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개소리가 너무 많다. 일일이 반박해 주려니 그것도 품이 든다. 몰아서 한 방에 해결하자. 개별적으로 보지 말고 하나로 연동시켜서 보는 것이다. 사건은 방향성이 있다. 방향이 맞으면 맞고 방향이 틀리면 틀린다. 세부적인 것을 시시콜콜 따져봤자 입만 아프고 큰 틀에서의 원칙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방향이 안 맞으면 좌고우면 하지 말고 과감하게 기각시켜야 한다. 이론적 확신을 가지고 담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방향성은 복잡을 단순화 시킨다. 사회학을 심리학으로 바꾸고, 심리학을 생물학으로 바꾸고, 생물학을 화학으로 바꾸고, 화학을 물리학으로 바꾸고, 물리학을 수학으로 바꾼다. 수학은 절대로 맞다. 방향성은 사건이 진행될수록 외부 변수가 밸런스에 반영되어 내부상수로 바뀌는 것이다. 방향이 안 맞는데도 현장에서 먹히고 있다면 외부 영향에 의한 교란인데 그래봤자 오래 가지 못한다. 그 경우는 판을 키우면 된다. 총력전, 전면전, 장기전으로 가면 결국 방향이 옳은 쪽이 이긴다. 천하단위, 문명단위, 역사단위의 큰 싸움으로 가면 진보가 이기고, 정의가 이기고, 선이 이긴다.
방향은 둘이다. 자체엔진으로 가느냐, 외력에 의존하느냐다. 자기 실력으로 가느냐, 컨닝으로 가느냐다. 자기 월급으로 사느냐, 부모 용돈으로 사느냐다. 문제는 사건이 점점 커진다는 거다. 처음에는 운이 좋은 놈이 이기지만 나중에는 실력이 뛰어난 넘이 이긴다. 처음에는 부모 용돈으로 살다가 결국 나의 수입으로 살아야 한다. 처음에는 외력에 의존하지만 결국 자체 엔진으로 갈아타야 한다.
서구가 동양을 이긴 것은 애초에 문명이 그쪽에서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서구가 운이 좋았다. 중세에 동양이 잠시 추월한 것은 중국이 홀로 독주하여 주변과의 에너지 낙차가 컸기 때문이다. 변방에서 인물이 나는 격이다. 다시 서구가 추월한 것은 북유럽문명, 인도문명, 아프리카 문명, 아랍문명, 지중해 문명이 하나의 서구문명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은 주변문명이 없이 고립되었기 때문에 2단 로켓에 점화할 수 없었다. 결국 문명의 실력대결로 흘러가면 다시 동양이 이길 수 있는 요인이 많다. 동양은 서구문명을 흡수하여 에너지 낙차를 만들어내지만 서구는 동양문명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가 동양의 의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존재는 사건이고 사건은 동적 환경이다. 판이 움직이는 것이다. 외부의 영향은 판이 움직이므로 차차 밸런스에 반영되어 어느새 내부가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정치인이 외부에서 판을 흔들지만 나중에는 국민이 변해서 그 힘을 흡수한다. 태극기가 처음에는 외부의 변수였는데 지금은 촛불의 맞대응에 의해 내부의 상수가 되었다. 외부 변수는 지렛대의 원리가 작용하므로 힘이 있는데 내부 상수는 힘이 없다. 지렛대의 손잡이는 길수록 힘이 있다. 외부변수는 거리가 멀 수록 힘이 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된다. 저쪽에서 형을 데리고 오면 이쪽도 형을 데리고 온다. 저쪽에서 삼촌을 데려오면 이쪽도 삼촌을 데려온다. 외부의 영향이 일시적으로 먹히지만 곧 대칭원리에 의해 교착된다. 더 이상 외부에서 데려올 자원이 없으면 실력대로 간다. 이차대전은 추축국과 연합국이 각자 외부에서 자기편을 데려온 것이다. 결국 이길 나라가 이겼다.
한국이 뜨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가 멀리서 작용하는 지렛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일본이 뜬 이유는 지금 한국이 뜨는 이유와 같다. 그런데 반영되었다. 서구는 일본문화에서 빼먹을 것을 빼먹었다. 한국은 아직 사골을 끓이면 나오는게 있다. 새로운 것이 일시적으로 붐을 이루지만 차차로 밸런스에 반영되어 운빨대결 끝나고 결국은 실력대결로 간다.
