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황제-징기즈칸[칭기즈칸/성길사한/成吉思汗/1162년-1227년].
-몽고 실위족을 통일하고 부족장 회의(쿠릴타이/kuriltai)를 거쳐 황제로 등극.
1대 테무친 징기즈 칸 (태조 1206~1227)-성길사한(成吉思汗).
2대 우구데이(오고타이) 칸 (태종 1229~1241)- 징기즈 칸의 3남.
3대 구육 칸 (정종 1246~1248)-우구데이 칸의 장남.
4대 뭉케 테무르 칸 (헌종 1251~1259)-징기즈 칸의 4남인 툴루이의 장남/ 달연 간(한/칸)/ 다얀 칸).
5대 쿠빌라이 칸 (세조 1260~1294)-몽고 제 5대 황제이자 원나라 초대 황제/ 툴루이의 차남 )
원나라
1대 세조 쿠빌라이 (1215~1294)-홀필열한(忽必烈汗).
2대 성종 테무르 (1294~1307)
3대 무종 해산 (1307~1311)
4대 인종 아유르 바르와다 (1311~1320)
5대 영종 시디발라 (1320~1323)
6대 태영제 예순 테무르 (1323~1328)
7대 천순제 라기 바흐 (1328)
8대 문종 투그 테무르 (1328~1329/1332)
9대 명종 쿠살라 (1329)
10대 영종 린친발 (1332)
11대 혜종 토곤 테무르/북원 1대왕 순제 (1333~1368)
북원.
1대 순제: 토곤 테무르 (원나라 마지막 황제 혜종 1333~1368)
2대 소종: 아유르 시리다르 빌레그트 칸 (기황후 아들).
소종(昭宗) 아유르 시리다르 빌레그트 칸은 기황후의 아들이다.
소종은 1372년 명 원정군을 대파하여 승리하였으나 정신적 지주였던 쿠쿠 테무르가 전사한다.
이 전투로 세력이 약해지자 나하추가 명군에 항복하였다.
나하추는 해서후(海西侯)에 봉해졌는데, 이 지역은 현재의 청해성 서부지역인 해서지방이다.
현재 해서 숙몽고 자치주, 해서 장족 자치주, 해북 숙몽고 자치주, 해북 장족 자치주가 형성되어 있다.
소종은 1388년 내몽고 자치구의 브이르 노르 동북 지역에서 명 원정군과 싸워 대패하였다.
소종의 이복 동생 토구스 테무르가 패전 책임을 물어 소종을 죽이고 제3대 황제(평종)에 올랐다.
3대 평종: 토구스 테무르[바얀(백안)의 딸 후비 바야후트의 아들/ 우스칼 칸(Uskhaal Khan/ 익왕(益王)
익주의 익왕은 사천성 성도(청두), 자동, 영안, 강주의 옛 촉나라 지방을 일컬음.
서장성 티벳 자치구 서부 카라코람 산맥 지방의 도우라강 전투에서 명 원정군에 패하자,
엥흐 조리그 투 칸이 패전 책임을 물어 도우라강 기슭에서 평종을 살해하고 제4대 황제에 오름.
쿠빌라이 황제, 황후 가문 몰락.
4대 엥흐 조리그 투 칸-아릭부케 가문 출신[후비 바야후트 가문]
5대 엘베크 니굴세그츠 칸.
6대 군 트므르 칸
7대 을지 트므르 칸
8대 델베그 칸
9대 아자이 칸
10대 타이손 칸
11대 에센 칸
12대 메르코스 우헤그트 칸
13대 멀런 칸
14대 만둘 칸
15대 바트문크 다얀 칸
16대 바르스볼트 저넌 칸
17대 보디 알라크 칸
18대 다라이손 쿠덴 칸
19대 투멘 자사그트 칸
20대 보얀 체첸 칸
21대 리그 호타그트 칸.
명나라에 입조하는 것을 거부당하고 황제나 왕의 대우를 받지 못하자,
외몽골 초원으로 들어갔으나 칭기즈칸으로부터 외몽골을 물려받아 찬밥 신세가 되었던
징기즈칸의 동생 카사르(호르친 부)의 후예들이 울란바토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군대를 이끌고
외몽골 초원에서 대치하자,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며 점점 동유럽 초원의 길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중원에서 밀려난다.
감숙성(간쑤성) 하서회랑 비단길 요충지를 장악했던 거란국이 몽고 실위족(북실위,남실위, 대실위, 발실위,
단실위, 심말항실위)을 식민지배하자, 실위족이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에서 야쿠트(사하) 자치공화국으로 까지
밀려나 살고 있었는데, 이곳까지 찾아와서 간접 식민지배하자 대실위에서 이탈한 한 무리가
투바 자치공화국으로 탈출하여 서진하고 현지인과 융합하여 징기즈칸의 몽올실위족이 탄생한다.
