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만 슬픈 이름 게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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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직업인 게이샤. 이들의 화려한 기모노와 그로테스크한 화장은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는 달리 대부분의 게이샤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게이샤의 목표는 언제나
완벽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낡은 2층짜리 목조 가옥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교토(京都)의 게이샤 촌(村). 집집마다 비밀스러운 것을 감추고 있는 듯 창문이 꼭 잠긴채 주렴(珠簾)까지 드리워져 있어 밖에서는 도저히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예전에는 부근에 성벽과 묘지가 있어서 출입을 통제했지만 이제는 누구든 쉽게 이 곳에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게이샤가 있는 레스토랑이나 찻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황혼 무렵 검은색 승용차 몇 대가 골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짙은 색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이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두터운 커튼 뒤로 숨어 버릴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가려진 세계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운좋게도 유리꼬와 마유미를 만난 덕분에 나는 게이샤의 일상과 본질을 깊숙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유리꼬는 교토에서 꽤 유명한 게이샤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오카미상」이라 불리는 2명의 완숙한 게이샤, 4명의 「마이꼬」(수련중인 어린 소녀), 그리고 이제 겨우 12세인 두 명의 「다마고」(달걀이라는 뜻으로, 일본에서도 나이 어린 게이샤 지망생을 우리나라의 「영계」처럼 달걀이라고 부른다)등 모두 8명을 거느리고 있다. 유리코의 집 분위기는 화류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여학생 기숙사에 가깝다. 올해 48세인 유리꼬는 마음씨가 따뜻하고 유머가 풍부하며 사교적이다. 그녀는 그동안 내가 일본인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게이샤를 밀착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는 두말 않고 흔쾌히 내 제의를 받아들여 주었다.
마유미는 도쿄(東京)에서 가장 번창한 게이샤 촌 중 한 곳에서 일하는 무희이다. 그녀는 짧은 영어와 몸짓을 동원해 나에게 이 바닥의 일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했다. 손님에 따라 언제 어느 정도로 큰절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면서 내가 하는 절이 부족하다 싶을 때면 직접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눌렀다. 마유미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데다 몸매도 도저히 54세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군살 하나 없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동료들을 설득해, 내가 감히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은밀한 곳까지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1751년 교토의 어느 유곽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게이샤는 수백 년에 걸쳐 섹스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접대로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원래 게이샤의 원조는 남성이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이 직업은 완전히 여성만의 아성이 되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게이샤와 매춘녀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접대를 하는 예술까로 평가받는 게이샤는 고객과 잠을 자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만약 같이 잔다고 해도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 게이샤의 고객은 일본 재계와 정계의 내노라 하는 실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게이샤는 일본 남자들의 출세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 기적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성들은 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나이 많은 게이샤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부모를 만나 남에게 팔리거나,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게이샤나 창녀의 딸로 태어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거나 스스로 살아 있는 문화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다. 이것은 게이샤의 긍지이기도 하다.
게이샤의 세계는 감각적이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피부, 쌀겨로 만든 돗자라, 그리고 뜨거운 곡주와 진수성찬. 애달픈 현악기 소리와 최면을 거는 듯 일정한 박자로 연주되는 북소리. 지독한 일벌레인 일본 남성을 유혹하는 것은 무엇일까? 게이샤가 있는 밤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엄격한 통제와 무자비할 정도로 긴장의 연속인 사무실에서의 탈출이다. 냉철한 이들의 이성을 유혹하는 것은 알코올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만큼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게이샤는 그들 옆에서 교태를 부리거나 시중을 들고 부드럽게 에무하며 낮 동안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 게이샤는 남자의 심복이나 다름없다. 거기서는 남자에게 해가 되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매일 밤, 매주 혹은 매달 이어지는 이 「카타르시스」는 남자들이 홀까분하게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준다. 게이샤는 한 남자의 사치품이자 사회적·경제적 능력을 증명해 주는 상징이다.
밤의 모임은 매우 자유롭게 진행되는데, 고객이 들어오면 게이샤는 간단하게 형식적인 절을 한 후, 옆에 앉아 연신 웃으며 안주를 먹여 주고 술을 따른다. 게이샤 한 명이 일어나 춤추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그녀의 빼어난 자태에 넋을 잃게 마련이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나면 남자들은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혀가 꼬부라지는 등 분위기가 질펀해진다. 이 때 게이샤 한 명이 선정적일 정도로 빨간 체리의 꼭지를 입에 물고 있으면 손님 한 명이 그 체리를 따 먹으며 즐거워한다. 한쪽 구석에는 나이 많은 게이샤가 사미센(三味線, 줄이 3개이며, 목이 길고 줄받이가 없는 일본의 현악기)을 뜯으며 외설적인 게이샤 노래를 부른다. 흥분한 손님이 거칠 게 게이샤를 끌어안고 춤을 추며, 정성들여 다듬은 그녀의 머리를 뭉개고 기모노 속으로 거칠 게 손을 집어 넣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 방 한쪽에는 바닥에 쓰러져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벼운 여름용 기모노를 입은 2명의 남자가 서로 엉켜 뺨을 비비며 춤을 춘다. 마치 사무라이처럼 이마에 끈을 묶은 웨이터가 춤추는 남자 중 한 명의 옷을 벗긴다. 다들 짐짓 모르는 체한다. 사케(쌀로 빚은 일본 술), 맥주, 위스키가 흘러 넘치고 남자들은 낮 동안의 일을 모두 잊은 채 만족에 젖어 술에 취하는 것이다.
