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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떠나라!
글ㆍ사진ㅣ김규만(동국산악회 회원)
1.일의일발(一衣一鉢) 자전거 세계일주
왜 문명이 발달되고 가볍고 질 좋은 장비가 나오는데 오늘날 여행자들의 짐은 더 많아지고 무거워는 것일까?
짐을 줄이는 것은 자기의 안일을 버리는 것과 직결된다. ‘버리고 떠나기’는 수도승들만의 수행 같지만 장거리 여행자들에게도 필요한 수행이고 만고의 진리이다. 스님들의 무소유처럼 우리 나그네들도 적게 소유하고 길을 떠날 때 좀더 많은 성찰이 일어날 것이다. 이 말은 지긋지긋하게 많은 짐과의 전쟁을 치른 사람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 있다. 실재 원정은 빙산의 일각이다. 물속에 잠겨있는 9할이 준비라고 할 수 있다. 페키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짐만 달랑 가져오니 이 말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등반을 떠나는 원정대에서는 모두 같이 준비 하면서 보이지 않는 팀웍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경량화를 통해서 빠른 이동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라서 장거리여행에 짐 싸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짐을 쌀 때마다 무게가 초과된다. 아는 것이 많다보니 준비물도 많다. 이런 것을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해야 하나.
필자의 경우 개인의 짐으로 바이크 헬멧, 바라크라바(목출모), 버프(다용도 두건), 고글(주야간용 렌즈교환 가능), 넓은 카라반 모자, 저지(자전거상의), 방풍 자켓, 팬츠(자전거용 바지), 고소내의, 자전거 장갑, 속옷, 양말, 자전거용 신발, 튼튼한 스리퍼, 상ㆍ하의 정장, 벗고 신기 편한 끈 없는 신발, 스리핑백, 메트리스, 바느질세트, 영한한영사전, 기록도구와 카메라, 벨트색, 여권&비상금 속주머니, 세면도구, 책 몇 권 등이 있다.
기본 장비로는 자전거, 각종 수리도구, 펌프, 헤드랜턴, 물통, 속도계가 있다. 독도용으로 나침반, 지도 등이 필요하다. 취사 장비로 휘발유버너, 코펠, 압력밥솥, 바람막이, 연료가 있고 식량으로 쌀, 김치, 고추장, 된장, 조미료세트, 젓갈, 라면, 참기름, 콩기름, 마늘, 고추, 생강 등과 한가위 제사용으로 육포, 어포, 술 등을 준비했다. 이동식으로는 스포츠젤, 단백질BCAA, 쵸코렛, 양갱, 여러 가지 사탕 등이 있다.
간편한 한약제 몇가지와 KOMSTA에서 빌려온 진료가방과 가운 등이 있다. 이런 짐 이외에도 현지에서 구입한 주식과 부식 등 식량, 텐트, 티베트 현지인들에게 줄 옷 등 무게만도 엄청나다.
짐을 줄이는 것은 수도사의 계율 속에 명시된 절제 같은 것이다. 여행시 짐의 무게는 바로 ‘집착의 무게’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준비 없이 어떻게 자전거로 티베트를 횡단 할 수 있겠는가? 준비는 당연하지만 그래도 짐은 너무 많았다는 반성을 여행을 떠날 때마다하게 된다.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한 최초의 사람은 미국의 토마스 스티븐슨(T. Stevenson)이다. 그는 대망의 세계일주를 꿈꾸고 1884년 미국서부 오클랜드를 출발하여 자전거를 타고 동부 보스톤으로 향한다. 그가 살았던 오클랜드에는 나중에 자전거 박물관이 세워졌다. 천신만고 끝에 미 대륙을 횡단하여 보스톤에 도착한 그는 배를 타고 다시 영국으로 갔다. 그리고 유럽과 중동, 아시아를 지나서 홍콩과 일본을 들렀다.
