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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남 시조집 작품해설
자성自性의 재발견, 혹은 물음의 시
민병도(시인, 국제시조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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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용가치와는 상관없이 시를 쓰는 이유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우선되는 부류는 자기만족을 위한 표현행위로서의 시작詩作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환경을 만들면서 그 질서에 길들여져 왔다. 따라서 둘 이상의 상대가 있을 때에는 소리나 행동, 또는 언어를 통한 표현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방어적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혼자일 경우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 부르기, 문자를 빌린 감정의 기록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자기표현을 하게 된다. 이 경우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일관된 의사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의 지향점이나 현재의 심상이 보다 진솔하게 표현될 수가 있다.
그 다음 생각할 수 있는 한 갈래는 남에게 읽히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상대에게 자극이나 영향을 끼칠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설사 자신이 가진 생각과 다를지라도 공익적인 가치, 재단되고 규격화된 질서가 나열되기 마련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첫 번째 목적과 두 번째 목적이 혼합된 경우인데 자신을 표현하면서도 남들과의 소통을 아우르는 절충형이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과 같은 지식정보화시대에서는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자기주장만으로는 관심을 이끌어 낼 수가 없다. 따라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표현 속에서 보편적 진실을 찾고 공익적 가치를 검증하며 속발성 두통약 같은 처방을 공여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세 가지 경우마다 장단점이 있고 시의성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감정표현에만 충실하면 보편적 질서를 놓치기 십상이고 독자 어필한 작품들만 쓰다보면 예술성과 미학을 외면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많은 경우 절충형을 취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신을 찾아 가치관을 확립해야 하고 독자들의 정신을 이끌어야 할 시대미학을 확보해야 하고 민족의 미의식을 찾아 궤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단 10년에 제3 시조집 『거울 속 남자』를 묶은 김덕남 시인의 경우도 바로 제3의 절충형 시 작업으로 읽혀진다. 많은 작품들이 자신의 체험에서 확보한 시적 동기에다 사회적 질서라는 잣대로 눈금이나 기울기를 재고 있기 때문이다. 첫 시조집에서부터 일관되게 보여준 가족에 대한 사랑, 자신의 배경이 되고 있는 지역과 현실에 대한 검증도 그 같은 보법을 말해주고 있다.
게다가 김덕남에게는 창작의 결과물인 시집이 말해주듯이 등단 10년에 선집을 제외하고도 3권의 창작 시집을 상재하는 집요하고도 남다른 열정이 있다. 시조에 대한 믿음 앞에 연치 따위는 그에게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이번 시조집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의 소재를 찾아 그는 많은 역사적 현장을 찾아다녔고 시대의식을 가늠하기 위한 모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발로 뛰는 열정은 결국 잠재된 자아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시간을 대비하기 위한 창조적 수단이 되고 있다.
2
김덕남이 자아의 발견으로 가장 엄중하게 선택한 소재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아준 모태이자 현재의 자신을 에둘러 볼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첫 시조집에서의 「젖꽃판」도 그렇고 두 번째 시조집의 「흙의 길」이나 「모지랑숟가락」에서도 이미 어머니와 자신이 그리움이라는 공통분모로 자리매김 된 바 있었다. 시시각각 어머니의 나이를 만나면서 자꾸만 지워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자신의 근원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이기도 하다.
젖내 문득 그리운 날 위양못 찾아간다
물속 하늘 날아가도 젖지 않는 백로 날개
높아서 더 깊어지는 새의 길이 보인다
신음도 진통제도 흘려보낸 못물 아래
푸드덕 깃을 치며 손 흔드는 고운 엄마
낮아서 더 넓어지는 물의 길을 읽는다
-「위양못」 전문
‘어머니’로 상징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독자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어머니와 관련된 특별한 기억을 지녔음직한 ‘위양못’을 반추상적으로 그려낸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그런데 거기를 찾아가는 까닭은 “젖내 문득 그리운 날”이기 때문이다. 왜 오늘의 지위나 명예나 이름보다 자신의 보다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일까. 그것은 세파에 찢긴 상처라던가 현실적인 불만에서라기보다 어머니라는 자애롭고 푸근하고 큰 보호자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실제로 “신음도 진통제도 흘려보낸 못물 아래/ 푸드덕 깃을 치며 손 흔드는 고운 엄마”를 만난다. 신음도 진통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엄마의 길이 언제나 “낮아서 더 넓어지는 물의 길”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물속 하늘 날아가도 젖지 않는 백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높아서 더 깊어지는 새의 길”을 가듯 살아온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맑고 어렴풋한 이미지를 이끌어낸 사색의 깊이와 절제된 감정처리가 돋보인다.
