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화에서, 의(義)로운의 한자와 의수의 한자가 서로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분명히 이 의수(義手)에 쓰인 한자는 의학(醫學)의 한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의학적인 손이라기보단 정말로 '의로운' 손이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지난 2개월의 기간 동안 이 전자의수의 세계를 경험한 결과, 관련 분야의 많은 분들께 '전자의수 재능기부' 프로젝트는 어쩌면 의로움과는 거리가 먼 '판도라의 상자'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판도라의 상자는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러면, 왜 전자의수 재능기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행위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번 화에서는 의수/의족, 또는 의지/보조기 세계를 알 필요가 없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따라서 기준 금액만으로는 의지보조기 제조업체에서 제작하는 장애인 보장구를 구매할 수 없거나, 또는 매우 낮은 품질의 것만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 장애인 보장구에 대한 보험급여기준 (2013.09.30 개정안) 의 예시 ]
위 내용은 보험급여 기준에 대한 예시인데, 중요한 부분은 오른쪽의 비용항목 옆의 내구연한이다. 가령, 지난 몇 번의 연재에서 소개한 '정상에서' 님과 같은 경우에는 '표준 아래팔 의지'를 착용해야 한다. '정상에서' 님의 경우에는 3년이 지나야 한 번 바꿀 수 있으며, 그 중간에는 저런 '약소한' 비용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 '무려 양 팔이 절단된' 사람에게는, 3년에 한 번씩 일시적으로 150만원의 지원을 해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를 현재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조하는 의수의 제작비용을 상상하며, 과거 10년 간 기준 금액이 별로 오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의지보조기 제조업체도 위 금액에 맞추어 제작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보통 의지보조기는 보험급여기준 보다는 더 비싼 가격에 제작되거나, 혹은 값싼 (낮은) 품질의 재료를 써서 해당 비용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그 품질이나 고객 만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최근, 159개의 의지보조기 제조사들이 가입하여 활동 중인 한국 의지보조기 협회의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보험급여 기준 금액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상당했다.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다.
"더 높은 기준 금액 산정이 되어야,
더 나은 재료를 써서 더 좋은 품질로 의지보조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장애인 본인 비용이 줄어들어
그들의 삶에 더 많은 의수를 제공할 수 있다."
최근에 대화를 나눴던 관련 업계 종사자 분도 아래와 같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보험급여 기준 금액이 너무 낮은데, 그 금액에 맞추어
여러 소규모 의지보조기 업체들이 제작하는 경쟁을 하다 보니,
의지보조기의 품질은 떨어지고, 손님은 불평합니다."
"이렇다 보니 각 업체들은 서로 경쟁할 수 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악순환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그럼 '보험급여 기준액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기준 금액을 그냥 올릴 수도 없는 것이 문제이다. 정부 복지예산은 제한적으로 운영되기에, 어느 한 쪽의 예산이 증대되면, 다른 쪽 예산은 줄어야 한다. 이런 때일 수록, 더 나은 기술을 연구하고 활용하여, 더 적은 비용으로 의지보조기를 제작 및 개발하려는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에 알게 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국내에는 전문대를 포함하여 '단 네 곳'의 의지보조기 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대학이 존재한다. 지난 2015년 2월에 끝난 제15회 의지보조기 기사 국가시험은 총 84명이 응시했고, 이 중 63명이 합격하였다고 한다. 일년에 4개의 대학에서 약 80~90명 내외의 졸업생이 나오고, 그 중 60명 내외의 인력이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세계이다.
그럼, 국내에는 얼마나 많은 의지보조기 기사가 있는 것일까? 알아본 결과, 수 년 전에 대략 6백여 명의 기사 자격자가 있다는 통계를 확인했고, 이는 KBO에 등재된 한국 프로야구 선수 숫자 정도와 유사한 수준이다. 10개 구단 남짓한 야구단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이니, 그 규모가 크지 않음을 가늠할 수 있다.
나는 지난 2014년에 뛰어든 3D 프린팅 시장의 세계도 매우 생소했지만, 올해에는 더 생소한 곳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보는 것이 중요했다.
지난 주에도, 그리고 1달 전에도 몇 분들을 만났지만, 만났던 모든 것과 대화에 대해 비밀로 하기를 원하시기에 전혀 언급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전자의수를 누군가 개발하여 재능기부를 하고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서 직접적으로 나서서 돕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3D 프린팅 의수' '전자의수 제작' 또는 '오픈소스 의수' 프로젝트의 공감대가 형성되려면 1년은 더 걸릴 것 같기에, 일단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현재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많이 변했고, 국내에도 최소 3~4곳에서 비슷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여러 곳에서 시작된
3D 프린팅 의수 제작"
내가 전자의수 재능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난 1월 이후로, 서울에서 2곳, 그리고 부산에서 1곳의 3D 프린팅 의수 제작 재능기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먼저, 가장 먼저 알게 된 분은 최근 요르단의 수도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 보호소에 3D 프린팅 의수를 제작하러 다녀온 분으로, 이 분은 여러 비영리 및 NGO 활동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분이었다. 지난 1월 말, 이 분에게 3D 프린팅 (전자) 의수의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소개하면서, 세상은 참 넓고 대단한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 부산 'FunMove' 팀의 작품
(이 사진은 내 Facebook 담벼락에 '김근배' 님께서 댓글로 올려주신 사진이다.) ]
두 번째 팀은 최근에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FunMove 라는 이름의 팀이다. 위의 그림에 보이는 바와 같이 Flexyhand 라는 비영리 오픈소스 3D 모델을 개선하여, 전자의수를 직접 설계한 PCB (Printed Circuit Board) 를 활용하여 손 안에 넣는 작업을 진행 중으로, 보다 자세한 진행 상황은 [여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세 번째 팀은 3D 프린팅 커뮤니티 중 한 군데에서 진행 중인 의수/의족 제작 및 기증을 위한 봉사 모임이다. 비록 전자의수를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외국의 'E-Nable' 의수 제작 재능기부 프로젝트와 유사한 형태로 비영리 오픈 플랫폼을 제작할 계획을 갖고 진행 중인 팀이다.
