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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하계연수를 마치고
율곡, 신사임당, 송강을 만나는 여행
그리고 강원도·(사)유도회의 힘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7.17~20) 『2015 유도회 하계연수』를 무사히 다녀왔다. 강릉, 양양,고성 일대를 2박3일간 <집중과 선택>을 통해, 율곡과 신사임당, 정철 세 사람의 발자취와관동팔경을 중심으로 한 빼어난 자연풍광, 특히 東海의 기운을 만끽하는 방식, 즉 문화답사와 자연답사라는 양쪽 날개를 균형 있게 펼쳐 날아가는 게 목표였다.
‘선택과 집중’
먹을 땐 먹고, 아낄 땐 아끼자
이번 연수의 테마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休>였다. 흔한 말로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답사를 하자. <먹을 때는 고급스럽게 먹고, 아낄 때는 과감히 아끼자> 뭐 이런 식의 의견들이 지난 1학년 시절 답사를 다녀와서 28기들 사이에 공유되었고, 이를 나름대로 실현시켜보고자 한 것이 이번 답사였다.
28기들이 아직 2학년 이던 지난 2학기에 이미 <선택과 집중, 휴>라는 테마가 정해졌고, 2학기를 마칠 무렵엔 그간 답사후보지로 거론되던 ⓵안동 봉화 청송 ⓶강진 해남 ⓷강릉 양양 고성 3곳 중에서 ⓷안인 강원도 동해 코스로 사실상 확정하였고, 마침 주역 종강파티 자리에서 취암선생님께 <내년도 답사장소는 강릉 양양 고성 일대의 강원도>라고 말씀 드릴 수 있었다.
드디어 해가 바뀌고 1월 20일경 전체 일정표를 완성한 다음, 3월 27일, 3학년이 된 28기들이 유도회 주변 식당에서 첫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체진행은 김태운과 심규하가, 프로그램은 김기표가, 자료집은 심조원과 이현아가 각각 맡는 등 크게 3팀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장소가 정해지고 역할이 분담되고 준비 일정이 정해졌으니 당장이라도 답사를 떠날 수 있을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4월 둘째주말인 1일과 12일, 김태운, 김기표가 사전답사를 다녀왔다(28기 존칭 생략). 김태운은 홍천-인제-진부령을 넘어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고성-양양쪽을, 김기표는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면서 강릉-양양-속초-고성을 훑었다. 특히 이번 답사는 숙소와 식당 선정에 우선순위를 두었는데, 이는 여행이란 보는 것 못지않게 먹고 자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김기표는 네비게이션에 동해안 맛집코드라는 책자의 맛집과 숙소들을 찍어가며 돌았다. 그는 육사를 나와 고성 일대에서 장교로 군대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다, 지금도 틈만 나면 차를 몰고 동해를 찾아 재충전을 하고 돌아오고 있을 정도로 동해안 마니아인데도 자료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꼼꼼하게 검증하는 모습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5월말 초유의 메르스 사태
취소냐 진행이냐 기로에 몰려
순조롭게 진행되던 답사준비는 뜻하지 않은 메르스 사태에 직면했다. 5월 20일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이래, 6월 1일 첫 사망자 발생(격리자 789명), 6월 2일 3차감염 확인, 6월 13일 4차 감염확인(격리 4,856명), 6월 16일 사망 19명(격리 6,508명)에 이르는 등 메르스 사태는 마치 쓰나미처럼 한국사회 전체를 일거에 휩쓸었다. 전국의 초중고 학교마다 휴교령이 떨어지고, 유도회도 임시휴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 연수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연히 나왔고, “일단 철저히 준비해 놓되, 7월에 들어서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겨울방학으로의 연기, 혹은 취소를 결정”키로 했다. 그 와중에 3차 심규하, 이현정, 김태운 셋이서 6월 21일, 3차 답사를 다녀왔다.
4월 사전답사에서 추천된 식당과 숙소,답사지를 실제 7월 연수 코스에 맞춰어 취사선별하여 확정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둘째날 오후 코스인 도원리계곡은, 당시 메르스와 함께 전국을 강타한 극심한 가뭄으로 과연 계곡에 물이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계곡 입구의 12만평 규모의 도원리저수지가 바닥을 쫙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계곡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계곡에 변함없이 물이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덧 7월이 되었다. 다행이 6월 중순을 넘기면서 메르스 사태는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참가자 집계는 백지상태였다.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마저 과연 몇 명이 참가할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니 예산안을 짜는 게 문제였다. 일단 참가비를 15만원으로 확정했다. 참가는 하고 싶은데, 참가비가 약간 부담스럽다는 몇몇 의견을 감안해서였다.
