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자를 이중예정을 주장한 차가운 학문의 사람으로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있지만, 그는 따뜻하고 목회적이며 단순하고 복음적인 설교자였습니다. 베자의 사역이 지닌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서도 소망을 간직하며 신앙을 통해 위로를 얻게 하는 데 있었다고 합니다. 베자에 따르면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주는 교리였던 것입니다. 베자의 설교를 살펴본 구분선 아래의 글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자
지금까지 학자들은 주로 베자의 타락 전 예정설에 초점을 두고 살피면서, 그의 설교는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스콧 매네치(Scott Manetsch)는 비자의 제네바 사역에서 설교가 중심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었다. 매네치는 이렇게 언급한다. "1558년 가을 제네바에 도착한 이후부터 건강 문제로 1600년에 완전히 강단을 내려오기까지. 베자는 자신이 섬겼던 생 피에르 교회에서 아마 사천 편에 이르는 설교를 전했을 것이다."
이 수천 편의 설교들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여든일곱 편뿐이다. 매네치에 따르면, 지금 남아 있는 이 설교들은 '아가서 설교(1586)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설교(159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설교(1593)"이다. 이 설교들 가운데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것은 거의 없다.
베자는 제네바에 온 뒤 아카데미의 교수 겸 학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 사역자의 직책도 감당하게 되었다. 1564년 칼뱅이 세상을 떠나자 베자는 제네바 시에서 가장 큰 전도구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되었으며, 목사회의 의장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베자는 생 피에르 교회에서 삼십년 이상 말씀을 전했다. 그를 돕는 다른 한두 명의 목회자가 있긴 했지만, 제네바에서 성경이 선포되는 데 중심 역할을 감당한 것은 베자였다
제네바의 교회들은 엄격하고 규칙적인 설교 일정을 준수했다. 매주 드리는 주일 예배뿐 아니라, 주중에 특별 새벽 예배가 종종 열리곤 했다. 칼뱅의 생애 말엽에는 제네바의 목회자들이 일주일에 스물일곱 편의 설교를 전한 적도 있었다. 설교는 보통 한 시간 정도 지속되었으며, 설교자들이 이 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모래시계가 사용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칼뱅 자신은 상당히 짧은 분량의 설교를 전했다. 어른과 아이들 모두 적어도 주일 예배에는 참석하도록 규정되었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공식적인 책망을 받았다.
베자는 대개 주일에는 신약을 본문 삼아 한두 차례 설교했고, 주중에는 구약에 관한 설교를 꾸준히 전했다. 지금 우리는 베자가 당시에 전했던 설교들의 전반적인 연대표를 칼뱅에 관해 아는 것처럼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베자가 1574년에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전체를 설교한 사실은 알 수 있다. 베자는 1578년에 이사야서 전체를 설교해 나갔으며, 1583년에는 아가서 연속 설교를 끝마쳤다. 그 후 한두 해 동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설교해 나갔다. 베자는 또한 시편 (1579)과 전도서(1588), 욥기(1589)에 관해 설교했다.
하나님이 선택받은 죄인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전해 주시는 방식에 관한 베자의 이해를 살필 때, 우리는 그가 설교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자에 따르면, 성령님은 "그분의 선하심과 신적인 자비로 우리 안에 '신앙'을 창조하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신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안에 이 신앙의 수단을 창조하시며, 그 신앙을 양육하고 더욱 강건하게 만드시기 위해 두 가지의 통상적인 방편을 사용하신다. 다만 이런 방편들 자체에 자신의 능력을 부여하시는 것은 아니며, 오직 그 방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이 두 방편은 곧 하나님 말씀의 설교와 성례의 시행이다." 이때 성례는 하나님 말씀과는 별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베자에 따르면, “성례는 확실한 징표이자 눈에 보이는 표지로서, …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 안에서 들려주시는 내용을 우리의 외적인 감각에 전달해 준다." 성례는 "하나님 말씀에 속하며, 그 말씀에 의존한다. … 말씀이 없이는 성례가 정당하게 시행될 수 없다."
