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기서는 부도지(符都誌) 박제상 지음 김은수 번역본에서 오행설(五行說)에 대한 기록이 있어 부도지 제 17 장에서 24장까지 번역문(원문생략)을 올려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족(漢族)의 뿌리와 우리 동이족의 뿌리를 인류 태초 마고할머니의 단성 생식으로 궁희(穹姬)와 소희(巢姬) 두 딸을 낳는다. 궁희(穹姬)는 단성 생식으로 황궁(黃穹)씨와 청궁(靑穹)씨를 낳고, 소희(巢姬)는 단성 생식으로 백소(白巢)씨와 흑소(黑巢)씨를 낳는다. 그리고 네 딸은 천남(天男) 넷을 만나 각각 3남(男) 3녀(女) 씩을 낳아 12쌍의 남녀(男女)로 12지파가 3,000명으로 36,000명로 인류가 증식 되었을 때 지유(地乳)를 먹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소희(巢姬)의 자손 6지파 중에서 마고성(麻姑城) 밖에서 뻗어 올라온 포도 열매를 따서 먹었는데 처음 따서 먹은 사람은 나무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소희(巢姬)의 후손인 백소(白巢)씨와 흑소(黑巢)씨 파 중의 지파, 즉 서방파(西方派)에서 포도를 따먹은 오미(五味)의 범죄로 마고성(麻姑城)의 지유(地乳)가 나오는 곳을 잃고 네 지파로 나누어진다. 그 후손을 한족(漢族)인 도요(陶堯)로 보며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인 파미르고원을 마고성(麻姑城)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한족(漢族)은 지소파(支巢派)인 본래 마고성(麻姑城)에서 나와 타르분지에서 기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도지 제 17 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때에 도요(陶堯)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났는데, 일차로 성(城)을 나간사람들의 후예(後裔)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 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 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장하므로,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堯)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내었다. 묘예(苗裔)는 황궁(黃穹)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씨(有因氏)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나갔기 때문에 그 비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苗裔)가 마침내 동. 서. 북의 세 방향으로 흩어졌다. 요(堯)가 곧 9주(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中)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하여, 그것으로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의 역(曆)을 버리니, 이는 인간세상의 두 번째 큰 변이었다.
※도요(陶堯); 중국의 요임금.<사기>에 의하면, 제곡(帝嚳)이 죽자 지(摯)가 제위에 올랐으나 불선(不善)했으며, 그가 죽자 동생 방훈(放勛)이 임금이 되었는데 그가 요(堯)라고 했다.<18사략>은, “제도요당(帝陶堯唐)씨는 성(姓)은 이기(伊祁). 일설에는 이름은 방훈(放勳)이라고도 한다. 제곡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그는 산서성 평양부에 도읍지를 정했다. ※간;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부도지>28장 참조) ※9수5중; 1부터 9 까지 늘어놓으면 5가 중심이 된다.
※오행(五行)이란? 우주(宇宙)의 운행(運行)하는 원기(元氣)로서, 만물의 주성분이 된다는 5원소(元素) 즉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말한다. 목(木)은 육성(育成)의 덕(德)을 맡는다고 하며, 방위는 동쪽, 철은 봄에 해당한다. 화(火)는 변화(變化)의 덕(德)을 맡아 방위는 남쪽, 여름에 해당한다. 토(土)는 생출(生出)의 덕(德)을 맡아 방위는 중앙, 사시(四時)의 주(主)가 된다. 금(金)은 형금(刑禁)의 덕(德)을 맡아 방위는 서쪽, 가을에 해당한다. 수(水)는 임양(壬養)의 덕(德)을 맡았으나 방위는 북쪽, 겨울에 해당한다.
또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을 상생(相生)리라 하고, 목극토(木剋土), 토극수(土剋水),수극화(水剋火),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을 상극(相剋)이라고 한다.(이홍식<국사대사전>,<오행및 오행설>참조)
그러나 <부도지;符都誌>는 이와 같은 오행설(五行說)에 대하여 천수(天數)의 이치(理致)에 이러한 것이 없으며,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수성(數性)에 짝 지우는 것도 옳지 않다고 통렬하게 공격하고 있다.(21장 참조.<부도지>는 음양오행설 대신에 허실기화수토설(虛實氣火水土說)을 말하고 있다.(2~3장 참조) 또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너희의 땅은 스스로 큰 듯하나 한 알(丸)의 작은 세계이다. 중심의 불(火)이 흔들려서 바다(水)가 변하여 육지(土)가 되고 곧 형상을 이루게 되었다. 신(神)께서 기(氣)를 불어 밑을 싸고 햇빛과 열로 따뜻하게 하시어 걷고 날고 화(化)하고 헤엄치고 심는 것들을 번식하게 하셨다.”고 함으로써 기화수토(氣火水土)설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왕조(朝鮮王朝)영조 때의 북학파 홍대용(洪大容)은 <의산문답;毉山問答>에서, “대저 땅의 경계는 태허(太虛)에 비하면 미세한 티끌에 지나지 않으며, 중국의 지계의 10수분의 1일 따름인데 지구 전체를 28숙(宿)에 배당하였다면 오히려 혹 그럴 수도 있음직 하지만, 구주(九州)의 좁은 땅을 중계(衆界)에다 억지로 짝지어 무리하게 쪼개 붙여서 재앙과 상서의 징후를 점치려 하는 것은 더욱 허망한 것이라 말할 나위도 없소.”