엄마의 엉덩이에 멍울진 몰핀 무늬
숨 끊는 통증 앞에 급히 찌른 하얀 수액
떨리는 내 손 껴안고
붉은 꽃잎 뚝뚝 진다
-「개양귀비꽃」 전문
이 작품 역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개양귀비꽃에서 되살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시의 구성은 개양귀비꽃을 보다가 “엄마의 엉덩이에 멍울진 몰핀 무늬”를 떠올리게 된다. 딸로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래야 “숨 끊는 통증 앞에 급히 찌른 하얀 수액”주사가 전부라니 얼마나 비통한 노릇인가. “떨리는 내 손 껴안”는 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결국 자연의 섭리 앞에서 “뚝뚝”지는 “붉은 꽃잎”과 하나가 된다. 종장의 “떨리는 내 손 껴안고/ 붉은 꽃잎 뚝뚝 진다”는 역설이다. 화자인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정작 어머니인 붉은 꽃잎은 “뚝뚝” 지고 있으니 말이다. 진행형으로 종결하였다. 이 같은 일이 이것 하나로 끝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어머니의 이미지는 다음 「쪽동백」에서도 나타나 있다.
모시적삼 쪽찐 머리
물동이 이고 온다
찰랑찰랑 넘친 물을
한 손으로 흩뿌리며
똬리 끈
살짝 문 당신
앞섶자락 젖는다
-「쪽동백」 전문
‘쪽동백’은 때죽나뭇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늦은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흰색 꽃이 피는 식물이다. 시인은 지금 향기가 고운 하얀빛의 꽃에서 “모시적삼 쪽찐 머리”로 “물동이를 이고” 오는 어머니를 만나고 있다. 어머니는 동네 우물에서 “찰랑찰랑 넘친 물을/ 한 손으로 흩뿌리며” “똬리 끈/ 살짝 문”채 “앞섶자락 젖는”줄도 모른 채 종종걸음을 옮기신다. 6, 70년대의 시골정경을 옮겨놓은 듯한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그림이다.
잊힌 기억에서 불러온 듯한 이러한 묘사에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다만 어머니와 관련된 작은 이미지 하나에도 사무치는 그리움을 실어서 놓쳐버린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첫 시조집 작품해설에서 밝혀놓았듯이 일찍 아버지를 조국에 바친 김덕남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각별하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어쩌면 분신과도 같았던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심정이야 오죽하였으랴. 다만 여기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다가올 미래의 경계선에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함으로써 다가올 미래에 대한 다짐을 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소재로 쓴 작품은 아니지만 또 다른 모성애가 드러난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아가야, 저 하늘의 별빛마저 글썽인다
신이 준 숨소리를 너울 속에 묻어놓고
퉁퉁 분 젖무덤 틈으로 헛젖이 새고 있다
자맥질 공중제비 너와 함께 하려던 꿈
빙벽에 부딪히다 거품으로 밀려온다
슬픔의 바깥쪽으로 너를 가만 보낸다
- 「슬픈 여행」 전문
주에서 밝혔듯이 숨진 새끼를 자신의 콧등에 올려놓은 범고래가 보름 동안이나 바다를 헤매고 있는 2018년 8월 어느 날의 텔레비전 뉴스를 근거로 쓴 「슬픈 여행」 전문이다. 화자는 지금 숨진 새끼를 차마 보내지 못하는 어미고래가 된다. 그리고 보름씩이나 콧등에 올려놓고 바다를 헤매고 다니는 고래보다 더 오래 연민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도 생명성의 근원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작품은 굳이 표현이 개성적인가, 격조 높은 완성도를 지녔는가 하는 물음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다. 전달되는 메시지만으로도 글쓴이의 심경을 느낄 수 있고 품성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마음에는 사랑과 근심과 걱정과 희망이 무한정으로 저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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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의 모든 작품의 시작은 어머니의 마음에서 비롯되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 어머니의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요소는 사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의 본질을 실천하는 행위의 가변성 또한 당연하다는 점이다.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봄비도 사랑이요, 강을 범람시키는 폭우도 자정을 유지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같은 물이라도 마른 목을 축여주기도 하지만 생명을 썩게도 한다. 같은 불이라도 언 손을 녹여주는 따스한 이미지도 있고 활활 태워서 소멸에 이르게 하는 불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각기 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 같은 사랑의 보다 적극적인 방편으로 김덕남이 선택한 장소 가운데 하나가 지나간 시간의 현장에서의 성찰이다.
