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이영도 시조시인을 그리며
김덕남(시조시인)
8월 19일 비가 뿌리는데도 후덥지근하다. 덕포역 2번 출구에서 62번 버스를 타고 종점 신라대에서 내렸다. 숲속의 캠퍼스가 아늑하다. 방학이라 그런지 몇 명의 청춘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갈 뿐이다. 캠퍼스를 가로질러 곧장 백양산 갈맷길(임도)을 따라 걸었다. 백양산 테마 안내도가 길을 안내한다.
청룡암 오른쪽으로 ‘야생화길’에 들어섰다. 벌개미취, 비비추 군락 등이 있으나 철이 지나서인가 벌개미취 보라꽃 몇 송이가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첫 시비가 보였다. 오석에 새긴 글을 바위벽에다 붙여놓은 구르몽의 「낙엽」이다.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소리가”를 모래흙길을 밟으면서 두런두런 읊어본다. 빗길에 맨발로 걷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나이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우산 속에서 사상정 쉼터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웰빙 맨발 산책로’다. 바로 옆에 동그란 시조비가 눈에 띄었다. 이호우의 「살구꽃 핀 마을」이다. 빗물에 씻기면서도 방울방울 물을 머금고 있다. 검은 바탕에 새겨놓은 흰색과 노란색 글씨 위를 티슈로 밥상 닦듯이 닦아냈다. 묵은 시간의 땟국으로 티슈가 금세 새까맣게 변했다.
살구꽃 핀 마을
-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고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웅얼웅얼 읽어본다. 어릴 적 고향에 들어선 듯 환한 살구꽃이 눈에 어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며 반가이 맞이하던 일가친척, 친구들이 있는 고향이 눈앞에 삼삼하다. 당장이라고 달려가고픈.
시조시인 이호우(1912–1970)는 경북 청도에서 영양군수인 이종수의 차남으로 태어나 조부가 세운 의명학당에서 한학과 민족교육을 받고 밀양, 서울에서 공부하다 일본 동경 예술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신경쇠약과 위장병으로 귀국했다. 1936년 시조 「영춘송」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되고 그 후 시조 「달밤」이 문장지에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 남로당 도 간부라는 모략으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광섭 시인의 진언으로 무죄 석방되었다. 이후 시조 「바람벌」이 반공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으며, 매일신문 사설로 필화를 겪기도 했다. 불의에 항거한 자연 친화적인 민족시인이다. 시조집으로 『이호우시조집』, 오누이 시조집 중 『휴화산』이 있다. 시조의 수도라 일컫는 고향 청도에 오누이공원이 조성되고 시조비가 세워졌다. 청도군의 후원으로 매년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제와 수상자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잠깐 비가 멎으니 매미의 떼창이 자지러진다. 참다 참다 쏟아내는 매미 노래에 내 노래도 얹는다. 덩달아 맨발로 걷는 발길도 가볍다. 소월의 「진달래꽃」 김용호의 「가을동화」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가 징검다리처럼 이어진다. 드디어 내가 찾는 이영도의 「아지랑이」가 눈에 싹 들어온다.
아지랑이
- 이영도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춘삼월 아지랑이”가 사랑으로 피어나고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가 분분히 날고 있다. 팔랑팔랑 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기함으로써 장별 배행을 벗어나 회화성이 느껴진다. 내게 오는 사랑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장다리 밭의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오다 어루만지듯 이마에 내려앉았으면· · · .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1916-1976)는 이호우 시조시인의 누이로 부산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정운은 남성여고에 재직했으며 부산여자대학에도 출강하였다. 1956년부터 1967년 청마가 세상을 뜨는 해까지 11년간 부산에서 살았다.
부산시조시인협회에서는 2015년 국제신문 기자를 대동하고 임종찬 교수의 안내로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 구정문과 부산대 지하철 사이 단독주택 단지에서 정운의 자택인 애일당 터를 찾았다. 이날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기념물 설치, 정운 문학거리 조성 등 시인의 문학, 예술 콘텐츠 발굴과 정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지자체와 협력사업으로 추진하여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현장 답사하였으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도 발 벗고 나서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웰빙 맨발 산책로’인 힐링 황톳길이 끝나는 곳에 세족장이 있다. 여기에서 발도 씻고 마음도 씻었다. 발바닥 자극으로 신발 밑 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시가 있는 지혜의 숲길’에 들어섰다.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천상병의 「강물」 류시화의 「물안개」를 지나 한하운의 「보리피리」 이해인의 「산에서 큰다」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을 훑어보다 이호우의 「달밤」에 눈이 꽂힌다. 다른 시비들에겐 미안하지만 「달밤」을 티슈로 닦기 시작했다.
달밤
-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뭇별이 숨어버린 달 밝은 밤이 오면 이 길을 다시 걸으리라 생각하며 「달밤」을 읊어보았다. 혼탁한 내 마음이 달빛처럼 맑고 고요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라고 합장하며 기도하는 시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눈으로 읽고 ‘왕벚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소월의 「못잊어」와 목월의 「사월의 노래」를 지날 땐 구음으로 흥얼거려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언덕 위에 주례정이 보인다. 주례정 주변으로 신경림의 「갈대」 소월의 「개여울」 아까 본 이영도의 「아지랑이」가 여기에도 있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보물찾기에 성공한 소풍 때의 기분이다. 주례정 마루의 빗물을 누군가 깨끗이 닦아놓았다. 잠시 누워본다. 정자 바깥은 여전히 빗소리다.
이튿날, 또 하나의 이영도 시조비를 만나러 금강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정문에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올라가다 첫 번째 모서리 숲길에 있는 이영도 시조비를 만날 수 있었다. 몇 번 와본 곳이라 쉽게 찾았다. 시조비 바닥엔 묵은 깔비가 잔디밭처럼 깔려있다. 걸레로 훔치듯 쓸어냈다. 다만 물이 없어 씻어내지 못한 게 아쉽다. 찬찬히 앞뒤를 살펴보았다. 화강암으로 된 시비의 앞면엔 ‘이영도 詩碑’라는 시비명과 함께 세 겹의 파도, 네 점의 뭉게구름, 두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다. 그 사이에 시조 「단란」 「석류」 「모란」 3편이 음각되어 있다. 뒤편엔 1996년 부산시와 부산문인협회가 건립, 조영조가 글씨를, 정희욱 조각가가 제작하고 김상훈 시조시인이 비문을 썼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단란
- 이영도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한 듯 둘렸다
석류
- 이영도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 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정(秋睛)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모란
- 이영도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흩는다
아예 시조비 기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란」을 쓸 당시 정운은 20대였으리라. 모녀의 단란한 저녁 한때가 그림처럼 정겹다. 딸에 대한 사랑으로 단둘이 생활하는 심사를 서정성 있게 그렸다. 「석류」에서는 참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사랑을, 「모란」에서는 정인을 보내고 난 뒤의 그리움을 담았다. 청마를 향한 하염없는 사랑시로 보인다. 시조집으로 『청저집』, 수필집으로 『춘근집』 등이 있다. 산책을 겸한 이틀간의 발품이 이리 뿌듯할 수가 없다.
김덕남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올해의시조집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 《문학도시》 2023.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