라고 한 후 “옛사람이 때를 따라 의견을 세워 만물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여 거기에 하나라도 가감할 수 없거나, 천지만물은 꼭 이 수만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오. 때문에 오행(五行)의 다섯이라는 수는, 원래 정해져 있는 설이 아닌데 술가(術家)들이 이를 조술(祖述)하고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이치를 억지로 끌어다 붙이고 주역의 상사(象辭)로써 이에 천착(穿鑿)하는데, 상생상극(相生相剋)이니 비잠주복(飛潛走伏)이니 하는 지리멸렬(支離滅裂)하고 장황(張皇)한 이 기교(技巧)는 결국 아무런 이치(理致)도 없는 것이오. 대저 화(火)는 해(日)이고 수토(水土)는 지구이니, 목금(木金)과 같은 것은 해와 지구가 생성하는 것이요. 마땅히 화토(火土) 3자와 더불어 병립하여 오행(五行)이라 함은 부당하오.“라고 하여 오행설(五行說)을 극력(極力) 배격(排擊)했다.(홍대용,<담헌서>, 대양서적, 1975, 40~46 쪽/해설 <한국문화의 본체성>참조)
【2】;소부(巢父)와 허유(許由) 전부터 천하(天下)의 현인(賢人)을 눈 여겨 보아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하였다. 그가 아직 순(舜)을 마나기 전 양성(陽城)의 허유(許由)라는 사나이가 가장 뛰어난 현인이라고 들었기에 친히 그를 찾아가 천하를 넘겨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허유(許由)는 청렴고결한 사람으로 왕위를 물려받기를 원치 않아 밤중에 뛰쳐나와 기산(箕山) 기슭 영수(潁水)가로 옮겨 살았다. 요(堯)는 천하를 바라지 않음을 알자 이번에는 사람을 보내 구주(九州)의 장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허유(許由)는 그 말을 듣고 더욱 염증이 나서 부지런히 영수(潁水)로 가서 물로 귀를 씻었다. 그 곳에 마침 그의 친구인 소부(巢父)가 물을 먹이려고 송아지를 끌고 왔다가 허유(許由)가 귀를 씻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다. 허유(許由)는 말했다. “요(堯)가 나더러 구주(九州)의 장이되어 달라네. 이런 번거로운 소리가 싫어서 귀를 씻고 있다네.” 소부(巢父)는 그 말을 듣고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만두게나, 자네가 지금까지 심산유곡(深山幽谷)에라도 들어가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였다면 누가 자네더러 귀찮은 일을 부탁하러 사람을 보내겠나? 쓸데없이 여기저기 나다녀서 명성을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이런데서 귀를 씻고 어쩌고 하는데 우리 송아지의 입이나 더럽히지 말게.“라고 말하고는 송아지를 데리고 상류로 가서 물을 먹이는 것이었다. 지금도 기산(箕山)에는 허유의 묘가 있고 견우허(牽牛墟)라는 곳이 있다. 또 영수 옆에는 독천(犢泉)이라는 샘이 있으며 바위 위에 송아지 발자국이 나 있는데, 여기가 바로 소부(巢父)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인 곳이라는 것이다.(이훈종<중국고대신화>.범문사,1982, 112~113쪽 참조)
※★묘예(苗裔);묘족, 후예라는 뜻도 있음.
★구주(九州);기주(冀州),연주(兗州),청주(淸=靑州),서주(徐州),양주(揚州),예주(豫州), 형주(荊州), 옹주(雍州), 양주(梁州)를 말함.
★부문(負文);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글.
★명협(蓂莢); 역초(曆草)라고도 한다. 보름까지는 날마다 잎이 하나씩 나고 보름 후부터는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데, 작은 달에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린다고 한다.
【3】;부도지 제 18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손자 유호씨(有戶氏) 부자에게 환부(鰥夫)와 권사(權士) 등 백여 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堯)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堯)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하고 공손하게 대접하여 황하의 물가(河潽)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五味)를 먹지 아니 하였으므로, 키는 열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 보다 나이를 백여 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운(頑迷)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堯)가 유호씨(有戶氏)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다른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舜)이 곧 미혹하여 졌다. 유순(有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鰥夫)가 도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절도가 없더니, 이에 이르러 요(堯)에게 미혹당하여 두 딸을 아내로 삼고(密娶) 어리석게도 요(堯)에 붙어 협조하였다.
※▼유호씨(有戶氏);단군의 신하. 유우(有虞). 즉 순(舜)의 아버지, 중국 측의 사료에는 고수로 되어 있다. <부도지>에 의하면 유호씨는 외교가로 그의 논리는 정연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오행설(五行說)의 오류를 지적하고 기화설(氣火說)을 제창하였다. 유호씨는 후에 월식.성생주로 들어가 전교했다.<19사략>은 유호씨가 무도(無道)해서 정도(正道)를 어지럽히므로 계(啓)가 섬서성의 감(甘)에서 싸워 그를 멸망시켰다고 했다.
▼하빈 ;물가. 하는 황하를 가리킨다.
