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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싯달타는 오랜 동안 세속과 쾌락 속에 살았다. 그러나 거기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경건한 사문 시절에 억눌려 있었던 그의 관능(官能)은 눈을 떴다. 그는 부(富)를 맛보았고, 환락을 맛보았고, 권세를 맛보았다.
그러나 그 오랜 동안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한낱 사문이었다. 영리한 카마라는 이를 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의 생활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생각하고 기다리고 단식하는 일이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속인들, 소인배들은 그하고는 무연(無緣)한 존재였다 ―― 그들에게 대해서 그가 그러한 존재였듯이.
세월은 흘렀다. 환희에 빠진 싯달타는 시간의 흐름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기의 저택과 자기의 하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교외의 강변에는 정원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고, 돈이나 조언이 필요할 때에는 으례 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카마라 이외에는, 그와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청년 시절의 정점,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고빈다와 헤어진 후에 체험한 그 드높고도 명쾌한 깨달음, 그 긴장된 기대, 스승을 버리고 가르침을 버리고 태양 아래 오직 홀로 외로이 서려는 그 자부(自負),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신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그 유연한 마음의 준비는, 차츰차츰 단순한 추억으로 변하여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 되었다.
지난날 자기 가까이에서, 아니 자기 자신 속에서 속삭이던 신성한 샘물은, 이제는 멀리서 희미한 물소리로 들려올 뿐이었다. 그가 사문들에게 배운 것들, 그가 고타마에게서 배운 것들, 바라문인 그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절제하는 생활, 사색하는 기쁨, 명상하는 시간, 육체도 아니고 의식도 아닌 영원한 자아에 대한 은밀한 자각 등은 지금까지도 몇몇 가지는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기는 했다.
그러나 하나씩하나씩 사라져서 먼지에 묻혀 갔다. 마치 도공(陶工)의 녹로(轆轤)가 일단 돌기 시작하면 오래 돌아가지만, 조금씩 느려지다가 마침내는 완전히 벗어 버리듯이, 싯달타의 마음 속에서도 금욕의 바퀴, 사색의 바퀴, 탈속(脫俗)의 바퀴는 오랜 동안 회전을 계속하여, 지금도 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회전은 느려지고, 차차 속도를 잃으면서 정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말라 죽은 나무 둥치에 습기가 배어들어 서서히 그것을 썩히듯이, 세속과 나태(懶怠)가 서서히 싯달타의 마음에 스며들어, 서서히 그것을 가득 채우고, 그것을 무겁게 하고, 그것을 지치게 하고, 그것을 잠들게 했다. 그 대신 그의 관능이 활기를 띠고 눈을 떴던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싯달타는 장사하는 일, 남의 위에 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일, 여인과 더불어 즐기는 일을 배웠다. 그는 아름다운 옷을 입는 일, 하인을 부리고, 향기 좋은 물로 목욕하는 일을 배웠다. 그는 세심한 솜씨로 조리된 미식(美食)을 먹는 일도 배웠다. 그리고 생선이며 고기며 새를, 향료며 달디단 과자를 먹는 일도 배웠다.
또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마음을 무디게 하는 술도 배웠다. 주사위를 던지고, 장기를 두고, 무녀(舞女)를 바라보고, 가마를 타고, 푹신한 침상에서 자는 일도 배웠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자기 자신을 남과는 다른 사람, 남보다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남을 약간의 조소, 약간의 조소적 모멸로써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사문들이 속인들에 대해서 품는 그 조소였다.
