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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물 야담의 풍경
이원걸(문학박사)
(목차)
1. 머리말
2. 성문화는 남성 전유물인가
3. 내시 아내와 스님의 인간적 삶
4. 불의와 맞서 싸우는 여성
5. 기녀의 고결한 사랑
6. 전투적 여성의 형상
7. 여성의 특기 수긍
8. 마무리
1. 머리말
그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소홀히 대접을 받아 온 야담은 선학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그 위상을 높이고 가치를 돋보이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기반을 중심으로 하여 개별 야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거쳐 전체 야담과의 연계성을 확보해 내는 것이 조선 후기 야담 문학의 조망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이럼 점에 유의하여 [잡기고담] 작품 소재 여성 인물 야담 작품을 분석하기로 한다.
이 야담집에는 여성의 삶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성문화에 대한 반발 의식이 표출되는가 하면, 이를 좀더 확대해서 개인의 성적 욕망이 제도나 규제에 의해 억압된 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의 표명으로 이어진다. 성 불구자인 내시의 아내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관심의 확대 및 수도승의 성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불의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전투적인 여성을 형상한 작품도 있다. 여성의 전투 역량과 불의에 대한 저항 자세를 보여 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대상인 직업 여성인 기녀의 사랑에도 초점을 맞춘 작품도 주목된다. 천시 당하는 여성에게도 고결한 사랑이 있음을 그린 경우이다. 그리고 원수를 응징하고 특기를 수용한 여성의 형상도 돋보인다.
이러한 작품에 드러난 여성의 삶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그렇게 열등한 것이 아님을 반증해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야담에서 여성 인물을 다양하게 묘사한 것은 여성의 애환을 주목하여 그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여러 야담집에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잡기고담]에는 그러한 모습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이 야담집의 전체 작품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아홉 편의 작품에 여성의 다양한 삶이 담겨 있다. 이러한 사안들을 중점적으로 하여 구성된 작품을 분석하여 이 작품이 당대 사회 현상과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다.
2. 성문화는 남성 전유물인가
남성 편향적 성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작품을 보기로 한다. 해당 작품은 「치농(癡儂)」과 「곤경(困境)」이다. 조선조 여성의 삶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그에게 굴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이는 당대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성(性)의 문제는 더욱 그러했던 게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성문화는 늘 남성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 그러한 표현마저 죄악시했다. 그런 반면 「치농」에서는 이 문제가 여성에 의해 주도된다. 줄거리를 요약한다.
① 어느 소년 서생이 친구들과 함께 어가(御駕) 행차를 구경하다가 길을 잃었다.
②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인적이 없는 어느 민가에 뛰어 들어가 비를 피했다.
③ 한참 뒤에 부인이 나와 소년을 안채로 맞아 들였다.
④ 그녀는 소년을 좁은 내실로 맞아 들여 갖은 교태를 부리며 유혹했다.
⑤ 비가 개이자, 소년은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뛰어 나왔다.
⑥ 이튿날, 서생은 어제 겪었던 전말을 친구들에게 말하고 나서 그녀가 자기에게 색정을 느껴 유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품 구성이 치밀하지는 않다. 해학 경향의 작품이다. 무대에서 활약하는 인물은 소년 서생과 미모의 여인이다. 아둔한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임금님의 행차를 구경나간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서생이 구경꾼의 북새통에서 동료를 놓쳐버리는 데서 사건이 반전된다.
이어 쏟아진 소나기는 소년과 미녀의 만남을 이루는 필연적 장치다. 이 역시 기존 여러 야담집에 흔히 보여지는 수법이다. 그녀의 돌변적 태도를 보기로 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비를 피해 찾아 온 불청객을 무시한다. 그러나 그가 홍안의 미소년임을 확인하고는 그를 유혹한다.
부인이 문틈으로 자꾸만 훔쳐보더니, 한참 후에야 문을 반쯤 열어주고는 문틀에 몸을 기댄 채 유혹하는 것이었다. 바깥채는 춥고 누추하니, 어서 안채로 들어오세요.서생은 그녀를 따라 들어갔더니, 여인은 그를 안방으로 맞아들였다. 방은 한 자 남짓하여 두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겨우 앉을 만 하였다. 이에 그녀는 서생이 사는 곳과 나이를 물었다.
소년을 유혹하기 위한 그녀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우선 성공한다. 문밖에서 비를 피하는 홍안 소년의 확인 → 안방으로 유인 → 서생의 신분과 나이 확인이 그러하다. 이어 그녀의 유혹의 강도는 점차 높아간다. 이 작품에서 주제 의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목은 그녀가 소년을 유혹하는 대목이다.
여인은 숨겨둔 술병을 꺼내서 화사한 술잔에 향기로운 술을 마시라고 권하였다.비를 맞아 몸이 추울 테니, 이걸 드시고 몸을 데워요.서생은 그 술잔을 받아서 들이켰더니, 여인은 갑자기 미소를 띄우는 한편 곁눈질까지 하였다.저희 집에 맛난 술이 있어요.한참 다시 웃으며 재잘거리는 것이었다.낭군님 얼굴이 이다지도 고우니 분명 보는 이마다 서로 탐낼 거예요.또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남녀의 정은 중한 법인데, 일찍이 외도 한 번 안 하셨어요?이와 같이 재잘거리며 정겨운 말을 꾸며 백방으로 유혹을 했으나, 서생은 다만 묻는 말에 따라 대답할 뿐이었다.
그녀는 두 차례에 걸쳐 소년을 유혹하기 위해 계략을 시도한다. 분위기에 맞는 맛난 술을 들여오고 갖은 교태를 부리며 서생의 마음을 움직일 말을 늘여놓는다. 하지만 목석같은 서생은 냉담한 반응만 보인다. 그녀는 서생을 안방까지 유인하여 육담으로 유혹하지만, 소년의 무반응으로 인해 그녀의 계획은 좌절된다. 그러나 그녀는 고운 소년을 차지하겠다는 집요한 욕망을 접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녀는 육탄 공세를 가한다. 그녀는 이를 잡는다면서 저고리를 벗은 채 그를 유혹한다. 하지만 그것도 좌절된다. 급기야 서생의 마음을 움직여지는 것 같았는데, 소나기가 그치자 서생이 그 자리를 떠남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제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데 논의를 모은다. 이즈음에 이르러 무대에 남아있는 인물은 그녀뿐이다. 그녀는 두세 차례에 걸쳐 미소년을 유혹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계획은 거듭 좌절되어 굴욕감을 안은 채 혼자 남는다. 그런데 이 여인을 두고 단순하게 음녀로 규정하는 것은 조선조의 폐쇄된 통념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작품에 여인의 신상명세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뒤의 상황으로 추정해 보면, 그녀는 아마 소년 서생보다는 연상의 여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녀는 과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점에서 여성에 대해 안목이 넓지 못한 소년 서생과 여인은 판이하게 대비된다. 그녀는 소년에 비해 성욕 표현을 자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욕을 해결하려고 과감한 행동까지 시도한다.
