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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염원 그리고 자연과의 호흡
임 종찬(부산대 명예교수. 시조시인)
1
김덕남 시인의 첫 시조집을 여는 순간 먼저 독자를 안내하는 심상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다. 그 사랑은 염원으로 혹은 기도로 아니면 애달픈 민족의 아린 역사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그를 조국애의 포로가 되도록 하였는가.
김 시인은 무남독녀로, 뱃속에서 아버지를 전장으로 보냈다고 한다. 6월은 동족상잔의 아픔이 도지는 달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충혼들이 기억되는 한스런 달이다. 이럴 즈음에는 어김없이 아버지가 묻힌 국립 현충원을 찾는 단 하나의 혈육이 바로 김 시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가 왜 그렇게 조국애에 연연하며 조국에 대한 염원이 그리 큰지를 알 것이다.
그의 시조가 말하는 조국애는 다음 세 갈래로 나누어 설명된다.
첫째는 자연물을 통한 조국애다.
한 방울 핏물 튕겨 뿌리박은 그대 모습
격랑을 가로 막고 응시하는 눈빛이여
붉은 해 홰치는 자리
팔을 걷고 섰는가
열원熱願은 바위 녹여 바닷물도 식혀내고
동백꽃 봄불 태워 소지燒紙하는 기도 앞에
내 조국 아리는 사랑
그 소리를 듣는다
- ‘독도’ 전문 -
독도는 한 자연물에 불과하지만 조국애의 눈빛으로 독도를 본 김 시인의 눈에는 독도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요 염원의 결정체요 신비의 기도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점은 다음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시각으로 확인된다.
세상이 새로 열리고 백두가 숨 쉬던 날
신단수 제단 아래 쌓아보던 붉은 염원
활시위 당기는 힘줄
이 강토에 퍼져라
- ‘백두산에 올라’ 부분 -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고향이고 민족정기의 바탕인 영산이다. 국운이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번지고 퍼지고 울리어 우리의 염원조차 마침내 완성되리라는 기도의 시조다.
둘째는 역사물을 통한 조국애다.
푸른 꿈 펼치려던 선비의 잰 걸음도
장원급제 나팔소리 드높던 말발굽도
한바탕 유배길마저 여닫으며 지켰는데
기왓장 튈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고
잠 못 이룬 시름마다 눈시울 젖어오네
대들보 다시 올리고 새 천년을 꿈꾼다
- ‘숭례문, 검은 불꽃을 타고가다’ 부분 -
국보 숭례문이 한 취객의 만행에 의해 소실되는 그 순간을 지켜본 사람들은 비단 김 시인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 국민의 슬픔과 분노와 안타까움이 연기되어 솟았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국보 1호를 수호하지 못한 책임은 다음 문제이고 이것의 재건이 먼저라는 데에도 우리는 동감한다. 눈물로 불을 끄는 심경이 여기에 보이지 않는가. 조선의 혼이요 겨레의 자존심이요 민족의 맥박이 다시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심경이 적나라하다.
팽개쳐진 팔다리가 발버둥쳐 우는 산천
귀와 코 소금 절여 바다 건너 버려졌네
적들의 전리품들이 눈물비에 젖는다
- ‘통증’ 부분 -
볼모의 쓰린 세월 살얼음 위 말을 달려
눈보라 속 벼린 칼날 달빛을 토막 내며
치욕을 씻어보고자 다짐했던 그날들
- ‘영릉寧陵을 바라보다’ 부분 -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조선인의 코와 귀를 잘라 그 수만큼의 전공을 과시했던 왜구. 그들은 조선인의 코와 귀를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가져가 매장했던 것인데 이를 일러 귀무덤이라 한다.
일본 쿄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이총耳塚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심경은 무겁기 한량없으리라. 희생된 조선인의 수가 12만 6천이라면 그 수가 적다 많다를 떠나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느냐부터 우리는 물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영릉은 조선 제 17대 왕인 효종과 부인 인선왕후의 무덤이다. 효종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잡혔다 돌아온 뒤 설욕에 뜻을 두어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개편과 군사훈련에 힘을 쏟았던 왕이다. 그날 그 치욕의 심회를 오늘에 다시 읽어보는 시조다.
셋째는 인물을 통한 조국애다.
포탄비 쏟아지는 연평도의 타는 아픔
화염이 몰아쳐도 내 염원은 더 뜨거워
두 주먹 움켜쥔 채로
격발하던 그 순간
나 이제 목숨 벗고 휴가 길로 간다 해도
근심은 풍랑치고 분노마저 삭지 않아
눈동자 보름달 되어
불침번을 서리라
- ‘아픔은 아픔을 낳는다’ 전문 -
‘산화한 장병을 추모하며’란 부제가 붙어있는 작품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응전하다 산화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이제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먼 휴가 길에 접어들었지만 정신은 보름달 되어 서해를 지킬 것으로 생각한다.
