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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 신의 성품에 참예케 하신 하나님 말씀/ 베드로후서 1:1-21 요절/ 베드로후서 1:4 | 2015.10.04 |
베드로후서 1강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베드로전서에 이어 소아시아에 흩어진 신자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순교를 예감하며 이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 핍박 받고 있는 교회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고, 베드로후서는 거짓 교사들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후서의 서론에 해당되며, 복음의 진리를 통해 우리 신자들이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또한 어디까지 성장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단과 거짓 사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를 굳게 믿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성숙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베드로후서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은 인사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먼저 자기 소개를 합니다. 그의 이름은 시몬 베드로이며, 그의 영적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입니다. 시몬은 본래 이름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신 이름으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이 자랑스러운 신분이었듯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종은 자랑스러운 신분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종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시몬이 죄의 종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종 베드로가 된 것은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시몬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원조 사도는 예수님이십니다(히3: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열두 제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가 되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신자들을 가리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동일한 것이며, 보배로운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이 받은 믿음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믿음의 기초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구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세상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보배입니다. 우리는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내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동일한 믿음을 받은 성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동일한 믿음을 받은 신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그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말합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 특히 영지주의자들은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지식은 헬라철학과 인본적인 지식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영지주의자들의 지식과 대조되는 참 지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참 지식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참 지식은 참 신앙과 연결되고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게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10년, 20년 했다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의 깊이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마음으로 성경을 대해야 하며,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힘써 배우며 인격적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내면과 삶에 은혜와 평강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리스도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죄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으로, 수평적으로는 이웃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인격과 삶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그리스도를 알아갈 때 우리는 생명을 더 풍성히 얻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닮은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배우고 그의 은혜를 입을 때 우리도 변화되고 영적 거목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11절을 보면 산 소망인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마음에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누릴 뿐이지 온전하게 누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은 미래에 이루어 집니다.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이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것입니다. 이 약속은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이기에 보배로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지극히 큰 약속입니다. 정치인의 약속, 사람의 약속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깨지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믿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도덕이나 종교나 교육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써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시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고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붙들고 신의 성품을 덧입기까지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믿음과 새생명의 씨를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우리 안에 믿음과 새생명의 씨를 심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베드로는 신의 성품으로 어떤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까? 5-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신의 성품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믿음이 없는 선행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 위에 어떤 덕목들을 쌓아야 합니까? 믿음에 덕을 쌓아야 합니다. 덕은 도덕적 탁월성입니다. 신자들은 도덕적으로 탁월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부도덕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습니다. 신자들은 도덕적으로 탁월한 삶을 보여 줌으로써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우리는 덕에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경건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지혜와 분별력에 이르는 지식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지식에 절제를 쌓으라고 하십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절제는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직장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빼어난 성경선생이 되기 위해서도 절제는 필수적입니다. 정욕의 불이 타오르는 청년들은 절제력을 키워야 합니다. 절제의 미덕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절제력을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와 성경공부에 마음과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되고 정욕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인내는 힘든 일과 힘든 사람에 대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인내도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기에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행해야 합니다. 형제 우애는 동료 신자들을 향해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가페로서 자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이 부족한 자인가를 깊이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때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에 이르기까지 신의 성품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과 열정을 품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개의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은 계속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신의 성품에 참여할 뿐 아니라 신의 성품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분이시기에 우리는 열심을 품고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은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게 됩니다.
이런 미덕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9절을 보십시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런 자들은 영적 소경입니다. 그들은 멀리 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들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죄사함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죄악된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면 부모에게 근심거리가 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입만 살아 있는 구신자가 되지 않고 삶의 변화와 아름다운 열매가 있는 성숙한 제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우리는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떤 시련이나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 자들은 이단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현재적으로 누리고 또한 미래적으로 누리게 될 그 나라를 산 소망으로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12-15절에서 베드로는 우리 신자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깨우쳐 줍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절박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가 죽은 후에라도 우리가 언제든지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전합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기초로 예수님의 능력과 재림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개인적인 영적 체험이 있을 때 예수님의 능력과 재림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재림은 또한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의 능력과 재림은 구약과 신약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의 깊은 뜻을 알기까지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하고 밝고 희망찬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됩니다(20). 성경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21).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성령과 유능한 성경선생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지속적으로 교제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신의 성품을 가진 자요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