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소설입니다... 초단편 소설.. 경건하게 읽어 주십시오 ^^]
증손자 세상에 꽃이 되어
(제1화: 지역재건 공무원이 된 김병철의 첫 출근)
내 이름은 김병철.
1854년 생. 대략 1880년경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1929년 12월 12일에 사망한 나(me). 그런 내가 증손자의 머리에서 다시 태어나 2022년 2월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내 증손자가 사는 세상에 소환되어 난 오늘 지역재건 공무원이 되어 첫 출근을 한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는 과거급제일의 희열을 140년 후 다시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내 증손주의 세상에서는 내가 지역재건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것이 급한가 보다. 실제 나는 75세에 사망하였으나 다시 살아서 세상에 나와 보니 30세의 젊은 청년. 녀석... 내 증손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참 기본이 된 놈일세. 나는 살아 생전 통정대부 고관이었으나, 지금의 나는 그저 평범한 가장. 그것도 30대의 백수 가장인데 내 마누라는 나와 하루를 뒹굴뒹굴하며 새끼들 3명을 물었다 뜯었다 하는 백수의 다혈질 여장부. 마누라의 뒹굴뒹굴하는 동선에 내 그림자라도 걸리는 날엔 예외없는 헤드락. 몸 성할 날 없는 삶 속에서 애들 때문에 숨만 꼴딱꼴딱하며 살고 있는 신세. ‘에이구, 내가 애들만 아니었음 저 눔의 마누래를 기냥...하하하... 어쩔 것이냐? 이런 설정이라도 감사해야지?’
서울 달동네에 살던 우리 가족. 백수 집안을 누가 거들떠나 볼까? 한 달 전 쯤 쌀통에 쌀이 다 떨어져 가고 우리 가족 전부 아사하기 직전, 동네 주민센터 인섭 형님이 전화가 왔었다.
“어이 동생, 이번에 정부에서 공무원을 뽑는다네”
“근데 그게 뭐래요? 저는 시험 준비생도 아닌데 갑자기 저한테 그런 말씀은 뭐래요?”
“아니 이 사람아 내가 괜히 그런가? 이번 공무원은 시험이 필요 없어. 서울하고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 중 ① 나이는 20~45세이고, ② 결혼을 했고, ③ 미성년의 자녀들만 있으면, 별도의 시험도 안 치르고 그으냐~앙 채용한다는 거야.”
“엥! 뭐 그런 것이 있답니까? 형님 농담이죠?”
“어허 이 사람! 속고만 살았는가? 진짜라니까. 요즘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잖은가? 경기도는 1,300만이 넘고, 서울은 1,000만 가량이 살고 있어. 그야 말로 과밀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그런데 지역은 어떤가? 전국 9개 도(道) 인구수 말이야... 일부 지자체는 소멸된다는 말이 있잖은가? 지역에서 애기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 됐어 이 사람아! 지금까지 인구분산이네 저출산 해결입네 하면서 얼마나 많은 돈에 다양한 정책을 폈는가? 그래도 백약이 백약이...”.... 말을 하다 말고 형님은 한숨을 쉰다. 또 그러다가 뭔가 울컥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인섭 형님은 참 투명하고 순수한 사람인 듯하다. 국가의 중차한 일이라도 내일이 아니면 누가 한숨이나 쉬겠는가? 인섭 형님같은 애국자도 찾아보기 힘들 것인데...
“그런데 동생, 백약이 무효한 시국에 정부에서 통큰 결정을 했는 갑이여. 아니 저기 자네 예전에 살던 함평 안 있는가?”
“네 함평이요. 그렇죠. 제 고향 함평. 그런데요”
“아니 거기 사는 김 머시기가 한 1년 전에 정책을 제안했는가봐. 그게 이름하여 지역재건 공무원 제도라네?”
“지역재건 공무원 제도요?”
“그래. 수도권 밀집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 내가 조금 전에 말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9개 도 중 하나로 내려 보내는 조건으로 공무원으로 채용한다는 것이지.”
“아~~~ 그래요? 저 같은 백수를 위해서 공무원 제도를 이용한다는 거죠?”
“그렇지. 한시적이든 뭐든 간에 지역에서 거주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공무원으로 채용해서 그 가정의 생계도 책임져 주고, 죽어가는 지역도 살린다는 것이지. 그리고 자네가 그 지역에 내려가서 애까지 낳았다? 그 애가 성년이 될 때까지 생계비는 국가하고 지자체가 다 부담한다네? 와 이런 것이 다 있어. 오래 살다 볼 일이여”
오~우 이런 오랜만에 내 심장이 반응을 한다. 백수인 내가 공무원이 된다고? 내 마누라도 공무원이 되고? 하하하. 이게 말이 되는가? 내 심장 한 귀퉁이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확 끌리는 기쁜 소식 아닌가?
“아니 형님 그런데 저는 전라도든 경상도든 지역에 내려가면 살 집이 없는데요? 그건 어떻게 한데요?”
“아 그거 걱정하지마!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동안은 무상임대로 집도 제공한다네. 시골 집들 많지 않은가? 그거 현대식으로 전부 인테리어해서 제공한다는 거야”
“와우, 그럼 저는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내려가야겠네요? 형님은? 아 형님은 공무원이니까 필요가 없으시구나? 그리고 나이가?”하하하...크크크 서로 한참을 웃었다.
“그렇지. 내 말이 그거야. 자네 일단 지역재건 공무원에 응시하소. 굳이 수도권에 살 필요가 뭔가? 자네는 고향이 함평이니 고향 재건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그러네요. 아 그런데 공무원이 되면 무슨 일을 한데요? 저는 뭐 특별한 기술도 없는데요?”
“응 거기서는 지역 주민 노인 분들 방문해서 건강관리하거나, 치매안심센터, 아동복지센터 등에서 사무보조, 또는 치안 취약 지역에 주간이나 야간 치안센터를 개설하면 거기에서 치안의 일부를 담당하는 일을 한다네. 그리고 만약 농번기 때 농사일을 거들어 주면 주민들이 하루 일당을 주지 않는가? 그 일당 중에 20%를 공무원 인센티브로 지급한다고 그러네.”
“형님 그러면 저 집사람하고 이야기해보고 바로 지원을 할 랍니다. 주민센터에 지원하면 되나요?”
“응 말만 하소. 내가 도와줄게.”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오지랖도 넓은 인섭형님 때문에 예정에 없던 공무원이 되어 오늘 이렇게 함평읍내 자연의 싱그러운 공기를 마신다. 이 얼마 만인가!
참 알고 보니 그 정책을 제안한 녀석이 내 증손자라니 참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다시 살아서라도 이 지역을 살리는데 힘을 실어야지. 원래 함평에 살고 있던 용섭 형님도 본인이 자원해서 지역재건 공무원으로 같이 일한다니 그것도 좋은 일일세!
그래 세월이 아주 좋구나.
그리고...그리고오오오... 내가 또 할 일이 있지.
오늘 퇴근 후에는 얼마 전에 명(命)을 달리한 손주 며느리하고 그 옆에 묻혀있는 손주의 묘에 다녀와야겠다. 인사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짠한 사람들.
꽃이라도 한 다발 사서 가야겠구먼.
자 이제 일을 하러 가 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