한 시대 몸을 던져 어둠을 걷어내듯
시퍼렇게 날이 선 심지 하나 품은 채
알알이 뛰어내리는 사초 속의 등불이다
깃털 같은 목숨에도 가슴은 천근만근
감싸 맸던 울음 풀면 어느 강에 넘치려나
금이 간 밑동을 뚫고 벼린 붓이 솟는다
붉은 획 내리그은 절명시가 저러할까
한목숨 뒤흔드는 외곬의 바람 앞에
파란도 만장도 아닌 결기 하나 꽂는다
-「자계서원 은행나무」 전문
주에서 밝힌 대로 자계서원은 경북 청도에 있는 서원으로 무오사화로 극형을 당한 탁영濯纓 김일손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자계紫溪는 무오사화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 채 흘렀다는 데서 유래하여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짓고 현종조에 가서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시인은 지금 자계서원에서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다는 구실로 훈구파에 참형을 당한 김일손 선생을 만나고 있다. 게다가 탁영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서서 “한 시대 몸을 던져 어둠을 걷어내듯/ 시퍼렇게 날이 선 심지 하나 품은 채/ 알알이 뛰어내리는 사초 속의 등불”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금이 간 밑동을 뚫고 벼린 붓”으로 솟아오르는 정의와 진실의 의미를 되새긴다. 스승이 말하는 진실과 그것을 사초에 남기는 것이 식자의 필연적인 책무라는 소신 앞에 비겁하지 않으려고 감행한 행동이 죽음에 이르는 죄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또 그것을 빌미로 정적을 제거하고 움켜쥔 권력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에 쓰였던가.
오랜 시간의 사색 끝에 화자가 내린 결론은 한 그루 은행나무로 서서 “붉은 획 내리 그은 절명시”처럼 “결기 하나” 품었다가 그가 사랑한 이 땅에 꽂고 있는 사실의 전달이다. 은행나무를 읽은 시인의 분노와 안타까움이 행간 가득 스민 작품이다.
멧비둘기 애끓어도 꽃길은 말이 없다
눈썹이 지워지니 뿌리조차 돌아선 길
꽃대궁 높이 올려서 달을 맞고 싶었는데
끌려온 수술대 위 손발이 묶였구나
생잡이 칼날 아래 하얗게 질린 동공
달 한쪽 잘려나가네
꽃스물이 찢기네
가랑이 사이에선 핏물보다 진한 눈물
홈통을 타고 내려 섬 하나가 다 젖는다
달맞이 낮달맞이꽃 저 혼자서 여위네
-「낮달맞이꽃」 전문
‘소록도 단종대斷種臺를 보며’ 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숨기고 싶은 역사읽기의 현장시이다.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의 끝에서 보이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국립소록도병원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이 섬에는 1936년부터 3년에 걸쳐 강제 동원된 환자들에 의해 조성된 6천 평 규모의 중앙공원이 있는데 지금도 공원 안에는 그들이 직접 가꾼 갖가지 모양의 수목들이 남아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바로 이 공원 입구에는 일제 때의 원장이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예외 없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단종대가 있다. 한센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한 일본인들은 한센 환우들끼리 자녀를 낳지 못하게 결혼 전에 반드시 정관수술을 받도록 했던 것이다. 단종대로 끌려가면 가로질러 놓은 나무에 못을 박은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마취도 없이 생살을 찢어 남자를 단종시켰다고 한다.