▼유순(有舜); 우순(虞舜)은 이름이 중화(重華)다. 중화의 아버지는 고수(瞽叟), 고수의 아버지는 교우(橋牛), 교우의 아버지는 구망(句望), 구망의 아버지는 경강(敬康), 경강의 아버지는 궁선(窮蟬), 궁선의 아버지는 제전욱(帝顓頊),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라고 했다.(<사기>참조).<단기고사>의 기록은 <부도지>와 매우 일치한다. “고수(高叟)는 중신 고시(高矢)의 친형이다. 그의 아들 순(舜)이 단조(檀朝)에 벼슬하지 않고 이웃나라 당요(唐堯)에게 벼슬하므로, 부자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마침내 화목하지 못 했다. 그런 이유로 고수는 작은아들 상(象)을 사랑하고 일찍이 순을 죽이고자 하거늘, 순이 아버지의 뜻을 알고 효성으로 봉사하여 끝까지 순복(順服)하니 당요(唐堯)가 신임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에 순(舜)이 중화의 천지가 되어 문명한 정치를 베풀므로,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각각 그 직업을 주고 우(禹)의 아버지를 우산(羽山)에서 치며 간사하고 흉악한 이들을 축출하니, 이로써 한족(漢族)에게 미움을 사서 우(禹)의 덕망이 날로 높아져서는 순(舜)이 재위 61년에 창오(蒼悟)의 들을 순행하다가 한족(漢族)이 해하여 죽으니, 순(舜)의 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원한을 품고 소상강에서 익사하고, 그의 아들 상균(商均)은 다시 고국에 돌아와 단조(檀朝)에 벼슬하여 관직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단기고사>.개마서원 1981 참조).
<한단고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단군왕검은 당요(唐堯)와 병세(竝世) 하였다. 요(堯)의 덕망이 갈수록 쇠하여지자 너도나도 몰려들어 땅을 다투기를 쉬지 아니하였다. 천왕(天王)이 곧 우순에게 명하여 땅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서 주둔하게 하였다. 약속하고 당요(唐堯)를 정벌하니 요(堯)가 힘이 다하여 우순에게 의지하여 목숨을 보전하고 나라를 넘기었다.”(앞의 책<주해; 한단고기>.185 쪽 참조)
【4】;부도지 제19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 유호씨(有戶氏)가 수시로 경계하였으나, 순(舜)은 ”예“ ”예“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堯)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有戶氏)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討伐)하니, 순(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堯)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五味)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오행(五行)의 화(禍)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간세상이 곤란하고 고통스러워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부자지간이나 형제지간이라도 용서 할 수 없다.“ 하고 곧 둘째아들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權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陶)를 혁파하였다. 요(堯)는 갇혀 있던 중에 죽고, 순(舜)은 창오(蒼悟)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陶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堯)의 무리 우(禹)가 순(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 버렸다. 순(舜)의 두 처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禹)가 곧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正命) 공을 세운다(立功)”고 말하고 상(商)의 군사를 위로 하고 돌아감으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禹)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때에 우(禹)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창오(蒼悟); 지금의 광서성 창오현, 광서성은 중국의 서남단, 베트남과 접경을 이루는 성이다. ▼우(禹); 하우(夏禹),이름은 문명(文命), 우의 아버지는 곤(鯀), 곤의 아버지는 제전욱(帝顓頊),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 창의의 아버지는 황제(黃帝)다. 우는 황제의 고손(高孫)이자, 전욱의 손자다.(<사기>참조. <사기>에서 순(舜)은 황제의 8대 손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미(五味)의 재앙과 오행(五行)의 화(禍)를 단편으로 보면 오미(五味)는 맛을 혀끝으로 보는데 모든 생약(生藥)의 맛은 대체로 5종류로 구분한다. 즉 신맛(酸=산), 쓴맛(苦=고),단맛(甘=감), 매운맛(辛=신), 짠맛(鹹=함)등이다.
감보(甘補);단맛은 원기(元氣)를 보(補)한다.(人蔘) 신산(辛散);매운맛은 발산(發散) 발한작용(發汗作用)을 한다. 고한(苦寒); 쓴맛은 열(熱)을 하강(下降)시키고 차게 작용한다. 산삽(酸澁); 신맛은 떫으며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하므로 호르몬 유출(流出) 및 설사(泄瀉)등을 멎게 한다. 함연(鹹軟); 짠맛은 딱딱한 것을 연(軟)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는 작용(作用)을 갖는다.
오행(五行)의 화(禍)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중에 금수목화(金木水火)나 수화목토(水火木土)로 토금(土金) 중에 하나를 택하고 목(木)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이치로 생성되니 제거해야 맞고, 천지(天=日=火;地=土+水)는 화토수(火土水)의 3개 원소(元素)보고 그 외에 만물은 모두 하늘(日=火)과 땅(흙+물)의 조화로 생성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호씨(有戶氏)는 기화설(氣火說)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기(氣)의 허실(虛實)로 오행(五行)이 아닌 육행(六行)인 허실기(虛實氣) 화토수(火土水)를 원소(元素)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는 자들이나 과거 공자(孔子)님의 시대나 현존 인물도 중국의 산동반도의 태산(泰山) 일대에 살고 있는 분들이 신체가 다른 곳에 비해 거구인(巨軀人)이 탄생하는 곳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 칡을 먹고 오미(五味)를 먹지 아니 하였으므로, 키가 열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는 내용과 요즘에 칡에는 중요한 호르몬작용이 있어 여성들에게 좋다는 연구보고 와 연계된 현대 과학적으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며 과거의 부도지에 기록된 사항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5】;부도지 제 20 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禹)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의 종족들을 정벌하여 제후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 제시(祭市)의 제도를 본받는 것이었으나 매우 갑작스러웠다.(暴突;폭돌)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禹)가 곧 수륙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때에 유호씨(有戶氏)가 서방에서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의 종족들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을 이루었다. 유호씨(有戶氏)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禹)에게 타이르기를(諭示), “요(堯)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홀로 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토석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天權)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며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은 수(數)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證理)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외에 다시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符都)의 법(法)은 천수(天數)의 이치(理致)를 명확(明確)하게 증명(證明)하여 사람에게 그 원래(元來) 임무(任務)를 수행(遂行)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비록 선후(先后)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親熟)하고 생소(生疎)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四海)가 평등(平等)하여 종족(宗族)들이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를 속죄(報贖;보속)하는 것과 대성(大成)(麻姑城;마고성)의 일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一人) 희생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일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씨 와 유인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도산(塗山);안휘성에 있음.