그녀의 이러한 행위는 곧 이 작품의 주제 의식과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임매는 구태의연하게 여색을 경계한 인물의 덕담을 높이 평가하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매는 이러한 여성 인물의 행동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성의 성적(性的) 표현도 금기하였던 당대의 문화 풍토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버려두고, 떠난 소년의 행위가 굳이 칭찬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드러난다.
말하자면, 임매는 그녀를 들어 당대 모순 의식인 남성 편향적 성문화에 대해 일정한 문제를 제시했던 것이다. 만약 독자가 무대에 홀로 남은 그녀를 비웃는다면, 이는 남성의 성욕 표출은 정당하지만, 여성의 성적 욕구 표출은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결과가 된다. 이 역시 당대의 통념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임매는 이러한 시각이 그녀의 형상을 굴절시킨 주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임매는 평어에서 그녀의 형상을 제대로 간파하였다. 그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중도적 입장을 보인다.
반면에 그는 두 부류의 인물을 들어 그녀의 입장을 뒤에서 옹호한다. 임매는 그녀를 죄인 취급하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첫째 부류로 소년을 들었다. 그가 비록 여인의 유혹을 거부하고 몸을 빼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자체를 두고 옛사람들이 잠심응물(潛心應物)했던 경지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의 인물이 그가 공격하려는 대상이다. 소년이 비록 연약하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세상의 모순과 불의를 위장해 선한 척하는 부류에 비해 낫지 않느냐고 강조한다. 그런 계층이 곧 남성 편향주의를 대표하는 당대의 전형 인물이며, 그녀를 음탕한 여인으로 규정하는 계층임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그녀와 구체적 대결을 벌이는 인물은 두 번째 부류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소년은 이 둘과의 대결을 연결하는 보조 인물이다. 즉, 작가는 ‘성문화’라는 줄다리기에서 서생을 일차로 퇴각시키고, 이 시점에 이르러 실제의 대결자를 등장시켰다. 그러면서 그 줄다리기에서 여전히 우위권을 확보한 전형이 돋보인다. 반면에 미약한 여성 형상을 대비하여 조명함으로써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형상은 좌절된 채 묻혀지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성욕 표현을 한 여성 인물 형상으로 떠오른다. 이는 이어 다룰 「곤경」에서 더욱 극명히 제시된다.
① 나이 어린 서울 소년이 시골 임지에 계신 부친을 찾아뵈러 떠났다.
② 노중에 촌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괴상한 할미와 몇 남매가 살고 있었다.
③ 소년은 밤중에 막내딸을 범하려다가 노파에 발각되어 노파로부터 동침을 강요당했다.
④ 노파는 서생이 떠나려고 해도 협박을 하며 놓아주지 않았다.
⑤ 그 후, 그는 겨우 빌미를 얻어 탈출했다.
⑥ 후일, 부친의 상여가 그 촌가를 지날 즈음에 그 노파가 며느리의 자격으로 문상했다.
작품 화제에 걸맞게 서울 소년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우습게 처리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할미의 외양이나 행동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다. 서두에 그려진 노파의 모습이다.
그 할미는 늙었으며 몹시 거칠고 더러웠다. ……게다가 콧물과 침․땀의 흔적이 얼굴에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할미의 추한 몰골은 이후 전개될 내용에 있어 복선 기능을 한다. 이는 소년을 아주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가는데 적합한 소도구로 쓰인다. 할미의 집에는 얼굴이 반반한 딸이 몇 명 있었다. 소년이 막내딸에게 흑심을 품으면서 사건은 점차 발전된다.
노파의 딸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막내딸은 제법 예뻤다. 밤이 되자 남정네는 모두 바깥채에 자고 서생과 여러 딸은 함께 안채에서 자게 되었다. 그 방 사이에는 벽이 가로질러 있었는데, 출입구 하나만 있고 문은 없었다. 서생은 막내딸에게 흑심을 품고는 흘금흘금 그녀가 눕는 곳을 눈 여겨 봐뒀다. 그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잠에 떨어졌을 무렵에 알몸으로 몰래 기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딸과 노파가 잠자리를 바꾸어 누운 사실을 몰랐다. 막 그녀를 범하려고 하자, 갑자기 닭 껍질 같이 거친 피부와 새 뼈 같이 깡마른 팔의 할미가 서생의 허리를 꽉 껴안고는 협박하는 게 아닌가. 할미는 이빨이 빠진 채 사투리로 공갈하였다.웬 놈이냐? 바깥채에 건장한 아들 세 놈이 자는데, 만약 내 입만 뻥긋하면, 네놈은 황천 행이 될 게다!이에 서생은 놀란 나머지 할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몸을 빼지 못했다. 할미는 또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네 놈이 살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야 할게다.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고함을 지를 거야!서생은 두려운 나머지 할미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할미의 막내딸에게 음욕을 품고 겁탈하려다가 할미에게 역습을 당한다. 할미가 소년을 바깥채에 재우지 않고 안채에 재운 일이나 막내딸과 잠자리를 바꾼 행동은 그녀가 미리 꾸민 계교이다. 딸에게 음탕한 마음을 품었던 소년이 할미에게 뜻하지 않던 동침을 강요당한다. 서생의 변변치 못한 주색잡기 행각이 낭패를 당한다.
그렇지만 이는 소년에게 한 번의 곤경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파의 지속적인 추궁이 따른다. 서생이 도망하려 해도 이 할미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다. 할미는 오히려 그를 위협하며 병이 났다고 핑계 대어 며칠 더 머무르게 한다. 할미는 그를 머무르게 하고 계속 동침을 강요한다. 급기야 소년은 다시 찾아오겠다고 굳게 언약하고 나서야 할미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그런데 곤경의 고리는 여기서도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의 행각이 온 가문에 공개된다. 소년의 아비가 벼슬살이하던 곳에서 죽게 되어 상여가 할미의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할미는 자기가 며느리라고 우겨대며 문상하러 온 것이다.
노파는 고함을 지르며 꾸짖었다. 이 무례한 놈아, 네 놈은 남 몰래 나를 겁탈하여 첩을 삼아 두고는 지금에야 시아버님 초상에 분상(奔喪)도 못하게 한단 말이냐?
