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작성되기 이전까지, 주로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배 형태였던 ‘미사’(Missa)와 국가교회로서의 성공회의 예배 형태와 구별되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예배 형태, 그리고 그러한 예배모범에 연계되어 있는 신앙의 실천에 있어서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오히려 우리가 왜 지금도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내용을 살피고 지향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먼저 우리들은 장로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장로교회의 신앙 가운데서 예배는 성경이 제시하는 원리에 근거해서만 드려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경이 금하고 있는 예배의 태도는 항구적이고도 철저히 금하며, 오직 성경에서 바르게 산출할 수 있는 근거에 의해서만 모든 예배의 요소를 구성하는 것이 장로교회 예배의 원래의 신학적 특성이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루터교회와 감리교회의 신앙에 바탕을 둔 예배에서는 ‘규범적 원리’(Normative Principle of Worship)를 지행하고 있다. 즉 성경에 명백히 금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예배에서 금하되, 성경에서 금하는 언급이 없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제정하여 사용함으로써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들은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제사(예배)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으시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창 4: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인해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인즉 가인이 선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자의적 예물(땅의 소산으로)을 드렸던 것이다.
사실 제사의 원형적인 성격은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로 곧장 제시되었는데, 그들의 허물과 부끄럼을 가려줄 수 있는 수단은 그들 스스로 취한 무화과나무 잎을 엮은 치마(창 3:7)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지어 입히신 가죽 옷(창 3:21)이었으니, 그처럼 그들의 타락한 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원리인 희생제물 가운데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사의 원리를 인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아담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의 후손들에게도 이를 전수하였을 것인데, 가인은 이를 간과하고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창 4:3)던 것이다. 창 4:7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불법에 대한 지적이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제사의 원리는 범죄한 우리가 자발적으로 제정하여 드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어 우리의 수치(죄책)를 가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의 원리를 담고 있는 성경에 따라서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규정적 원리야말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여자의 후손인 아벨의 제물과 같은 합당한 예배원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적 원리 가운데서 볼 때에, 장로교회의 예배에 있어 그 중심이자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따라서 예배의 모든 순서들이 전적으로 성경을 지향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장로교회들의 표준적인 예배모범인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예배순서와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영과 진리의 예배(요 4:24)는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는 예배이며, 오직 성경이 중심이자 원천인 예배이다. 바로 그러한 원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예배에 있어서 음악과 심지어 사도신경과 같은 신앙고백조차도 필연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는 주로 회중주의인 독립교회파의 영향이 컸다)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가한 총대들(특히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의 논의된 결론이었다.
물론 사도신경의 신앙의 내용들과 그 고백들은 설교에서의 메시지 가운데서 충분히, 그리고 풍성하게 전달되고 활용될 수 있다. 다만 그 때의 교리는 성경과 별도로 강설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 가운데서 연역되는 방식으로서 전달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교리는 성경 가운데서 활용될 수 있는 필연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의 고교회(High Church)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규범적 원리로 신앙고백을 비롯하여 영광송 등이 예배의 중요한 순서로 자리하도록 했으며, 특히 기도서나 예식서와 같이 정해진 문구로서 사용하는 일종의 ‘성무일도’(Officium Divinum)로 사용했던 것인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는 이마저도 용인하지 않을 만큼 철저히 규정적으로 예배를 개혁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예배에서 사도신경을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면,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와 규범적 원리를 구별할 뿐 아니라 어떤 것이 참되고 타당한 예배의 원리인지에 대한 분명하고도 정당한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