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4장 연구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성경 말씀이 다 와서 만나는 결론의 책이 계시록이다. 이 책이야 말로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책이다. 창세기는 인류가 어떻게 에덴 동산을 잃어 버렸으며 그 결과로 이 지구가 얼마나 타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이 지구가 그 잃어 버렸던 에덴 동산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서론에서 밝힌 것처럼, 계시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제 1부는 1장 ~ 11장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의 초대 교회서부터 예수 재림 때까지의 지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교회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일곱 시대로 나누어서 상징적인 언어로 예언하고 있는데, 그것이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예언들이다. 이 예언들은 교회안에서 일어날 사건들과 상태들, 그리고 교회 밖 세상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하여 일곱 시대들로 나누어 순서대로 예언되어 있다.
제 2부는 12 장 ~ 22장으로, 이 후반부 예언은 그 일곱 시대들 중, 마지막 시대에 해당하는 교회와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 교회 밖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계시록 예언의 제 1부가 초대 교회서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일곱 시대로 나누어서 사건별로 예언되어 있다면, 제 2부는 이 지구의 마지막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예언되어 있는데, 우리는 계시록 후반부가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마지막 시대 중에서도 그 마지막 시간에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왔다. 계속적인 이 예언 연구가 우리들에게 왜 우리가 정말 말세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4장에서는 계시록 4장과 5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예언을 연구할 것이다. 이 예언을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있는 곳을 들어가 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운명은 바로 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심판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1). 열린 문
* 계 4:1-5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뢰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여기보면, “하늘에 열린 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은 하늘로 향하여 가는 문이 아니다. 하늘로 들어 가는 문도 아니고, 하늘에 있는 문이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 오라는 초청이 베풀어진다. 요한이 제 1장에서 나팔같은 음성을 듣고 돌아다 보니, 하늘 성소에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것은 성소의 모습이었는데, 하늘 성소의 첫째칸이었다. 성소의 제도에서 뜰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의미하고, 금 촛대와 떡상이 있는 성소 건물의 첫째칸 성소는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늘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사역을 상징한다.
제 1장에서 요한은 그 하늘 성소 첫째칸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런데 4장에서는 하늘 문이 열리며 올라 오라는 초청이 주어진다. 여기서 이 문은 하늘 성소에 있는 문, 곧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문을 말한다. 이것은 하늘 지성소 안으로 들어 와서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라는 초청인 것이다.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
이미 성령의 감동하에 있는 요한이 더 많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하늘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이가 있는데...” 이 장면의 내용은 다니엘 7장의 내용과 꼭 같다. 단 7: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 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왕좌가 있는데라고 말씀하지 않고, “왕좌가 놓이고”라는 표현이 쓰여졌는데, 영어로는, “the thrones were cast down”로써, 계시록 4:2,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의 뜻과 같은 것이다. 이 뜻은 하나님의 보좌가 와서 놓여졌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보좌는 어디에나 베풀 수 있는 움직이는 보좌인 것을 알 수 있다. 에스겔의 계시에서 보면 하나님의 보좌는 움직이는 보좌였다. 왔다 갔다 하실 때마다 보좌가 따라 다녔고, 네 생물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보좌의 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에스겔 10장은 그 네 생물을 그룹 천사라고 한다.
3). 심판이 시작된 광경
그런데 왜 하나님의 보좌가 베풀어 졌을까? 그 이유는 심판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5장 1절에 두루마리 책들이 펴 있는 장면이 소개되는 것을 보아 이것을 알 수 있다. 단 9:9-10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이 책은 기록된 책들이다. 성경은 기록 책들을 펴고 심판하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또 다른 장의 말씀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계 20:11-3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게시록 외의 신양 성경에도 심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벧전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 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그런데 왜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를 믿는자들은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것은 심판을 받을 때에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
요한이 본 하나님의 모습은 다른 성경에 기록된 모습과 꼭 같다. 하나님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같다고 쓰여 있는데, 벽옥은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금강석처럼 맑게 빛나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붉은 홍보석 같은, 레이저 광선같은 빛이 비추어 나오는 광경을 요한은 본 것이다. 또 그 보좌는 무지개가 둘린 녹보석, 곧 에메랄드 같다고 쓰고 있다. 녹색은 은혜를 상징하는 색깔이며, 천연계의 색깔이다. 무지개는 햇빛과 비가 같이 어울릴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 즉, 무지개는 햇빛이 물방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가 없으면 무지개가 없다. 그것처럼 우리는 시련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무지개는 노아 홍수 후의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졌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같이 어울려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편 85장 10절에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라고 되어 있다. 사랑의 무지개가 두르고 있는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어울어진 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위하여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5).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
요한은 계시에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24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에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의로움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왕권을 상징하는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은 지상에서 구원받은 자들이다. 먼저 부활하여 승천한 자들이다. 계 5:9에 보면,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킹 제임스 성경 -"우리를"로 번역)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되어 있다. 언제 이들이 하늘에 올라 갔는가? 죽었다가 부활하여 올라갔다. 영혼만 살짝 빠져나와서 하늘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영혼 불멸설은 잘못된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서 부활 승천한 의인들이라는 것을 다음 성경절들이 증명한다.
마 27:50-53,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 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엡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 잡힌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또한 이십사 장로들은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받들어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이다. 옛날 이스라엘의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반열들이 24 반열(그룹)이었다. 계 5:8에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는 말씀이 있다. 그들이 향로를 들고 있는데 그 속에 성도들의 기도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배심원들(Jury)이다. 이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심판 하려면, 인간으로서 살다가 마귀의 시험과 유혹들을 경험해본 자들만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공정한 증인이 될 수가 있고, 공정한 심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6). 일곱 영
* 계 4:5 –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아시는 성령의 기능을 상징한다.
7). 보좌 주위의 네 생물
* 계 4:6~11 –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여기 보면,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다고 나온다. 이 말은 보좌를 가운데로 하고 그 주위에 있다는 뜻인데,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떠 받들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네 생물의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것을 살피는 기능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네 생물의 모습은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얼굴, 독수리 같다고 요한은 말한다. 그들은 쉬지 않고 찬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네 생물이 보좌 주위에 있을까? 그 이유는 네 생물의 특성, 곧 사자의 힘, 송아지의 인내, 사람의 지성, 독수리의 신속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신학자들도 이 네 생물의 속성을 예수님의 속성으로 적용하였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은 신약의 4복음에 표현되어 있다. 마태복음은 왕되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족보가 다윗 자손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므로 왕을 상징한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셔서 섬기시는 예수를 나타내었다. 마치 그것은 종처럼 봉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온유하고 섬기는 송아지로 표현한 것과 같다. 또한 누가복음은 그리스도를 인간 예수로 표현하고 족보가 아담의 아들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인자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생물의 특성과 들어 맞는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영원한 말씀이시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 즉 신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독수리로 상징한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네 가지 특성을 다 지니고 있는 네 생물은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유대인들의 역사책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칠 때에 사방에 네 깃발을 꼽는데, 그 깃발은 사자, 송아지, 사람얼굴, 독수리 등의 네 깃발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특성을 나타내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보좌 주위에서 항상 쉬지 않고 찬양을 하고 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감격하여 그들은 쉬지않고 찬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