그런데 동해안이 워낙 관광지이다 보니 밥값은 8천원이 기본이었고, 1만원도 비싼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유도회 차원의 동해안 연수가 처음인데다, 28기의 모토가 ‘맛있는, 편안한, 즐거운 여행’이 아니었던가?
방법은 선택과 집중의 묘를 발휘하기로 했다. 확실하게 먹을 건 먹고, 또 아낄 땐 확실하게 아끼자. 예를 들어 첫날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횟집에서 싱싱한 회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점심은 현지인들의 소박한 식당에서 백반과 찌개를 먹고, 둘쨋날 저녁에 숙소 앞 백사장에서 밥을 직접 짓고, 바비큐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이렇게 할 경우 45명 참가시 10만원 흑자, 40명 참가시 약 20만원 적자, 35명 참가시, 50만원 가량 적자가 예상됐다.
해결책은 최대한 몸으로 뛰고 알뜰한 살림작전이었다. 경비 비중이 큰 숙박비는 관광지임에도 미리 4월에 예약함으로써 시중가의 50% 미만에 예약할 수 있었다. 자료집은 성균관대 앞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박혜영이 흔쾌히 찬조키로 했다. 알뜰 장보기는 기본이었다. 출발 전날, 미리 작성한 리스트를 들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 장을 보러간 박혜영, 심규하, 김태운은 서로 신경전도 불사하며 눈을 부릅떴다. 다행이 참가자도 내심 최저 목표였던 35명을 훌쩍 넘겨 43명을 돌파했다.
또다른 복병 11호 태풍 낭카
구세주 ‘박재복·정호오·윤혜민’ 선배들
7월 13일, 김기표의 마지막 현장답사와, 심조원, 이현아의 자료집 완성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 출발만 기다리고 있을 때,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태풍이었다. 제11호 태풍 낭카가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비야 우산과 비옷으로 대비가 가능하지만, 둘째날 오후 도원리계곡, 자작도 해변, 백사장 바바큐 파티가 줄줄이 문제였다. 비바람 속에 계곡은 가서 뭐할 것이며, 모래바람 몰아치는 백사장에서 해수욕이며 바비큐며 산책은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구원투수는 졸업선배들이었다. 먼저 고성 경동대에 있는 11기 박재복 선생에게 둘째날 오후, 도원리계곡 입구의 마을회관을 빌리고, 인제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20기 정호오 선생은 바비큐 대신 곰국과 토종닭백숙을 준비해주기로 했으며, 25기 윤혜민 선생은 규장각의 <관동10경>과, 그동안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모은 강원도 답사자료들, 심지어 조만간 출판될 책의 PDF자료까지 보내주었다.
이로서 악천후 상황시, 둘째날 오후, 도원리 마을회관에서 관동10경 진경산수화 감상 및 즉석 한시 해설대회와, 레크리에이션, 유도회의 발전방향 토론, 그리고 바비큐를 대체한 저녁식사까지 방안이 갖춰지게 되었다.
첫 목적지 700년 전통 강릉향교
관동팔경 으뜸 경포대의 흥취
드디어 7월 17일, 날이 밝았다. 버스 출발은 8시였지만 28기들은 아침 7시에 모였다. 7시 30분이 되자 강현찬, 정환희 두 분이 지원을 위해 달려왔다. 생수,음료,술, 수박 등 대부분의 짐들을 전날밤 박스처리해서 유도회 입주건물 1층 로비 한 켠에 보관한 덕분에 버스로 옮겨싣기가 한결 수월했다.
