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출나게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아주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까지 내 돈으로 책을 직접 사서 읽어 본 적은 없었는 듯합니다.
무거운 책가방에는 교과서와 참고서, 그중에서도 두꺼운 영어 사전과, 3년을 채워 공부했던 『성문종합영어』, 이과생이라면 아주 두툼해야 했던 『수학의 정석』과 같은 필수과목들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고교시절 선도반에 있으면서 모범을 보인답시고 한 번도 책가방을 팔목에 걸거나 옆구리에 끼지 않고 한 손으로 바로 들고 다녔고, 3학년 때는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을 하는 바람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지금은 부자동네로 손꼽히는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인부들과 함께 신내동에서 대치동을 연결하는 버스에 올라타고 다니면서도 교과서나 참고서 만큼은 책가방이 없는 다른 한 손에 꼭 들고는 다닌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합창단 생활을 하던 시절에 알고 지내게 된 이성이 선물로 사 준 책이 저의 첫 도서목록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RICHARD BACH의【갈매기의 꿈】
아직도 저는 그 책의 이름을 【갈매기 조나단】으로 외우고는 있는데 이유인즉 원작제목이 Jonathan Livingstone Seagull 로 되어있어서 일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일반적인 갈매기와는 달리 먹이사냥에 생을 몰두하기 보다는 남보다 높이 빠르게 날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다가 득도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수준까지 오른 조나단이었으나, 무리들로부터 위험 요소로 찍혀 쫒겨나 외롭게 살아가는가 했지만 결국은 다른 갈매기들과 먹이 싸움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간단한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이해하기 쉬운 내용일 수 있지만, 일반 인문서적을 거의 보지 않았던 당시의 저로서는 상당히 어려운(?)책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생도 이럴 듯 합니다.
설령 내가 가는 길이 남들의 가십거리가 될 지언정 다른 면에서 본다면 남 부럽지 않은 나만의 참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책을 가까이 둘 수 있게 해주었던 친구도 저와 한 살 차이니까 같이 늙어(여물어)가고 있고, 그녀 역시 어린시절부터 많은 책들을 읽어 온 사람으로 지금도 제가 존경하는 친구 중에 한 명이란 사실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