그리고 일본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서 2년 4개월만인 1886년 12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고향 오클랜드로 귀환하여 자전거 세계일주에 성공한다. 그의 총 주행거리는 2만 1600km이지만 이 당시 그의 세계일주는 마젤란의 최초 세계일주 항해에 버금가는 기념비적인 업적이라고 평가 받았다.
1870년경에 영국의 제임스 스탠리(James Stanley)는 ‘페니 파딩(Penny-Farthing)’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자전거를 발명했는데 앞바퀴가 매우 크고 뒷바퀴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그 자전거는 ‘빈폴’이라는 옷 상표와 비슷해서 요즈음에는 ‘빈폴 자전거’라고도 불린다. 찰리 채플린 같이 실크햇에 연미복을 입은 신사들도 이 자전거를 탔다. 이 비범(?)한 ‘보통 자전거(Ordinary Bike)는 페니 파딩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페니와 파딩은 영국의 화폐인 동전이었다. 페니(Penny)는 큰 동전이고 파딩(Farthing)은 작은 동전이었다. 그래서 페니는 원이 큰 앞바퀴, 파딩은 원이 작은 뒤 바퀴인 셈이다. 이 자전거는 턱에 걸리거나 급브레이크를 잡으면 몸이 곧잘 앞으로 날아가 아주 위험했다. 그래서 나중에 지금 같이 앞에 핸들이 있는 자전거는 보통자전거(페니파딩)에 비해 매우 안전해졌기 때문에 안전자전거(Safety Bike)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페니파딩은 생각보다 빨라서 길만 괜찮으면 하루에 80km이상은 달릴 수 있었다.
스티븐슨가 이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면서 휴대한 장비는 셔츠 한 장과 양말, 그리고 텐트 겸 이불로 쓸 비옷 한 벌뿐이었다. 대륙횡단도로가 없던 시절이라 철도를 따라 갔다. 터널을 통과할 때 기차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면 벽에 바짝 붙어서 피했다고 한다. 증기기관차가 터널을 지나가고 난 다음 검댕이 온몸에 묻은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는 동양에서 출가한 선승들의 일의일발(一衣一鉢) 정신을 몸소 실천한 서양인이다.
一衣又一鉢 出入趙州門
踏盡千山雪 歸來臥白雲 <碧松智嚴>
옷 한 벌 발우 하나로 조주의 문하를 드나들었네
모든 산 눈 다 밟고 돌아와 흰 구름에 누워있네.
구름이 흐르는 대로, 물이 흘러가는 대로 인연 따라 가는 누더기 옷 입은 승려를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한다. 그러나 운수납자 벽송지엄의 시(詩)는 군더더기 없이 메시지가 간결하고 명징하다. 일의일발의 여행, 우리 같은 하근기(下根氣)들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다.
<백혈병을 이겨낸 로이드 스콧이 백혈병 치료 기금을 모으기 위해 19세기형 페니 파딩을 타고 호주 서쪽 퍼스에서 동쪽 시드니까지 4350킬로미터를 50일간의 횡단 끝에 성공했다.>
2.정말 어려운 티베트 가는 길
골치 아픈 대원 모집과 원정준비가 끝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여권 소지여부를 일일이 최종 확인해보니 문제가 없어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예언을 증명해줄 사건이 터진다.
노련한 여행가들은 보통 Custom(세관)을 선택할 때 담당자의 관상을 보고 줄을 서라고 한다. 인상 좋은 사람을 만나서 손해볼일이 없다는 것이다. 만고의 진리로다!
그러나 우리는 무서운 세관이 아닌 항공사 출국 수속 데스크에서 무서운 여직원에게 걸렸다. 문제의 사단은 대원 중 여권이 오래되어 낡아서 낫 장이 떨어지지 않게 안쪽 앞뒤로 투명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 여직원은 혹시 일어날지 모를 중국 출입국관리소의 트집을 빙자해서 자기가 여권의 변조여부를 확인해야 하니 붙여놓은 스카치테이프를 떼라는 것이다. 여권에서 투명 스카치 테이프를 떼면 당연히 훼손되어 출국을 못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막강 대원 8명은 사색이 되어서 인천공항에서 스카치테이프를 떼기 위한 헤어드라이기를 찾으러 다니는 헤프닝을 벌였다.