소년에게 닥친 곤경은 그에게 단 한 번의 곤경 극복을 위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시종 곤경에서 곤경으로 연결된다. 서생의 좌절된 형상만 남는다. 이 상황에서 그를 동정해 줄 사람은 없다. 오히려 냉소만 보낼 뿐이다. 이에 대한 임매의 견해도 마찬가지다. 임매는 근엄치 못한 소년을 나무라는 것으로 이 작품을 종결한다. 그런데 이 작품이 단순히 소년의 비리를 공개하여 교훈을 보고하는 차원의 것이라면, 소년의 비행 못지않게 노파의 추행도 마땅히 고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은 여성의 성문화에 대한 임매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해 준다. 즉 「치농」에서는 여인의 성욕 분출 의지가 좌절된 형상을 그렸다면, 이 작품에서는 노파로 가탁된 여성이 소년을 볼모로 마음껏 성욕을 분출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기존 남성 중심의 성문화를 표상한 소년은 혹독한 곤경을 치른다. 이것은 단순한 서생과 노파와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시종 남성들에 의해 종속되다시피 한 조선조 여성의 인권 옹호 의지가 노파로 형상되어 남성 중심의 여성관에 저항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곧, 이 작품은 남성 편향 성문화에 대한 여성의 항변 의식이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이는 남성들에 의해 억압되어진 여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여인의 수절은 강조하면서 남성 양반 계층의 축첩 행위는 허용했던 당대의 모순 논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당대 사회에서 남성들의 성행위를 공식적으로 허용한 셈이다. 관리가 된 남성의 경우, 관청에 소속된 기생을 능력대로 취하도록 배려했다. 이처럼 남성들에게는 성행위가 적극 개방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개가를 단속하고 그것을 법조문에 명문화하는 한편 수절녀를 표창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면서 여성의 성문화는 더욱 폐쇄 조치되는데, 이에 대한 반발 의식이 이런 작품을 낳게 되었다고 본다. 특히 과부로서 남의 의지에 따라 수절을 강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해석되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조선조의 모순 의식인 차별적 성문화를 고발한 작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여성들의 항변 의식이 이 작품의 주제 의식으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3. 내시 아내와 스님의 인간적 삶
야담에는 여성의 다양한 삶이 표출되고 있다. 특히 홀로 된 여인이 인습의 장벽을 헤치고 독자적 삶을 획득하기도 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등의 사례는 매우 돋보인다. 제5화 「환처(宦妻)」는 고아였던 여인이 내시에게 시집가게 된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이 여인이 새로운 삶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① 공주(公州) 동천(銅川)에 살림이 넉넉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시골의 농막을 관리하러 오던 서울 선비가 유숙하게 되어 할미가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② 그녀는 원래 서울 양반 집 딸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숙모의 손에 길러져 내시에게 시집보내졌다.
③ 그녀는 내시에게 인생의 낙이 없음을 깨닫고 야음을 타 탈출해 무작정 처음 만나는 남정네에게 일생 을 의탁하기로 했다.
④ 이에 길가는 중을 만났는데, 그녀는 거부하는 그를 악착같이 뒤쫓아 결연함으로써 그를 파계시켰다.
⑤ 그녀는 반대하는 시어미를 재물로 꼬이고, 노승을 무력으로 좌절시켰다.
⑥ 그 후, 이곳으로 이주해 살림을 차리고 재산을 모으며, 자식을 벼슬시켰다.
이 작품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 회상을 거쳐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수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 서생에게 할멈이 그들 부부의 옛 이야기를 현장감 있게 구연한다. 서두에 소개된 할멈의 겉모습과 성격 묘사는 복선 작용을 한다. 할미는 서생이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잽싸게 맞아들여 대접을 한다. 술을 거르고 닭을 잡아 올린다. 할멈은 늙었지만 얼굴 모양새는 희고 밝았으며, 피부도 통통하고 윤기가 좌르르하다. 게다가 농담을 잘 했는데 간간이 양념으로 해학을 곁들이면 그 솜씨는 일품이다. 할멈은 조선 후기 야담에 등장하는 이야기꾼 오물음(吳物音)처럼 말솜씨가 뛰어났다. 이처럼 할멈이 비록 늙기는 했지만 피부에 윤기가 있고 성격이 활달해 누구나 금방 친해지는 성격을 지녔다. 때문에 그녀의 활달한 언변은 이어지는 사건과 매끄럽게 연결된다.
이제 그녀의 과거 현장으로 초점을 옮겨 보기로 한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외숙모에게 자란다. 그녀에게 다가온 또 다른 시련은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시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내시는 내시일 뿐이다. 정상인인 그녀가 음양의 이치를 깨닫고 과부처럼 살아가는 현실을 한탄하게 된다. 급기야 그녀는 내시에게 매여 평생을 과부로 지낼 것을 거부하고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그녀의 탈출은 목숨을 내건 모험이다. 그녀는 내시가 숙직하는 틈을 타서 폐물을 챙겨 새벽이 오기를 기다린다. 새벽이 되자, 그녀는 높은 담에 베를 걸쳐 뛰어넘은 뒤 남성문(南城門)으로 달려간다.
다음 단계는 몸을 맡길 대상을 찾는 것이다. 그녀는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무조건 몸을 맡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녀가 고개 마루를 넘으면서 처음 만난 위인은 바로 스님이다. 여기에 또 다른 난관이 숨어 있다. 도를 닦는 스님을 파계시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선뜻 포기할 수 없다. 그녀는 스님과 동행하여 그의 신분을 상세히 파악한다. 이후, 그녀는 이 스님에게 악착같이 따라 붙는다. 다음 대목은 그녀가 스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한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영감이 나를 괴상히 여기셨던지 신을 단단히 묶고 앞서 달아나기에 나도 질세라 힘을 다해 뒤따라 잡았지. 그랬더니 그제야 맥이 빠져 천천히 걸어가더군. 이에 나도 천천히 따라갔지. 이로부터 영감이 달리면 나도 달리고, 그가 걸어가면 나도 걷고, 쉬면 나도 쉬었어. 그러다가 주막을 나오면 함께 들어갔지 뭐.
스님은 교활한 여인을 일단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달아난다. 하지만 그는 집요하게 따라 붙는 그녀에 의해 그 의지는 점차 무너지고 만다. 그의 뒤를 추격하는 그녀는 이미 인습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따라오기에 몸무게가 가볍다. 반면에 스님은 계율에 얽매인 채 달아나기 때문에 그의 체중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둘의 간격은 점차 좁혀지기 마련이다. 이즈음 스님은 자신의 체중이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녀가 그를 낚아채려는 포위망은 점차 조여진다. 이어 그녀는 손아귀에 낚여든 스님의 굴레를 직접 벗겨버린다.
길가에 큰 숲이 무성하게 우거졌는데, 영감이 나무 그늘 아래 쉬기에 나도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았지.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영감 한 번 절간에 들어가면, 다시는 찾을 도리가 없다고 여겨졌어. 만약, 이 때를 타서 강제로라도 관계를 맺어두지 못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여기고는 앞장서서 영감의 팔목을 붙잡았지. 그랬더니 글쎄, 이 영감이 깜짝 놀라 내 팔을 뿌리치고 달아나려고 하지 않겠어? 그러나 내가 너무 세게 잡고 있으니, 도망칠 수 있겠어? 다만 살려달라고 애걸만 하기에 나는 그를 잡아 당겨 앉으라고 하면서 할 말이 있다고 했었어. 그러고는 ‘까까중이 되어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요? 저랑 같이 부부가 되어 살아요. 제 봇짐 속에는 은 수백 냥이 있어요. 그러면, 스님께선 아내도 얻고, 재물까지 얻게 되니 즐거운 일 아니어요? 라고 살살 꼬였지 뭐! 그랬더니, 이 영감 갑자기 내 이야길 다 듣고선 얼굴에 홍조가 들고, 숨결이 성난 듯이 거세지더니, 이내 머리를 숙이고는 흐느끼지 않겠어? 그 행색이 흡사 어린애와 같아서 너무도 불쌍해서 내가 눈물을 닦아주었어.
위에서 그녀의 행동이 점차 부각되는 반면, 수도승의 형상은 허물어진다. 그래서 그녀는 손아귀에 잡힌 스님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부부가 되어 달라는 것과 재물을 얻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제안하기에 앞서 수도를 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스님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대답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은 수도승의 폐부를 찌른다.