수줍은 비취비녀
숯으로 탄 아내 앞에
엎드려 가슴을 쳐도
억누르는 천근 무게
범종도
길을 못 여는
이 첩첩한 갈증을
- ‘갈증’ 전문 -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북쪽으로 끌려갔던 신혼시절의 그 남편은 굽은 허리의 노인이 되었고 연지분 곱던 새댁은 눈도 귀도 가물거리는 늙은 노인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아내와 남편이 상봉하는 순간, 온 국민은 울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부를 갈라놓고 이제와 만나보라는 권고는 차라리 처절한 곤욕이요 인간비극의 연출을 강요하는 짓이다. 이 비련의 역사를 하루 빨리 걷어치우지 못한 현실을 개탄하였다. 그러하기에 천근 범종을 때려도 울 수조차 없는 막막한 순간이라 한 것이리라.
2
김 시인은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감정의 소유자다. 그는 자연 감상법을 몇 개의 시선으로 안내하고 있다. 1)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서정체로 보기 2)자연에서 自와 他의 구별하기 3) 자연에서 인간 삶의 이치를 발견하기 등이다.
우선 1)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수복壽福무늬 먹여놓은 분청자기 그릇 하나
손대면 금이 갈까 멀찌감치 바라보니
샛노란 입술 터뜨려 봄하늘을 담는다.
- ‘얼음새꽃’ 부분 -
얼음새꽃(일명 복수초)이 눈 속에 피는 모습을 완상하는 눈치다. 이들 작품은 자연을 일체의 관념의 대명사로 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완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작중화자는 자연과 일정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 자연을 자기 식의 도식 안에 구겨 넣어 해석하지 않으면서 자연의 애중함을 즐기려고만 한다.
2)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하얗게
부서져서
장독대에 꽃 내린다
투명한
꼭두서니 빛
앵혈을
매달고서
유월엔
홍보석으로
달거리를 시작한다
- ‘앵두’ 전문 -
한 모금 시린 물로 어리석음 씻어내면
내 안에 고여 드는 맑고 깊은 옹달샘
뜨겁던 여름 한낮이
소리 없이 잠겨든다
- ‘옹달샘’ 부분 -
옹달샘의 맑고 찬 기운을 느끼는 순간, 마음 가다듬는 엄숙을 확인하고 있다면 앵두의 붉은 열매는 초경을 경험하였던 숫처녀의 정결로 돌아가는 순간을 맛보려 한다. 어느 것이나 탈 세속의 차원에서 자신을 돌아보려 한다. 자연의 자기화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인다.
짚어보면 겨운 삶도 한 모금 차가운 물
갈구하던 욕망마저 갈대마냥 흩어놓고
봄바람
잔잔한 물 속
얼굴 하나 떠 있다
- ‘금샘’ 부분 -
금샘은 부산시 금정구 향토문화재 1호로 금정산 정상에 있는 자연물이다. 큰 바위 위에 둘레 3m 깊이 20cm 정도로 파여져 물이 담겨 예부터 이를 금샘이라 일러왔다. 이 작품에서는 자연 속에서 타를 발견하고 타를 그리워하는 심상의 매개체(거울)로 자연이 등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금샘에 고인 물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어 주는 게 아니라 타의 얼굴을 환상 짓게 한다.
3)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직지사 요사채에 때죽나무 지켜섰다
하얀 꽃 별빛으로 발아래 수놓는데
그 위에 독경소리는 나비되어 앉는다
장삼도 무거워서 던져놓은 정토인가
뻐꾸기 능선 따라 골을 파며 우는 한낮
머리 위 내려앉은 꽃 법어되어 깨운다
- ‘때죽나무 꽃’ 전문 -
‘머리 위 내려앉은 꽃’은 꽃으로의 의미를 초월하여 부처님 말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시란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장치라는 말이 이래서 유효하다. 김 시인은 때죽나무 꽃 위에 앉은 나비도 스님이 외는 독경소리인양 하였다. 말하자면 나비는 의미의 암시체로서 인간을 깨우치는 존재로 현현한 것이다.
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시인들은 이미지의 변신을 동원하기도 한다. 나비의 율동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스님의 독경소리라는 소리결의 날림 곧 청각적 이미지로 바꿔치기를 한 것도 탁견이다. 김 시인의 시조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목을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이
가벼운가
무거운 갓을 쓰고
가부좌
무릎 위로
돌이끼
꽃이 핀다
범종은
해탈에 울어
다비하는 저녁놀
- ‘갓바위 부처님’ 전문 -
범종소리는 해탈의 신호음이고 붉게 타는 저녁놀은 이제 삶을 청산하는 스님의 다비장의 불빛으로 인지하고 있는 시심은 놀랍다.