어리석은 자는 막연히 외부의 도움이 기적을 연출해주기 바라고, 천군만마가 되어주기 바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길 바라고, 주술을 걸고, 도박을 하고, 요행수를 바라고, 꼼수를 쓰고, 감성팔이에 이미지 쇼로 분주하지만 의미없다. 그런 관종짓은 잠시 먹히다가 밸런스에 반영되어 사라진다. 결국 정공법으로 이기고 실력으로 이겨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 속임수를 쓰는 손자병법이 지고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이기는 오자병법이 먹힌다. 확률과 같다. 주사위를 계속 던지면 큰 수의 법칙이 적용된다.
소인배의 각종 음모론에, 괴력난신에, 유에프오에, 초능력에, 텔레파시에, 귀신에, 도깨비, 허깨비가 다 센세이션을 노리는 것이다. 그게 오래 못 간다. 경마장에 처음 간 사람이 초심자의 행운에 기대는 것과 같다. 그런데 큰 수의 법칙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 과학을 믿고 수학을 믿고 진리를 믿고 방향성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건이 커지면 엔트로피가 작동한다. 엔트로피는 자원을 한 곳에 몰아주는 유체의 성질이다. 중간 칸막이는 갑자기 사라지고 양의 피드백이냐, 음의 피드백이냐에서 전체의 향방이 결정된다. 코로나19 감염재생산지수가 1보다 크냐 작으냐가 집단면역을 결정한다. 본질이 되는 밑바닥의 하나가 전부 결정한다. 다른 잡다한 변수는 쳐다볼 필요도 없다. 기레기가 국민의 눈을 가리려고 중간에 온갖 칸막이를 설치하여 철통같이 막아놨는데 한꺼번에 확 뚫려버리는게 엔트로피의 유체성질이다. 수압이 걸리듯이 닫힌계 내부에 압이 걸리기 때문에 바늘구멍만한 틈이 있어도 미친듯이 빠져나간다.
방향은 하나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여러 갈래가 큰 줄기로 통합된다. 군대가 좌군과 중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출발하지만 적국의 수도에서 모두 모인다. 결국은 일원화 된다. 고수는 변수를 줄이는 마이너스법을 쓰고, 하수는 변수를 늘리는 플러스법을 쓴다. 정답은 마이너스다. 변수를 줄여야 중앙에서 모두 모인다. 하수가 꼼수를 플러스 할수록 이미 반영된 부분과 충돌하므로 더 나빠진다. 안철수가 지지자 한 명을 영입하면 기존 지지자 한 명이 빠져나간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대군에는 병법이 필요없다고 했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한신의 다다익선과 같다. 롬멜도 한니발도 항우도 초반에 먹히는데 갈수록 먹히지 않는다. 전쟁의 규모가 백만 단위로 커지면 기습이나 매복을 피하고 정규전을 잘해야 한다. 하수는 외부 변수를 늘려서 지는 싸움을 도박으로 이기려 하고, 고수는 외부 변수를 줄여서 어차피 이기는 싸움을 반집 차이로 이긴다. 그런데 그 반집이 철옹성이다.
한국인 한 명과 중국인 한 명이 있다면 누가 한국인이고 중국인인지 알 수 없다. 한국인 백 명과 중국인 백 명은 확실히 구분된다. 세상은 사건이고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하면서 점점 커진다. 변수는 상호작용 과정에 용해된다. 폭로전이 먹히지 않는다.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 많지만 그게 초반에 반짝할 뿐 뜻대로 안 된다. 음모론도 그렇다. 초반에는 작은 의혹의 제기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만 갈수록 시들해진다. 우리가 초반에 잠시 먹히는 꼼수, 폭로전, 감성팔이, 이미지 쇼, 돌출행동,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설사 그런 것으로 떴다고 해도 뜬 다음에는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 변수를 투입할수록 백신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발악을 할수록 수렁에 빠진다. 내부에서 자력으로 이겨야 진짜다.
극한의 법칙을 적용하자. 11명이 뛰는 축구시합에서 골이 더 많이 터지게 하려면 선수의 숫자를 늘려야 할까, 줄여야 할까? 헷갈린다. 1명이 뛰는 시합과 백명이 뛰는 시합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양팀 각 한 명이 뛰면 승부차기다. 백 명이 뛰면 골이 안 터진다. 프로야구 승률이 헷갈릴 때다. 승수가 같을 때 5할 이상은 시합을 많이 한 팀이 지고 있고, 5할 이하는 반대다. 2승 1패와 99승 98패를 비교하면 된다. 이것은 수학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 혹시 모르잖아 하고 막연한 기대를 하는 사람이 많지만 모르긴 뭘 몰라. 아닌건 아닌 거다. 수학은 속일 수 없다. 그런데 뭐든 수학으로 바꿀 수 있다는게 방향성이다. 방향성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중간에 잠시 흔들리게 되지만 고비를 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