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내(배내기) /배메기 /배미기 /베먹이기
글 : 윤수종(尹秀鐘)
정의
남의 가축을 대신 길러서 가축이 자라거나 새끼를 친 뒤에 그 이익을 주인과 나누어 가지는 제도.
개관
배내는 날 때부터나 배 안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사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 배내(또는 배내기)는 가축의 배胚를 내서 이를 나누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의미가 가축을 기르는 사회관계에 적용되어 배내는 남의 가축을 대신 길러서 가축이 자라거나 새끼를 친 뒤에 그 이익을 주인과 나누어 가지는 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의 배내는 반양半養, 예탁預託, 어울이, 쇠침(강원도), 배내이(경상남도), 배미기(경상북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배내는 여러 가축에서 행하여졌으며 배냇닭·배냇돼지·배냇염소·배냇소 등이 있었다.
내용
배내기는 소에서 널리 행하여졌다. 소는 축력으로서 농사에 아주 중요하였지만, 소를 마련하기 어려운 농가에서는 소를 빌려 키우면서 축력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소 사육을 통해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배내기는 한 농가에서 소를 여러 마리 키우기 힘든 조건 즉 한 마리씩 키우는 방식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소배내기는 ‘배내’의 원래 의미를 넘어서 위탁인과 수탁인 간에 맺는 계약에 따라 배냇소, 어울이소, 도짓소 등으로 구분되었다. 배냇소와 어울이소는 소 사육의 소득을 올리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고 도짓소는 축력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사육 소득을 올리는 것과 축력 이용이 겹치기도 하였다.
배냇소는 거리소(걸이소), 거래소, 이십사삭소, 씨압소, 씨암소, 그리소(글이소), 수양소(북한), 새끼뗌, 배멕이(경상도) 등으로 불리었다. 배냇소의 대상이 되는 소는 송아지를 밸 때가 된 두 살쯤의 어치기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태어난 지 3~5개월 정도의 목달개를 하거나 코뚜레를 꿴 송아지였다. 계약하기 나름이지만 배냇소의 계약 기간은 보통 24개월이었다. 송아지는 태어난 지 약 2년, 나이로는 3년 정도가 되면 새끼를 낳는다. 그러면 송아지가 3달 정도 되어 젖을 뗀 다음 어미 소는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새로 태어난 송아지, 이른바 ‘배냇송아지’는 키운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이다. 또 배냇소 기간이 길면 대체로 첫 배냇송아지는 소 주인, 두 번째 배냇송아지는 키우는 사람이 가졌다. 물론 키우는 사람이 첫째 송아지를 갖는 등 송아지를 분배하는 방식은 시대와 지역 그리고 당사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어울이소는 병작소, 반작半作소, 이반二半소, 이분식소, 동별리소, 어울리(어우리)소, 맞멕이(맞매기)소, 수양소, 타작소라고도 한다. 남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주고 어미 소가 되면 이것을 팔아서 송아지 값을 제외한 나머지를 기른 사람과 반으로 나누어 가지는 제도이다. 어울이소는 송아지든 다 자란 소든, 암소든 황소든, 성별과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또한 어울이를 하는 기간도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어울이소는 대체로 배냇소처럼 태어난 지 몇 개월 정도 된 송아지였다. 암송아지의 경우에는 어미 소가 되어 송아지를 낳은 다음 어미 소와 송아지를 판 가격에서 처음 제공할 당시 원래 암송아지의 가격을 뺀 남은 이익을 소 주인과 기른 사람이 서로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황송아지의 경우에는 다 자란 황소를 팔아서 황송아지의 가격을 빼고 남은 이익을 서로 나누었다.
도짓소는 삯소, 윤돌(윤둘)소, 공우貢牛, 공소라고도 하는데 소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대체로 봄부터 가을까지 일정 기간 소를 먹여 주고 그 대신 그 소를 부려서 일을 시키는 제도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소를 빌리면서 미리 삯을 정하고 소를 되돌려 보낼 때 그 값을 지불하였다. 삯을 내지 않더라도 소를 반환할 때에는 떡을 해서 소의 등에 실어 보내거나 그 소가 질 수 있을 만큼의 쌀을 실어 보냈다. 소의 삯을 1년을 기준으로 셈하는 것을 삯소, 하루를 단위로 계산하는 것을 품소라고도 하였다. 도짓소는 축력을 논갈이와 밭갈이를 하는 데 이용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만큼 두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끄는 지역에서는 짝을 맺기 좋은 큰 암소가 주를 이뤘다.
소배내기는 지주나 부농이 자신의 소를 빈농에게 맡겨 기르게 하는 제도로, 이른바 ‘소 소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주와 부농이나 자산가는 소를 구입하여 구입 능력이 없는 빈농에게 위탁하여 키우게 함으로써 소를 증식하거나 사역료 소득을 올릴 수 있었고 소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빈농은 농우를 확보하거나 부업으로 소의 사양료 소득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상호이해가 맞아 널리 행하여졌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전국 소의 4분의 1 정도가 배내기로 사육되고 있었으며 소배내기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1920년대에는 관에 의해 일정 정도 장려되기까지 하였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농외자본이 소배내기 제도에 개입하였으며 관에 의한 권장도 점점 더하여 갔다.
광복 이후에도 축력을 원동력으로 계속 사용하고 소 사육 방식도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보다는 소를 장만하는 일이 덜 어려워졌지만, 농민 간 계층 격차는 여전하였고 따라서 소배내기도 계속되었다. 1950~1960년대에도 소배내기가 성행하였으나 1970년대 들어 소먹이가 사료로 바뀌고 경운기가 축력을 대체함에 따라 소배내기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특징 및 의의
비육우 시대로 접어든 이후 자본이 축산업에 침투한 결과 축산농의 내부 분화 속에서 ‘위탁사육’이 증가하고 있다. 이미 육계와 오리 부문은 기업에 의한 수직통합이 이루어져 왔다. 육계산업은 회사가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하고 사육자가 사육하여 회사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회사가 위탁사육자(육계축산농가)에게 사육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돼지도 40%가량이 위탁사육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한우 생산농가가 급속히 줄어들고 정부의 축사개량 요구에 대응하면서 한우 위탁사육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위탁사육에 대하여 농민들은 예탁사육(소배내기)을 요구하기도 하며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지방 축협에서 소배내기 형식의 예탁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강원도 농촌에서 소를 마련하는 제도와 특징(김세건, 한국문화인류학51-2, 한국문화인류학회, 2018), 소배내기 제도에 관한 일고찰(윤수종, 한국사회사연구회논문집25, 한국사회사연구회, 1990), 쟁기연구(김광언, 민속원, 2010),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강원도(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