그러므로 베자는 말씀 설교가 신앙의 삶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율법의 설교는 우리 영혼에 두려움과 죄의식을 주고 상처를 입히지만, 복음의 설교는 그 상처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치유한다. 베자에 따르면, "성령님은 ... 이 외적인 설교를 하나의 경로 또는 방편으로 사용하신다. 곧 그분은 이 설교를 통해 임재하시며,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침투하시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 신자들에게는 율법의 설교가 회심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게 된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두 신선한 일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안내자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베자를 성경보다는 그리스 철학에 의존하여 신적인 심연을 들여다보는 냉담한 신학자로 여겼던 이미지를 떨쳐버려야 한다. 베자는 욥기 1장에 관한 강의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옹호하면서도, 스토아주의자들이 드러내는 냉혹한 성향과 무감각한 태도를 거부했다. 오히려 베자는 욥이 하나님께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적절히 드러냈다고 언급하면서, 욥의 자세를 칭찬했다. 베자는 당시 아카데미의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강의했으며, 이때는 제네바가 사보이 공작의 포위공격 아래 놓였던 시기였다. 베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들에 대한 신앙을 확증하는 한편, 우리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상실에 대한 슬픔을 인정했던 것이다.
베자는 따뜻하고 목회적이며, 단순하고 복음적인 설교자였다. 회중은 그의 설교를 쉽게 이해할 뿐 아니라 즐겁게 듣곤 했다. 우리는 현재 영어로 번역되어 있는 그의 책들에서 그 느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독교 신앙』(The Christian Faith) 같은 책이 그러한데, 이 책은 약 백 페이지에 걸쳐 기독교의 모든 교리를 해설하는 짧고 대중적인 서적이다. 예정을 설교하는 이들은 흔히 차갑고 냉담하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지식인으로 희화화되곤 하는데, 이런 이미지는 이 베자의 사례를 통해 반박될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살필 것처럼, 이는 윌리엄 퍼킨스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숀 라이트(Shawn Wright)는 베자의 글들을 면밀히 살핀 뒤 그의 사역이 지닌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서도 소망을 간직하며 신앙을 통해 위로를 얻게 하는 데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그중 영적인 전쟁 가운데서도 소망을 품게 하는 일에 관해, 라이트는 이렇게 언급한다. "베자의 삶에서 주된 관심사는 베자 자신과 그의 회중, 또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사방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영적 싸움 가운데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영원히 복된 그 나라에 무사히 도달하게 되는 데 있었다.” 라이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테오도뤼스 베자에 따르면,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주는 교리였다."
한편 이런 논의는 베자가 예정 교리를 가르쳤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저서 『베자의 예정론』(Tabula Praedestinationis, 1555)에는 구원의 순서를 다룬 영향력 있는 도표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아마 제롬 볼섹(Jerome Bolsec, 1524-1584년경)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논쟁적인 논문으로 집필되었을 것이다. 볼섹은 칼뱅의 견해를 강력히 반대한 프랑스의 의사였다. 베자의 도표는 하나님의 작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작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서, 그는 선택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이 겪게 될 두 가지 운명을 열거한다. 그 가운데는 부르심과 회심, 은혜와 신앙, 칭의, 성화, 영화 등 구원의 주요 교리들이 모두 담겨 있으며, 결국에는 신자들의 경우에는 천상으로, 사악한 자들에게는 지옥으로 끝이 난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이 베자의 예정론에 근거하여, 베자가 성경에 근거하며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격을 띠었던 칼뱅의 경건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 학자들은 당시 베자의 예정론이 지녔던 기능상의 성격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이 책은 교회를 위해 작성된 설교가 아닌, 개혁파의 예정 교리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록한 논쟁적인 논문이었다. 만일 그의 의도가 목회적인 데 있었다면, 베자가 쓴 이 글의 성격 역시 달라졌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베자를 비판하는 자들은 때로 도표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논문의 내용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 논문은 대단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격을 띤다. 베자는 『베자의 예정론』의 5장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신 두 번째 아담이며, 선택된 이들이 얻게 될 구원의 토대이자 그 내용 자체다." 이처럼 베자는 예정에 관한 학문적 논쟁에서도,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두었다.