이어 그녀는 정욕을 해소하고 재물을 얻는 현실 문제를 제시했는데, 결국 그는 이 제안을 수용한다. 그녀는 항복을 선언한 수도승을 완전히 좌절시킨다. 그녀는 그를 숲으로 유인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완전히 제압한다. 이 무렵 수도승은 여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육체적 결합을 이루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인습의 탈을 벗어 던진 것처럼 스님의 탈도 완전히 벗겨버린다. 그녀는 자기가 이미 얻은 인간적 삶의 권리를 그에게로 옮겨 순수 인간의 삶을 함께 누리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달음질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습에 의해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니라, 자유를 얻은 시민으로 발걸음을 함께 한다. 때문에 이후 남은 장애는 문제되지 않는다. 그 장애는 청주 모 산사의 노승이 그가 수도하는 십 년 동안 제공했던 비용과 이자를 환불하라는 독촉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도 무력을 행사하여 물리친다. 여기에 등장한 노승 역시 가식적인 승도(僧徒)를 상징한다. 이 점은 그녀가 회심시킨 수도승과 첫 밤을 지새우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그 날 밤, 꼬인 중과 함께 밤새 은근한 정을 나누었지. 그런데 산에만 살던 까까중이 난생 처음 맛난 음식을 들고 남녀간 쾌락의 극치를 누렸으니 발광을 하더구만.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지 뭐!
활달한 노모가 자식 또래 소년에게 혼례 첫날밤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들려준다. 그녀는 초야를 치르고 맛난 음식과 여색에 반한 새신랑의 행각을 소개하면서, 수도승의 이중성을 공개한다. 수도승의 허상이 공개된다. 아울러 왜 지금까지 그런 허식에 얽매여 살아왔느냐는 반문도 동시에 제시한다.
이제 임매가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 의식에 접근해 본다. 임매는 수도승의 가식적 행동보다는 그녀와 같은 다수의 여인들이 내시에 의해 생과부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점에 대해 길손의 입을 빌어 다음처럼 탓한다.
내 일찍이 여러 길손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런데 길손이 나더러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남녀가 정욕을 느끼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내시들의 아내에 이르러서는 더욱 어려운 점이지요. 대개 듣건대, 내시란 놈들이 탐색하기는 보통 사람들 보다 배나 된답니다. 잠자리에서는 미친 듯 날뛰어 정욕이 끓어오르게 되나 분출할 도리가 없기에 이리저리 뒹굴고 물어뜯고 깨물고 한다고 합디다. 이 지경에 이르면, 비록 정숙한 여인이 예로써 자신을 지킨다고 한들 어찌 ‘저의 마음은 우물물과 같이 변함없어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때문에 그녀들이 달아나서 다른 남자에게 의탁하는 것을 두고 음탕한 짓을 했다고 쐐기를 박아 꾸짖지는 못할 일이지요.” 그 말을 받은 한 길손이 말을 이었다. “개국 초에 애당초 내시는 첩을 취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었으나, 중엽 이후로부터 그것을 단속하지 않았지요. 근래는 내시 가운데 아내를 거느리지 않은 자 없고 게다가 축첩까지 하는 자도 있답니다.
임매는 남녀의 정욕은 공통적 속성임을 들어 내시의 변태적 행동을 꾸짖는다. 그의 관심은 그로 인해 희생되는 여인들에게 집중된다. 결론적으로 그는 위의 여인을 두고 음탕한 여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임매는 그녀를 질곡 속에서 탈출한 위대한 여성으로 보자고 한다. 때문에 그 바톤을 이어받은 또 다른 객 역시 내시의 축첩 행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임매도 시종 내시의 행패에 대해 분개한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방치하는 이들의 행패를 막을 대안은 없는 것일까? 임매는 그것의 실현 가능성은 접어두고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 점이 곧 주제 의식으로 집약된다.
이 여인이 겪은 경로를 보건대 그녀의 쌓인 원통과 맺힌 기운이 하늘마저 슬프게 할 만하지요. 국가에서는 응당 옛 구금법인 내시의 축첩 금지법을 부활시켜 현재 내시들이 축첩하고 있는 여인들을 죄다 풀어서 나이 어린 승도(僧徒)와 짝을 지어준다면, 남녀가 각각 그들의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될 것이고, 국가적으로는 역시 정역(丁役)에 충원되는 유익이 있겠지요.
결국 임매는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내시의 지속적인 축첩 횡포를 막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곧, 임매는 내시에 의해 갇혀진 여인들과 불가의 계율에 잡혀 있는 어린 승도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이는 곧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두 부류 삶의 양상을 보도하면서 당대 사회 제도의 모순을 폭로한다. 임매의 관심은 여기서 종결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주도한 여인과 수도승을 얽맨 굴레를 벗겨 그들이 새로운 삶을 얻어야 확대재생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두 부류 남녀의 새 인생 결합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어 소개할 「간부(姦富)」는 그의 이런 구상이 허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소 과장된 묘사이기도 하지만 그의 발상과 연관된다. 개략적인 내용을 정리한다.
① 월사(月沙)에게 허생(許生)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가난하고 군색하여 그에게 여러 번 의식과 미관말 직을 주선해 주었으나, 감당치 못하고 살길을 찾아 떠났다.
② 수십 년이 지난 후, 월사가 어명을 받들어 대관령을 넘게 되었더니 허공이 심부름꾼을 보내 그를 초대 하기에 따라갔다.
③ 어느 큰 마을에 이르니 그의 집은 으리으리했으며, 젖먹이와 소년․소녀 이백 여명이 허공을 아비라며 따르기에 의아해하며 그 연유를 물었다.
④ 이에 허공은 지난 일을 설명했는데, 흉년이 들어 일곱 도의 거지들이 동쪽으로 살길을 찾아가는데 남 자는 따돌리고 나이 어린 부녀자 백 여명을 빼돌렸다고 했다.
⑤ 이후, 그들의 공동 지아비가 되어 산전을 개간시키고 육아하게 했으며, 그의 아들들을 각자 장기에 따라 수공업․농업․가축업에 종사케 하여 부호한 대 촌락을 이루었다고 했다.
월사는 가난뱅이 친구 허공에게 몇 차례 살 도리를 주선해 주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빈 털털이로 돌아온다. 서두에 소개된 그의 행각은 쓸모없는 인간 유형이다. 그는 몇 번이나 월사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생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방랑의 길을 떠나 살길을 찾는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이후, 그는 월사와 수십 년 동안 소식을 끊은 채 잠재된 능력을 발휘해 재산을 모으며 가족 수백 명을 거느린 가장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매우 과장적이다. 조선 천지에 흉년이 든 터에 거지 떼가 동쪽으로 표류하는 과정에서 그는 나이 어린 부인을 백 명을 얻는다. 부인 백 명을 얻는 데서 이미 그의 비범한 능력이 드러난다. 이어 그는 여인들에게 동냥 사업을 전개하여 떼거지의 왕초가 된다. 이어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어느 산골짜기에 터전을 잡고 개간 사업을 하여 집단 농장주가 된다. 이어 생산된 아이들이 장성하자 각자의 모친을 봉양케 하는 한편 그들의 재주에 따라 산업을 주어 큰 촌락을 이룬다.