관상학은 아니라도 한의사로서 관형찰색(觀形察色)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를 한 죄과였다. ‘정확히 살펴봐라’, ‘안 떨어졌다’, ‘돋보기로 확인해 보면 더 확연하게 보인다’, ‘여권에 붙어 있는 비자를 비교 확인해 보라’ 등등 입에서 거품이 나도록 설명을 하였건만 투혼에 불타는 그 여성은 정말 화랑의 임전무퇴(臨戰無退) 그 자체였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정의의 사도처럼 여권 위조 용의자(?)를 다그쳤다.
정말 노심초사에 안절부절하면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궁즉통(窮卽通)! 급기야 대화의 상대를 바꿔서 그녀의 윗사람을 불러서 얘기를 했다. 책임자는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고 떨어지지 않게 테이프를 붙인 거군요’라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다음번에 여권을 바꾸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 한다.
그러나 이 맹견(?)은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아서 기분이 나쁜지 식식거리며 볼펜도 아닌 굵은 색연필을 주면서 승객에게 최고 불리하고, 최고 불합리한 각서를 쓰라고 했다. 할 말은 많지만 따질 시간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쓰긴 썼다. 내용은 만약에 중국에서 시비가 된다면 무조건 다 뒤집어쓰겠다는 그런 일방적인 각서로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고문에 못 이겨 마지못해 쓰는 조서와 다름없었다.
「이렇게 스카치 테이프를 붙인 여권은 위조여권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입국하는 한국인 중에 이민국(Immigration)에서 가끔 무고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항공사와 관련이 없으니 스스로 책임지셔야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 말에 동의하시면 서명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정도의 내용이 항공사가 해야 할 일이다. 얼마나 품위있고 우아한가? 만약 중국에서 이 같은 시비로 승객을 국내로 송환한다면 외교적으로 외무부(출입국관리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항공사 여직원이 책임질 일은 결코 아니었다. 원정 중 20회 정도 여권 제시를 했지만 아무 곳에서도 시비 거는 곳은 없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가 적자였는데 흑자로 바뀐 것은 새로운 CEO의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은 “따뜻한 미소와 몇 초간 고객과의 눈맞춤이 만들어낸 고객만족주의.”였다.
“고객만족주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고객이 외면하면 당장 회사가 망하기 때문이다.”이 말은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말이다.
체크인하면서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쇼핑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서성준대원과 선물용 위스키 1병, 스미르노프 2병, 압숄루트 2병을 급하게 사서 나오는 도중에 술 2병이 걸려 깨지고 말았다. 불행은 결코 혼자서 오지 않는다. 깨진 술은 50% 할인해서 지불하고 게이트를 향해서 달렸다. 우리는 비행기의 문이 거의 닫히기 직전에 간신히 탈 수 있었다. 기내에서는 한참 안전교육에 열중이었다. 고생문은 이렇게 활짝 열리면서 우리를 여러 가지로 시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아가는 새는 절대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
여행의 달인들은 장거리는 복도쪽, 단거리는 창문쪽을 선택하라고 한다. 필자는 당연히 복도 쪽 자리를 요구한다. 일단 화장실을 가거나 필요한 짐을 올리고 내릴 때 몸을 움직이고 이동하기가 쉽다. 만약 뒷편의 자리가 비어있다면 그쪽에 가서 넉넉하게 누워서 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승무원의 서빙을 받기가 쉽다.
