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席毛島)
석모도(席毛島)와 인연을 맺은 지가 아마 20년이 넘어간다. 지금까지 단일 장소로는 가장 많이 다녀온 곳이다. 적어도 일 년에 2~3차례 이상은 찾아간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아내 혹은 친구와 동행한다. 지난주 9일, 불현듯 당일 아침에 전화하여 보문사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흔쾌하게 와준 벗에게 감사하다. 최근 석모도는 강화도와 이어진 석모대교(2017.6.28 완공)가 놓여 있어 접근하기가 매우 쉬워져 각광(脚光)을 받는 곳이다. 다만 서울이나 인천 등지에서 관광객이 줄이어 쓰레기를 치우느라 오히려 고생만 늘었다는 현지인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더구나 예전과 달리 곳곳이 개발의 몸살로 자연의 속살이 드러나면서 보기에 안쓰럽기도 하다. 조그만 섬에 골프장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인간의 탐욕은 참으로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전망이 좋은 곳은 이미 펜션과 카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나마 강화도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다가 교량의 개통으로 중단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는 외포리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면 10여 분 남짓 하여 석모도에 닿았다. 여객선이 출발하면 선착장에 앉아있던 회색의 갈매기들이 배의 출발과 함께 일제히 날아오른다. 그리고 배와 속도를 맞추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배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 때문이다. 어떤 갈매기는 사람들이 던지는 과자를 공중에서 낚아채 탄성을 자아내는가 하면, 또 다른 갈매기들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과자를 잽싸게 물고는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누군가 ‘거지 갈매기’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원래 자신들이 어떻게 먹이를 구했고, 어느 하늘을 날아다녔는지를 잊은 채 먹이를 구하는 안일함 때문에 이 좁은 공간에 자신들을 가둬버린 갈매기가 마치 꿈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으로 투영되었다. 청춘 시절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으며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 자신이 안쓰러웠다. 떼를 지어 비상하는 갈매기들의 군무(群舞)를 구경하다 보면 바로 건너편 석모도에 도착하였다. 현재는 교량이 완공되어 양편에 있던 선착장은 폐쇄되고 오가던 뱃길도 끊겼다. 짧은 시간에 바닷길을 가로질러 가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흥을 돋우던 낭만도 사라졌다. 그 갈매기 떼는 어디로 떠났는지 보이지 않고 무심한 바닷물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모도를 찾는 대부분은 먼저 보문사(普門寺)로 향한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세운 천년고찰이다. 보문사는 남해 금산 보리암, 동해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해상 관음도량(觀音道陽)으로 유명하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祈禱發願)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곳 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加被 ; 부처나 보살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어 돕고 지켜 줌)를 잘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보문사에서 가장 유명한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坐像)은 낙가산(洛迦山)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있다. 눈썹바위 아래 새겨져 있다고 해서 미암좌불(眉庵坐佛)이라고도 한다. 마애석불좌상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은 경사가 있는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중간중간에 잠시 머물며 서해를 바라보면서 서두르지 않으면 어려운 길은 아니다.
마애석불좌상은 높이 9.2m, 너비가 3.3m에 달하는 거대한 형상인데 높이 32척에 너비 11척으로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목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서른 두가지 몸))과 11면(面)을 상징한다. 계단을 다 오르면 서해와 인근 산야의 풍경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여기서 바라보는 보문사 앞바다의 바닷물을 보문첩도(普門疊濤)라고 하는데 빼어난 경관으로 강화 8경 중 한 곳이라고 한다. 보문사 경내에는 나한전(羅漢殿)이 있는 자연동굴의 석굴과 와불전(臥佛殿), 5백 나한상, 오랜 수령의 향나무와 은행나무 등도 구경할 만한 곳이다.
개인적으로 보문사에는 가느다란 인연의 끈이 있다. 이곳에는 강화가 고향인 서예의 거목인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1924~1975)이 생애 마지막 선물로 보문사 주지에게 준 글씨가 범종각(梵鐘閣)의 편액(扁額)으로 남아 있다. 1966년경에 당시 서예계의 거물인 남정(南丁) 최정균(崔正均:1924~2001)과 교분이 두터운 그가 남정(南丁)을 찾아 문인들과 어울린 적이 있다. 이때 동정(東庭)이 선물한 그의 서예작품을 가져오신 선친이 평생 애정을 쏟으신 과정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에 백양사에 갔을 때 입구를 지나자 일광정(一光亭)이라는 편액을 보았는데 작품을 남발하지 않은 분이라 귀한 작품들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의 무관심으로 사후에 모든 유품을 대전대학에 기증하여 정작 고향에는 그를 기리는 공간이 없으니, 무지한 인심과 문화를 대하는 후진성에 의아할 뿐이다.
