장점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시’ 하면 무언가 충만한 의미로 가득한 세련된 단어가, 혹은 무언가 멋진 비유가, 아니면 반짝이는 수사가 수반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꾸밈없고 단순한 듯 보이는 언어에 담아 담담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는 시가 될 수 있음을 헤이든의이 시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며, 선친이신 故 여.오.석. 님의 명복을 빕니다. 로버트 헤이든의 「그 겨울의 일요일」“Those Winter Sundays”이었습니다.
Those Winter Sundays
Robert Hayden
Sundays too my father got up early
and put his clothes on in the blueblack cold,
then with cracked hands that ached
from labor in the weekday weather made
banked fires blaze. No one ever thanked him.
I'd wake and hear the cold splintering, breaking.
When the rooms were warm, he'd call,
and slowly I would rise and dress,
fearing the chronic angers of that house,
Speaking indifferently to him,
who had driven out the cold
and polished my good shoes as well.
What did I know, what did I know
of love's austere and lonely offices?
그 겨울의 일요일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 옷을 걸치고,
주중의 비바람 속 노동으로 인해
쩍쩍 갈라터지고 욱신거리는 손으로
묻어둔 불씨를 피운다. 누구도 그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나는 잠 깨어 쪼개지고 부서지는 추위를 들었다.
방이 따듯해졌을 때, 그가 불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입는다,
그 집에 가득한 만성적인 분노를 두려워하며
무관심하게 그에게 말을 건넨다,
추위를 몰아내주고
내 구두 또한 윤이 나게 닦아놓은 그에게.
내가 뭘 알았겠는가, 뭘 알았겠는가
부성애의 그 준엄하고도 외로운 일들에 대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