술을 많이 마시면 세계인의 눈총을 받기 쉬우므로 동일인에게는 2번 이상 부탁하지 말라고 한다. 술은 ‘주통혈맥 소수견흥 소음장신 다즉손명(酒通血脈 消愁遣興 少飮壯神 多卽損命)’이라고 한다. 주정(酒精)을 영어권에서는 spirit(정신) 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는 것은 정신(?)을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혼이 알콜의 힘으로 서서히 은화처럼 맑아지면서 미래의 알 수 없는 고행길도 장밋빛으로 황홀하게 각색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횡단 계획을 점검하다보니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사천성의 쳉뚜 공항.”이라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3.아! 풍경, 바람과 빛
우리는 4시간에 걸쳐 비행한 후에 쳉뚜에 도착했다. 이곳은 9월말인데도 아직 후끈거리는 여름이 남아있다. 버스에 짐을 싣고 호텔로 향했다. 오바 차지가 걱정되어 무거운 짐을 쳉뚜에서 다시 한 번 줄였다.
짐을 줄이고 버너 시운전도 할 겸해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캔으로 안주를 만들어 무색 무취 무미 3무주로 통하는 보드카로 목을 축이며 축배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잠은 1시간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아침 일찍 티베트의 공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위스키 한 병은 서성준 대원의 배낭에 넣고 가다가 세관 검색대에서 압수당했다. 인천공항에서 산 술은 이렇게 없어졌다.
9ㆍ11 사태 이후 모든 액체는 인화물질이나 독극물로 오인받을 수 있어서 출발 공항의 면세점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면 기내에 갖고 들어갈 수가 없다. 아미나이프나 송곳, 칼도 그렇고 서 대원의 배낭에 든 위스키도 해당된다. 반드시 밖에서 산 술은 화물로 보내야 한다. 시간이 있었으면 화물로 옮길 수 있는데 너무 번거로워 포기를 했다. 이 위스키는 그들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하자. 깨진 것보다는 낫다.
세계 어디를 가건 술꾼들의 허풍과 비약은 알아줘야 한다. 위스키나 브랜디를 ‘생명의 물’, ‘불사의 영주(靈酒)’, ‘신의 눈물’ 등으로 미화하기 바쁘다. 그러나 술은 철저히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양면성에 속아 수많은 아티스트와 시인, 묵객들이 술독에 빠져 죽었다.
라사행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을 때까지 다들 신바람이 난 듯 창 밖으로 보이는 험준한 산과 고원, 계곡, 만년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시간 가량을 비몽사몽 정신없이 꿈처럼 날아가고 있다. 해발 3600미터에 위치한 공가공항에 내리는 순간 티베트의 강렬한 햇볕과 맑고 찬 공기가 현기증처럼 와 닿는다. 피부와 살을 당기는 메마른 공기를 폐부 깊숙이 마시면 아득한 고원과 황량한 산맥들의 환영이 따라 들어온다. 초록이 없는 황량한 대지와 산들, 그리고 수심이 낮지만 폭이 넓은 강과 황무지의 외로운 잡목과 초원이 가을에 젖어서 눈에 들어온다. 바람과 빛이 만들어 낸 다양한 유채색 풍경을 희박한 공기가 순간순간 흑백의 무채색으로 단순화시켜 버린다. 아직 본격적인 고소증세는 없지만 현기증과 숨가쁨이 스쳐간다.
공가공항에서 넓고 낮은 라사강을 따라서 간다. 가을 강은 맑고 투명하며 유장하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거대한 산들을 지나가다보면 포탈라궁이 있는 라사에 이른다. 히말라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이 티베트의 성도 라사로 해발 3680미터이고 산소 분포량은 68%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니 두통과 어지럼증, 소화불량, 구토감 등이 벌레처럼 스멀거리기 시작한다. 수면부족과 스미르노프를 너무 많이 마신데다 갑자기 3600미터로 고도를 높인 탓이다. 숙취와 고산병의 합병증으로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고 구역질이 난다. 일단 뱃속을 깨끗이 비우고 서 대원에게 펜잘 1개를 얻어먹고 이불을 덮고 땀을 내며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오후 해거름이다. 땀이 나면서 숙취가 풀리기 시작한다.