교육을 마친 「마이꼬」는 사교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지만 대화의 흐름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단지 모임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술자리가 다 끝나고 손님이 자리를 뜰 때 게이샤는 밖으로 나가 비틀거리는 손님에게 『오오끼니(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다. 손님을 태운 리무진이 떠나면 미소를 지으며 잘 가라는 눈짓을 보내다. 그리고 나면 그들의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계산은 며칠 후 우편으로 이루어지는데, 손님이 5명일 경우 100만엔(1,000여 만원) 정도가 된다. 게이샤는 보통 하루 저녁에 한 두 개의 모임에 참석하고 한 달에 이틀을 쉰다. 감시도 없고 계산 문제로 실랑이를 벌여 밤의 정취를 깨뜨리는 일도 없다. 그야말로 완벽하다.
게이샤는 철저하게 한 남자의 기호품이 되고자 노력한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분을 바른 게이샤의 얼굴은 손님들이 자신의 욕망과 환상을 마음대로 그려 넣을 수 있는 캔버스와 같다. 매혹적인 눈과 입술은 정욕의 상징처럼 보인다. 게이샤는 아르답지만 슬프게도 이름이 없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은 모조리 지워진다. 새하얀 화장은 언뜻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풍긴다. 특히 대낮에 보면 마치 유령 같아 보인다. 하지만 촛불 아래에서는 아주 신비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얼굴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화장은 나이를 숨겨 주기도 하는데, 10대로 보이는 게이샤가 실제로는 성숙한 여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게이샤에서 「게이」란 일본어로 「예술로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 일본 미학에서 예술이란 포장이다. 즉 일상생활의 모습을 감추고 철저히 의식화(儀式化)하는 것이다.
교토의 게이샤 촌에서는 딸, 어머니, 고모, 조카 등 여러 세대의 게이샤가 함께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 「오카미상」(가장 나이가 많은 게이샤)은 대모로서 전권을 장악하고 있다. 급속한 서양 문화의 유입으로 요즈음에는 게이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자 하는 소녀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일단 이 길로 들어서겠다고 마음먹을 경우 옛날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하거나 일본 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입문하는 것이다.
새하얀 얼굴, 새빨간 입술, 그리고 펄럭거리는 넓은 소매의 기모노를 입은 어린 소녀들에게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진다. 골짜기처럼 굽이치는 아름다운 머리모양을 만들기 위해 게이샤는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린 게이샤가 이런 머리를 몇 년 하고 나면 정수리가 벗겨지게 된다. 마이꼬 사이에서 이것은 「영광의 상처」로 불린다. 게이샤는 신체적인 고통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몇 시간씩 꼼짝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통스러워도 절대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된다. 꿇어앉는 자세는 전통을 잘 지키는 일본 여인들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게이샤는 잠을 잘 때에도 공들여 장식한 머리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밀알을 잔뜩 채우고 천으로 겉을 감싼 높은 목침을 베고 자야 한다. 나이 든 게이샤는 한결같이 옛날에 비하면 요즘의 훈련은 하나도 혹독하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스승이 마이꼬를 훈련시킬 때, 한겨울에 문 밖으로 쫓아내 손가락에 피가 날 때까지 사미센을 연주하고 목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10명의 마이꼬 가운데 9명은 수련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있다. 수련 과정을 잘 견뎌 내야만 마이꼬에서 진정한 게이샤로 변신할 수 있다. 진정한 게이샤가 되면 더 화려하고 세련된 기모노를 입고 화장도 한층 품위있게 한다. 이때부터 목에는 매듭을 달고, 머리에 있던 「영광의 상처」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게이샤의 움직임은 완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풍긴다. 그들은 다도(茶道)뿐만 아니라 전통 무용, 사미센 연주, 일본의 전통 가요, 그리고 서예를 연습한다. 그들의 목표는 언제나 완벽이지만 그것은 죽을 때까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개 일본 남성들은 대화를 통해 게이샤의 노련미를 판단한다. 게이샤는 춤과 연주는 기본이며 화술도 뛰어나야 한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스모, 연극 등 최신 화제는 물론 음담패설까지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게이샤는 재력이 든든한 사람이 고객으로 걸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육도 시켜주고, 값비싼 기모노도 사주며, 해외 여행도 함께 가고, 집이나 가게 하나 정도는 기꺼이 마련해 줄 수 있기를 원한다. 어쩌다가 고객의 아기를 낳게 되면 자신의 아기로 인정하고 양육비를 받기도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운이 좋아 고객이 독신이라면 결혼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그들은 미련없이 게이샤 세계를 떠난다.
게이샤의 평균 나이는 40세 이상이다. 나이가 많은 게이샤는 게이샤 집을 직접 운영하며 춤과 음악을 지도하고 시(市)에서 실시하는 연례 공연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80세가 넘는 고령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무거운 가발을 쓴 채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전통 가부끼(歌無伎)를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