내몽고 포두시에서 일어난 금나라가 강성해지자 거란국이 내몽고 동부와 동북삼성 요녕성으로 밀려나고,
완안 아골타(金太祖 完顔阿骨打,1068년~1123년)가 건국한 여진족의 금나라(건주 여진/ 란주 여진)는
서기 800년대 후반 900년대초 거란 초기 야율 아보기가 내몽고 동부 임황시, 적봉시에서 세력을 키워
거란 8족을 통일하고 실크로드 진입로인 돈황 지구와 란주 지구를 장악했던 거란국(요)을
다시 내몽골 동부 임황시, 적봉시, 요녕성과 감숙성 서쪽 신강성, 서장성(시장성/서요)으로 밀어내며
하서회랑 돈황시(둔황시) 비단길과 란주시(란저우시), 청해성 서령시(시닝시) 초원의 길을 독점하고
황하강 이북 북조를 차지하면서 금나라가 거란(요)을 이어받아 몽고를 식민지배한다.
투바 자치공화국에서 강제로 애만 낳게 한 후 숫자가 많아지자 외몽골 오논 강 일대로
무리를 이끌고 동남진한 징기즈칸(칭기스칸)은 처음으로 발실위와 결합한 발해 멸망 왕가
솔롱고스(고려) 메리키트국(대우순/다이르 우순칸)을 점령하고 대우순의 딸 후란(쿨란)공주를 얻으면서
후란의 미모에 반해 3년간을 허송세월로 보내다가 후란의 뜻에 따라 과거 몽고를 식민지배한
거란국과 금나라를 차례로 토벌하기 시작한다.
거란국이 금나라로부터 동만주로 밀려나면서 발해국을 멸망시켜 차지하고, 동단국(요녕성 조양)을 차지한
거란 왕자 야율 배를 이간질시켜 성공하여 발해가 후발해로 분열한다.
몽고가 신강성(신장성), 감숙성 돈황시의 건주여진(실크로드 비단길 장악/생여진)과
감숙성 란주시의 금나라(란주여진/ 숙여진/ 실크로드 초원의 길 장악)를 공격하여 동만주로 밀어내며
실크로드 비단길 초승달 무역로와 초원의 길 반달무역 교통로를 모두 차지하고 서역로를 장악했던
오토만 제국[터키(튀르키예) + 투르크메니스탄 중심)을 몰아내며 유라시아를 제패[制覇]한다.
금나라는 남은 세력이 말기에 감숙성 란주시에서 서하국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뭉케 황제, 쿠빌라이가 다시 공격하자 동만주로 밀려나면서 금나라가 요녕성 거란국(조양, 심양)을
멸망시키고 이어가다 쿠빌라이 군의 지속된 공격으로 거란 황제와 승상이 이끄는 주류 10여만은
고려로 난입하고 건주 여진(수렵생활)은 길림성 북부와 흑룡강성 제제합의(치치하얼),
합이빈(하얼빈), 서란시(수란시) 등으로 달아났다.
[거란인에 의해서 5일장, 풍물놀이, 매매춘, 기생, 광대 등이 고려에 유래됨.
거란 황가의 고려 난입으로 몽고가 고려를 알게 되어 살례탑(살리타이)에 의해
몽고 제1차 침략(1231년)이 시작됨].-몽고사신 저고여 압록강 살해사건은 협의의 원인.
뭉케(다얀칸) 황제는 거란을 동만주로 밀어내며 하남성 개봉시(카이펑/옛 양나라,북송 수도)를 차지하여
수도(대도)로 삼고 황제 기반을 다지는 사이에 쿠빌라이는 거란, 금나라를 동만주로 지속적으로 추격하여
여진족의 금나라(숙여진의 서하국)가 동간도, 북간도로 밀려나 동하국(금나라 요동선무사 포선만노)을
재건하였으나 몽고(합진), 동진(완안자연/심양), 고려(김취려) 연합군과 이성계의 토벌로 사할린에서
쿠릴열도를 통해 홋가이도 (북해도)를 거쳐 일본 동경으로 달아난다.
쿠빌라이가 내몽고 동부와 요녕성, 길림성,흑룡강성으로 거란, 여진의 금나라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고려 원종의 왕세자 영녕공(왕준)이 몽고의 인질로 가면서 쿠빌라이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여
쿠빌라이에게 붙어 뭉케 황제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연경(북경)에서 원나라를 건국한다.
왕준은 삼별초 군이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겨 고려 자주국을 선포했던 승화후 온(왕온)의 동생이었다.
고려 고종이 몽고에 항복하며 무신시대를 종식시키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를 거부한 삼별초(노영희,배중손) 군이 강화도에서 1천척을 이끌고 진도에서 승화후 온(왕온)을 내세워
고려 자주국을 선포하고, 원으로 망명갔던 홍복원의 아들 홍다구와 손자 홍파두가
고려인을 끌어다가 만든 전함으로 려몽연합 수군 수천여 척을 이끌고 삼별초를 토벌하러 나섰으나,
삼별초 군 1천여 척이 진도 울돌목으로 끌어들여 려몽연합 수군 수천 척을 모두 수장시킨다.