카와스와미가 병적으로 신경질을 부릴 때, 모욕감을 느끼고 성을 낼 때, 사업상의 걱정으로 고민할 때, 싯달타는 그것을 항상 비웃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기(雨期)가 가고 수확기가 오는 세월이 거듭됨에 따라서, 서서히,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그의 조소는 희미해지고, 그의 우월감은 약해져 갔다. 눈에 안 띄게 쌓여가는 제물에 묻혀서 사는 동안에, 싯달타 자신이 그 소인배들의 모습, 그 유치하고 소심하고 옹졸한 모습을 닮아 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소인배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을 닮아 갈수록 그들을 부러워 했다. 자기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만 있는 오직 한 가지 때문에, 그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그들이 자기들 생활에 쏟는 그 지극한 성실성, 희비(喜悲)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정열, 그들의 끝없는 애욕에 따르는 애뜻하고도 감미로운 행복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명예와 돈에, 계획이나 희망에, 그들은 끊임없이 애착하여, 끊을 수 없는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싯달타는 그것만은 그들에게서 배울 수가 없었다. 오직 그 유치한 기쁨과 유치한 어리석음만은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그 자신이 경멸하는 그들의 역겨운 태도, 역겨운 사고방식뿐이었다.
그는 떠들썩한 환락의 하룻밤을 지낸 이튿날 아침이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도 일어날 줄을 모른 채,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피곤을 느끼는 일이 차차 늘어갔다.
카마스와미가 자기의 걱정거리에 대하여 넋두리를 늘어놓아 따분하게 만들 때, 그는 참지를 못하고 신경질을 부리는 수가 있었다. 노름에 졌을 때, 그는 깜짝 놀랄 만큼 높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래도 그의 얼굴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총명하고 예지로 차 있었다. 그러나 웃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리고 돈 많은 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표정 ―― 불만, 초조, 신경질, 게으름, 비정(非情)의 표정이 잇따라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돈 많은 자에게 따르는 영혼의 병이 서서히 그를 좀먹어 가는 것이었다.
마치 베일처럼, 희미한 안개처럼, 권태가 싯달타를 휩싸기 시작했다 ―― 서서히, 날마다 조금씩 짙게 , 달마다 조금씩 어둡게, 해마다 조금씩 무겁게, 마치 새 옷이 어느덧엔가 시간과 함께 낡아지고, 구김살이 늘고, 옷단은 해지고, 여기저기에 실밥이 드러나게 되듯이, 싯달타가 고빈다와 헤어진 후에 시작한 새로운 생활도 낡아지고, 구김살이나 얼룩이 생기고, 환멸과 혐오가 그 속에 숨어서 시기를 엿보는 가운데, 이미 여기저기서 그 추악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싯달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알게 된 것은 오직, 지난 날 자기 속에 눈뜨고 있었던, 그 찬란하던 시절에는 항상 자기를 이끌어주던 그 맑고 확고한 마음 속의 소리가 지금은 침묵하고 말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이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속이 그를 옭아매고 말았던 것이다 ―― 속세의 쾌락이, 탐욕이, 나태가, 그리고 마침내는 그가 가장 어리석은 악덕으로서 가장 멸시하고 비웃어 마지않던 것, 돈에 대한 욕망까지가 그를 사로잡고 말았다. 재산, 소유, 부귀까지가 그를 사로잡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그것은 그에게는 놀이나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을 수 없는 사슬이 되고, 벗어 버릴 수 없는 짐이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사람을 호리는 기괴하고도 교묘한 길을 더듬어, 싯달타는 그 가장 비천한 집착, 금전욕에 빠졌던 것이다.
그것은 도박이었다. 즉 그가 마음 속으로 사문이기로 그만 둔 그 때부터, 싯달타는 돈이나 귀중품을 거는 노름 ―― 자기가 항상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라고 냉소하면서 가벼운 생각으로 끼어드는 데에 불과했던 도박이라는 것에, 날로 더해가는 광기와 정열로써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도박자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감히 그와 맞서는 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만큼 그의 도박은 남달리 대담했다. 그는 자신의 누를 수 있는 욕구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돈이라는 역겨운 것을 도박에 의하여 잃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차라리 하나의 분풀이였고 기쁨이었다. 상인들이 우상처럼 숭배하는 돈에 대한 그의 모멸은 이보다 더 노골적이고도 조소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달리 없었다.
이리하여 그는 엄청난 거액을 서슴없이 걸었다 ――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자기 자신을 비웃으면서, 그리하여 순식간에 수천금을 따고, 수천금을 잃었다. 돈을 잃고, 패물을 잃고, 나중에는 별장까지 잃었다가는, 다시 찾고, 또 잃는 것이었다.
