鳳齡 (文端公 4) - 次退溪先生韻 (퇴계 선생의 운자를 따라서)

[도헌]

題 : 次退溪先生韻

停當曾恨失衡銓 (정당증한실형전) 전랑 직 잃은 걸 한하는 게 마땅하지만 
畢竟行藏休問天 (필경행장휴문천) 끝내 출처를 하늘 향해 묻지 않으리라  
山頭舊屋小如斗 (산두구옥소여두) 산꼭대기 옛집 말(斗) 만큼이나 적은 데
遙望紫霄高蒼然 (요망자소고창연) 멀리 자소봉 바라보니 높고 창연하구나  

 이 시의 제목이 퇴계(退溪) 선생의 시에 사용된 운자를 빌려 시를 지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시를 지으신 '문단공'께서는 일찌기 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셨다. 이 무렵에 함께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분이 약포(藥圃) 정탁(鄭琢) 선생이다. 두 분은 같은 해인 1526년에

태어 난 동갑이기도 하여, 평생을 절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퇴계 선생의 문하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다. 흔히 유성룡, 김성일 같은 분

들을 손꼽지만 백담, 약포 두분은 이분들 보다도 연배도 높고, 퇴계 선생 문하의 초창기 제자

들이시다. 백담 선생께서 이조(吏曹)의 전랑(銓郞, 좌랑 또는 정랑)의 직분을 사임하고서 다시

고향 안동으로 내려 와 퇴계 선생을 찾아 뵈었다.  선생께서 병으로 물러 난 직책이 이조정랑

이었으며, 이 때가 1570년 8월이었다. 

 이에 퇴계 선생께서 아래의 7언 절구 시를 먼저 지어 제자인 백담 선생께 보여주시니, 그 시의

운자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신의 소회를 밝히셨다. 이에 퇴계 선생의 원시(原詩)를 아래에 함께

소개한다.  퇴계 선생께서는 이 시를 지으시고 그 해 12월에 향년 70세로 별세하셨다.  이 시는

결국 퇴계 선생의 말년(末年)의 작품이 되는 셈이다.

원 운(元韻)

栢 潭 主 人 病 去 銓 (백담주인병거전)  백담의 주인이 병을 얻어서 전랑직을 버리고

歸 趁 菊 花 霜 露 天 (귀진국화상로천)  국화가 피어나고 서리내리는 때에 돌아 왔네 
借 問 如 何 作 行 止 (차문여하작행지)  어찌하여 이런 행적 하게 되었는가 물었더니 
笑 指 白 雲 心 悠 然 (소지백운심유연)  웃으면서 흰 구름 가리키니 그 마음 유연하네 

<참 고>

 이 시의 출처와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백담집(栢潭集, 선생의 문집)을 참고하였다.  앞에서

게재한 백담 할아버지의 시들 2편도 역시 고전번역원 자료를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