화자는 지금 이 땅의 어머니로서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의 수많은 아들들을 생각하며 절통하고 애끓는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꽃대궁 높이 올려서 달을 맞고 싶었”던 조선의 꿈과 “끌려온 수술대 위 손발이 묶”인 채 “생잡이 칼날 아래 하얗게 질린 동공” 앞에서 애써 울분을 삼킨다. 하지만 겉으로 통곡한다거나 격분하는 대신 스스로 역사의 진실에 손을 얹고 위로와 용서의 기회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화자로서는 다만 “가랑이 사이에선 핏물보다 진한 눈물/ 홈통을 타고 내려 섬 하나가 다 젖는” 시간 “낮달맞이꽃 저 혼자서 여위”는 현장을 전하면서 독자들에게 순리와 이치를 위탁할 따름이다.
그림자 나를 따라 해시계를 도는 사이
남천의 물결 위로 한세상 흘러간다
전생의 약속이었나, 꿈꾸듯이 오시던
풍덩 빠진 그 사랑에 나도 그만 첨벙했네
팽팽한 현을 골라 아들 하나 낳고 싶던
월정교 난간대 위로 달이 뜨는 저 소리
손가락 끝 보지마라, 달을 보라 이르시던
시간을 질러가도 가는 길 아득하여
휘영청 월성을 돌아 천년토록 걷는다
-「월정교를 걷다」 전문
이 작품은 원효 스님과 요석 공주와의 초월적 사랑에 대한 의미를 헤아리는 역사 현장에서의 사념이 중심이다.
삼국유사에는 원효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한시 몰부가沒斧歌가 있는데 그 내용은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나 / 나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깎으려네(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로 되어 있다. 이 노래를 퍼뜨림으로써 태종 무열왕의 귀에 들어가게 하고는 과부가 된 요석공주의 요석궁으로 가는 월정교에 빠져서 기어이 뜻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보낸 하룻밤으로 신라 최고의 대학자 설총의 탄생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신분은 스님이었다. 정법의 입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거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의상과 함께 오른 당나라 유학길에서 소위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로 대각大覺을 이루고 신라로 돌아온 뒤였기에 세상의 비웃음 따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귀족들의 불교를 민중의 불교로 만드는 필생의 노력을 보였던 것이다.
일심一心과 화쟁和諍과 무애無碍의 실천수행자 원효의 의도된 실족과 요석공주와의 만남을 이끌어낸 월정교를 걸으면서 시인은 지금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실천사이에 가로 놓인 수행의 최종 목적지를 가늠해 보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통찰로 점철된 한 구도자의 선택이 남기고 간 물음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같은 맥락의 역사현장이면서 전혀 다른 시적동기와 메시지를 지닌 다음과 같은 작품도 있다.