위에서 드러난 그의 대범한 역량을 긍정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그는 떼거지를 구제해 자활 촌락을 건립한 것이다. 그는 걸인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립 기반을 조성하고 육아 사업에도 성공한다. 이로써 그들로 하여금 개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수공예․농업․공업에 의한 자립기반을 마련하게 유도했다. 결국 그는 걸인의 소모적 인생을 버려두지 않고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고취시켜 확대재생산에 동참하게 유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단순 재생산의 인생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재투입시켜 개인의 안녕과 국가 번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임매의 논리가 투영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이러한 임매의 의식을 종합하면, 「내시의 아내」는 실제 여인의 행동 양상을 중심으로 짜여졌다고 할 수 있다. 임매는 담찬 여성의 성공적 삶을 작품에 반영하여 당대의 모순된 사회 제도를 그려낸 것이다. 한 개인의 정의 획득을 위한 투쟁적 삶의 노력은 당사자의 행복뿐만 아니라 그에 동조하는 상대도 그 보상을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아울러 그들의 억눌린 인생이 더 이상 타의에 의해 소모될 수 없음을 드러내어 누구나 고유한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주목한 것이다. 이처럼 임매는 내시 아내로 성을 구속당한 채 불우한 일생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인간적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의성이 결여된 채 불가 계율에 얽매인 수도승의 이중적인 면모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남녀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새 인생의 창조는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임매의 인간성 긍정 의식이 드러난다.
4.불의와 맞서 싸우는 여성
이 작품은 서울 양반 집안의 과부가 하인에게 무고를 당해 어려움을 겪지만 끝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위기 극복 방안이 흥미롭게 서술되었다. 내용을 요약한다.
① 경성의 양반 집 딸이 청상과부로 지냈는데, 재산이 넉넉하고 용모가 반듯했으며 겉으로는 충실한 것 같았으나 그녀에게 음심을 품은 하인이 있었다.
② 그는 마님이 자기와 사통한 것처럼 이웃 사람들에게 흉계를 꾸몄는데 이웃도 그렇게 의심했다.
③ 이렇게 4․5년이 경과하여, 놈의 무고로 마님이 형조에서 심문 당하자 그녀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자신 의 신체 특징을 가르쳐주고 놈을 대질시키라고 요구했다.
④ 놈은 과연 그러하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 이는 마님의 계략에 의한 것으로, 그의 거짓이 명백히 드러 났다.
마님과 하인의 팽팽한 대결이 이 작품의 중심축을 이룬다. 서두에 못된 하인의 행동이 드러난다. 하인은 평소 성실히 일하여 마님에게 환심을 산다. 이즈음에 이르러 하인은 마님을 자신이 예비한 함정으로 서서히 유인한다. 놈은 마님과 자신이 몰래 정을 통한다는 무고의 함정을 만들어두고 세 차례에 걸친 술수를 부린다.
마님은 일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그와 상의했다. 때문에 매번 그를 불러 의논하였다. 만약 이웃 사람이 마님 댁 문전에 들어올 것 같으면, 곧 대화를 중단하고 안색을 바꾸고는 마님과 속삭이는 말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꾸몄다. 그러고 이른 새벽마다 비를 끼고 마님의 안채를 쓸고는 중문으로 나왔는데, 반드시 몸을 낮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흡사 보는 이가 없음을 엿보아 나오는 것처럼 하여 이웃 사람들에게 보이니, 이웃 사람들이 자꾸 그 짓을 괴상히 여겼다. 그리고 나서 오래 지나서 이따금씩 한둘 이웃 계집아이들과 쏘곤쏘곤하다가 남에게 들키면, 또 웃기만 하고 그 연유를 시원스럽게 말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웃 사람들은 더욱 마님을 의심하게 되어 점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하인은 마님과 자기와 사통하고 있음직한 일련의 고리를 연결해 두었다. 주도면밀한 그의 행동은 이웃 사람들이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로써 그는 죄의 그물을 마님에게 씌운다. 이것은 약 사오 년을 경과하면서 추한 소문으로 확대되었고, 놈은 형조에 다음처럼 마님을 무고한다.
제가 마님과 사통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요. 그런데 이제 와서 마님께서 갑자기 저와의 약조를 저버리지 뭡니까? 법조문에 의하면, ‘양반 집 딸로 음행한 여인의 경우 사통한 남녀에게 죄를 주되, 여자는 신분을 강등하여 노비로 삼아 간통한 남자에게 준다지요.이에 법사(法司)에서 두 남녀를 붙잡아 대질시키니, 하인은 모 월 모 일에 간통했던 사실을 낱낱이 말했고, 또 4~5년에 걸쳐 받았던 옷가지와 신발, 버선 등을 모두 모아 두었다가 사용하지 않고 증거물로 제시했다.
위에서 우리는 조선의 법조문도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배려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양반 집안 부녀자 음행 죄는 가혹하리 만큼 무겁다. 교활한 하인은 마님을 무고하여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이미 그러한 추문이 공인된다. 그는 마님이 인정상 자기에게 준 선물도 마님을 옭매는 족쇄로 역이용한다. 인정이 사장되고 패륜이 기승을 부리는 현장이다. 냉혹한 현실에서 마님을 도와 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마님은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과 신분을 지켜야 한다.
마님은 여태껏 갖은 수모를 겪어오다가 급기야 반전을 도모한다. 마님은 형관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좌우 사람들을 물리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릴 때, 화롯불에 데여 배꼽 아래 손가락 크기의 흉터가 있으니, 그를 불러 와 심문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형관은 그를 대질시켰는데 놈은 마님과 사통하며 늘 그것을 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다. 아무도 이 과정이 마님의 되받아치기 술수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실, 마님은 처음부터 그러한 상처가 없었으며, 형관에게 거짓으로 알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놈은 미리 매수해 둔 나졸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처럼 확신했던 것이다. 이에 마님은 신체검사를 거쳐 결백을 증명한다. 이로써 놈의 파렴치한 행각이 밝혀졌고 놈은 법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그 악당이 처벌됨으로써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임매는 종결부에서 마님의 의기에 대해 극찬한다.
임매는 이 작품의 평결 뒤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울 선비가 처와 못된 첩을 데리고 살았다. 간교한 첩은 본처가 일곱 달 만에 아이를 낳았다며 모함을 한다. 이에 본처는 친정아버지께, ‘신혼 첫날밤에 신랑과 자기가 동침했는지 여부를 물어 보세요’라는 서찰을 보내고 자결한다. 이 사건은 이 서찰이 실마리가 되어 그의 죄가 모두 밝혀진다. 서생이 형조에서 ‘첫날밤, 신부가 월경 중이어서 동침할 수 없었다’고 해명함으로써, 첩의 모함을 밝혀 그는 죄를 받게 되는 것으로 작품이 종결된다.
