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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시리즈-01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 개정증보판 고미숙 저 | 북드라망
상품 가격정보 정가 12,900원
판매가 11,610원(10%할인)
출간일 2012년 08월 31일
240쪽 | 145*210*20mm
ISBN-13 9788997969012
ISBN-108997969013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인문/사회/경제
국내도서 > 인문 > 인문일반 > 인문/교양 일반
‘공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열정을 불러일으켜 10대부터 6080세대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독자들에게 열렬한 공감을 받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가 새로운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는 슬로건 아래, 함께 공부하고, 생애의 전 사건을 공부거리로 삼고, 독서와 글쓰기, 암송과 구술을 통해 세대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공부에 대해 말한 인문에세이다.
연령층을 세분화해 같은 연령대끼리만 묶어 놓는 학교에서의 공부, 성적과 동일어가 된 공부, 돈이나 명예 등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 공부 등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그 질문의 크기만큼이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하며 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공부임을, 그러기 위해서는 생로병사로 대표되는 삶의 전 과정을 공부거리로 삼아야 하며, 어디의 누구와도 ‘앎의 코뮌, 즉 공부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배움이 아니다!”
저 : 고미숙
Ko Mi Sook,高美淑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에 속한 작은 광산촌에서 자랐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가난했지만 ‘공부복’은 많았던 셈이다. 다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이다. 지난 십여 년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고, 2011년 이후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http://gamidang.com)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감이당〉의 모토는 몸·삶·글의 일치다. ‘아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삼종세트(『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전2권), 동의보감 삼종세트(『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달인 삼종세트(『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에 속한 작은 광산촌에서 자랐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가난했지만 ‘공부복’은 많았던 셈이다. 다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이다. 지난 십여 년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고, 2011년 이후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http://gamidang.com)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감이당〉의 모토는 몸·삶·글의 일치다. ‘아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삼종세트(『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전2권), 동의보감 삼종세트(『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달인 삼종세트(『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윤선도 평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가 있다.
소박하고도 근원적인 질문들로부터 도망가지 말자. 정녕 사무치게 마주칠 수 있다면, 그것은 다시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될 수 있으리라.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것처럼.
개정판 머리말|초판 머리말
프롤로그 _ ‘세 개의 절망과 하나의 희망’이 있는 풍경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학교, 공부를 독점하다
거짓말 하나, 공부에는 때가 있다?
‘학번 공화국’|아줌마들의 ‘원초적 본능’|대학로와 ‘종삼’이 통하는 길|공부엔 때가 있다!
거짓말 둘, 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제갈량과 허생|책과 패스트푸드|독서는 고리타분해!
거짓말 셋, 창의성만 있으면 만사 OK?
시설과 서비스로 승부한다|렛잇비! -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
세태톡톡 | 역사 속 공부의 달인들(동양편)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새로운 지도 그리기
‘앎의 코뮌’에 접속하라!
‘유년기’라는 함정|학교와 ‘코뮌’의 차이|꿈은 이루어진다!| 공부는 ‘네트워킹’!
암송과 구술, 아는 만큼 행복하다?
「변신」과 「오감도」|암송의 힘|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구술, 리더십과 유머의 원천
독서로 인생역전! 호모 부커스
책과 우리 시대|책과 몸 - 찰떡궁합|책과 연애 - 그 은밀한 접속| 오래된 미래, 도래할 과거|고전, 우정의 메신저
글쓰기는 신체를 어떻게 단련시키나
공부의 최종심급, 글쓰기|서곡|차이를 구성하라|일이관지(一以貫之)|지전능변(知典能變)|글쓰기와 운명
세태톡톡 | 역사 속 공부의 달인들(서양편)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평생의 일대사
“천지에 가득한 책의 정기”
몸과 일상, 문명의 거처?166
자폐증 앓는 사회|사랑, 이보다 훌륭한 텍스트는 없다!|질병과 죽음 - 최고의 스승|운명애(Amor fati)를 터득하라!|“네가 먹는 음식이 바로 너다!”
스승, 배움의 전령사
스승과 친구|감염과 촉발|천하를 그대 품안에|덧달기 1 : 공부의 달인들 |덧달기 2 : ‘공부와 밥과 우정’이 있는 풍경
공부는 어떻게 혁명과 조우하는가?
고향은 없다!|‘가장 억압받고, 가장 소외되지 않은’|유목 혹은 마법의 변신술
세태톡톡
에필로그 _ 공부해서 남 주자!