아슬한 바위에서 남자가 웃고 있다
과거의 빛을 따라 본처가 웃고 있다
미래의 반가사유로 애첩이 웃고 있다
짱돌을 던질까말까 본처의 웃음 속에
볼우물 용용대는 애첩의 웃음 속에
좋은 게 다 좋으니라 그 남자의 웃음 속
-「서산마애삼존불 이야기」 전문
이 작품은 분명 충남 서산의 국보 제84호 마애삼존불을 소재로 하고 있다. 소위 ‘백제의 미소’라고 불릴 정도로 단아하고 기품 있는 미소와 온화하면서도 유연한 조각미가 돋보이는 백제의 불상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존인 석가여래와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좌우 협시로 앉힌 제작의 의의나 목적과 아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주존인 남자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제화갈라보살이 본처로 치환되어 웃고 미륵보살이 애첩으로 웃고 있다니 상식적으로는 여간 불경스러운 설정이 아니다. 제화갈라보살이 누구던가. 과거세에 부처가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머리카락을 진흙길에 깔아 발에 흙이 묻지 않게 지나가도록 하고 연꽃으로 공양했다던 과거불 가운데 하나인 연등불이 아니던가. 제화갈라보살은 바로 그 연등불이 부처가 되기 전 수행자의 다른 이름이다. 미륵보살은 또 어떤 존재인가. 이미 부처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미래 세계에 현신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서원한 미래불의 상징이다. 이들이 여기서는 서로 탐탁지 못한 인연의 사슬에 묶인 본처와 애첩으로 분한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여기서 기묘한 해답을 발견한다. ‘분별지를 가지지 말라’는 부처의 가르침대로 ‘개시개비皆是皆非’의 실천이다. “짱돌을 던질까말까 본처의 웃음”도 “볼우물 용용대는 애첩의 웃음”도 이미 다 꿰뚫어 보고 있음이니 그저 “ 좋은 게 다 좋으니라”고 환하게 웃는 남자의 모습이야말로 부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하기야 불상이니 마애불이니 하고 조성하는 목적이 불성을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요 방편임을 생각하면 그 해석은 보는 이의 뜻이다. 역설에 숨겨놓은 김덕남의 믿음의 깊이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한을 그린 「모자를 벗다」, 조선 건국을 반대하고 두문동에 은거한 고려 유신 72명이 마을에 불을 질러도 나오지 않고 모두 타 죽은 충절을 그린 「돌강」 등 김덕남의 남다른 역사읽기가 이번 시조집의 또 다른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4
이번 김덕남 시조집의 또 하나 관심을 끄는 주제는 삶의 희망과 현실적 한계에 대한 고민과 진단적 접근이다. 지금의 시대는 산업화를 통한 고속성장이 진행되면서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느끼는 구성원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소위 문명의 이기라고 치부되는 다양한 병폐들로 21세기의 생존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평등과 기회의 균등을 주장하지만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일을 하였음에도 그 평가와 보상은 천차만별이다. 남녀 간에 다르고 직종 간에 다르고 지역 간에 다르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또한 그만큼 만연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좀처럼 개선하기 어려운 이러한 실증을 본인들도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기회와 넘쳐나는 정보를 통한 비교가 이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김덕남이 관찰한 산업의 변동성에 따른 해고와 대량 실직, 시대적 가변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직업적 선택, 무리한 욕망과 난개발에 따른 자연재해, 보호받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 그 혼란의 격랑 가운데 「거울 속 남자」도 섞여 있다.
병목을 거머쥐고 그네가 들썩인다
날 수도 내릴 수도 외줄은 길이 없어
명치 끝 시린 절망을 바닥에다 쏟는다
말끔한 출근길에 인사도 깔끔하던
간간이 휘파람도 승강기를 타고 내려
거울 속 마주친 눈길 목련처럼 환했다
실직일까 실연일까 등이라도 쓸어줄 걸
맥없이 주저앉은 무릎 저린 시간 앞에
연초록 바람 한 잎이 어깨 위를 감싼다
-「거울 속 남자」 전문
이번 시조집의 표제작이다. 아마도 이즈음 김덕남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실직이라는 상황이 강하게 각인된 탓이리라 여겨진다. 정년으로 퇴직할 때까지 직장인으로 살아온 그였기에 “맥없이 주저앉아” “병목을 거머쥐고” “들썩”이는 “그네”가 남달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네”가 이 땅의 내일을 짊어지고 나갈 에너지의 발원지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한 때는 “말끔한 출근길에 인사도 깔끔하던/ 거울 속 마주친 눈길”이 “목련처럼 환했”던 조국의 젊음이 아니었던가. “간간이 휘파람도” 불면서 함께 “승강기를 타고 내”리던 “그네”였기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상심해 하고 있다. “실직일까 실연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등이라도 쓸어줄 걸”하는 저어함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힘겨운 시련이라도 딛고 일어서는데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으로만 박수하고 응원의 몸짓을 취할 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것은 “그네”의 무안함에 대한 작은 배려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김덕남은 자연을 통한 순리의 처방을 선택한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맥없이 주저앉은 무릎 저린 시간 앞에/ 연초록 바람 한 잎이 어깨 위를 감”싸는 것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자정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격한 격려나 허접스러운 눈물보다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정능력과 그 힘을 부여한 자연의 기운을 통해 스스로 일어서게 하고자 하는 김덕남 식의 사랑법인 것이다.