【6】;부도지 제 21 장은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의 중앙 5는 교차의 뜻이요, 달라진 움직임(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부터 9까지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며, 9가 윤회하여 율(律)과 려(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 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 7이 있는 것이다. 또 순역(順逆) 생멸의 윤멱(輪冪)은 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 이다. 또 윤멱(輪冪)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 x 4 = 8 사이의 7이요, 5가 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다섯 중에서 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하고자 한다면 기(氣). 풍(風). 초(草). 석(石)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밀히 구별해서 들자면 금(金).목(木). 수(水). 화(火) 혹은 토(土). 목(木). 수(水). 화(火)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 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행(五行)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것이다. 이로써 인간세상을 증명하여 밝히는(證理) 일을 속여서 미혹하게(誣惑) 하여 곧 하늘의 화(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기수(基數);기초로 하여 쓰는 수. 곧 1에서 9까지의 정수(整數). ▼윤멱(輪冪);멱은 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한 상승적인 수를 말 함. 9 x 9 x 9= 9,3자승. 또는 a 3자승 따위. ▼배성지물(配性之物);수성(數性)에 맞춰 배당한 물질. 즉 금목화수토;金木火水土
【7】;부도지 제 22 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蓂莢) 같은 미물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堯)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數)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뿐이겠는가.? 모든 사물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은 역사(歷史)다. 그러므로 요(堯)의 역제는 거북과 명협(蓂莢)의 역(曆)이요 인간의 역(曆)이 아니니, 그것이 인간 세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당연하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니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어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曆)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曆)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天數)에 어긋나 화(禍)가 되니, 이는 복(福)은 이치가 존립하는 데 있고 이치는 바르게 밝히는 데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曆)이 바르고 바르지 못함은 인간세상의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가히 삼가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禍)가 한 사람의 미혹에서 나와 만대의 산 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曆)의 화(禍)가 장차 천세(千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삼정(三正); 1. 4. 7.의 성수(性數)와 2. 5. 8.의 법수(法數)와 3. 6. 9의 체수(體數)인 것 같다.
【8】;부도지 제 23 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終始)의 종시(終始)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終始)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 회를 사(祀)라 하니 사(祀)에는 13 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 일이 있으며. 다시 4 요(曜)로 나눈다. 1 요(曜)에는 7일이 있고, 요(曜)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祀)에 52 요복(曜服)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 4. 7의 성수(性數)요, 매 사(祀)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旦)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일이 되고 3사(祀)의 반에 대삭(大朔)의 판(昄)이 있으니, 판(昄)은 사(祀)의 2 분정이다. 이는 2. 5. 8의 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 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祀)는 366 일이 된다. 10사(祀)의 반에 대회(大晦)의 구(日下+咎)가 있으니, 구(日下+咎)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구(日下+咎)가 1 묘(眇)가 되니, 묘(眇)는 구(日下+咎)가 눈에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 묘(眇)를 지나서 각(刻), 분(分), 시(時)가 1 일이 되니 이는 3. 6 .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과 대력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堯)의 이 세 가지 잘 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符都)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부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사(祀); 연(年)과 같음. ▼기(期);월(月)에 해당함. 음력으로 윤달이든 해는 13 개월이 됨. ▼ 4요(曜); 1 기28일의 4분의 1, 즉 7일.
★중국에는 전욱력(顓頊曆), 삼통력(三統曆),사분력(四分曆)이라는 것이 있다. 또 갑골문(胛骨文)의 해독으로 밝혀지게 된 은(殷)의 역(曆)이 있으나 한국역(韓國曆)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는 역(曆)은 없다. 이 점에서는 서양(西洋)의 역(曆)들도 만찬가지다.
★상력(商曆)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날짜는 간지(干支)로 기록하였다. 즉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10간과, 자(子),축(丑), 인(寅), 묘(卯),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12지를 배합하여 사용하였다. 배합의 결과는 모두 60일이 되었다. 따라서 60일이 1주기였다. ②오늘은 금일(今日), 석양은 금석(今夕), 낮은 일(日),밤은 월(月)이라고 하였다. <월(月)과 석(夕)은 혼용된 문자였다.> ③다음, 날이나 그 다음 날은 익(翌)이라고 하였다. 10일을 순(旬)이라고 불렀는데, 대개 1 순 내의 미래 일을 통칭하여 익(翌)이라고 하였고, 1 순(旬) 외의 미래 일은 통칭하여 래(來)라고 하였다. ④지난날은 석(昔)이라고 불렀다. ⑤10 간(干)의 날짜가 일주하는 기간을 1 순이라고 하였다. ⑥대월(大月)은 30일이고 소월(小月)은 29일 이었으며, 1년을 1 사(祀)라고 불렀는데 1 사(祀)에는 대월과 소월이 교대로 배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1 년의 마지막에 13월(月)을 두었다가 말기에 이르러서는 윤월(潤月)을 1년의 중간으로 옮겼다. ⑦조상에 대하여 다섯 종류의 제사가 순차적으로 매일 행하여 졌는데, 이 제사의 한 주기가 1년이 걸렸다. 따라서 1년을 1 사(祀)라고 불렀다. ⑧시기를 기록할 때는 날짜의 간지가 맨 앞에 오고 어느 왕의 몇 사(祀)인지를 기록하였다. (윤내현,<상주사(商周史)>.민음사. 1985, 85~85쪽 참조) 은(殷)나라 사람들의 역법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에 근거한 것으로, 삭월의 정확한 날짜의 수는 정수가 아니라 29.530.588일이다. 6개월은 30일, 6개월은 29일로 하여 1년을354일로 계산했다.