그 때의 전율 ――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그 막대한 액수에 심장이 뛸 때에 느끼는 그 공포, 가슴을 죄는 그 불안, 이 전율을 그는 사랑했다. 그리고 항상 그 전율을 새로이 하고, 더욱 강하게, 더욱 미칠 듯이 북돋우었다. 포화(胞和)되고 해이된 자기의 생활 속에서는, 이와 같은 감정에 의해서만, 그는 겨우 행복 같은 것, 도취 같은 것, 고양(高揚)된 생활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을 때마다, 그는 새로운 부를 얻기 위해서, 보다 악착스럽게 사업에 골몰하고, 보다 가혹하게 채무자에게 지불을 독촉했다. 왜냐 하면, 그는 재산을 만들어 운명을 건 더욱 큰 도박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더욱 큰 돈을 탕진하여, 돈에 대한 자기의 모멸감을 더욱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싯달타는 사업에 실패해도 태연했던 지난 날의 냉정을 잃었고, 채무자에 대한 관용을 잃었고, 거지에 대한 자비심을 잃었고, 남의 간청을 받아들여 빌려주고 베푸는 기쁨을 잃었다.
일찌기 만금을 단번에 잃고도 태연히 웃던 그가, 지금은 사업상 거래에서는 몸시 각박하고 몹시 인색해졌으며, 때로는 꿈에서조차 돈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처럼 추악한 탐닉에서 눈을 뜰 때마다, 침실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치는 자기 얼굴이 늙고 추해져 가는 것을 볼 적마다, 또 참회와 혐오에 사로잡힐 때마다, 그는 더욱 일확 천금의 도박 속으로 도피하고, 육욕과 술의 침혹 속으로 도피하고,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영리와 축재에 대한 충동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무의미한 쳇바퀴를 도는 가운데 싯달타는 늙고 병들어 갔다.
어느 날 그는 꿈에서 경고를 받았다. 그는 그날 오후를 아름다운 카마라의 정원에서 지냈던 것이다. 둘이는 나뭇그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카마라는 시름겨운 듯이 말했다. 그 말에는 애수와 권태가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고타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를 졸랐다.
그리고 세존의 눈이 얼마나 깨끗했는지, 그 입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요했는지, 그 미소가 얼마나 자비에 넘쳐 있었는지, 그 걸음이 얼마나 평화로왔는지 ―― 하는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녀는 싫증을 낼 줄 몰랐다.
그는 오랜 동안을 그녀에게 불타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다. 그러자 카마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는 것이엇다.
'언젠가는 ―― 그리 멀지 않을 거예요 ―― 저도 그 불타를 따를 거예요. 불타께 저의 정원을 바치고,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할 거예요."
그러나 이렇게 말한 그녀는 또다시 그의 정욕을 돋우었다. 그리고 이어 시작된 사랑의 유희에서, 거의 고통에 가까운 격정으로써 그를 가슴에 그러 안았다. 이 덧없고 허무한 환락에서 다시 한 번 마지막 감로 한 방울을 빨아내려고나 하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를 물었다.
이와 같은 육욕의 기쁨이 얼마나 죽음에 가까운 것인가를, 싯달타는 이 때처럼 기이할이만큼 뚜렷이 자각한 적은 없었다.
이윽고 그는 그녀 곁에 누웠다. 그 때 카마라의 얼굴은 그의 얼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녀의 눈 밑, 그녀의 입가에서, 그는 전에 없었을이만큼 분명히, 어떤 서글픈 글자를 읽었다 ―― 가는 금과 잔주름으로 씌워진 글자, 가을과 늙음을 생각케 하는 그 글자였다.
그리고 마흔 줄로 접어든 싯달타 자신도, 이미 그 검은 머리에 서리가 희끗희끗했던 것이다. 피로와 조락(凋落)이라는 글자가 카마라의 이름다운 얼굴에 또렷이 씌어 있었다.