반군이나 테러리스트를 연상시키는 두건을 머리에 썼다. 아무래도 머리가 차가우면 피가 걸쭉해져서 흐름이 더디면서 두통이 오기 쉽다.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초기 고소적응 시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사람의 뇌는 체중의 2%이지만, 산소 소모량은 20% 정도 된다. 이 말은 심장에서 분출되는 피의 20%가 뇌를 지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머리의 보온이 매우 중요하다. 잘 흘러가게 따뜻한 물을 마셔주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고 소식을 하되, 뇌에서 사용하는 가장 고급 에너지인 포도당을 공급해주는 것이 고소증세에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고소증세에 이뇨제인 다이아막스(Diamox)를 많이 썼는데 최근에는 비아그라(Viagra)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비아그라를 쓰다가 어느 한 부분만 강조되어 바지가 맞지 않는 등 몹시 힘들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고소증세는 산소를 많이 필요로 하는 부위부터 찾아온다. 산소를 많이 쓰는 곳은 머리와 위장이다. 산소가 없으면 머리가 몹시 아프고 음식이 소화(酸化)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에 촛점을 맞춰 한약으로 고소 예방약을 만들 수가 있다.
4.입덧 같은 통과의식-고소증세
고도가 높은 곳을 적응기간 없이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경우는 일정한 순응기간이 필요하다. 공기가 희박한 만큼 빛은 눈이 부셔서 온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든다. 잠시 나른해지다보면 영혼조차 말라붙게 할 정도로 메마른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풍과 한과 조가 어우러져 있다. 잠시 움직임만으로도 숨 가쁘게 한다. 이것은 라사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통과의식인 것 같다.
라사에 도착한 첫 날 한 대원이 점심식사를 하고 머리가 빙빙 도는 현기증과 극심한 두통, 발열, 몸살, 메스꺼움 등을 호소했다. 폐토보격(건조한 폐의 습기를 도와줌)과 위화보격(음식이 잘 썩게 위의 화를 도와 줌)으로 처치하고 나니 구역질을 하면서 변기를 잡고 토하고 있다. 남자들이 입덧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러나 그가 깊은 잠에 빠지자 조용하고 한가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숙취와 저산소가 문제였던 그 대원은 도착 당일 홍역을 치르고 나서 원정기간 내내 단 한 번도 고소증세를 호소하지 않았다.
필자가 대원들에게 알려준 고소적응법은 아주 효과가 좋았다. 많은 산악인들, 일반인들에게 글이나 강연를 통해 알려준 방법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서서히 꾸준히 움직일 것, 가슴을 활짝 펴고 걷거나 누울 것, 보온 특히 머리와 발 보온에 신경 쓸 것, 초기 불면증을 겁내지 말 것, 가벼운 징조에 대비할 것, 따뜻한 음료를 조금씩 마셔줄 것 등이다.
이경주, 권영학, 김연수, 권오상 대원은 거리 구경과 고소적응 겸 삼삼오오 뒷짐을 지고 나섰다. 몽블랑 근처에서 6개월 산악훈련을 받은 김연수만 자신감이 넘친다. 라사 시내는 활기차지만 우리 한국처럼 템포가 빠르지 않아 다행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고소에 처음 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푸른 나무 곁으로 끌려들어간다. 산소가 좀 더 많이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라사 시내에는 원주민들보다 한족이 더 많다. 중국인들이 펼치고 있는 서남공정의 인해전술 전략에 의한 것이다. 현재 이곳은 시짱(西藏) 자치구라고 하지만 중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이다. 일제시대 조선에 진주한 일본인의 지위와 조선인의 지위를 비교해 보면 원주민의 지
위가 쉽게 이해될 것이다.