【9】;부도지 제 24 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호씨(有戶氏)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모든 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자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그러나) 여러 번 이기지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의 진지에서 죽었다. 이에 하(夏)나라 백성(夏衆)들이 슬프고 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이었다. 이는 거의가 우(禹)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천이었다. 그러나 하(夏)나라 군사(夏軍)는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 번도 전적을 드높이지 못하였다. 계(啓)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앙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夏)나라 백성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의 종족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이 자연히 없어졌다.
※모산(茅山); 구곡산(句曲山)이라고도 하며, 강소성(江蘇省)안에 있다. <사기>에는 우(禹)가 10년에 나라 안을 동으로 순행하다가 회계산에서 죽었다고 했다.
【10】;우리는 음양(陰陽) 오행설(五行說)을 그냥 전수 되는 하나의 동양철학(東洋哲學)으로만 보기에는 문제의식(問題意識)을 가지고 다시 봐야 합니다.
§;여기 부도지에서 말하는 특히 오행설(五行說)을 천수(天數)에 어긋난다는 주장으로 요(堯),순(舜),우(禹),을 비판하는 순임금의 아버지인 유호씨(有戶氏)는 임검씨인 18대 거불단(居弗檀)한웅인 단웅(檀雄)천황의 아들 단군왕검(檀君王儉)보다 나이가 백세가 더 높다고 했으니 BC;2,470년에 태여 나셨다면 거불단(居弗檀)단웅(檀雄)천황의 신하로서 대를 이은 충성을 하고 있는 분으로 해석 됩니다. 그래서 천수(天數)의 논리(論理)로 신교(神敎)인 삼신사상(三神思想)에 바탕을 두고 있음으로 초대 한웅천황 배달(倍達)한웅 또는 거발한(居발桓)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BC;3898년 전입니다. 해(日)를 숭배하던 태양숭배사상과 인류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과 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바다로 보아서 세 가지의 원소(元素)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해의 원소(元素)는 불(火),또는 화산의 용암의 불(火)덩이, 사람이 발 딛고 서 있고 만물인 동식물(動植物)을 기르고 있는 땅의 원소(元素)는 흙(土)이고 지구에 모든 물이 모여 물고기를 기르고 있는 바다를 이루고 있는 원소(元素)는 물(水)로 봤을 때 화(火),토(土),수(水)로 3원소(元素)로 분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신(三神)사상은 기본 바탕이 천지인(天地人)으로 화(火),토(土),수(水)로서 만물은 지구의 흙과 물에서 탄생함으로 사람의 몸은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사상과 일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氣運)이나 힘으로 보는 바람의 원소(元素)를 셋으로 분류하여 허실기(虛實氣)로 보고 있으나 허(虛)와 실(實)을 기(氣)로 통합하여 “기(氣)”로 볼 때, 서양은 동양보다 3천년 이상이 지난후인 BC; 430년 전에 “엠페도 클레스가 천지만물(天地萬物)은 불(火), 토(土), 물(水),공기(空氣)의 넷”으로 본 것과 일치 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의 흐름은 요즘 보면 서양이 문화 선진국 노릇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고대역사인 7명의 하나님이신 한인시대(桓因時代) 3,301년은 무시할 수 없는 역사이며 한웅천왕(桓雄天王) 18세 1,565년은 하나님이 우리인류에게 세계의 맨 처음 삼신사상(三神思想)을 재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전환기(轉換期)이자 원시반복(原始反復)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교(神敎)를 기본으로 삼신사상(三神思想)으로 국내에 전통종교(傳統宗敎)로 내려오는 대종교(大倧敎), 단군교(檀君敎) 등등 우리의 한민족종교(韓民族宗敎)들은 하루속이 대통합을 해서 정신문명(精神文明)을 우리만 유지해온 종교들로 끝나지 말고 세계의 지구상에 있는 인류(人類)를 향(向)하여 전교(傳敎)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제는 문을 활짝 열고 포교를 위해 그동안 편법적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방법으로 포교를 했다면 하루속히 신교(神敎)의 삼신사상(三神思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국민의 신판을 받고 시정할 것은 과감히 시정해야 합니다. 새로운 발전으로 세계 속의 종교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인류의 모든 사람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실천강령(實踐綱領) 등도 현실에 맞도록 개선할 점이 있다면 과감하게 수정하고 혹시 혹세무민(惑世誣民)을 할 수 있는 부분은 현대 과학적으로 해부돼야 하고 또는 개선하여 지구상에 어떤 종교보다도 과학적(科學的)이고 현실적(現實的)인 종교(宗敎)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오행설(五行說)은 우리의 신교(神敎)인 삼신사상(三神思想)을 파괴(破壞)하기 위한 이론으로 점철 됐다는 이론의 본바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교(神敎)가 마지막으로 뻗어나가다가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종착(終着)하고 태평양(太平洋)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상륙을 하지 못하고 다시 온 곳으로 되돌기 위해서 것이었던지, 아니던지 1905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과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우리조선왕조(朝鮮王朝)의 국치사건(國恥事件)으로 36년 동안 우리의 고통과 민족분열(民族分裂)로 세계 도처에 흩어진 우리민족의 한(恨)은 이루 말로 표할 수 없이 많지만 우리가 전해준 신교(神敎)를 다시 일본(日本)은 우리를 침략(侵略)의 덧으로 왜정 36년 동안 한반도 시군에 신사당(神祠堂)을 짓고 우리의 문화, 아니 중국의 당(唐)나라, 주(周)나라, 송(宋)나라, 한(漢)나라, 명(明)나라에서 수입된 문화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문화를 말살하고 신교(神敎), 아니 신사참배(神祠參拜)로 개종(改宗)을 시도 했지만 그의 뿌리는 우리가 전해준 신교(神敎)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해야 할일은 오행설(五行說)의 발전이 아니라 화수토(火水土)의 3원소(三元素)와 허실기(虛實氣)의 기화(氣火)와 역경(易經)의 육효(六爻), 그리고 우주(宇宙)의 창조(創造)인 빅뱅(Big Bang)을 비롯하여 천체물리학(天體文理학)의 양성자(陽性子),중성자(中性子), 양자(陽子),전자(電子),중성미자(中性微子),그리고 광자(光子)의 6가지 물질과 우주의 암흑물질(暗黑物質)을 비롯하여 12가지의 퀵크 와도 연계된 철학의 정립이 돼야 할 것이며, 그리고 우리의 3태극과 원소의 융합인 중성자와 양성자와 전자의 결합으로 헬륨(He)의 생성으로 빛의 세계가 열리는 원리와 원자(原子), 아니 원소(原素)의 색깔인 빨강, 파랑, 초록의 3색은 지구의 풍성함을 바란다면 대지는 사막처럼 고대중국의 황제(黃帝)의 누런색이 아니라 초록색(綠色)인 그린파워의 지구를 모든 세계 인류가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1,300년 동안 잃어버린, 아니 약탈(掠奪)당한 우리사상과 역사를 하루속히 복원시켜야 앞으로 올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신문화(精神文化)와 문화유산(文化遺産)을 넘겨 줄 수 있을 것입니다.