그리스도가 예정의 중심에 놓이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구원이 중보자이신 그분의 속죄 사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베자가 다른 곳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단순한 주권의 행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주권적인 의와 자비가 하나로 연합되게 하신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기로 작정하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구주께서는 하나님 자신이셔야만 했으니, 이는 구주께서 친히 하나님의 진노를 온전히 짊어지고 치르시기 위함이었다. 타락한 인류를 위한 보증이 되기 위해, 그분은 참된 아담의 자손이 되셔야만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신앙을 통해 자신이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것을 알게 되며, 이 신앙은 선한 행실을 통해 뚜렷이 드러난다. 베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를 붙드는 신앙이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얻고 거룩하게 되며, 마침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 영광을 얻도록 예정되었다(롬 8:30, 엡 1:3, 4). … 우리는 신앙을 통해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곧 이 신앙을 통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같이 위대한 구원과 탁월한 영광을 얻게 하셨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조엘 비키, 『설교에 관하여』, pp.194~198.
첫댓글 우리가 흔히 아는 구원의 서정은 테오도르 베자의 정리를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베자의 도표는 하나님의 작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작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서, 그는 선택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이 겪게 될 두 가지 운명을 열거한다. 그 가운데는 부르심과 회심, 은혜와 신앙, 칭의, 성화, 영화 등 구원의 주요 교리들이 모두 담겨 있으며, 결국에는 신자들의 경우에는 천상으로, 사악한 자들에게는 지옥으로 끝이 난다."
네, 현대 구원의 서정이 베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구원파 식의 '과거 어느 순간'의 깨달음에 의한 구원 확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 가운데, /// 지금, 현재에 /// 그리스도를 붙드는 신앙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베자의 아래 표현에서 알 수 있지요.
"우리는 신앙을 통해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곧 이 신앙을 통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같이 위대한 구원과 탁월한 영광을 얻게 하셨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현재에 믿음을 유지하고 믿음의 증명을 하는 구원의 확신이 신중하고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자는 율법폐기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설교로 회심하고 치유받으면, ///그 이후에는/// 율법의 설교가 성화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 복음의 설교는 그 상처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치유한다. 베자에 따르면, "성령님은 ... 이 외적인 설교를 하나의 경로 또는 방편으로 사용하신다. 곧 그분은 이 설교를 통해 임재하시며,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침투하시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
신자들에게는 율법의 설교가 회심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게 된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두신 선한 일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안내자로 다가오는 것이다. >
흔히 듣는 중생 회심 칭의의 결과가 성화라는 명제가 떠오르네요.
< 실제 논문은 대단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격을 띤다. 베자는 『베자의 예정론』의 5장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신 두 번째 아담이며, 선택된 이들이 얻게 될 구원의 토대이자 그 내용 자체다." 이처럼 베자는 예정에 관한 학문적 논쟁에서도,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두었다. > -->
예정에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이유는 이미 성경에 명확히 나옵니다.
네, 다 읽고 묵상하겠습니다.
예정과 그리스도를 명기한 성경구절들
사도행전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사도행전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에베소서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아멘!
아멘22
베자의 설교가 87편 만이 남아 있다는 게 안타깝네요. 그것도 영어로 번역된 것이 거의 없는 수준이고요.
대부분의 그의 설교가 목회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따뜻하고 단순하고 복음적인 설교자였으며 회중들이 쉽고 즐겁게 들을 수 있게 설교했다는 데서 마음이 좀 놓이네요.
논문으로 예정론을 논할 때의 모습이 냉혈한으로 인식된 것 때문에 오해가 많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신앙을 창조하실 때 말씀을 통해서 하시는데, 설교와 성례의 방편을 사용하신다고 했군요.
옛날에는 특히 더 설교가 신앙을 생성시키는 데 중요한 방편이 되었겠죠. 문맹자도 많고, 성경 보급률이 낮았으니까요.
율법의 설교와 복음의 설교를 구분 지으면서, 신자들에게 율법의 설교는 회심 이전과 다르게 다가오는데 신자의 미래를 위한 안내자로 다가온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지침으로서 준수해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는군요.
조엘 비키의 책 소개 잘 보았습니다.
글을 잘 소화하고 요약해 주신 것 같아요. 저에게 도움이 됩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베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은혜와 좋은 지식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