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대한 기억
손진숙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이 휑하다. 깊은 밤, 창에 부딪는 바람소리가 서늘하다. 보일러 실내온도를 높이고 잠자리에 눕는다. 따스한 방바닥의 열기에 심신이 녹아들자 불현듯 어느 해 가을 풍성하던 방죽 바닥이 떠오른다.
다사한 햇살이 밝게 빛나는 가을날이었다. 한낮의 볕에 졸고 있는 마을의 고요를 깨며 양수기 한 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집 사립문 앞에서도 내다보이는 논. 그 논과 붙어 있는 방죽에는 어른 겨드랑이에 찰 만큼 물이 늘 괴어 있었다. 그 방죽 물을 양수기로 푸고 있는 것이다. 지난여름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쳐 다니는 것을 발견한 아버지가 취한 결정이었다.
물이 줄어들자 여기저기서 팔딱팔딱 튀어 오르는 은빛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퍼낼 물이 없어지고 방죽 바닥이 훤하게 드러나자 탕탕거리던 양수기 소리도 멎었다. 쓸어 모아놓은 듯, 바닥엔 물고기가 그득했다. 둑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일제히 방죽에 들어가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한 마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빛났고, 손은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재발랐다. 큰 가물치를 비롯해 메기, 붕어, 미꾸라지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음흉하게 물풀에 숨어 있던 가물치는 푸드덕 용을 쓰다 잡히고, 느릿느릿 바닥을 기던 메기는 요리조리 몸을 피하다 잡혔다. 붕어는 ‘나 여기 있소’ 흙바닥 위에서 파닥이다 잡히고, 미꾸라지는 ‘나 잡아 보소’ 진흙 속에서 발바닥을 간질이다 잡혔다. 양동이와 빈 통을 있는 대로 가져다 가득가득 담았다. 그때만큼 우리 집에 물고기가 풍년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날부터 물고기는 우리 집의 주 반찬이 되었다. 구워 먹고 찌개도 해먹고, 조려 먹고 국도 끓여 먹었다. 물고기가 바닥날 때까지 계속 밥상에 올랐으나 질리지 않았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토종 물고기의 신선하고 구수한 맛은 바닥날 줄 몰랐다. 그해 방죽 바닥에서 잡아 온 물고기는 한동안 우리 가족의 원기를 돋우는 영양소 노릇을 했다.
이모 집은 기차로 간이역 하나를 지날 만한 거리에 있었다. 버스는 운행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걷기에는 꽤 멀었다. 그 길을 엄마는 걸어간다 했다. 나도 탈래탈래 따라 나섰다. 한참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지루했다. 나는 애꿎게 길바닥의 돌멩이를 고무 신발로 차 버리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길가의 코스모스가 살래살래 고개를 흔들며 반겨 주었고, 고추잠자리가 하늘하늘 날개를 저으며 맞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이모가 내 손에 동전 한 닢을 쥐어주었다. 시골에 묻혀 사는 이모에게 돈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는 이모에게도 받는 나에게도 귀한 동전이었다.
학교에 가서 동전을 만지작거리다가 교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고 얄미운 녀석은 멈추지 않고 데구루루 굴러 교실 바닥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나무판자를 잇대어 깐 교실 바닥의 약간 벌어진 틈으로 빠져들어가 버린 것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이 그랬을까. 아무리 안타까워 발을 동동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한 남학생이 연필을 떨어뜨려 교실 바닥 아래로 빠져버렸다. 남학생은 포기하지 않았다. 빠진 곳을 찬찬히 살피더니 서둘러 밖으로 나가 공구를 가지고 왔다. 제법 익숙한 솜씨로 판자 한 쪽을 떼어내더니 몸을 비집고 가까스로 내려가 연필뿐만 아니라 쓸 만한 물건들을 한 움큼 주워 들고 개선장군처럼 올라오는 것이었다. 판자는 곧 원상태로 꿰어 맞추었다.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광경이었다.
남학생 주위에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의기양양해진 그는 친구들에게 바닥 밑에서 주워온 물건들을 나누어주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와 “이거 네가 떨어뜨린 동전 맞지?” 하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하얀 동전이 손에 닿는 순간 훈훈한 기운이 가슴 밑바닥에서 피어오름을 느꼈다.
나는 지금 잠자리에 누워 따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바닥의 시간들을 쓰다듬고 있다. 방바닥의 온기가 내 몸 가득히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