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고를 졸업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친구들은 인문계고를 진학했으나, 나는 가정형편상 실업고를 나와 빨리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인문계고를 나온 뒤 대학교를 진학하는 계획을 진행할 수 없었다. 인문계고를 가지 않는다면 공고나 상고 중 선택해야 했으나, 어떤 학교를 선택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공고를 졸업하면 취직도 빨리 할 수 있었고 기술을 배우는것이 오랫동안 밥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얘기들 했다. 그러나 기름밥 먹는것보단 사무실에서 양복을 입고 일하는것이 멋져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진로를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 성적이 웬만큼은 되는 나는 선린상고를 선택할 수 있었다. 상고는 인문계고와 달리 주산과 부기를 잘해야 성적이 좋았다. 나는 주산을 잘 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학과목 성적은 우수했지만 주산급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1 중간고사를 치른 성적은 중하였다. 나는 더운 여름방학을 주판과 씨름했다. 고3까지 3급이상 주산 실력이 나와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1학년이 끝날 때 쯤 벌써 3급 이상의 주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상고를 나왔지만 숫자에 빠른편은 아니었다. 어떤 친구들은 억단위의 계산도 암산으로 척척해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계산기가 훨 편하다. 그러나 그때는 계산기가 나오기 전이었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반드시 주산 능력을 키워야만 했다. 나는 2학년 말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주산시험에서 3급 자격증을 획득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소설에 빠져 살았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지만, 핸드폰이 없던 시절엔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나도 항상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 길을 걸으면서도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 많아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지금이지만 고등학교 당시 나는 책을 읽으며 걷다가 중국집 간판에 머리를 부딛친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 중국집 간판은 나무로 만들어 세로로 붙혀 놓은 경우가 많았다. 주위를 살피지 않고 거리를 걷다가 나무 광고판에 부딛치면 머리에 띵 소리가 나면서 어질어질 했다. 그렇다고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 즐겨 읽었던 책들은 헤밍웨이, 레마르크, 스탕달, 서미싯 몸,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고전이라 불리는 서양 유명 작가들의 책이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를 읽고 전쟁소설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고흐와 고갱의 삶을 엿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이 무엇인지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줄거리나 의미있는 문장 같은 것을 기억하진 않는다. 단지 책을 읽고 테마나 철학, 인생살이 등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최근 3~4년간 다시 책을 많이 읽고 있지만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삼국지를 읽게 되었다. 나는 삼국지를 2번 읽었다. 살면서 삼국지를 3번 읽은 사람과는 말을 썩지 말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고등학교 때 한번 그리고 이문열 삼국지를 30대에 한번 읽었다. 삼국지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영화, 드라마, 분석집등이 많이 나와 있어 우리 주변에 항상 가깝게 있다고 느껴진다. 도원결의부터 장판교에서 홀로 적의 대군을 막는 장비, 술이 식기전에 적장의 목을 취하고 오는 관우, 삼고초려, 적벽대전, 출사표,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의 중달을 물리치다 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수많은 인물과 수많은 사건들은 한시라도 눈을 뗄수가 없다. 그 중 또 한가지 기억에 남은 일화는 "읍참마속"이다. 마속은 제갈량의 절친인 마량의 아우였다. 마량이 죽고 제갈량은 마속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1차 위나라 정벌 때 촉군 본대가 정비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마속에게 위나라 군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주길 원했디. 공명은 마속에게 진지를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 구축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마속은 명을 듣지 않고 산 위에 진을 쳐 전멸당하고 말았다. 군사가 명을 내렸음에도 군령을 따르지 않아 촉나라를 패배하게 만든 마속, 공명은 마속을 어여쁘게 생각했지만 군령을 세우고 승리를 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마속에게 죽음을 내린다. 승리를 하기 위해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아끼는 것을 내주는 방법이 "읍참마속"이다. 퍼거슨이 맨유의 감독으로 재직중일 때 맨유 최고 스타는 베컴이었다고 한다. 베컴은 맨유의 주장이었고, 영국팀의 주장 이었다. 그 당시 베컴보다 인기있는 축구스타는 없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였던 베컴, 그러나 퍼거슨은 전반전이 끝난 후 라커룸에 들어가 베컴의 가방을 걷어차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 당시 맨유에는 베컴 말고도 유명 스타들이 즐비했다. 퍼거슨은 베컴을 혼내어서 팀의 결속력을 다지고 멘탈을 강화하고자 했던것 같다. 퍼거슨은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이고 아직도 팬들은 퍼거슨 같은 감독이 다시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가장 귀하고 아끼는것을 쳐내고 정리하고 심지어는 죽이기 까지 하는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서 특히, 그 위기를 조장한 사람을 그냥 나둔다면 손발을 잘라내는것으로 끝나지 않고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다. 총 6권으로 되어있던 삼국지를 읽고 나는 쉬는 시간마다 썰을 풀었다. 친구들은 내 썰을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나는 신이나서 떠들었고 삼국지가 끝나가는것이 아쉬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책을 많이 읽으며 지냈다. 시험기간 중에도 일찍 시험이 끝나면 다음 과목을 공부하기 보단 소설책을 읽었다. 그 당시 읽었던 소설책들이 내 인생길을 다졌고, 개똥철학도 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