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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을 살자
성경 본문 : 창세기 37장1절-11절
설교 자 : 박 한 서 목사 <2022년 10월16일 주일 오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최고의 삶”이란 책을 읽는 중에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라는 글을 읽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 글을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무실에 특이한 액자를 걸어 놓고 일하는 경영자가 있습니다.
그 액자에는 해변에 좌초된 커다란 배의 그림이 있습니다.
두 개의 노는 모래 위에 푹 파묻혀 있고, 썰물 때라서 바닷물은
저 멀리서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림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용기를 주는 그림도 아닙니다.
용기는커녕 볼수록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그림입니다.
대양을 누비며 드높은 파도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춰야 할
배가 하릴없이 모래사장에 갇혀 있다니.
하지만 그림 맨 밑에 적힌 글귀가 그림의
어두운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꾸어 주었습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면 좌초 되었던 배가
다시 그 목적을 찾게 되리라.
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리라.”
이 경영자는 예전에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시절,
그는 조그만 골동품 가게에서 이 그림을
단돈 몇 달에게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을 향해 말했다고 합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어.”
그림이 그 경영자의 마음에
믿음을 불어 넣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길에서 목적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릴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 이런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여러분들도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는
말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고지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어!”
하루 중 가장 캄캄할 때는 동이 트기 바로 직전이라고 합니다.
시련이 있다는 것은 곧 승리의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비전을 절대 포기해선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꿈과 비전은 절대 포기해선 안 됩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에 관하여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복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복을 쫓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복이 나를 따라온다는 말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의 주인공
<요셉>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사랑하는 여인 <라헬>의 첫 번째 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았습니다.
그 지나친 사랑 탓에 형들의 미움을 받고,
17세 되던 해에, 죽음의 고비를 지나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그리고 13년 후인 30세 되던 해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평범한 청년이었던 <요셉>에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이런 큰 복을 왜 주셨을까요?
오래전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보았을 것입니다.
아주 젊은 나이입니다. 그분이 청문회를 거처서 입각도 못하고
물러 났습니다.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국무총리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국무총리나 장관으로 내정되었다가, 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물러난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청문회를 보면서, 새삼 또 느끼는 것은,
한 사람의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그리
잘 끄집어내는지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으며, 누구와 골프를 쳤는지,
또 어떤 말을 했는지, 또 어떤 글을 썼는지,
또 누구랑 사진을 찍었는지, 청문회에만 나오면,
그 사람의 일거 수 일 투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저 같은 사람은 국무총리 시켜준다고 해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어떤 반대 의견 없이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청문회를 한다고 하면,
어떤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을까요?
“그는 여자를 강간하려다 들킨 죄인입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너무 큽니다.
그는 이방인 노예입니다. 지적으로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릴 역량이 되지 않습니다. 그의 출신 배경이 의심스럽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반대 세력도 없이 순적 하게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왜 그런 큰 복을 받았을까요?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려고 발버둥 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복이 그에게 왔을까요?
그가 국무총리의 자리를 탐내고 쫓아간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의 자리가 그에게 따라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하는 일마다
왜 복이 저절로 따라 왔을까요?
첫째),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7장 5절-7절 말씀입니다.
다 함께 읽겠습니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절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자기의 어머니 <라헬>을 잃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요셉>의 남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죽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은 <요셉>의 마음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외로웠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요셉>을 찾아오셔서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요셉>이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는데, 자신의 단은 중앙에 우뚝 서있고, 형들의 단은
자신의 단 주변에 둘러서서, 그 단을 향해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분명합니다.
그 꿈은 곧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
으뜸이 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다시 한 번 더 꿈을 주셨습니다.
오늘 <창세기> 37장9절 말씀을 보면,
9절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형제들만 절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야곱>도 자기에게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꿈 역시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요셉>은 꿈을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꿈을 품고서,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슬픔과 탄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꿈을 가지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약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릴 때,
꿈을 잃어버릴 때 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모두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현재 세계 최고 부자는 <미국>의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1975년, 약 47년 전에
“세계 모든 가정,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같은 소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웃기는 소리를 한다고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쓴 결과, 결국 지금은
책상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있습니다.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합니다.