조치원에서 첫차를 타고 출발한 27기 김화영 선생이 도착과 동시에 드디어 버스는 출발했다. 여주휴게소를 거쳐 12시에 강릉에 도착, 점심식사로 쌈밥을 맛있게 먹은 다음 찾은 곳은 첫 답사지인 강릉향교.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창건해 지난 2013년 700주년을 맞은 강릉향교는 경사가 심한 산자락 지형을 살려 앞엔 공부하는 명륜당을 두고 뒤엔 선현들을 모시는 사당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였다. 지금도 3명의 상근자를 둘 정도로 전통과 교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전국의 남아있는 향교가 236개인데, 많은 수가 담장 안의 건물만 남아 있는 실정임에 비해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음 코스는 인근의 오죽헌. 큰 바다에서 날아온 흑룡이 안방에 똬리를 틀고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몽룡실이 있는 신사임당의 친정이다. 마침 임신 중인 30기 김상희님께서 몽룡실의 정기를 듬뿍 받아 내려오며 좋아 하셨다.
오죽헌을 나와 찾은 곳은 경포대였다. 경포호 북쪽 야트막한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경포대는 송강 정철을 비롯, 수많은 명사가 관동팔경의 진수로 꼽아왔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경포해수욕장을 몇 번씩 찾은 사람은 많지만, 정작 경포대에 올라본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8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 사전답사차 찾은 3사람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알게됐다. 경포대를 왜 첫손에 꼽는지. 불볕더위 속에 아무 생각 없이 경포대에 오른 일행들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위 20리 호수를 조망하게 된다.
경치도 그만이지만 경포대의 운치를 더욱 살려준 것은 최향자, 김경태 두 선생님의 멋들어진 한시 가락과 관동팔경 소리 때문이었다. 강릉여성유도회 전 회장을 역임한 최 선생이 신사임당의 사친가를 불러주시고 즉석 사친가 강습을 해주셨고, 뒤이어 1학년 논어를 지도 중이신 義軒 김경태 선생님께서 27기 반장 박평선님의 단소 연주에 맞춰 관동별곡을 구성지게 불러주셔서 흥취를 한껏 북돋아 주었다.
경포대에서의 여흥을 흥얼거리며 찾아간 곳은 양양 낙산사였다. 조선조 500년에 걸친 억불(抑佛) 정책 속에서도 낙산사의 아름다움만은 누룰 수 없었던 것일까. 태풍의 여파로 강한 파도가 쉼없이 밀려들고 부서지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갯바위 절벽 위에 자리한 의상대와 홍련암에서는 무심할 뿐이었다.
의상대를 나와 식당으로 가는 사이, 차창 밖은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찾아간 곳은 속초에서 손꼽히는 진양횟집. 28기 김기표가 몇 차례 사전답사를 통해 협의에 협의를 거듭한 끝에 큰 맘 먹고 계약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나서 사실 걱정도 되었다. 선생님들께서 속없다고 나무라지는 않을까. 하지만, 선택과 집중의 묘를 어디 한번 발휘해보자. 경동대에 계시는 11기 박재복 선생께서 합류하셨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강원도잼버리수련원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가 넘어선 깜깜한 밤중이었다. 1991년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 당시 건설한 이곳은 현재 (사)한국스카우트연맹이 운영하고 있는 수련장이다. 숙소배정을 마치고 널찍한 로비에 둘러앉아 전체친목 도모 시간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것은 자정이 임박한 무렵이었다.
30분이라던 금강산 화암사
편도만 1시간 걸린 새벽산책
아침 6시, 지평선생님을 필두로 일군의 사람들이 숙소 앞 잔디밭에 모였다. 새벽산책을 나서려는 분들이었다. 십여 명 정도나 될까 했더니 제1진 출발 이후 2진, 3진이 계속 뒤따르는 바람에 30여명이 훌쩍 넘어섰다. 목표는 2.7km 거리의 화암사. 설악산 북편에 위치하지만 이곳부터 금강산 줄기가 시작된다 하여 일주문 위에 ‘금강산 화암사’라고 씌어 있는 아늑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하지만 편도 30분, 왕복 1시간이라고 알고 있던 코스는 가다보니 편도만 거의 1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바람에 아침산책을 유도한 김태운은 ‘뻥반장’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사실 내 걸음이 다른 사람에 비해 빠르기는 하지만, 30분은 좀 무리였다. 하지만 고요한 숲속 산사 산책은 28기가 의도하는 또 하나의 답사메뉴이기도 했다.