아무런 즐거운 목적도 없는 먼 길을 걸어온 피로와, 어느덧 나타난 조락의 빛, 그리고 거기에는 숨기고 감추어 온, 그리고 거의 의식도 하지 않았던 불안, 노쇠에 대한 두려움, 인생의 가을에 대한 두려움, 필연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또렷이 씌어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쉬면서 그는 그녀와 헤어졌다 ―― 즐겁지 않은 마음과 은밀히 싹튼 우수를 안고.
싯달타는 그날 밤을 자기 집에서, 무녀(舞女)들에 둘러싸여 술잔을 기울이면서 지냈다. 동료 상인들에게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했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잃은 지 오래였던 것이다.
술을 진탕 마시다가,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자리에 들었다. 극도로 피곤했지만, 흥분 때문에 울고 싶은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 뜨뜻미지근한 역겨운 술맛, 너무나 달콤하고 공허한 음악, 무녀들의 너무나도 간드러진 미소, 너무나도 들큰한 그 머리와 유탕 냄새에서 구역질나는 혐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장 구역질이 났다 ―― 향유 냄새가 풍기는 자기 머리에 대해서, 자기 입에서 나는 술냄새에 대해서, 자기 피부의 탄력 없는 권태와 불쾌에 대해서.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마신 자가 괴로와하다가 그것을 토하고 난 후에 시원한 심정을 즐기듯이, 잠 못 이루는 그는 치미는 구역질 속에, 이들 지나친 환락, 이들 악습, 이 무의미한 모든 생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다.
새벽의 희부연 빛이 비치기 시작하고, 그의 저택 앞 한길에서 사람들이 하루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겨우 가물가물한 잠에 빠졌다. 그 때의 몇 순간, 그는 생시와 잠 사이의 황홀 상태에서 수면을 예감했다. 그가 하나의 꿈을 꾼 것은 이 순간이었다.
카마라는 황금 새장에 진기한 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그 새를 꿈에서 보았던 것이다 ―― 이제까지 아침이면 으례 쉴 새 없이 지저귀던 새가 오늘은 울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다가가서 새장을 들여다보았더니, 그 작은 새는 생명의 불이 꺼져서, 새장 바닥에 떨어져 굳어 있었다. 그는 그 죽은 새를 꺼내어 손바닥에 놓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바깥 한길로 던져 버렸다.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그의 가슴은 심하게 아팠다 ―― 마치 그 죽은 새와 함께 자기의 모든 가치와 모든 기쁨을 던져 버린 듯이.
그 꿈에서 놀라 깨어난 그는, 온 몸이 깊은 비애로 싸여 있는 듯이 느꼈다. 그 때 그는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까지 아무런 가치도 의의도 없는 생활을 여기까지 질질 끌고 왔다. 산 것, 어떤 가치가 있고 소중히 간직할 만한 것은 하나도 내 손에 남아 있지 않다."
외로이, 빈 손으로 그는 서 있었다 ―― 물가에 처량하게 서 있는 난판한 사람처럼.
암담한 마음을 안은 채 싯달타는 자기의 소유인 정원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닫은 후, 망고나무 밑에 놓인 의자에 홀로 앉아서, 마음 속에는 죽음을, 가슴 속에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 속에서 죽고, 시들고, 종말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집중하여, 자기가 평생 걸어온 길을, 자기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초의 날부터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더듬었다. 대체 나는 언제 행복을 맛보았고, 참된 환희를 맛보았던가?
그렇다, 나는 그런 것을 맛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소년 시절에는, 바라문들에게서 칭찬을 들었을 때, 같은 또래들을 누르고 성귀(聖句)의 암송이나 학자들과의 토론에서, 공양을 거들 때의 일거일동에서 자기의 역량을 발휘했을 때, 그는 가슴으로 느꼈다 ―― "하나의 길이 네 앞에 열려 있다. 너는 그 길을 가도록 소명을 받은 자이다. 신들은 너를 기다리신다."고.
그리고 청년 시절에는 높이, 더욱 높이 향상해 마지않는 자기의 사색의 목표가, 같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동료들 중에서 유독 자신만을 높이, 보다 높이 끌어올렸을 때, 자기가 고뇌하면서 '범'의 의의를 추구했을 때, 가까스로 새로운 지식에 도달했을 때, 자기 속에서 새로운 갈망이 타올랐을 때, 그때 자기는 그 갈망, 그 고뇌에 몸부림치면서도, 그는 소년 시절에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을 느꼈다 ―― "나아가라, 나아가라! 너는 소명을 받은 자이다!" 하고.