인물 찾아보기
“질문들은 세상천지에 널려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가 끝나는 것이라면,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은 언제, 어디서 배워야 하는가? 학교에선 왜 독서하는 힘을 길러 주지 않는가? 독서와 공부는 서로 다른 것인가? 교과서에 나온 지식들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더 나아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행복의 조건은? 나와 민족과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혹은 인간과 동물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인가? 등등.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 고로,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 머리말 중에서
“그렇다. 공부란 바로 이것, 잘 배우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순임금과 공자가 위대한 성인이 된 것도 그 때문이라지 않는가. 공자님은 학자니까 그렇다 쳐도 순임금은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이었음에도 저렇게 열심히 배웠다니 더더욱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자신은 스승이 아...“질문들은 세상천지에 널려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가 끝나는 것이라면,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은 언제, 어디서 배워야 하는가? 학교에선 왜 독서하는 힘을 길러 주지 않는가? 독서와 공부는 서로 다른 것인가? 교과서에 나온 지식들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더 나아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행복의 조건은? 나와 민족과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혹은 인간과 동물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인가? 등등.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 고로,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 머리말 중에서
“그렇다. 공부란 바로 이것, 잘 배우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순임금과 공자가 위대한 성인이 된 것도 그 때문이라지 않는가. 공자님은 학자니까 그렇다 쳐도 순임금은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이었음에도 저렇게 열심히 배웠다니 더더욱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자신은 스승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는 벗일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건 어떤 구체적 이념이나 원리라기보다 배움의 열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것만 있다면 아라비아 사막이건 시베리아 벌판이건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소외와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주자가 말했듯이, “부귀하면 부귀한 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다면 빈천한 대로 공부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의 청소년들이야말로 가장 억압적이면서 가장 소외된 계급에 해당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입시를 위한 전쟁터에 내몰리고 거짓된 표상의 덫에 걸려 청춘을 다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즉, 청춘의 패기와 열정을 모아 지식의 노예가 아니라 지식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요컨대, 스스로가 ‘호모 쿵푸스’임을 자각해야 하리라.” --- 본문 중에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것이다. 내용 편집/디자인 | smailsk | 2013-03-08 | 추천0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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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쿵푸스" 이런 말은 처음들어 볼 수도 있다. 나 또한 팟캐스트에서 책소개를 할 때 이책을 알게 되었다.
호모쿵푸스란(Homo Kungfus)란 공부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의 달인'이다.
마치 쿵푸를 하듯이, 앎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단련하고 일상을 바꿔나가는 존재다.
공부라는것이 이와 같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몸에 익히고 단련하는 수련의 과정으로 이러한 연습이
나 자신을 좀더 성장시켜 고수가 될 수 있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 이건 거짓말 이다.
공부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스스로 너무 늦었다고 판단하지 말고 항상 호모쿵푸스가 되어 공부하자!
호모쿵푸스 공부법
1. 책을 읽어라. 특히 원대한 비젼, 눈부신 지혜로 가득찬 고전을 섭렵하라.
2. 소리내어 암송하라. 소리의 공명을 통해 다른 이들과 접속하라.
3.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라. 지식과 정보에 서사적 육체를 입혀라.
4. 앎의 코웬을 조직하라. 즉 스승을 만나고 벗과 함께 공부하라.
5. 일상에서 공부하라. 질병과 사랑, 밥과 몸, 모든것을 배움으로 변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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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코뮌'을 조직하라 내용 편집/디자인 | 스컬리 | 2013-02-14 | 추천0 | 댓글0
'좋은 앎'과 '좋은 삶'이 일치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런 삶을 사는 이가 있다면,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사는 사람일 것이다. 예수, 부처, 간디와 같은 인류의 스승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좋은 앎'이란 무엇이고 '좋은 삶'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 철학적이고 무거운 질문 앞에선 언제나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어쩌면 '좋은 앎'과 '좋은 삶'을 일치시켜가기 위한 평생의 여정이야말로 배움의 과정이 아닐까.
공부란 무엇인가 : 그 본원적 의미에 대하여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호모 쿵푸스>는 '공부'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공부'하면 학교 공부, 대입, 취직 대비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당연히 지루하고 뭔가 대단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공부는 우선 몸에서 분리되고, 나아가 삶에서 분리된다. 고미숙은 이러한 현상이 근대 제도가 만들어 낸 공부에 관한 잘못된 통념이라고 비판한다. <호모 쿵푸스>의 부제가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인 것처럼 그녀는 공부란 본디 삶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며,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p40)
그럼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
공부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우주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독서야말로 초야에 묻혀서도 천하의 이치를 꿰뚫는 눈을 갖게 해준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면 '비약'의 순간이 오는데 고미숙은 이 단계를 '언어와 문자의 경계를 넘어 세상 모든 것이 책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앎은 행위에서 시작되고 행위는 앎의 완성이 되는 '지행합일'의 경지다.