새벽산책이 아침산책으로 연장되는 바람에 예정했던 김영애순두부 대신 또다른 순두부맛집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버스기사님께서 가이드해서 찾아간 곳인데, 의외로 김영애순두부 못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낫다는 평도 나올 정도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 둘째날 첫 답사지는 양양향교. 고려 충혜왕에 창건되어 강릉향교와 더불어 7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전원이 참석하여 엄숙하게 고유식을 진행하고, 명륜당에서 취암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대학서문을 성독했다.
특히 이번 대학, 중용 서문 성독의 교재는 27기 이성재 총무가 직접 붓으로 써서 제작한 텍스트인데, 지난해 하계연수 당시, 자료집의 활자가 작아 취암선생님을 비롯, 몇몇 선생님들께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직접 공력을 들인 작품이어서 더욱 감동을 주었다.
양양향교 다음 탐방 코스는 청간정이었다. 향토사학자이며 최근 개관한 청간정기념관장 김광섭 선생의 관동팔경 특강과 함께 둘러본 청간정에는 이승만, 최규하 두명의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가 마주보고 있고, 양사언, 정철, 숙종의 어제시도 남아 있었다.
점심 장소는 청간정 인근 부미식당이란 곳이었다. 메뉴는 찌개로 1인분에 6천원이었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소박한 식당인데, 의외로 맛있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소박한 게 결국은 화려함을 이긴다고 했던가.
산에서 한 타임, 바다 한 타임
桃園溪谷, 자작도해변 망중한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도원리계곡을 찾았다. 백두대간 신선봉(1,214m)와 대간령(642m) 일대에서 발원한 물이 동해로 흘러내리는 이 계곡은 마을에 복숭아나무가 많고 산세가 깊은데다 물이 항상 마르지 않고 흘러 무릉도원과 닮았다 하여 도원리(桃園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계곡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언제 태풍 걱정했던가’ 싶을 만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어 선크림을 발라야 했다. 마을 주차장에서 버스를 주차하고, 각자 나눠준 캔맥주 한 개씩 들고 계곡에 들어갔다. 선생님들은 계곡을 가로지른 구름다리 중간의 정자에 자리를 잡으셨고, 좀더 물을 가까이 하고픈 사람들은 너럭바위변 물가에 옹기종기 앉아 물장구도 치고 수박도 잘라 먹으면서 탁족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할당된 1시간 30분이 금방 흘러갔고, 출발을 채근하자 지도선생님들께서는 아예 30분쯤 더 머물다 가시자고 하셨다.
아차, 창랑지수 청혜어든 탁아영하고, 창랑지수 탁혜어든 탁아족이라 하였으니 탁족 대신 갓끈을 씻어야 하는데......
둘째날 오후는 힐링 타임, 즉 휴(休)시간이다. 이번 답사의 컨셉은 선택과 집중, 문화답사와 자연답사의 조화, 그리고 休라고 정리할 수 있다. 길지 않은 2박3일 일정 속에 이러한 컨셉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논의한 결과, 둘째날 한 나절은 계곡에서, 또 한나절은 바다에서 자연탐방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문화답사와 자연답사의 조화, 산과 계곡이 있으면 바다와 백사장이 손뼉을 쳐줘야한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고 지칠 때 동해를 찾아 몸과 마음을 어루고 녹이며 힘을 얻어왔다. 어디 그뿐인가. 인생일대의 결단을 하거나 사랑을 맹세할 때도 찾는 곳은 당연히 동해였다. 그 연원은 멀리 화랑도부터 해마다 정월 초하루, 해돋이를 보러 몰려드는 인파들까지 의외로 멀고도 가까웁고, 또 현재도 살아 있는 진행형이다.
계곡 다음 행선지는 둘째날 숙소인 자작도해변. 송지호 인근인 이곳은 28기 김기표의 오랜 단골 힐릴포인트이기도 한데, 숙소 바로 앞에 백사장이 2면에 걸쳐 펼쳐져 있고, 좌우에 삼포해수욕장, 백도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비교적 덜 붐비는 매력이 있다. 일본을 거쳐 소멸된 태풍 여파로 구름은 끼었으나 파도는 미미했다. 마침 앙지(仰之) 정후수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다. 신기한 것이, 이렇게 타지에서 지인을 만나면 반가움은 더욱 배가되는 속성이 있다.