【11】;중국의 황제(皇帝)와 황제(黃帝)를 착각하여 혼용하는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황제(黃帝)는 오행설(五行說)을 기초로 한 억지적인 이론으로 중앙에 있는 중심인 황(黃)은 중앙에 토(土)를 배치한 오행설에서 십간(十干)에서 무기(戊己)를 배치하고 그다음 12지지(地支)에서는 축진미술(丑辰未戌) 또는 진술축미(辰戌丑未)를 배치하고 수리(數理)로는 3;8(木=靑)으로 동쪽에 배치하고, 2;7(火=赤)로 남쪽에 배치하고, 4;9(金=白)로 서쪽에 배치하고, 1;6(水=黑)은 북쪽에 배치하고 중앙은 토(土)로 5;10을 배치하고 사방의 변두리 국가는 중앙인 중국을 흙의 색깔인 황색(黃色)으로 표시함에서 유래되는 문왕 8괘 설로 상생인 후천 괘를 말합니다. 선천 복희 8괘는 상극괘로 수리는 1에서 9까지 수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BC; 3898년 한웅천왕의 개천할 때 무여율법(無餘律法)에 오훈(五訓), 오사(五事),오가(五加),부족배치(部族配置) 방법, 병영군사배치와 군사작전에 이르기까지 오가(五加)의 형태는 자연스러운 한인시대(桓因時代)부터 내려오는 그 시대의 율법으로 통용 되어 오던 사회적인 풍습을 오행(五行)설로 이단적(異端的)인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는 수(數)로 이용된 이론으로 전개 했다지만, BC ;2333년 이후 단군조선(檀君朝鮮)에 와서 황제(黃帝)로부터 전수받은 도요(陶堯)인 요(堯)임금으로부터 인계 받은 순(舜)임금과 하(夏)나라 우(禹)임금이 초대 단군왕검시대(檀君王儉時代)에 유호씨(有戶氏)로부터 천수(天數)의 이치(理致)를 배반한 죄로 응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수(天數)의 수리(數理)에서 둘레 수 兀 3.14와 멱(冪) 수 즉 제곱 수(數)를 알고 있는데 땅의 분배를 위한 면적(面積) 수는 오래전 천부경(天符經)의 일적십거도(一積十鉅圖)의 원리가 현존하는 바둑판에서 간단하게 계산이 되는데 사방의 둘레라는 수의 20는 정사각형의 5 x 5 =25 와 직사각형의 4 x 6 =24 ; 7 x 3 =21 ; 8 x2 =16 ;방법 중에서 제일 큰 수(면적) 사방이 “5“라는 것은 알기 때문에 오사(五事), 오훈(五訓),오가(五加)라는 수는 중앙에 하나를 배치하고 4방을 하나씩 배치하면 총체 수는 5라는 것이지 5라는 수가 중앙에 꼭 배치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며, 언제나 시작하는 순서는 다르게 책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음양(陰陽)과 역경팔괘(易經八卦)의 이론은 우리 동이족의 문화에 속하고 유호씨(有戶氏)가 앞에서 주장하던 천수(天數)인 1,2,3,4,5,6,7,8,9.의 원리(原理)와 3기(虛實氣)와 3원소(元素)설인 허실기화토수(虛實氣火土水)를 기화(氣火)설은, 중국의 당나라의 고구려멸망으로 고서가 불타고 없어지고 빼앗기고 진시황제 분서갱유(焚書坑儒)로 고서 아니 우리의 고조선유물(古朝鮮遺物)은 말살의 순환을 겪어 왔으며, 그 후 송(宋)나라, 한(漢)나라 명(明)나라의 오행설(五行說)에 대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압은 받아왔지만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조(英祖)때 북학파 홍대용(洪大容)씨까지는 내면에서 전수되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그러나 1,300여 년 동안 우리 문화에 음양(陰陽) 오행설(五行說)을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오행설 이론을 깨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이론의 대안으로는 서기(西氣)인 현대과학으로 천체문리학(天體文理學)과 소립자 퀵크의 3과 화학(化學)의 원소의 색깔 빨강, 파랑, 초록색의 3색과 원자가(原子價)의 8가 원리 등등, 우리의 3태극설과 역경의 8괘와 소성 괘 3(☰)과, 대성과 6효(☰下☰), 이지함 선생의 토정비결 대성괘 12효(☰下☰;☷下☷), 그리고 12 퀵크 와 암흑물질 등 연계시켜 연구하여 이론의 정립으로 오행설을 무력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한족(漢族)이 오미(五味)의 재앙(災殃)과 오행(五行)으로 천수(天數)의 이치를 범하여 화(禍)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미(五味)의 재앙(災殃)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오행(五行)의 화(禍)는 중국의 지나족들이 중앙의 황제(黃帝),즉 황색토양으로 대지를 덮는다고 기원해 왔다면 하나님께서 그네들에게 정성이 갸륵하여 온 대지를 황색으로 뒤덮도록 선처해준 덕으로 사막화(砂漠化)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파미르고원에서 먼저 나와 타르분지를 사막화 하고, 내몽고지역과 고비사막을 이어서 북경지역까지 사막화 하는 것이 하늘이 내린 업보라고 체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모두 황제(黃帝)의 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속담으로 “피로 피를 씻는다.”