"더 나은 전자의수를 향해
미궁을 헤매는 상황"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겠다. 나는 지난 3월 6~7일에 '니오' 님과 함께 부산에 다녀온 이후로, 약 2주에 걸쳐서 전자의수를 개선하는 과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화에 보인 바와 같이 전자의수의 전반적 재 설계를 하는 단계에 있다. 불필요한 디테일과 부품 크기를 감소시키는 과정을 통해, 더 가볍고 간결한 내부 구조를 만들어 가는 중에 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손가락의 각도 및 시작 위치를 사람 손과 유사하게 바꾸는 작업이었다. 아무래도 로봇 손의 모습은 이제 그만 탈피하고 싶었고, 그 부분을 하나씩 해결해 보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부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 사람의 손처럼, 방사형으로 각 손가락이 뻗어나가도록 했다.
(중지가 가장 돌출되어 있는 형태이다.) ]
[ 다음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은, 손가락의 높낮이와 손바닥의 곡면,
그리고 손가락의 길이 부분 등이다. ]
다음으로는 본 작업에 필요한 전반적인 부품들을 손쉽게 확인하기 위해 나열해 보았다. 아래의 사진은 3월 24일 현재 버전의 전자의수에 사용된 부품들의 대부분을 나열한 것이다. (현재 버전을 꼭 말해야 한다면 2.5 정도로 해야겠다.)
[ 3월 24일 새벽 5시 현재의 왼손 전자의수에 쓰인 주요 부품들
(참고로, 모터는 3개만 사용된다. 목적에 따라 강하고 느린 모터,
또는 빠르고 약한 모터 중 선택할 수 있다.) ]
위의 부품 중, 단연컨대 가장 비싼 부품은 우측 하단의 EMG (근전도) 센서 부품이다. 이 센서를 낱개로 사면 6만원 정도 소모되며, 보다 저렴한 방법으로는 근육의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정상에서' 님처럼 절단장애인의 경우에는 근육의 힘이 일반인에 비해 약하기에, 압력 센서만으로는 감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 다음으로 특이한 부품은, 지난 4~5화에 보였던 DC 기어드 (Geared, 감속) 모터 부품이다. 총 3개 (최대 5개)가 필요하고, 목적에 따라서 적절한 감속 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가령, 힘 세기를 가장 높게 하려면 가장 높은 감속 비율의 모터를 사용해야 하는데, 대신 전반적인 손가락의 속도가 느려지는 단점이 있다.
지난 화에서는 사진으로 간단히 스쳐 지나갔지만, 이번의 설계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스프링을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위 사진에서 스프링을 찾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스프링의 배치를 '손가락 내부'로 변경했기 때문으로,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사진과 함께 보이도록 하겠다.
[ 손가락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들
(인장 스프링, 스위치, 그리고 스프링의 양쪽을 잡아주는 볼트 너트들) ]
[ 손가락에 부품이 모두 조립되면 이런 모습이 된다. ]
[ 앞에서 바라보면 스프링 끝을 잡고 있는 볼트 축이 보인다. ]
[ 손가락 반대쪽 면에는 접시머리 볼트가 체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
위와 같이 스프링과 스위치를 배치하여 얻게 되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첫 번째는 사람의 손과 유사한 텐션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동 방식은 모터에 의해 손가락의 와이어가 당겨질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하면 스프링이 늘어나서 스위치를 누르게 되는 형태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있을 때, 특정 물체를 움켜잡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치자. 이 때, 모터는 물체를 감지하지 못하고 계속 힘을 가하여 와이어 (낚시줄)을 잡아당기게 되고, 손가락은 물체에 부딪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때에 스프링이 늘어나면서 스프링의 끝 부분이 스위치를 누르는 형태가 된다. 스위치가 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해당 모터를 정지시키게 되어 적당한 힘으로 물체를 잡을 수 있는 형태가 된다.
2) 두 번째는 부피를 차지하는 스프링 부분 그 자체를 손바닥 부분에서 손가락으로 옮긴 효과이다. 그 결과로, 보다 간소화된 손바닥 부분의 내부 설계를 할 수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현재 버전의 손바닥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
[ 여전히 복잡하지만, 그래도 지난번 버전보다는 간결한 형태의 손바닥 내부 구조 ]
[ 클로즈업 한 모습 (스위치 및 모터 전선의 배선을 개선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아래 동영상은 현재 제작한 결과물의 동작을 보인다. 모터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면 속도, 강도, 그리고 소음 측면에서 더 나은 것을 쓸 수 있겠지만, 이번 전자의수 제작 재능기부 프로젝트의 목표는 저비용으로 전자의수를 구현하는 것이기에, 저비용에 구매 가능한 모터들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소음 부분은 바깥 부분에 캡 (뚜껑)을 씌우는 형태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초에는 이상하게도 '전자의수' 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였지만, 2달 반이나 지난 지금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미궁 속을 헤쳐가는 느낌을 받고 있다. 하루 하루를 작업하면서, 왜 전자의수를 만드는 곳이 그렇게 적었을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에서' 님과의 세 번째 약속 날짜인 '4월 7일' 까지 개선해야 할 것들의 남은 부분을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요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영화 한편 보지 못하고 살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알기에 한 마디로 마무리하며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첫댓글 마지막말이 와닿네요 "우리는 답을 찾을것이다, 늘 그랬듯이"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