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어른이들 책!’
이라는 생각에 급히 전자책을 켜 바쁘게 이동 중인 지하철에서 첫 문장을 읽기 전까지
SF 세계 속,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게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추운 겨울이지만 유독 햇살이 좋았던 주말에 읽어서 였을까.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내 주위 세상의 색깔이 다정해진 듯했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 중
나는 그의 소설보다 먼저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을 읽었다.
내 얕고 볼품없던 장애에 관한, 우리 세계에 관한 생각을 차분히 어루만져 준 책이어서
작년에 책 선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건넸던 책이다.
과연 김초엽 작가의 시선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웠고 기대했던 것보다 촘촘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세상에 가져올 냉소에 대해 걱정하던 나에게
우리가 함께 살아갈 미래에 대한 건강한 고민거리를 건네 준 작가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전하고 싶다.
오랜만에 내 안 가득 떠오르는 고민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는가
- 진정한 ‘유토피아’의 모습은 어떠한가?
수만가지 다채로운 ‘결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 지구. 이 결점은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드러난다.
우리 모두 크고 작은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지만 보편성이 정상성으로 취급되는 이 행성에서
보편성을 갖지 못한 ‘결점들’은 삶의 불편함으로 또는 사회적 낙인으로 개인에게 다가온다.
한편 보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몹시 변덕스러워서,
오늘은 보편성의 언덕에 서있었을지라도 내일은 그럴 수 없을 확률이 크다.
그래서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결점들’은 아마 매일 자신의 결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조금 작게, 내일은 아주 크게.
내가 마을에 살았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나의 얼룩에 관해 무어라고 흉보는 것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나의 독특한 얼룩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시초지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위성이 가득한 세계는 결코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발달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 생활에 대한 요구를 촉구하는 시위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른이 된 은영이는 어디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14살 때 큰 맘 먹고 샀던 내 비싼 볼펜심을 망가뜨리고 웃기만 하던 그 친구가.
진정한 유토피아는 인위적인 평화로움을 위해 서로를 분리시켜 존재조차 잊게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소수성의 ‘결점들’이 받은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세계.
그들을 위해 보편성의 ‘결점들’이 함께 투쟁하는 세계.
‘결점들’이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세계.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 차 있는 이 행성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남긴 용감한 흔적들을 발견하며,
그 위에 작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데이지와 함께 투쟁을 할 수 있길.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2. 스펙트럼
- 나와 다른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난히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지치는 날들이 있다.
‘나와 다른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찾아 황망히 떠돌아 다녔던 때도 있다.
어떤 이는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조언을 하고
어떤 이는 애초에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이므로 포기하라고 하며
또 어떤 이는 이해라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펙트럼> 속 인간과 외계인은 본디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함께 공존하게 된다.
언어체계가 달라 서로의 언어를 배울 수 없는 상황,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활적 세계관 속에서
희진과 루이는 오래도록 서로를 받아들인다.
나는 함께 하기 위해 반드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내가 이만큼 너가 이만큼 맞춰가는 것이 관계를 위해 최선임을 믿고 있었다.
단지 서로를 놀라워하고 아름답게 여길 수 있다면, 더 이상 어떤 이해가 필요할까.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다가,
늘 그렇듯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문득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알록달록해서 참 세상이 재미있고 예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내가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첫댓글 ‘사람들이 알록달록해서 참 세상이 재미있고 예쁘다.’라는 말에 공감해요. 조금 다르지만 저는 지인들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최대한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을 대입해서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이해하기 힘들때는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그렇지?’라고 대화를 끝맺고는 해요. 이해하기 힘든 건 맞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오히려 제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 수 있으니끼요! 오히려 제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완전히 배척하고 부정적으로만 접근하는 건 나의 이념만 옳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을 하게 만들어 남을 무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냥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한답니다.
'사람들이 알록달록해서 참 세상이 재미있고 예쁘다.'라는 말이 예쁘네요😊 저는 저와 다른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알록달록하다는 예쁜 표현이 있었군요...!
저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해요. 누가 뭘하든, 이상한 행동을 하든 그냥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러면서 넘어가는 편이거든요. 굳이 내가 세상 사람들을 전부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인위성이 가득한 세계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고 가요! 사실 행복만이 가득하고 모든 아이들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결핍없이 태어나는 세상이 왜 유토피아처럼 느껴지지 않는건지 이유를 찾기 힘들었었는데, 그 이유가 인위적이어서였군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야 사람 사는 세상답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순례자 에피소드가 잘 나타내준 것 같아요
보편성을 갖지 못한 ‘결점들’은 삶의 불편함으로 또는 사회적 낙인으로 개인에게 다가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 세계조차도 진정한 유토피아는 아니고, 이러한 논의가 숨겨지지 않고 자유롭게 드러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배리어 프리한 세상이요! 다음으로 타자를 만나고 이해해야 할 때, 희진과 루이와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요.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달라도, 인상깊다고 여긴 이야기가 동일한 것이 신기하네요. 저도 이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 중에서도 ‘순례자’ 관련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서평을 읽으며, 이전에 선생님께서 작성하셨던 서평이 떠올랐어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수를 쉽게 배제할 수 있는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다정한 세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이전 서평이 이번 글과 맥락을 함께 한다고 느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마다 결점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상대의 결점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나 또한 결점을 가진 존재인 것을. 인생사 어떻게 바라보느냐 관점의 차이인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의 ‘결점’을 ‘개성’으로, ‘틀림’보다는 ‘다름’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원합니다.
저도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구 아이에게는 예쁘고 좋은 세상만 보여주고싶을 거 같아요🥺
그치만 세상의 모든 것이 꼭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 고통을 이겨내고 불완전함을 채워 나가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랑’의 가치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꼭 알려주어야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인위성이 가득한 세상은 결국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환상에 불과하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감정의 물성에서 보현이 슬픔을 구매하던 그 마음이 오히려 내 삶을 대하는 건강한 정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