그런데 왜 임매가 과부 마님 사건이 종료된 후미에 이 유사담을 실어 두었을까? 그것은 바로 독자에게 이 두 가지 사례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처사인가를 일깨워주기 위함이라고 본다. 이것은 곧 인간의 생명과 명예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설정된 것이라 생각된다. 임매가 작품의 뒷부분에 짧은 삽화를 넣은 것은 본처가 억울한 누명을 썼으면 자신이 그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바람직한 처사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임매는 그녀가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음을 택해 결백을 입증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래서 마님의 의로운 처사가 돋보이고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은 표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임매가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다. 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의 명예에 치명타를 입히는 패륜 행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거기에 재치가 있게 대항하여 결백을 밝히고 불의를 징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5. 기녀의 고결한 사랑
기녀의 애환을 다룬 야담 가운데 신분을 초월하여 고귀한 사랑을 이룬 작품으로, 「정향전(丁香傳)」과 「소설(掃雪)」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다룰 작품 「의기(義妓)」는 두 작품에 비해 구성과 미학적 측면에서 뒤진다. 하지만 신의를 바탕으로 두 남녀가 재결합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① 경성의 장씨는 대궐 경비군인데 살림이 넉넉하고 성격이 호탕하여 재물을 물 쓰듯 허비했다.
② 그는 장성(長城) 기녀의 미색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은 거지가 되어 더러는 굶어 죽었다.
③ 이에 장씨도 벼슬을 그만 두고 거지 생활을 했는데 그녀와 헤어진 지 반년이 지났다.
④ 이 소식을 접한 기생이 세 차례나 오도록 하여 그를 맞아들여 해로했다.
장공의 주색잡기는 가산 탕진과 식구를 이산하는 지경까지 몰고 간다. 전체 내용이 장공의 파산과 기녀의 재회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장공의 패륜을 공개하고 장성 기녀를 공격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다면, 서두에 소개된 장공 가족의 파탄 양상이 전체 작품을 주도해 종결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중반부와 후반부에는 장공 가족의 파탄에 대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서술 초점이 장공 가족을 몰락하게 한 기녀와 장공의 애정 행각이 불륜이 아니라는 점이 떠오른다. 그녀가 장공을 푸대접하지 않고 다시 받아들인 형상을 부각하는데 무게 중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작중 주인공은 기녀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남녀의 사랑에는 신분이나 빈천 따위가 전혀 장애 요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 파악된다.
기녀의 일반 속성은 가난뱅이 사내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장성 기녀는 남달랐다. 그녀는 세 차례에 걸쳐 수소문 끝에 걸인과 다를 바 없는 장공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녀의 첫 번째 두 번째 시도는 장공의 거부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공은 기녀의 근성을 익히 알기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거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해 장공은 급기야 그녀를 찾게 된다. 그녀의 정성어린 배려가 장공을 감화시킨다. 다음은 예문은 그녀의 양심적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녀가 곧장 달려가 그 손을 붙잡아 은밀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목을 껴안고 울며 말하는 것이었다.그 옛날 천금을 지닌 미소년이 어찌 이런 행색이어요?…… 그 많던 재산을 비로 쓸어버린 것처럼 다 없애고 아내는 달아나고 집안은 파탄케 되어 당신의 신세가 이 지경에 이른 건 첫째 원인도 저 때문이고, 둘째 원인도 그러한데 제 어찌 당신을 저버릴 수 있겠어요?
이어 그녀는 속물적인 일반 기녀와 자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언한다. 남녀간의 지고한 사랑에 빈부귀천이 상관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남녀간의 애정은 빈부에 상관하지 않는 법인데 당신께선 어찌도 그렇게 저를 꺼리시어 서로 정 끊기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셨나요?
이즈음 장공은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한다. 자기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단순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어쩌면 그는 지금까지 남녀의 고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재물을 탕진하기까지 늘 탕아로서 인생을 소모해 왔기 때문에 절실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는 가산 탕진과 가족 이산의 아픔을 겪지만 소중한 사랑을 얻는다.
기녀의 순수한 사랑이 그에게 전이되어 그 둘은 사랑의 삶을 완성한다. 그들은 이제 이해타산에 얽매인 수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장공은 더 이상 탕아가 아니며 그녀 역시 속물적 기녀가 아니다. 그들은 순수 자연인으로 돌아간 삶을 누린다. 이는 한쪽의 아픔을 수긍한 사랑이 개입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따라 상처 입은 그 반쪽은 점차 회복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룬다. 이에 대한 임매의 견해도 동일하다. 뭇 기녀의 일반 속성을 들어 그녀의 고귀한 사랑을 칭송한다.
대개 기생집은 불구덩이 같다. 예나 지금이나 바람둥이 어린 자들이 이곳에 이르러 그 몸이 여기에 빠지게 되면 패가망신하기 일쑤인데 그 사례를 어찌 일일이 거론할 수 있으랴? 그리고 가난뱅이를 꺼리고 부한 자를 따르며, 새 애인을 만나면 전에 사귀던 자를 차버리는 것이 기생들의 일반 모습이다. 때문에 전에 도탑게 쌓았던 정염도 언제 봤느냐는 식으로 내버린다. 비록 예전에 절친하던 남정네가 초라한 행색으로 추위에 떨며 그 기생의 문전에 와서 배가 고프다고 부르짖더라도 끝내 불쌍히 여겨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장공이 그녀로부터 돌아봄을 입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는 전기(傳奇)에 실린 기국(沂國) 부인의 경우와 흡사하므로 숭상할 만한 사례여서 이처럼 기록한다.
임매는 평어에서 일반 기녀의 생리를 소개한다. 반면 그런 부류에 비해 유별한 그녀의 행동은 숭상할 만한 사례라고 칭송한다. 때문에 이 작품은 재산을 잃고 빈 털털이가 된 탕아를 구제한 기녀의 형상을 부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매는 그녀로부터 종래 속물 근성을 탈피한 여성 형상을 발견한다. 즉, 뭇 남성과 사랑을 공유하는 기녀에게서도 고귀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는 곧 인간 개체를 소중히 보자는 임매의 휴머니즘적 발상이다.
6. 전투적 여성의 형상
여성 협객의 활약을 담은 작품이다. 처녀 자매는 부친을 살해한 계모와 간부(姦夫)를 죽여 원수를 갚는데, 복수 과정에서 전투적 여성 형상이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절대 권력의 횡포에 대해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는 여성인 「검녀(劍女)와 유사하다. 내용을 요약한다.
① 숙종 때 정시한(鄭時翰)이 원주(原州)에 퇴거하여 접장 노릇을 하며 지냈는데 비가 내리는 밤에 준 수한 검객 두 명이 찾아 들었다.
② 그들을 맞아 유숙케 했는데, 그들은 자매 사이로, 십 년 동안 검술을 익혀 부친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 고 했다.
③ 과연 그들은 그 날 밤, 인근 주막에 유숙하던 서울에서 온 행상 부부를 살해하고 사라졌다.
이 작품은 도입․그녀의 행동 묘사․평결로 구성된다. 실존 인물을 설정하여 두 자매의 투쟁적 행동 양상을 그렸다. 그런데 함께 자던 그들이 일어나 칼춤을 추자, 이에 놀란 정시한이 그들의 과거 내력을 물었더니 그들은 다음처럼 답한다.