석모도의 또 다른 볼거리로 「수목원」과 「민머루 해변」이 유명하다. 수목원에서는 다양한 식물과 꽃 구경이 가능하며, 해변은 백사장이 약 1km 정도 펼쳐져 있어서 해수욕에 적합하고, 해지는 서해의 아름다운 석양을 조망할 수 있다. 언젠가 수목원을 찾은 가을에 풍성하고 예쁘게 만발한 꽃을 구경하고 인근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하였다. 이곳에서 만났던 어느 분이 맛집이라고 가르쳐준 곳이 게장으로 유명한 「153 간장게장 집」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외포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데 소문을 타고 항상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사실 자주 석모도를 찾는 이유가 따로 있다. 석모도를 찾기 전에 강화도의 전등사를 오가면서도 이곳은 찾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 1학년에 다니던 딸이 어느 가을날 한 편의 에세이를 건네주었다. 장문의 글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잘 쓴 글이라 칭찬을 해 주었다. 사실은 대학에서도 이미 우수한 글로 평가를 받은 글이었다. 내용인즉 이미 여고 2학년 시절에 친구와 둘이서 석모도를 찾아와서 해변과 보문사 앞의 가을 길을 걸으며 우정을 나누고 미래의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이후 심신이 힘들었을 무렵에 그리던 옛 추억을 더듬으며 다시 찾아와 자신을 격려하던 다짐의 글이었다. 귀향길에 선친께 보여드리니 손녀딸의 문장력을 높게 평가하시며 퇴고(推敲)를 해 주셨다.
이런 추억이 담긴 석모도를 유학을 떠난 딸이 그리울 때마다 아내와 함께 자주 찾게 된 것이다. 딸이 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란 글에 기록된 길을 따라 걸으면서 희미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하였다. 매양 되풀이되는 딸아이와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는다. 항상 습관처럼 바닷가 언덕에 있는 「노을지는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의 주인장이 아마 그림을 그리던 분 같은데 주변 환경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시간을 보내기에는 알맞은 곳이다. 어쩌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딸이 아내를 닮았다고 말하면서 무심하여 배가된 고생과 서운함을 느낀 아내를 위로하기도 한다.
한여름 염천에 갓난아이를 이사하는 화물차에 태워 생고생시킨 이야기, 말을 배우면서 점차 시조와 시를 암송하더니 멋진 일기를 쓰던 이야기, 천식으로 먼 거리를 오가며 치료하던 이야기, 피아노를 전공하려다 진로를 바꾼 이야기, HOT에 열광하여 내심으로 걱정하던 이야기, 고교 시절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와 놀기도 병행하던 이야기, 부모가 의과대학에 진학을 요구하니 당당하게 과학자가 되겠다던 이야기, 여러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이야기, 유학을 간다고 거금을 용돈으로 주고 귀국하면 만찬을 베풀어 주는 친구 이야기, 병석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 아마 다시 생전에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작별 인사를 하던 이야기, 유학을 떠나기 전에 용돈으로 건넨 자금에 이자를 더하여 상환한 이야기, 홀로서기로 박사 학위를 받아 졸업식에 참석한 부모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던 이야기, 공부하면서도 적시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열심히 키우는 이야기와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 등을 화제로 하다 보면 석모도의 노을은 저물어 간다. 지난 2015년 여름에 잠시 귀국한 딸은 동경에 학회 차 가고 사위와 두 외손을 데리고 석모도를 왔었다. 마침 올여름에는 외손들에게 고국의 정취와 문화를 심어주고 교육하기 위해 장시간을 체류한다고 하니 모두 석모도를 다시 찾아올 생각이다. 오래전에 걷던 추억의 그 길을 찾아 3대가 함께 또 다른 추억의 장을 만들어 보련다.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똑같은 심정이다.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고, 더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싶다. 더구나 친정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의 생명수와도 같다. 언젠가 우리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역작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혼자서 꺽꺽 눈물을 삼키던 기억이 새롭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엄마가 어느 날 실종됨으로써 시작하는 이 소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가게 되거든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구해달라고 하던 주인공 엄마의 이야기가 가슴을 후볐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슨 선물을 했었는지!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딸을 키우더니 성장한 후에도 변함없이 큰 나무가 되어 그늘을 내리고 온갖 풍상을 막아 준다. 요즘은 외손을 돌보고 키워주는 것이 대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도 그 누군가의 딸 일진데 친정과 시댁을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따뜻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아마 이 사랑은 연이어 내리사랑으로 전해져서 꼭 엄마를 닮은 딸로 전승할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섭리요, 진리요,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는 따스한 숨결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