는 말이 있다. “혈족 끼리 서로 다툰다는 말과 악을 처리하기 위하여 또 다시 악으로써 행한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잘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원래 태고 때부터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들은 짐승을 키우기 위해서 사람을 추방한 자리에 짐승을 키웠다는 죄악(罪惡)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조선의 문화 유적지인 서안(西安)과 내몽고 일대가 사막으로 변한다면, 서안(西安)의 피리미드가 산으로 둔갑한 것이 지상으로 들어나 이집트 피라미드 보다 거대한 피리미드들이 나타날 경우에는 그곳에는 지나족들은 한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족들은 이익(利益)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곳을 하나님과 삼신(三神)께서 자기혈통(自己血統)인 후손들에게 무혈입성(無血入城)을 명(命)할 것이며, 그렇다면 북경(北京)은 금세기에 올림픽대회가 마지막 잔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사항 ※;아시아 북경(北京)을 중심으로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한겨레]지구 내부의 깊숙한 곳에 거대한 “바다”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워싱톤 주립대 지진학자인 마이클 위세션 등이 지진파를 통해 지구 내부를 관측해, 동아시아 대륙 아래서 물로 가득 찬 매우 넓은 암석층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과학전문 사이트인<라이브사이언스>가 최근 보도했다. 연구진은 지진으로 발생하는 지진파 가운데 지구 내부를 관통해 전달된 약 60만 건의 진동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아시아 일대의 지각아래 쪽에서 지진파의 기세가 꺾이거나 약해지는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물은 파동의 속도를 약간 늦춘다.”며 “물이 있다고 가정하면 아주 잘 들어맞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층은 우리가 흔히 보는 지표상의 바다와는 다르다. 연구진은 겉으로는 딱딱해 보이는 암석 덩어리가 최고 15%에 이르는 물을 포함해 부드러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 물의 량(量)는 적어도 북극해(北極海) 전체보다 많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바다 층은 지표에서 약 1천km 깊이의 맨틀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종됐다. 더 깊을 곳으로 내려가면 지구 내부의 고온으로 암석 속의 물이 증발해 빠져나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하 30~2,900km의 맨틀에 막대한 량의 물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연구진은 지진파의 약화가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곳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밑이기 때문에, 이 바다 층에 “베이징 변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박중언 기자]
또 하나의 조악(罪惡)으로 천지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고 강력한 산아제한(産兒制限)정책으로 부부가 한명만 낳기로 강압한다면 무적자(無籍者)를 양산하여 그것이 인핵폭탄(人核爆彈)의 원인(原因)으로 작용 할 것이며, 인간존엄사상(人間尊嚴思想)의 말살은 오히려 인류말살(人類抹殺)의 단초(斷初)가 됨을 알리는 마지막 삼시시판(三始始判)의 벌(罰)을 하늘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예고문으로 본다면 엄청난 재앙(災殃)과 재화(災禍)라고 말할 수 있는 천벌(天罰)이라고 간주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종교철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며 태초의 인류탄생을 기원하는 신교(新=神敎)의 삼신(三神)사상으로 연결 될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지하 30~2,900km 중에서 어느 지점이 30km, 아니 30,000m 지점이 어느 곳인지가 궁금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지구내부의 화산폭발이 아니고 고온의 수분으로 지열이 솟아올라 올 때에는 사막화를 가속화 할 것입니다..