<컴퓨터>가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 같은 그런 세상입니다.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47년 전에,
“세계 모든 가정,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고 애쓴 결과,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꿈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우리에겐 꿈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성공하는 꿈, 돈 버는 꿈, 잘 사는 꿈, 행복해지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는 이 자리가 빈자리가 없이
차고 넘치는 교회, 들어올 자리가 없어
예배드리기 위하여 계단에 줄을 서야 할 정도의 교회,
찬양과 경배가 살아있는 교회, 기도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교회,
기도하면 기도하는 대로 응답이 이루어지는 교회,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나는 교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도움을 받는 교회가 도움을 주는 교회, 교회에 대하여
큰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예측합니다.
“나는 안 돼. 나는 틀렸어”, “우린 안 돼. 우리 애는 틀렸어.
그 사람은 안 돼”, “이 일은 안 돼. 그 일은 안 돼. 소용없어”,
“그 사람은 안 돼.
그 사람은 절대 예수 안 믿을거야.?
결코 교회 안 나올거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정적인 말을 삼갑시다.
나 한 사람의 부정적인 말로 인하여,
절대 다수가 영향을 받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담배 연기를 맡은 사람이
더 몸에 해롭다고 합니다.
나의 부정적인 말 한 마디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시킬 수도 있습니다.
뭔가 해 보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힘을 얻어 날아보려고 했는데,
그만 주저앉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땡 벌>을 아십니까?
<땡 벌>은 생물학적 조건으로는 날 수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덩치는 큰데, 날개는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땡 벌>은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조건이 맞아서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아야 하기 때문에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닭>을 아십니까? <닭>이 새라는 것을 아십니까?
<새>라면 당연히 하늘을 날아 다녀야 하는데,
<닭>은 하늘을 날지 못합니다. 혹시 <닭>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생물학자들이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닭>이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 이유를 찾는다면, 땅에 있는 먹이에 만족하며
살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능력을 포기한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 이지만,
<요셉>은 <땡 벌>에 속합니까? <닭>에 속합니까?
그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를 학문적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도 없습니다.
그를 정치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배후도 없습니다.
그를 도와주고 기도해 주고, 밀어 줄
종교적인 배경도 없습니다.
그는 <애굽>사람들이 보았을 때,
형편없는 이방인입니다.
노예 출신입니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을 날았습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훗날 그의 형들도
그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요셉>이 복을 향해 쫓아갔습니까?
<계모>가 셋이요, 형제들이 열두 명이나 있는 집에
머물러 있으면, 훗날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집을 떠난 것입니까?
메마른 <가나안>땅에 있으면 출세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당시 세계를 제패한 <애굽>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까?
출세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바로>왕의
시위 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까?
돈도 필요하고, 이용할 여자도 필요하여
<보디발>의 부인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한 것입니까?
감옥을 나가면 다시 재기해야 하기 때문에, 감옥 안에서
온갖 술수를 배우고 익혀서, 감옥을 탈출하여
세상에 나온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소망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이 꿈을 가지면, 소망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그 꿈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꿈을 품고, 소망을 품고, 힘차게 달려 나갈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여러분에게 쏟아 부어주실 것입니다.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놀랍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복을 쫓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에게 왜 복을 주셨을까요?