쿠빌라이는 구주(九州/큐슈)백제의 요청 (일본으로 달아난 거란,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출병)으로
려몽 연합군(도원수 홀돈, 우부원수 홍다구, 좌부원수 유복형. 고려군 사령관 김방경)을 출병시켜
일본을 침공했으나 제주(김통정)에서 대마도로 피신했던 삼별초 (1270년)군에 패해 상륙작전에 실패했으며
원나라 건국후 세조 지원 4년(1274) 려원 연합군은 구주 나사사키(長崎/장기) 서남부 타카섬으로
제2차 출정했다가 동경 에도군의 기습을 피하려고 배에서 숙박하는 바람에 풍랑으로 실패하고
3만을 실은 병선만 살아서 회군한다.
삼별초 군은 승승장구하다가 진도에서 육로로 북상하다 중국 화포를 들여온 려몽 연합군에 패전하고 만다.
[구주백제군이 구주에서 려원연합군을 미리 마중나와서 동맹군을 결성하고 길을 안내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와있지 않자 구주 해안을 타고 남하하다가 이상하게 여긴 홀돈이 에도(강호)군의 기습을 피하려고
타카섬으로 옮겨 배안에서 숙박하다가 풍랑으로 실패하고 회군하는 것임.
이로인해 구주 백제군과 연합하여 본토로 들어가려던 계획이 실패하고 말았다].
가고시마 북쪽 나가사키 타카섬
(나라 백제시대 때 일본 동경(도쿄/東京)을 고구려, 발해 망인들이 난동을 일으켜서 차지하고
나라백제를 침공하여 점령하자, 경도(교토/京都)로 옮겨 고구려, 발해 망인계에 대항하며
200여년 간 남북극시대를 맞이하고 있던 시기에 동경으로 숙여진, 일부 거란 망인들이 동만주에서
몽고에 밀려 들어가게 되고 고구려, 발해 망인들이 경도백제를 점령하기 위해 숙여진, 거란 망인을 동원한다.
고구려, 발해 망 인계가 숙여진(란주여진/문명생활), 일부 거란 망인들을 동원하여 교토 백제를 멸망시키고
200여 년 간의 나라 vs 경도(교토) 남북극 시대를 종식시킨다.
이틈에 동경은 숙여진 족이 차지하게 되고 고구려, 발해 망 인계는 동북(도호쿠)지방으로 밀려난다.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 때 교토를 장악하고 전국을 통일한후 본격적인 에도시대를 개막시키며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을 일으킨다. -동인 주리학파 정권 시기).
후일 외몽골 울란바토르를 차지한 호르친부의 카사르 후예들은 건주여진을 찾아가
중원 도모 조건으로 황제자리를 제의하고 명나라를 공격하여 후금>청을 건국한다.
청나라 북경 건국후 태종 홍타이지(황태극/흑환발렬/허칸)계는 카사르 후예와의 권력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외몽고인들은 내몽고 중동부지방으로 밀려나며 청나라가 일제에 멸망하자 기득권들이
내몽고 중서부지방으로 달아나 현재에 이른다.
신강성, 감숙성 돈황시 비단길을 장악했던 건주 여진이 쿠빌라이 군에 의해 흑룡강성으로 달아나
수렵생활을 영위하며 전투력을 키워 예허 여진, 숙여진(란주 여진/문명생활)과의
만주 통일 쟁탈전에서 불리해진 예허 여진(안동/단동지방/해족지역)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고
명나라는 조선에 출병을 요구하여 광해군 때 강홍립이 조선 남로군 1만 2~3천여 명을 이끌고
조명 예허연합군 동로군(유정)으로 출병했다가,
요녕성 무순시(푸순시) 신빈에서 누루하치의 8남 홍타이지 군에 선천군수 김응하 등
8천여 명이 희생당하고 강홍립이 부원수 김경서 등과 함께 부차(富察/부찰)전투에서 투항하여
1618년 태조 아이신 자오뤄[애친각라(愛親覺羅)-겨례를 사랑하고 사방을 망라하여 깨운 제왕) 누루하치의
후금이 건국되었다.
심양(선양)의 청태종 홍타이지는 건주여진족(생여진) 대부분을 이끌고 북경으로 들어가기 위해
북경을 도모하기전, 인조반정 정권 때 정묘호란(1627/후금)에 이어 병자호란(1636/청)을 일으키고
삼전도의 굴욕으로 60여 만 명을 끌어가서 명나라 반란군과 몽고군을 기만하며 심양에 여진족 대군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위장하였으며, 조선을 형제의 나라로 만들어 청을 숭상케 하고 북경을 점령하며
본격적인 청나라 시대를 개막시킨다.-[북인(대북/소북) 조식 학파 핵심 인물인 정인홍, 이이첨 등을 사사시킨 후
200여 명을 유배 보내고, 근대식 개혁 학파인 주기학파 40여 명을 동반 유배보낸
양광도 서인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 (노론으로 이어짐)의 인조반정 정권 시기].
징기즈칸은 두 번째 아내인 후란[忽蘭(홀란/골란)/몽골:쿨란/중국:쿠란/일본:호란(코란)]의 다섯 자식에게
5 한국을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