여태 세 경우를 두고 김 시인의 자연 감상법 아니 자연 해석법을 구경하였다. 김 시인은 이렇게 다양하고 그마다 의미 있는 눈빛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Ⅲ
김 시인은 가족애가 남다른 시인으로 보인다. 그의 가족애는 주로 내 가족 중심의 사랑이 많지만 남의 가족에 대한 사랑에도 인색하지는 않다.(이 시조집엔 이런 경향의 작품도 더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인류애적 사랑으로 확대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 분위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해석은 경계된다.
열여섯 새 각시를 빈집에 홀로 둔 채
보던 책 밀쳐놓고 끓는 피 총에 감아
퍼붓는 물동이 포탄 그 속으로 뛰어들다
탱크와 자주포가
곡사포와 기관총이
마주보며 쏘아대는 승자 없는 불잉걸 속
밤마다 바뀌는 주인 유학산의 핏강이여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명命한 상관
그 앞에 몸을 던져 흩어지는 새파란 꿈
갓스물 볼 붉은 혼이 다부동에 살고 있다
- ‘아버지, 길을 가다’ 전문 -
다부동 전투는 한국전쟁 중 최후의 보루를 수호한 격전지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마을의 북서쪽 야산은 피로 물들여진 그야말로 피가 강을 이룬 장소다. 김 시인은 6월이 오면 격전지를 돌며 아버지의 영혼에 기도한다고 하니 그때 김 시인의 심경은 아버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목이 멜 것이다. 사실 김 시인의 아버지는 다부동 전투에서 돌아가신 건 아니고 다부동 전투 그 뒤 우리 국군이 북진하던 양구전투에서 돌아가셨다 한다. (이렇게 되면 물론 다부동 전투에도 아버지가 참전하신 결과가 된다.)
양구전투 역시 한국전쟁 중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해병대 제 1연대가 17일 동안 혈전 끝에 적의 요새를 함락한 도솔산 전투를 비롯하여 우리 국군이 9곳에서 혈전을 하여 탈환에 성공하여 북진의 활로를 연 곳이 아닌가.
시인은 현장을 너머 현장을 보는 투시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굳이 양구를 찾지 않아도 (다부동을 찾았다 해도) 그들의 심상은 양구 이상이고 다부동 이상일 때가 많다. 이걸 두고 심리학에서는 착시환상이란 말을 붙이지만 김 시인이 다부동 전투장소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의 영혼을 그리는 고난의 길을 걸어갔음을 의미하므로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의 심정은 무거우리라.
그는 냉정한 시인이다. 위 시조에서 보듯이 일체의 감정의 범람을 용서하지 않고 아버지의 최후 그 순간을 참을성 있게 바라보는 침착한 시인이다. 현실의 비통을 통곡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적 효과가 증대된다는 이치를 김 시인은 잘 알고 이러는 것일까.
가족은 일단 혼인이나 혈연으로 또는 입양의 유대로 이룩된 사회다. 그러므로 가족의 기능은 성적욕구 충족의 기능, 애정의 기능, 우정의 기능, 생식의 기능, 경제적 기능(생산 구매 소비), 교육의 기능, 보호의 기능, 휴식의 기능, 오락의 기능, 종교적 기능 등을 향유할 수 있는 공유 집단이 가족인 셈이다.
아버님 잠든 땅에 그 나무 옮겨 심고
촘촘한 별빛 아래 축원으로 합장한 손
은핫물 넘치는 소리 볼을 타고 흐른다
- ‘산으로 간 감나무’ 부분 -
감나무는 생전의 시아버지가 심어놓았던 표적의 나무였으며 두고 온 고향집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시아버지는 친아버지 빈자리를 메워주신 분이며 친아버지에게서 못 받은 사랑을 대신해서 베풀어주신 분이기 때문에 남다른 애정으로 모시고 싶었을 것은 분명하다. 시아버지가 가꾼 그 나무를 산소 옆에 옮겨 심음으로 해서 비록 몸은 죽어 땅에 묻혔다 해도 생전에 애착하였던 나무를 이웃으로 벗으로 챙겨주고 싶은 마음, 생시처럼 삶을 몽상하도록 꾸며주는 그래서 위무의 그늘로 시아버지를 지켜줄 것을 기원하고 당부하는 효심이 눈물겹다.
한편, 아버지의 부재는 가족사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이것의 균형을 위해 어머니의 몫은 과부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 시인은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여러 편 보여준다.
