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 워리~
김 덕 남
텃밭의 잡초를 뽑고 있는데 웬 누렁이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밭둑을 어슬렁거린다.
살이 빠져 갈비뼈가 다 드러나고 눈알이 움푹한 것을 보니 허기를 못 면한 것 같다. 불쌍한 마음에 먹던 음식을 조금 떼어줬더니만 새끼는 허겁지겁 먹는데 어미는 그 옆을 지키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텃밭에 갈 때마다 주위를 돌다 사라지곤 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산길을 따라가고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았는지 집에서 가출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몰골을 봐서 집 떠난 지가 오래된 것 같다. 아예 개 밥그릇을 하나 장만하고 갈 때마다 먹이를 준비해 갔다. 어쩌다 회식이 있는 날은 다른 사람의 식탁 것까지 먹이를 쓸어왔다. 그것도 생명이라고 밭에 가는 날은 먼저 누렁이가 궁금하다. 먹이를 두고 멀찌감치 피해야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먹고 간다.
새끼는 약간 살이 오른 것 같은데 어미는 여전이 비쩍 마른 것이 백군지 누렁인지 구분이 안 간다. 키워볼 요량으로 새끼를 농막의 기둥에 묶어놓았다. 새끼만 잡아놓으면 어미는 저절로 옆에 붙어 있을 테니까.
그 다음 날 음식을 준비하여 서둘러 갔는데 목줄만 덩그라니 남아있고 새끼는 간 데가 없다. 산짐승이 물어갔나.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이 풀어갔나.
아, 인연이 아닌가보다. 잊어버리자. 그런데 어미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분주히 설쳐대는 걸 보니 새끼를 찾는 것 같다. 워리 워리~ 불러도 경계만 한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한 보름 보이지 않더니만 그 누렁이가 목에 감긴 철사를 질질 끌면서 기진한 상태로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먹이를 주고 멀리서 지켜보니 도망가지 않고 잘 먹는다. 그런데 가까이 와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모가지를 파고든 철사 주변은 홀라당 벗겨져 피고름이 흘러 털을 적시고 있다.
아, 올가미에 걸렸구나. 세상의 올가미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올가미를 벗어나려 몇날 며칠을 몸부림을 쳤을 테니 모가지의 뼈가 남아 있는 것이 가상하다. 혁대를 감은 것처럼 모가지의 살이 빙 둘러가며 벗겨지고 철사는 아예 살 속에 자리 잡았다. 미안하다. 누렁아, 어쩐지 며칠 동안 산에서 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누렁이 네가 걸린 줄 어떻게 알았겠나.
용서하게 / 김덕남
산과 들 헤매었나 갈비뼈가 드러났네
올가미 파고들어 피로 물든 모가지
뒷발을 끌어당기며 엎어질 듯 길을 미네
한사코 뼈를 세워 목줄의 주인 찾는가
눈곱 낀 눈동자로 농막을 기웃하다
긴 유랑 돌아서는가 무릎 꺾는 누렁이
오, 저런! 걸렸구나 내가 놓은 올가미에
세상을 맑혀보려 시도 쓰고 비질도 했건만
디딘 곳 허방다리네
벼랑을 부여잡네
얼른 펜치로 철사를 자르고 조심조심 철사를 빼냈다. 마침 연고가 있기에 있는 대로 짜서 모가지 둘레를 발라 주었다. 저렇게 목을 빼고 있으니 정신을 차리려나. 그래도 밥은 먹으니 다행이다. 밥을 먹고는 절룩절룩 뒤돌아보며 간다. 그 다음 매일이다시피 누렁이의 안부를 보러 밭에 갔다. 언제 들렀는지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담아 놓은 밥그릇은 비워져 있다. 인기척을 찾아 농막 가까이 왔다가는 사람이 가까이 간다는 느낌을 받으면 얼른 모습을 감춘다.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것이다. 워리 워리 ~ 어디 있노?
김덕남(6·25전쟁 유족이며, 시조시인.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최근 시조집 『젖꽃판』을 펴냈다.)
- 〈나라사랑신문〉 2014. 3. 1. (국가보훈처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