티베트 불교는 비폭력 무저항주의이다. 그들의 얼굴은 우리보다 훨씬 맑고 밝으며 평화롭다. 마니휠을 돌리며 ‘옴 마니 반메 훔’이란 진언을 외우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딱하게도 티베트의 독립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는데 이들에게 분노는 없다.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Do resist everything to suppress)’고 했던 체게바라의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가니 언어도단이란 별명을 가진 권 기자와 이경주대원이 참새처럼 조잘조잘 입이 바쁘다. 아직까지 대부분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하지만 식욕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다들 잘 먹는데 오지에 들어가서 이들의 왕성한 먹성을 어떻게 감당하지?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불길한 예상이 현실이 된다. MTB 전 국가대표 권영학은 식사를 전폐하고 산소를 마시고, 처음 고소에 온 철녀 이경주도 따로 산소를 마시고 있다. 사실 고소에 오면 식욕이 떨어지는데, 이 여성 대원만은 식성이 너무 좋아 걱정을 많이 했다. 음식이 산화(소화)되려니 위장에 산소가 많이 필요하고, 산소 부족해서 뇌로 충분히 못가니 골이 때린 것이다. 내~ 원~ 참, 어지간히 먹지!
고산병은 전염병처럼 퍼지면서 갑자기 원정대 숙소가 중환자실로 변했다. 사실 산소라고 하지만 압축된 공기를 코에 꼽고 숨을 쉬는 것이다.
필자는 모험적으로 몸을 내팽개치면서 나름대로 고소증세를 많이 경험해 보았다. 고소증세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흉추가 굽은 사람은 고소에 매우 약하다. 흉추가 굽은 사람은 골반의 전후가 안 맞아 치골은 앞으로, 후상장골극은 뒤로 튀어 나와서 허리와 가슴이 구부정해 보인다.
이봉주, 칼루이스, 그리피스조이너스 같은 역대 육상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지나치게 가슴을 활짝 펴고 뛴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세가 폐활량이 최고 좋은 자세이다. 당연히 고소에서는 그런 육상선수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들 자세를 타산지석 삼아 고소 보행법을 만든 것이다.
고소에서 보행법은 엉덩이를 봉긋하게 하고 배를 집어넣으면 기본적으로 가슴이 펴진다. 이때 가슴을 더 펴고 뒷짐을 지고 손등으로 후상장골극을 전상방 45도로 눌러주고 걸으면 완벽하게 펴진다. 시선은 상방 15도, 또는 멀리 보면서 걷는다. 이렇게 뒷짐을 지고 가슴을 펴면 폐활량이 가장 커진다. 이 보행법은 등산할 때도 유리한 자세이다.
통통한 사람중 이렇게 자세를 펴고 걸어서 체중이 5~6킬로그램 빠진 사람이 많다. 오장육부가 눌리지 않고 잘 교류하기 때문에 쌓였던 군살들이 빠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고소 보행법은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좋은 보행자세이다.
대원들 컨디션을 봐서 하루만 쉬려고 했는데 불가할 것 같다. 라사에 있는 홍련화와 백련화로 유명한 포탈라궁(세계 7대 불가사의)과 순례자의 어머니 같은 조캉사원은 꼭 보고가야 할 것 같다.
글ㆍ사진 ㅣ 김규만
한의학박사, 시인, 굿모닝한의원원장, 동국산악회 회원, 1988년 에귀디미디와 훼른리리지 등반, 1991년 동계에베레스트등반, 1993년‘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창단 초대 단장, 마라톤ㆍ울트라마라톤ㆍ트라이애슬론ㆍ슈퍼맨ㆍ그레이트맨ㆍ아이언맨 대회 수차 완주, 인도라다크 MTB횡단(2회),티베트 MTB 횡단, 카라코람하이웨이MTB종단, 타클라마칸 사막 MTB 종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