무예수련에도 단계가 있듯이, 공부를 하나의 '마음수련'이라고 한다면 그 최고 경지는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누구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다. 더 이상 배울게 없을 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줄게 없을 만큼 모자라는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 일상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단계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공부라는 것은 일상생활과 일 속에 있다. 평소에 행동을 공손히 하고 일을 공경히 하며 남을 진실되게 대하는 것. 이것이 곧 공부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해서이다"라고 썼다.
혁명과 공부가 만났을 때
내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해서다. 내가 지금보다 나아져야 나로 인해 형성된 관계가 나아지고 세상이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변이가 없고서야 세상의 질서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모두가 스승이자 모두가 벗인 진정한 '배움터'로 전환할 수 있다면? 고미숙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인생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근대 이전,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commune)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건 바로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뜻이었다. (p89)
사실 따지고 보면 공부란 그 자체로 혁명이다. 억압과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 곧 혁명이라면, 그 시작은 공부일 것이다. 공부란 인생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고 삶을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부란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하는 무기다. 소외되지 않은 자만이 구조적인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어쩌면 '진보의 위기'란 '공부의 위기'인지도 모른다.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빈민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급진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인문학이란 빈민들 스스로 성찰하고 탐색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힘'있는 존재로 바꿔나간다. 빈민들이 철학적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그들은 공적 세계에 눈을 뜨며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요새는 여기 저기서 인문학 강좌를 여는 것이 '붐'처럼 되고 있는데, 얼 쇼리스의 지적은 생각해 볼 바가 많다.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는 곳 낮고 후미진 곳이야 말로 진정으로 '공부'를 일으켜 세워야 할 곳이 아닐까. 농촌 지역에서 곧잘 열리는 '인문학 강좌'같은 프로그램도 '앎의 코뮌'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해볼만 하다. 고미숙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앎의 코뮌을 조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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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내용 편집/디자인 | 하우애 | 2013-01-26 | 추천3 | 댓글6
학창시절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면 공부할 일이 없을 거라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며 공부와도 이별을 고했다. 시험기간에만 교과서, 참고서에 열심히 줄긋고 연습장에 반복해 적어가며 입으로 중얼중얼 해대던 게 바로 공부였다. 그것도 시험을 위한 단기 암기력에 의존하는 공부였으니 학창시절의 공부라는 단어에서 배움의 의미는 쏙 빠져있을 수 밖에 없다. 공부는 즐겁고 유익한 것이라기보다 지겹고 힘들고, 학교시험이나 성적을 위해서나 필요한 것일 뿐이었다. 공부는 학교에서나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공부라는 단어를 들으면 학교를 먼저 연상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사회에 나와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야 배움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정작 세상에 대해 배우며 꿈과 희망을 키워야할 학창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살아가며 배워가는 중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란 공자의 말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정작 필요한 공부가 어떤 것인지를 살며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살기 위한 공부는 학교를 떠나면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공부해야겠단 마음만 먹으면 무한정의 지식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평생을 읽어도 다 못 볼 것 같은 책들이 세상에 널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학생들이나 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에게서 독서하는 이들을 찾기가 힘들다. 독서는 곧 공부라는 공식이 여전히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고, 공부는 학교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사실상 이상할 것도 없는 반응이다. 어쨌든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의 중요성을 스스로 체감하게 되겠지만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안타까움도 분명 함께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공부는 평생해야 하는 것임을 빨리 깨닫고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배움은 자신의 변화와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학교의 주입식 공부에 익숙한 상태라면 공부는 여전히 지겨운 일일뿐이다. 일찌기 배우진 못했지만 공부를 즐겁고 유익하게 하는 방법들은 많다. 그것을 다양한 책을 통해 익힐 수 있다. 이 책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를 읽으며 학교 교육방식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는 철저히 자신의 성장에 촛점을 맞추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단히 책을 읽고 세상을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그리고 무작정 책에 매달리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는 사실,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는 책 속이 아닌 세상 속으로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다시 일깨우기도 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될수록 일찍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늦으면 늦을수록 허비한 시간을 안타까워하게 된다. 인생은 유한하고 배워야 하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살기에 바쁘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된다. 뒤처진 공부를 따라잡는 방법은 틈나는 대로 공부하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도 늘 공부에 매진하긴 힘들다. 먹고 살기도 바빠 정작 중요한 일에는 신경을 못 쓰고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우리 삶 자체가 공부라 여기게 되면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 책을 집어든 순간만이 공부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생각만 바꾸면 삶이 공부가 되고, 공부가 삶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고전공부에 대한 열정을 더해주고, 삶과 공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진정한 공부는 내면에 에너지를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며 평생해야 하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학교공부가 전부라 여기고 책과 담쌓은 이들이 읽으면 무척 도움이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