한 바가지 부은 물로 땅속 샘물 끌어올려
철부지 마중물 된 엄마의 펌프질이
정수리 흘러내리는 사랑으로 솟았다
- ‘마중물’ 부분 -
칼바람 막아주는 어머니 등에 기대
논두렁 달려가던 울퉁불퉁 자전거길
콧노래 입김에 닿아 무지개는 피었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조건 달리라던
쟁쟁한 그 말씀이 바람으로 나를 키워
쉼터서 숨을 고른 뒤 페달 밟아 왔었다
- ‘자전거를 타고’ 전문 -
앞의 것은 주위환경의 보호막으로서의 모정을 읊었다면 뒤의 것은 어머니의 훈육을 받아 오늘까지 꿋꿋이 살아온 바를 읊었다. 어느 것이나 아버지 대신의 보호막이요 사랑이요 훈육으로서의 모정이 잘 나타나 있다.
병풍을 밀쳐놓고 홑이불 걷어내자
어머니 머뭇머뭇 내생을 가고 있다
아직도 못 내린 짐 있어 반눈 뜨고 나를 본다
남루를 벗겨내고 골고루 닦는 몸에
이생이 지고 있다
달무리 피고 있다
젖꽃판, 갈비뼈 위에 낙화인을 찍는다
다섯 살 다 되도록 이 젖 물고 자랐다고
앞섶을 헤쳐보이며 빙그레 웃으시던
몽환 속 이어간 말씀, 꽃숭어리 벙근다
- ‘젖꽃판’ 전문 -
홀어머니의 외딸 사랑을 신은 시기하였을까. 김 시인은 어머니를 또 일찍 여의고 만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두기에는 어깨가 무거웠으리라. ‘아직도 못 내린 짐 있어 반눈 뜨고’ 딸을 보는 어머니의 몸을 골고루 닦는 김 시인의 눈물이 보인다. 지고 있는 이생의 꽃잎이 ‘갈비뼈 위의 젖꽃판’이 되어 꽃도장을 찍고 있다고 담담히 그리고 있다. 감정의 범람 없는 냉정함이 여기에도 보인다.
양수를 터뜨리며 시작된 홀로서기
이 터전 박차고 나선 출발의 시간 앞에
갈구渴求의 발버둥으로 바람처럼 울었다
내 품 떠나 날아오른 창공의 한 마리 새
활짝 편 날개 아래 별 하나 품고 있다
쇠로도 자를 수 없는 핏물 적셔 엮은 인연
- ‘탯줄’ 전문 -
김 시인의 출생이 어머니의 양수를 터뜨리는 데서 출발하였듯이 이런 절차를 거친 딸이 이젠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식의 출생을 잉태하는 핏줄의 역사를 나타낸 작품이다. 모정의 내리 닮음을 탯줄의 이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 시인의 작품 속에는 가족애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죽어 한 필부의 젓대로나 태어나리
노래로 한세상을 달래어 살다가도
그리움 지는 달밤엔 가슴으로 울리라
그 다음 생 또 있다면 빗자루로 태어나리
티끌 먼지 쓸어내어 이 세상을 맑히다가
해 지면 거꾸로 서서 면벽수행 하리라
화살이나 죽창은 내 뜻이 아닌 것을
속 비워 어깨 서로 기대며 다독이다
생애에 단 한 번 꽃으로 경전 피워 보리라
- ‘대[竹]의 기원’ 전문 -
시를 쓴다는 것은 하나의 자기 수행과정이라 볼 수 있다. 작중 화자는 대나무가 되어 말을 하고 있다. ‘죽어서 한 필부의 젓대’가 되어 ‘노래로 한 세상을 달래어 살다가도’, ‘그리움 지는 달밤엔 가슴으로 울리라’고. 홀로 이 세상을 헤쳐 오면서 울고 싶은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그 다음 생 또 있다면 빗자루고 내어나’서 ‘티끌 먼지 쓸어내어 이 세상을 맑히’겠다고 내면을 담금질하고 있다. 또한 ‘화살이나 죽창은 내 뜻이 아니’라고 단호한 의지를 나타낸다. 마음 속 깊이 끓어오르는 시심을 헹구고 또 헹구는 모습이 보인다.
이상 김 시인의 시조 속을 관류하는 정신세계의 대충을 훑어보았다. 앞서 밝힌 것 외에도 사회를 투시하는 시적 태도며 소외된 삶을 또 동물에 대한 사랑을 읊은 작품들도 여럿 있지만 지면관계상 설명을 줄인다.
김덕남 시인의 시조를 한 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그것은 사랑을 품은 보석들이면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애써 배우려 하고 실천하려고 하는 시조로 짜여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조가 서정 위주로 흐르면 감칠맛이 없고 의미에 중심을 두면 정서가 약해져 시조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 김덕남 시인의 시조는 이 양자를 조화롭게 조정하여 시조를 차원 높게 만들었으므로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나아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