저녁식사 시간인 오후 7시까지 자유시간을 선포하고, 주최측은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아니 사실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주최측인 28기의 준비라고 해봐야 20기 정호오 선배를 돕는 흉내를 내는 게 전부였다. 정선배는 1박2일 동안 혼자서 잡고 삶고 다듬고 끓이고 고아 40여명의 대식구를 먹일 준비 중이었다.
찜통에 삶고 냄비에 끓이고
해변에 벌어진 잔치마당
김선·김선민·김화영·문준혜·이성재 등 27기 선배들이 총동원되어 삶은 토종닭 살을 발라내고 부추 다담고 솥이며 냄비, 그릇 챙기는 바람에 누가 주최 기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간신히 27기들을 바다로 쫒아내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28기들이 미친 듯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잠깐의 입수였지만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대식구의 식사가 시작됐다. 곰국과 백숙을 먹으며, 해변 바비큐 화로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알미늄호일에 싸서 구웠다. 백사장에선 폭죽도 쏘아 올려댔다. 후룩후룩 삼키고 벌컥 들이키며, 굽고 마시며, 까르르 웃고 하하하 너털웃음 터트리며, 혹은 킥킥 웃음을 참아가는 강원도의 힘, 동해의 힘이 적나라한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셋째날 새벽 6시, 여지없이 지평선생님을 비롯한 새벽파가 부지런히 모였다. 새벽파들이 남쪽 해변을 따라 문암포구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사이, 정호오 선생은 다시 북어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맛있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정호오 선생과 이별을 했다. 대략 설거지는 모두들 달려들어 끝마쳤지만, 40여명을 먹여 살린 찜통이며 솥이며, 이런 저런 짐정리를 하자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감사할 뿐이다.
셋째날 첫 탐방장소인 왕곡마을에 들렀을 때, 이슬비가 내렸다. 14세기 경부터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용궁 김씨 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인 왕곡마을은 1996년 4월, 대한민국 최고의 산불로 기록된 고성 산불 당시, 주변의 산과 들 1,200만평이 불타며 마을 하늘 위로 불이 날아다니던 중에도 화마를 입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전답사를 통하여 마을 중간의 ‘큰상라말’이라는 전통가옥에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중용 서문 성독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로 인해 집 안 마루와 부엌에 멍석을 깔고서, 왕곡마을 문화해설사 이광수 선생께 마을 해설을 듣고 중용 서문 성독을 하였다. 겉에서 보기와 달리 40여명을 거뜬히 수용하는 공간의 넉넉함에 우선 놀랐고, 효과적인 방한과 내열을 위한 건물 내부의 과학적인 구조도 새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탐방지는 화진포였다. 동해안 최대 호수인 이곳은 분단 후 이북에 속해 있다가 6.25 뒤 남한에 편입되었다. 금강산 가는 길목인데다, 호수와 바다를 아우우를 수 있는 매력으로 김일성, 이승만별장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재밋다. 인근 대진항에서 당일 잡은 끓인 생선탕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경길에 올랐다.
행사를 마친 지금 보면 미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실수 또한 잦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으로 양으로 격려해주고 성원해주신 취암 조명근 선생님, 도원 나영일 이사장님, 앙지 정후수 동창회장님, 지평 김세봉·의헌 김경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만취 박영제 사무총장의 관심과 지도도 잊을 수 없다. 또 마음을 담은 친필 글씨와 금일봉을 전해주신 남리 이승창·장헌 고대혁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번 연수에 참여해주신 육홍타(8기)·정규승(18기)·한정희(24기)·김대춘(25기)·홍의박(26기) 졸업선배님들과, 이번 연수의 실질적인 막후 지원자였던 박재복(11기)·정호오(20기) 두 분 선배님의 고마움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30기·29기 재학생과, 동기 못지않게 달려들어 힘을 써준 으리으리한 27기 선배들, 논문 발표를 앞두고도 함께해준 26기 정상원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를 같이 준비한 28기 동기들, 한 사람 한 사람 누구 하나 빠트릴 수 없는 소중한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28기 보인회장 김태운
첫댓글 회장님의 답사 후기를 보니 3일간의 여행의 기쁨이 28기 여러분들의 치밀한 계획과 실천속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네요. 참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 좋은 답사를 위해 애써주신 회장님, 총무님을 비롯한 28기 동학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행사를 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년 행사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