그 두 사람은 흐느껴 울다가 한참 만에 울먹이며 답했다. 저희들이 이곳에 당도한 연유를 말씀드리자니 슬프고 분한 마음이 일어나며, 부끄럽고 증오스러운 마음 또한 깊습니다. 저희 둘은 쌍둥이 자매지요. 저희 모친은 불행히도 저희 둘을 낳고 돌아가셨는데, 계모는 몹쓸 여자로 이웃의 교생(校生)놈과 사통하고는 부친을 독살했지요. 그러고는 그 길로 간부와 타처로 달아났지요. 그러니 어린 저희들은 불쌍한 고아가 되었고 이웃 아주머니가 젖을 먹여 키워주셨지요.
두 자매의 불행은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출생과 함께 모친을 여의고 계모의 모진 학대도 당한다. 악한 계모가 간부와 눈이 맞아 부친을 독살하자, 자매는 고아가 된다. 자매는 이웃 아주머니의 배려로 목숨을 건진다. 불우한 그들은 억울하게 숨진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검술을 익히기로 작정한다. 그들은 경주에 검술에 능한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입산하여, 십 년 동안 검술을 익혀 여자 검객이 된다. 자매는 남자 복장을 하고 원수를 찾아 헤매다가 부친의 원수가 가까운 주막에 투숙한 정보를 입수하고 복수를 위해 잠복 중이라 한다.
사연을 들은 정시한은 의기에 감동을 받는다. 그는 어린 자매의 힘으로 그 일을 감행하기 어려울지 모르니, 자신의 종 가운데 기력이 장대한 사람 둘을 데리고 떠나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호히 거절한다.
두 자매가 의연히 답하는 것이었다.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들의 울분은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이미 죽기로 결심한 몸이고 일평생 부모의 원수만을 갚기로 작정했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저희 둘만 죽으면 되지, 어찌 남을 끌어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닭이 울면 이내 저희 둘은 떠날 터이니, 저희들의 말을 들어주세요.그러고는 칼을 메고 일어나더니 쏜살 같이 문을 나서는데 빠르기가 나는 새 같았다.
그들은 자신의 거사에 남을 끌어들여 괜한 피해를 받게 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이는 결국 원수를 그들 손으로 직접 응징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문면에 그들이 주막에 이르러 원수를 갚는 장면 묘사는 생략된다. 이튿날 정시한은 소문에 의해 그들의 보복 소식을 접한다. 지난 밤 주막에서 경성 장사꾼 부부가 낯모르는 괴한에게 피살되었는데, 괴한은 그 부부의 목만 베어 달아났다는 한다. 왜 목만 베어 갔을까? 목을 남겨두면 그들의 행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단 죽은 인물의 신원이 밝혀지겠고, 피살 연유가 밝혀질 것이기에 자매는 물증 자체를 제거한 것이다.
임매는 그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해당 부서에서 현장 검증을 한다는 명목으로 부친의 묘를 다시 파헤치는 불륜이 일어날까 염려해서 그렇게 했다고 단정한다. 그들이 정시한의 방을 나섬으로써 그들의 행동 묘사는 종료된다. 후반부는 임매의 장황한 평결이다. 결국 임매는 그들의 거사는 의리적 차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을 단순하게 남의 목숨을 앗아간 도적으로 간주하지 말라며 이 작품을 마무리한다.
무릇 이 같은 그들의 처사는 참으로 하늘의 이치와 백성의 도리 가운데 정도라고 할 만하다. 아! 그들을 도적으로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교훈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간 계모와 간부는 마땅히 응징 대상이기 때문에 자매의 처사가 권도 측면으로 처리된다. 그래서 임매는 그들이 주연급 인물이었지만 빈번한 출연을 자제시키면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장황한 논리로 변호한다. 이 점이 이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부상한다.
이 작품에서 사회의 암적인 요소를 축출하는데 있어 여성도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보고한다. 여성에게도 전투적 역량과 의기 발휘의 잠재력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역사 주도 역량이 남성에 국한된 게 아니라, 여성에게도 그런 요소가 내재하고 있음을 협객 자매의 형상을 통해 엿보게 된다.
7. 여성의 특기 수긍
이는 전주부(全州府)의 천민이며 오십 살 할미 의원의 활약을 주목한 작품으로, 그녀의 빼어난 의술을 소개한다. 전체 내용을 요약한다.
① 전주 고을에 의원 무당 할미가 있었는데 그녀의 의술이 신명해서 소문이 났다.
② 호남 감사 부인의 여종이 적호증(赤毫症)에 걸려 백방으로 치료했으나 효험이 없는 터에, 그녀가 처방 한 약제를 먹고 회생했다.
③ 뒤에 태의지사(太醫知師)가 감사를 만나러 왔다가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에게서 서투른 어의라 는 호통을 당해 진땀을 뺐다.
서두에 그녀의 의술은 학습하거나 일반 의서를 참고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는 의술을 자득했다고 한다.
호남 전주 고을에 의원 무당이 있었다. 그녀의 신통함은 자칭 신라의 손학사(孫學士)라고 했으며, 기헌(歧軒)의 의술에 능통하다고 했다. 이따금씩 향촌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병자들을 돌봐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처방은 고금 의서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할미 의원의 신분과 역할을 소개한다. 그녀는 역대 명의의 의술을 손수 체득했다고 자부한다. 할미는 일정한 의술 교육받지 않았지만 자득의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푼다. 그 처방도 기이한데 이는 역대 유명한 의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녀가 태의지사를 만나게 된 계기는 감사 부인의 여종을 치료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종은 적호증 증세로 뼈가 앙상한 채 죽게 될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그녀의 처방인 오지탕(五枝湯)을 복용해 죽던 목숨이 살아난 터이다.
이 소문이 관아에 자자했을 것이고, 이 소문이 전라감영에 들른 태의지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와 태의지사가 만나게 된 것이다. 당대 최고의 전문의와 촌뜨기 무면허 돌팔이 할미 의원의 첫 대면이다. 이 작품에서 이들의 대면 양상이 압권이다. 어의가 촌뜨기 할미 의원을 무시하다가 그녀의 조리 있는 논법에 말려 혼이 난다. 여기에 주제 의식이 담겨 있으므로 예문이 길지만 인용한다.