<요셉>이 하는 일마다 복이 저절로 따라왔을까요?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둘째) <요셉>은 꿈을 붙들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복이 저절로 따라왔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4절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요셉>은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형들의 손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종살이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희망 속에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살이 하면서 그의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다 맡겼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셉>이 여주인의 유혹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여주인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여주인의 모함에 따라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아픔이었습니다. 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전옥이 그를 신임하고, 그에게 옥중의 제반 업무를 맡겼습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형편 속에 있건,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불성실하고, 불충성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탐욕스럽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매사에 부정적으로 투덜대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아무 일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깁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 늘 감사하는 사람,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상관하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사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키지 않는 일도 알아서 척척 하는 사람,
일한 대가를 따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은혜 주신 것에 대하여
늘 감사하는 사람, 매사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이 있었기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 <사과>씨앗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은 마른 씨앗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땅에 심고, 거름을 주고, 키우게 되면,
그 씨앗을 통하여 수많은 <사과>를 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많은 <사과>를 수확할 수 없습니다.
거름도 주고, 잡초도 매주고, 가지도 쳐 주고, 벌레도 잡아 주고,
밤낮으로 성실하게 일할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일에 성실하면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겨주십니다.
매사에 감사함으로 일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복을 쫓아가는 삶이 아니라,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을 살아감으로
마침내, 주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놀라운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왜 복을 주셨을까요?
<요셉>이 하는 일마다 왜 복이 저절로 따라왔을까요?
셋째), 하나님이 <요셉>의 꿈을 친히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2절-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사람의 집에 있으니
3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5절 말씀입니다.
5절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21절 말씀입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오늘 본문 <창세기>39장 23절 말씀입니다.
23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이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꿈대로 그대로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고,
형들은 들판에 나가 일하는데,
<요셉>은 집에서 좋은 채색 옷을 입고 놀고
있다고,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러던 참에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들이 동생 <요셉>에게 절을 한다고 했습니다.
미움으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위에 기름을 붓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차마 죽이지는 못했지만,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종 노릇 한다는 것이 결코 편안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고, 또 형들도 보고 싶고,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원망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섰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어.
나에게는 꿈이 있어.
그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성실함으로 일했습니다.
시험과 유혹이 다가왔지만,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누명을 썼습니다.
캄캄한 감옥 안에서 죄수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서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망하고 탄식하고, 복수의 칼을 갈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나에게는 꿈이 있어.
그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의 임재 함을 느끼며, 감사함으로, 성실함으로 지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힘든 노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정치적인 배경이나, 경제적인 뒷배경이나,
종교적인 배경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복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복을 받았을까요?
<창세기> 49장25절 말씀입니다.
25절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이리로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이 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복을 쫓아 다녔더니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였더니,
죄를 범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죄를 멀리 했더니,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주변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면, 거룩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창세기> 12장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 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이 지금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내가 네 이름을 창대 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복의 근원 만들어 주겠다,”
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그러한 복을 허락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을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우상을 멀리 해야 합니다.
죄악을 멀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 받는 첫 걸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볼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나미>153 <볼펜>입니다.
<모나미><볼펜>을 보면,
“153”이라는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나미> 153 <볼펜> 탄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나미>는 <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입니다.
1963년 5월 1일에 탄생한 <볼펜>입니다.
<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기술도 없었던 상태에서 벌어진 기적입니다.
좋은 필기도구를 만드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송삼석>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는 꿈을 가지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였지만,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산 기도를 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기도하는 데 하나님 앞에 범죄 한게
너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세 가지를 회개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첫째),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부터 주일 성수 하겠습니다.”
둘째), 돈을 많이 벌고 도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었습니다.
이제부터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셋째), 새벽 기도 하지 않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새벽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1절 말씀을 읽을 때였습니다.
11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모나미> 153’ 이라는 <볼펜>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이 <볼펜>이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손에
다 들려지기 원합니다.”
망해가던 회사가, 지금껏 <볼펜> 680억 자루 이상을 팔았습니다.
한 줄로 세우면 <지구> 200 바퀴를 더 돌 수 있다고 합니다.
<모나미><볼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이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을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꿈을 붙들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꿈을 친히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고, 주어진 일에 성실히 일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 꿈을 이루어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요셉>처럼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기도합니다.>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앞에 나와 마음을 다하여 예배드리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열어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풍성하게 쏟아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