진보나 보수 따윈
밥그릇이 아니다
컵라면 면발 위로
추락하는 빗방울들
바닥을
허우적이다
끼니가
새고 있다
-「재하청」 전문
‘재하청’이란 원청업체로부터 하청 받은 일을 다시 다른 업체에게 하청을 주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물론 자본경제의 논리로 보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익이 실현되는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 문제는 자신이 일을 하겠다고 계약을 한 사업임에도 약간의 이익을 공제하고 다시 거듭되는 하청의 수순을 밟아가다 보면 품질이 불량해지거나 노무자들의 임금이 줄어들 개연성이 그만큼 커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직종에 관계하지도 않은 시인으로서는 지극히 생소한 단어임에도 아예 제목으로 올렸다. 이런 행위에 대한 부당함을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짧은 단시조지만 어조 또한 비교적 강하다. 초장부터 “진보나 보수 따윈/ 밥그릇이 아니다”라는 말로 여유로운 사람들의 이념논쟁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밥그릇”이 상징하는 생존의 절박함을 전제하고 있다. 재하청 받아서 현장에 투입된 인력들은 비교적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간에 쫒기고 돈을 걱정하다보면 공사현장에서는 “추락하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먹는 “컵라면” 식사가 다반사다.
사실 사회를 구성하고 정부를 조직하는 일은 구성원들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다. 그러한 공익을 위하여 일정한 질서를 만들고 조직원들의 합의를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실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나 규범적 프레임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 악용의 사례 가운데는 「재하청」이 포함된다. 재하청 노동자들은 “바닥을/ 허우적이”는 일상을 지속하지만 ‘재하청’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끼니가/ 새고 있는” 현장을 벗어날 수가 없다.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울림이 큰 시사고발성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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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의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원초적 사랑과 반성적 역사읽기, 소외받는 이웃들에 대한 연민 이외에도 자아실현을 향한 자신의 실천행동이 다양하게 행간을 장식하고 있다.
천방지축 뿌려놓은 명함이 궁금하다
누군가 밟고 간 뒤 어디로 쓸렸을까
명함 속 이름 부르며 상류 찾아 나선다
텅 비운 두 손으로 얼룩을 씻어본다
문질러 헹굴수록 자모字母만 헝클린 채
그토록 닿고자 했던 나의 상류는 없었다
-「이름을 씻다」 전문
사회적 교류기회가 빈번한 오늘날이고 보면 자신을 알리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이름쪽지를 만들어 다닌다. 이름 하여 ‘명함’이 되겠는데 여기에는 이름과 연락처와 직업 따위를 기록하여 상대에게 각인시킬 도안이나 방점을 부가하기도 한다. 지금 이 작품에서는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뿌리고 다닌 명함의 이름을 세탁물로 삼았다. 자신의 이름 알리기 수단으로 자신이 만들어서 건네준 명함에 대해 자해성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은 개인의 독자성을 부여하고 개인을 대변하며 개인을 상징하기 마련이다. 그 이름쪽지인 명함을 남에게 권한다는 것은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띤다. 다분히 욕심이 개입된다. 그 욕심이 과할 때는 “천방지축 뿌려놓”기도 하였지만 지나와 생각해보면 그렇게 뿌려진 “명함이 궁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더러는 “누군가 밟고 간 뒤 어디로 쓸렸을” 것이고 어쩌다 한두 장은 명함꽂이에 꽂혀있을 것이다. 삶의 하류에 서서 그 “명함 속 이름 부르며 상류 찾아 나선” 것이다. 물론 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텅 비운 두 손으로 얼룩을 씻어” 보고 “문질러 헹굴수록 자모字母만 헝클린 채/ 그토록 닿고자 했던 나의 상류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늦었지만 부질없는 욕망으로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자 했던 지난날들을 이제는 씻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작품의 관점은 자기반성의 진정성을 고려해서 그 어떤 권유나 충고도 덧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자기반성을 통해서 더러는 이 시대에 필요한 주목할 기준치를 세우기도 하고 상대에 따라서는 원초적 고독의 속내를 내비치기도 한다.