※황제헌원(黃帝軒轅); 동작빈의 연대표에 따르면 BC; 2692~ 2592(100세)의 인물이요. 삼황 즉 태호복희(太昊伏犧) 염제신농 및 황제 헌원의 한 사람이다. 갈홍(葛弘)의 <포박자抱朴子>는“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가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萬神)을 부리고 부렸다.[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ㅡ葛弘 抱朴子]라고 하였으니 그는 역시 어김없는 동이족이다. 그런데 여기 웃지 못 할 이야기 거리가하나 있으니 가지마(鹿島)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다. 그는 황제 헌원이 아카드 왕 사루 곤을 모델로 하여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국사의 삼황오제는 아카드 왕조사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잠꼬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없는 일본사가 아카드 왕조의 역사를 타고 실크로드를 달려 하늘로 비상하려는 음흉한 속셈, 즉 새로운 황국사관(皇國史觀)의 태동이며 몸부림을 경계해야 한다. 심지어 중국사까지 아카드왕 사루곤(黃帝), 라가슈(炎帝神農), 운마왕 루갈작기시(蚩尤) 등을 열거하며 서양사의 투영이 곧 사마천의 <사기>에 보이는 삼황오제의 기사라고 중국사까지 오염하며 일본사 도약의 호기를 잡으려 하였다. 일본의 NHK 방송사가 실크로드의 현지답사 촬영과 방영까지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감행한 것이 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심한 억측일까? 이를 국내의 KBS가 받아 재방영하는데 있어서도 그 자들의 의도를 먼저 간과하고 주의 했어야 할일이다. 우리는 새로운 일본의 황국사관(皇國史觀) 음모(陰謀)를 도와주는 공범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지마노보루가 번역한 <한단고기>를 경계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한단고기>를 수 백부씩 한국에 무상으로 기증하는 속셈도 무엇인지 따져 볼 일이다.[한단고기 임승국 번역.주해 참조]
※탁록; 한국(桓國)의 치우천왕과 중국의 삼황 가운데 하나인 황제헌원이 결전했다고 하는 역사의 전쟁터이다. 하북성 탁록현의 동남에 있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을 사로잡아; 사마천의 <사기>는 도리어 반대로 치우가 황제헌원(黃帝軒轅)에게 탁록의 전쟁에서 패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 揆園史話>를 보면 이 전쟁에서 치우의 부장 한 사람이 진중에서 죽었는데 이를 중국 측이 곡해한 것이며 사실은 치우가 이겼다고 했다. 여러 가지 역사기록이 치우의 강력함과 치우의 승리를 가록했는데, 사마천의 <사기>는 치우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무기나 용맹성 등으로 보아 치우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본다.[한단고기 임승국 번역.주해 참조]
※;무여율법(無餘律法);복본정신에 기초를 둔 철저한 종교정신이 엿보이는 율법이며, 죄악과 사기를 남김없이 없애기 위한 율법이다. 무여율법은 지배적. 체계적. 강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무여율법이 제정된 시기를 추정하면 BC;3898년경이다. 참고로 우리 민족의 상고시대에 등장하는 율법 중에 무여율법 4조와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 한국桓國의 오훈五訓인데, 이맥李陌이 지은 (태백일사)(한국본기桓國本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1;성신불위(誠信不僞)-성실하고 신의 있어 속이지 않으며, 2;경근불태(敬勤不怠)-공경하고 행함에 게으르지 않고, 3;효순불위(孝順不違)-효도하고 순종함에 있어 위배됨이 없고, 4;염의불음(廉義不淫)-염치 있고 의리 있어 음란치 않고, 5;겸화불투(謙和不鬪)-겸손하고 화목하여 다투지 않는다.
둘째는 같은 책에 나와 있는 신시의 오사(五事)를 들 수 있다. 1;우가주곡(牛加主穀)-우가는 농사를 주관하고, 2;마가주면(馬加主命)-마가는 목숨을 주관하며, 3;구가주형(狗加主刑)-구가는 형벌을 주관하고, 4;저가주병(猪加主病)-저가는 병을 주관하고, 5;양가주선악(羊加主善惡)-양가는 선악을 주관한다.
셋째는 단군 조선의 금팔조(禁八條)를 들 수 있다. 1;남을 죽이면 같이 죽여서 다스린다. 2;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하게 한다. 3;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재물을 빼앗고, 신분을 막론하고 남자는 그 집의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한다. 4; 소도(蘇塗)를 훼손시킨 자는 가두어둔다. 5;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하게 한다. 6;근면하게 일하지 않는 자는 부역을 시킨다. 7;음란한 행동을 한 자는 태형(笞刑)으로 다스린다. 8;사기 치는 자는 훈계. 방면하는데, 스스로 속죄하면 공표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면하여 준다. .(주해 한단고기; 137.191 쪽 참조.)
■동서양의 참고가 될 연대를 열거하니 참고바랍니다.
◎단군왕검;BC;2,370(辛卯)년 5월 2일 寅時탕생→BC;2,333년 戊辰년에 38세로 등극; BC;2,241(庚子)년 3월 15 일 어천(御天) 130세. ◎요(堯);BC;2,359~2,257년ㅡ단기전26~ 단기 후 76년? ◎순(舜);BC;2,254~2,207년(47년)ㅡ단기 후79년~126년으로 47년의 재임 기간으로 보나 부도지에 61년이라는 기록은 재 연구가 필요 함.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물질(서양) [1]탈레스(Thales,BC;624~546.78세);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2]엠페도 클레스; 천지만물(天地萬物)은 물(水), 공기(空氣), 불(火), 흙(土)의 네 가지로 되어 있다.(BC; ~430년) [3]아리스 토텔레스(BC;384~322,;62세) ①엠페도 클레스의 생각 발전시킨 4 원소(元素)설 주장. ②네가지 원소는 따뜻함(열;hot),차가움(냉;cold),건조한(건;dry), 성질을 가졌다고 생각, 예;흙(건+냉),물(습+냉), 불(건+열), 공기(습+열) ③네 원소는 기본 성질의 조합이 달라지면 서로 변화될 수 있다. (원소의 변화 예) 불이 식으면 불의 열한 부분이 냉이 되어, 건과 냉한 성질을 가지는 것이고 물에 불이 작용하면 불의 열이 물의 냉을 이기고, 이것을 변화 시 증기(수증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 ④4원소 설은 기독교 교리에도 맞는다고 하여 교회로부터 옹호되어,Lavoisier;(1743~1794)가 근대적 원소설 (33개의 화학 원소를 지적)을 엠페도 크레스의 원소(元素)설을 2000년 동안이나 기본적인 물질관으로서 계승. 태그#사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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