그는 그 소리를 틀림없이 들었던 것이다 ―― 그가 고향을 버리고 사문 생활을 택했을 때, 또 사문 생활에서 그 불타에게로, 그리고 다시 그 불타에게서 떠나 미지의 세상을 찾아 유전(流轉)의 길로 들어섰을 때에도.
이 소리를 못 듣게 된 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높은 데에 이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평탄하고 쓸쓸한 길만을 걷게 된 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높은 목표도 없고, 갈망도 없고, 비약도 없이, 하찮은 쾌락에 한때의 만족을 얻었지만, 마음은 조금도 충족되지 않았었다!
그 기나긴 세월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소위 소인배와 같은 인간이 되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사실상 그들의 생활에 비해서 훨씬 초라하고 가난한 것이었다. 그들이 목표하는 세계는 그의 목표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안은 그의 불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와스와미 같은 인간들의 모든 세계는, 그에게는 단지 유희였고,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춤이었고, 하나의 희극이었다. 오직 카마라만이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귀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과연 그럴까? 그에게는 지금도 과연 그녀가 필요한 존재일까? 또는 자기가 그녀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자기와 그녀는 끝없는 유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유희를 위한 삶은 과연 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결코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유희야말로 윤회인 것이다. 아이들의 유희, 한 번, 두 번, 열 번을 되풀이하기에는 재미있는 유희라 할 수 있으리라 ―― 그러나 끝도 없이 되풀이한다면?
이제야 싯달타는 알게 되었다 ―― 이 유희는 이미 끝나 버렸다, 이 이상 이 유희를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온 몸에 전율이 지나갔다.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죽었다 ―― 이렇게 그는 생각했다.
그날 온종일 그는 망고나무 밑에서 아버지 생각을 하고, 고타마 생각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나는 한낱 카마스와미가 되기 위해서, 그 귀중한 것들을 버려야만 했던가?
밤이 된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그는 별을 우러러보면서 생각했다 ―― "나는 여기 앉아 있다. 나의 망고나무 밑에, 나의 정원에."
그는 홀로 쓸쓸히 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한 그루의 망고나무를, 한 정원을 소유한다는 것은 과연 필요한, 옳은 일일까? 그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유희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이미 그러한 것들과도 인연이 끊어졌다. 그러한 것들도 그의 속에서 죽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망고나무에 작별을 고하고, 정원에도 작별을 고했다.
그는 이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시장했다. 그래서 시내에 있는 자기 저택이 생각났고, 자기 방의 침대, 음식이 그득한 식탁이 생각났다. 그는 힘없는 웃음을 띄우면서 모든 것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몸을 흔들어, 그 모든 것들에 이별을 고했다.
그날 밤으로 자기의 저택을 버리고, 도시를 버린 싯달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카마스와미는 그가 도둑들에게 잡혀간 줄 알고, 그 후 오랜 동안 그를 찾게 했다.
그러나 카마라는 그의 행방을 굳이 찾지 않았다. 싯달타가 실종되었다는 기별을 듣고도, 그녀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기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 사문이요, 나그네요, 편력자에 불과한 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그녀는 그 마지막 합환(合歡) 때만큼 절실하게 느꼈던 적은 일찌기 없었다. 그리고 그를 잃은 고통 속에서도 은근히 기뻐했다 ―― 그 마지막 밀회에서 자신이 그처럼 열렬하게 그를 자기 가슴에 포옹했던 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토록 완전히 자기가 그에게 소유되었던 일을.
싯달타가 실종되었다는 기별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그녀는 창가에 걸려 있는 황금 새장으로 다가갔다. 그 속에는 진기한 명금(鳴禽) 한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새장 문을 열고, 새를 꺼내서 놓아 주었다. 그녀는 멀어져 가는 새의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문을 닫아 걸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후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싯달타와의 마지막 밀회에 의하여 자기가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