아슬한 물방울이 암반에 홈을 파듯
적벽의 소나무가 바위를 쪼개내듯
결박된 봉두난발이 한 시대를 깨우듯
- 「협객을 기다리다」 전문
뾰족한
내 안을
두드리고 두드리다
물마루
딛고 선 듯
발 구르며 우는 뜻은
당신께
접안치 못한
치사량의
내 눈물
- 「몽돌」 전문
두 편 모두 단시조지만 메시지가 선명하다. 「협객을 기다리다」는 제목에서부터 내밀한 심중의 이중 포석을 겨냥한다. 그리고 그가 기다리는 ‘협객’을 “암반에 홈을 파”는 “아슬한 물방울”과 “바위를 조개는” “적벽의 소나무”로 특정하여 소신의 일단을 전제하였다. 그렇다면 그 같은 협객에게 기대하는 조처는 어떤 것인가. 바로 종장에서 밝힌 대로 “한 시대를 깨우”는 역할이다. 여기에는 그가 진단하는 현실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잠 속에서의 꿈결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하여 기다리던 협객이 와서 한 시대의 잠을 깨워주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를 깨우는 그 협객을 “결박된 봉두난발”로 규정한 표현이 가독성을 방해하지만 난삽한 시대상에 대한 비유로 바라봄직하다. 분명한 것은 김덕남의 가치관의 일단이다.
「몽돌」 또한 시인이 겨냥한 은유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시적 화자, 즉 김덕남은 수억만 년 시간의 흐름 위에서 긁히고 깨어지기를 수수만 번, “뾰족한/ 내 안을/ 두드리고 두드리다” 어느 강의 하류거나 바닷가에 떠밀려온 몽돌이다.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물살에 강약에 따라 “발 구르며 우는 뜻”이 있으니 “당신께/ 접안치 못한” 아쉬움과 숨길 수 없는 절망감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치사량의 내 눈물”과 견주어 놓았다. 다분히 ‘몽돌’에게서 숨겨온 자신의 감성적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뜨거운 가슴과 지나간 깊고 깊은 열정의 시간들.
‘몽돌’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무위無爲에 따른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행위는 전형적인 유위有爲의 모습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유위가 무위를 닮아갈 뿐 무위가 유위를 비교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몽돌이 지닌 무위의 시간보다 몽돌에게서 발견한 자신의 유위에 무게를 두었다.
6
김덕남의 제3 시조집 『거울 속의 남자』에는 이 밖에도 뜨거운 열정이 엿보이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일일이 언급하지 못하였다. 그의 시편들 속에는 오랫동안 표출해내지 못한 감성의 응어리들이 행간마다 자리 잡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그리움이 있고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있고 지역에 대한 긍지가 곧 그것이다. 그의 작품에 관한한 모성애를 지니면서도 사회의 정의를 재단하는 눈길은 일견 남성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소재를 달리하는 다양한 관심과 탐구정신은 다변화해 가는 시대의식과의 조우 앞에서 때로는 공감으로, 때로는 채찍으로 형이상적 해법을 찾는다. 자성을 찾고 초심을 지키기 위하여 모성애로 자리매김하고 자만하지 않으려고 역사에 길을 물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현실 앞에서는 비겁하지 않으려고 진실의 편에 섰다. 시적 경륜에 비추어보면 괄목할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남다른 열정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노독은 쌓이기 마련이고 명편의 탄생에는 사고의 거듭나기가 필요하다. 이제 남은 일은 자신의 체험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 넘치는 처방에 집중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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