이에 의원 무당이 부름에 응하여 이르러 뜰아래에서 두 번 절하였다. 그녀의 나이는 오십쯤 되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앞이마는 쩍 벌어졌다. 장대 같이 큰 키에 버썩 말랐으니 모양이 괴상하였다. 김 지사가 묻는 것이었다.네가 의술에 신통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그러하옵니다.김 지사는 냉소하며 비웃었다.가소롭구나. 네가 어찌 의술을 안단 말이냐?그녀는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서서보고는 받아쳤다. 의술만은 오직 제가 능합니다. 대감 같은 분은 어려서 [입문(入門)]․[보감(寶鑑)] 같은 의서를 외우셨지만, 지금은 아득하게 한 자도 아는 게 없겠지요?그러자 김 지사는 발끈 화가 나서 꾸짖기를, 천한 계집이 어디서 행패냐?라고 하니, 그녀가 급히 “당신네들의 죄는 죽어 마땅한데, 그런 사실을 아십니까? 선왕의 환후는 당신네들이 약제를 잘못 써서 승하하게 했으니, 대개 현종(顯宗)께선 항상 고열로 고통을 겪으셨지요? 심하시면, 가슴 사이가 답답하고 용안은 붉어지셨지요? 그렇게 되면, 내원(內院)의 여러 어의들은 잡다하게 열 내리는 약제를 올렸지만, 그 증세는 조금도 차도가 없으셨지요? 그러다가 결국 승하하시게 했으니, 당신이란 사람은 수의(首醫)의 자격으로 시종 적합한 약제 쓰기를 주장했던 자가 아니요?김 지사는 이 말을 듣고 점차 풀이 죽어 외면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가 풀이 죽은 것을 보고는 곧장 팔을 걷어 부치고 면전에서 대들었다.의원이 된 자는 비록 상민이나 천한 사람들의 병이라 할지라도 참으로 명확한 소견이 없이는 함부로 처방할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상감마마의 환후에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선왕의 환후는 상한(傷寒)이 만성화된 것인데, 그것을 느긋하게 풀어드렸더라면, 완쾌하셨을 것인 데도 신열을 내리는 약제는 왜 썼느냐? 이제 그것을 탓해도 소용이 없지만,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징험을 삼으려 함이다. 너의 죄는 절박하여 용서받기 어려운 바인데 그 죄를 자인하지 않은 채, 후한 복록을 누리고 사양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돈이며 패물에 쌓여 네 마음을 안일하게 하고서 어찌 몹쓸 소리를 지껄이느냐?호통을 치는 고함소리와 눈빛이 불빛과도 같았다. 그리고 팔을 내저으며 발로 땅을 차는 기세는 두렵고도 몹시 사나왔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 가운데 불의의 호통 때문에 놀라 비실비실 피하는 자도 있었다. 이에 목사공(牧師公)이 급히 종들을 불러 그녀를 대문 밖으로 내쫓게 했다. 김 지사의 얼굴은 진땀에 배였고 입은 떡 벌어진 채 할 말을 잊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다음처럼 말하고 얼버무렸다.허참, 큰 욕을 당할 뻔했네.
위 인용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어보면, 첫째 단락에서는 할미와 김 지사의 대응이 발전되는 단계이다. 할미의 외양 묘사가 퍽 흥미롭다. 장대같이 큰 키․툭 튀어나온 광대뼈․깡마른 체구는 하반부에서 김 지사를 압도하기에 적절한 소도구이다. 그녀가 자신을 업신여기는 어의의 자존심을 건드림으로써 팽팽한 긴장 관계를 조성한다. 즉, 김 지사의 머리통에는 의학적 지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중반부에서 그녀는 김 지사를 집중 공략한다. 그가 현종의 약제를 담당한 최고 책임자로 실책한 점을 지적한다. 그녀의 집요한 추궁은 김 지사를 완전 압도한다. 승세를 포착한 그녀는 평소 자신이 지녔던 의원관을 피력한다. 의원이 된 자는 정확한 진단에 따른 적합한 처방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진으로 현종을 승하케 한 그의 죄상을 고발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실책을 느끼지 못한 그를 준열히 꾸짖는다. 애당초 김 지사는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의원이라고 자부하던 그의 명성이 무명의 할미의원에게 완전히 실추된다. 임매도 이 점을 동의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주도적 인물은 할미 의원이다. 그녀의 양심적 선언은 당대 최고 의원인 김 지사의 허상을 들추어내고 만다.
일개 무명 의원의 담찬 활약이 과대 포장된 어의를 공격하여 시청자들에게 그 진위의 선택권을 부여한다. 미약하게 느꼈던 할미의 양심적 호소는 더 이상 미약할 수 없으며, 거기에 권력도 용인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때문에 이 작품은 여성에게 주어진 기예를 인정하고 그것이 사회에 선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를 희구한 점에 그 주제 의식을 부여할 수 있다. 이는 현대적 의미로 여성의 사회 역할 분담이나 현실 참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8. 마무리
임매는 조부 임방의 취향 못지않게 여성들의 행동에 큰 관심을 두어 전체 작품의 1/3에 분량인 아홉 편에 여성 인물의 형상을 담았다. 지금까지 논의된 여성 인물의 다양한 형상 양상을 요약한다.
「치농」․「곤경」은 남성 편향적 성문화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 작품이다. 여성에게도 성에 대한 애착은 남성과 동일한 것임을 그려내었다. 인간 고유의 인권과 연결된 성이 기득권을 선점한 남성에 의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점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이는 결국 여성의 성욕도 인정되어야 하며 그 역시 인간성 긍정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처」는 내시 아내와 승도의 인간적 삶에 관심을 둔 작품이다. 개인의 고유한 성 문제가 사회의 물리적 제도로 억압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그녀의 의지는 묵살된 채, 당대 모순 제도에 의해 거세된 인간에게 맡겨지기를 거부하고 인간적 삶을 획득한 그녀의 형상을 통해 내시 아내와 승도의 인간적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했다.
「청원」은 무고 당한 과부의 활약을 주시하여 여성이라고 해서 그에게 해를 끼치는 대상에게 굴종하는 것이 미덕이 아님을 강조한 작품이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주체 세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불의에 항거하여 개인의 안정을 도모하는 여성 형상이 돋보인다. 결국 자신의 명예와 신분에 치명적 손실을 입히는 패륜에 대해 요령 있는 대응과 항거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의기」는 기녀의 고결한 사랑을 드러낸 작품이다. 그녀는 일반 기녀의 속성과 달리, 낙척한 장공을 돌아보아 그로 하여금 재기하도록 협력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종래 요물로 여겨오던 기녀에게서도 고귀한 사랑이 회생될 수 있음을 확인하여 냉대 받는 인간에게 고귀한 존재 의미를 부여했다
「여협」은 전투적 여성 형상을 담은 작품이다. 계모와 놀아난 간부에 의해 살해당한 부친의 원수를 갚는 과정에서 이들은 자력으로 원수를 갚고 표연히 떠나는데, 이 작품을 통해 사회의 악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전투적 여성 형상을 들어 여성의 잠재 역량을 고취하였다. 전투적 여성 형상에서 사회의 불안과 암적 요소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여성도 일정한 몫을 감당할 수 있음을 인식케 하여 여성의 축적된 역량을 과시했다.
「의무」는 여성의 특기를 수용한 작품이다. 전주 고을 무명의 할미 의원이 어의를 압도하는 과정을 거쳐 여성의 특기도 이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특히, 그녀의 어진 의술 행위가 아름답게 그려졌다. 반면에 허식적인 당대 어의의 비리와 실책을 공개했다. 이로써 여성의 잠재 역량을 사회가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음을 보고했다.
이러한 작품에서 임매의 여성관이 드러난다. 그가 여성의 다양한 삶을 주목한 점은 그들에게도 인간적 삶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기예와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역시 조선 후기 근대를 지향한 도도한 물결의 일면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원걸, '잡기고담 연구' [안동한문학논집] 제5집, 안동한문학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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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걸, [조선후기 야담의 풍경, 도서출판 파미르, 2006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