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 출판될 책때문에 인쇄소에 다녀오다가 '길'을 한참이나 헤매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문득 떠오른 기억은 ....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가 문득 어머니가 저에게 던진 물음이었습니다.
"이런 길은 어떻게 생겼을까? 참 신기하기도 하지!"
듣고 보니... 정말 '길'이 생긴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누가, 어떻게, 언제 ..... 하면서 꼬리를 물고 물음표가 줄을 이었습니다.
길 위에서.... 말입니다.
마침 오늘 신문을 보니, 한국에도 팬이 많은 '대도시의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국내 최초 회고전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시회 제목은 '길 위에서' ......
전시 개막일인 20일이 평일임에도 1800여 명의 관람객이 전시회를 찾을 만큼 호퍼에 대한 한국인의 인기비결에 대해 위 중앙SUNDAY에서 7가지로 풀어 본 것을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고독한 그림이 명랑한 광고와 잘 맞은 이유
호퍼는 전업 화가가 되기 전, 광고 잡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이런 전직이 그가 나중의 전업 화가로서 활동하게 되었을 때 많은 창작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죠. 아무리 자신이 싫어 했던 일이라도 이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쳐 동세대 혹은 후세대에게 영감을 갖게 해 줌으로써 유명해졌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열심히 했던 일들은 꼭 인생의 또 하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당연한 모양입니다.
둘째, 늦게 성공했는데 유화가 아니었다
전업화가로서 10년동안 작품을 통해 경제적 필요를 단 한 푼도 얻지 못한 호퍼에게 찾아 온 인생의 전환기는 마흔이 넘어 만나게 되는 뉴욕예술학교 동창화가 조세핀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를 통해 수채화를 그리게 되고 그녀의 주선으로 브루클린 미술관에 자신의 수채화를 선보이게 되는 과정에서 호평을 받고 미술관에 작품을 팔게 되어 호퍼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셋째, 한 여자만 그렸는데 사이 나빴다고?
그 이듬해 만혼으로써 둘 다 마흔을 넘긴 나이로 조세핀과 결혼을 하는 호퍼는 평생을 조세핀을 조언자이자 모델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매우 자기중심적인 호퍼(2m)와 조세핀(152cm)은 외모에서도 차이가 났지만, 느리고 과묵한 호퍼와 달리 조세핀은 재빠르고 쉴 새없이 지져귀는 성격이었습니다. 둘은 몸싸움까지 할 정도로 격렬한 부부싸움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만큼 강렬한 애증의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부부는 해로했고, 84세에 세상을 떠난 호퍼의 뒤를 따라 열 달뒤에 조세핀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넷째, '싸이코' 감독 히치콕과는 무슨 관계
호퍼는 영화광이었고, 앨프리드 히치콕은 호퍼의 작품에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히치콕의 공포 스릴러 걸작 '싸이코'(1960)에 나오는 으스스한 집은 호퍼의 첫 주요작 '철길 옆의 집'(1925)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전시에서 볼 수 없지만, 히치콕의 또 다른 명작 '이창'(1954)에 영감을 준 호퍼의 그림은 전시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 그림은 '밤의 창문'(1928)입니다.
다섯째, 호퍼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도
호퍼의 그림은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상징주의적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호퍼 그림의 텅 빈 건축 공간, 거기에 빛이 만들어 놓은 사각형, 상념에 잠긴 인물들은 한데 어울려 복합적인 관념과 정서,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창출해냅니다. 호퍼의 그림들을 통해 정교하게 영상이 재현되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진 예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원제:Shirley)'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영화로서, 호퍼의 그림들 중 13점을 가져오고 셜리라는 가상의 배우를 설정하여 삶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구성한 것입니다.
여섯째, 호퍼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소설집도
단편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2017)은 '공포 스릴러 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을 비롯해 호퍼의 팬인 17명의 소설가들이 서로 다른 호퍼의 그림 17점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단편소설들을 모은 것입니다. 전시에 소개된 호퍼의 초기 주요작 '푸른밤'(1914)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로버트 O. 버틀러가 신비하고 불길한 이야기로 풀어냈는데, 그림과 같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보기 쉽지 않은 장면, 현실의 장면인데도 기묘한 꿈의 한 장면 같이 현실과 심리적 환상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 있습니다.
일곱째, 호퍼의 그림이 다 현실인 건 아니라고?
호퍼의 사실주의적 그림에는 종종 상징적인 허구의 풍경이 섞여 있곤 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아침7시'(1948)와 '계단'(1949)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퍼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2016년에 '쓱 SSG(신세계 온라인 쇼핑몰)'광고가 대박을 치면서였습니다. 그 광고가 호퍼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호퍼의 그림들이 구도가 심플하고 연극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여 크고 밝은 색면이 시원스러운 쾌감을 줌으로써 광고에 잘 녹아들은 것이죠.
길 위에서.
길 위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실 건가요?
만약 길을 찾고 계시다면 ....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에 초대되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호퍼의 그림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감을 선사할지 정말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