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동우회지12호
(2018.1.16신년교례시 배포)
이사 法田 이정근
유난히 길었던 추석연휴를 맞아 가야산, 비슬산과 팔공산자락, 멀리 지리산과 고창 선운산 둘레길을 아내와 드라이브하며 때론 등반산책을 하다보면 길옆으로 자연산 송이판매 입간판, 혹은 송이박스를 많이 보게 된다. 송이가 귀한 흉년이라고 하나 아마도 송이철인가 보다.
요즘은 동남아의 열대성 과일이나 미주 등 귀한 농수산물이 수시로 몰려와 제철이 없을 정도로 먹거리가 풍성하다. 그런데 그 귀한 송이도 해외물결을 타고 중국산, 북한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하여 거래되고 있다니 안타깝단 생각이 든다. 듣자하니 한 밤중에 트럭이 산동네까지 들어와서는 송이박스를 거래처 이곳저곳 내려주고 간다는 말에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옛적 무례한 행동을 하면 철부지라고 어른께 꾸지람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철부지(節不知)’는 여름에 겨울옷을 입는다던지, 겨울에 맨발로 다니듯 철도 모르는 어리석은 아이들을 말하지만, 사철 풍족한 전천후 멀티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 있고 보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 세태를 실감하면서 향수에 잠기곤 한다.
시청 초임사무관 근무당시, 퇴근시간 무렵에 과 주무로부터 저녁식사 모임이 있다는 전갈이 왔다. 모 팀장의 전입신고 겸 단합대회이니 꼭 참석해야 한다고 다짐을 받는다. 출입문 쪽 재실등에 국장실 불이 꺼졌을 때 과장으로부터 “자, 일찍 나갑시다.” 한다. 나는 토지보상관련 업무를 연찬하고 있었는데,누군가 오늘 멋진 송이 맛을 보여 준다며 선동하는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술자리라면 썩 내키지 않는 입장이라 흔히 피해왔지만 할 수없이 피동적으로 따라 나섰다.
평소보다 이른 퇴근으로 과팀장 및 주무 등 5명이 중앙역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말 많고 민원 많던 중앙지하상가를 지나면서 새롭게 단장된 상가를 접하니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정액권중 2,000원 남은 전철표를 개찰구에 넣고 현충로역에 내렸다. 지하철이 적자로 운영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꽤 많아 보인다.
저녁식사 자리는 급조된 도깨비 모임만큼 멋졌다. 말로만 듣던 임금님 진상에나 오를 송이를 실컷 먹었다. 팔공산에서 3kg를 직송해 왔다는 친척인 듯 후덕한 식당아주머니의 말과 함께 시커먼 솟뚜껑 위로 소고기와 자연산 송이가 푸짐하게 양송이처럼 소복이 올랐다.
어린 시절 선친이 고향 뒷산에서 송이 두개를 땄다며 신나게 들어오시고는 갈기갈기 찢어 같이 따온 싸리버섯과 피버섯을 북어무국에 넣어 온 식구가 향기를 음미하며 왁자지껄 조반 먹던 기억이 새롭다.
송이하면 그 진한 향취가 그리워지는 터라 이처럼 부담 없이 즐긴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는가! 할 정도로 흥분했다. 눈치코치 안보고 참기름 소금장에 하염없이 찍어 먹었다. 그것도 양송이나 새송이도 아닌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팔공산 자연산 송이를 말이다. 잘 먹지 못하는 참소주도 몇 잔 걸치고 체면도 없이 먹은 것 같다. 송이 고맙게 잘 먹었다며 인사하니 “별말씀, 내가 있는 건 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C팀장이 마련한 자리가 걸긴 걸었다. 동료직원 덕분에 돈독한 동료애를 느끼며 고귀한 팔공산 송이를 많이 먹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음은 물론, 두고두고 되새기는 큰 추억거리가 되었다.
몇 해 전에 신천동 사는 처형이 송이 맛을 보라며 팔공산 송이 7개를 갖고 왔을 때, 그토록 귀한 송이가 나에게 쉽게 올 리가 없어서 진짜송이가 아니라고 우기다가 지금도 두고두고 서운하다는 소릴 듣곤 한다. 뒤늦게 사과하고는 송이로 술을 빚어 자랑삼아 나눠서 먹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지난 추석 밑에 처형네로부터 팔공산에 부부등반을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팔공산 형님소유의 산자락 옆길로 줄을 서 따라가다가 발을 헛디뎌 나도 모르게 버섯을 밟아버렸는데 아니, 커다란 송이의 갓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나는 봐도 그냥 지나칠 그 귀한 송이가 산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되었으니 웃기는 일이다. 처형은 부러진 송이를 보고 애석하게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내발 옆에서 두 개를 더 찾아내 송이가 3개가 되었다. 우리는 온 산에 송이향취의 기운을 느끼며 부자가 된 듯 산자락 바위에 걸터앉았다. 소나무숲 사이로 신선한 공기와 솔 냄새를 맡으며 밟힌 송이 하나를 잘 닦아 찢어서 맛보는 재미란 특유의 맛과 향에 취한 듯 신선이 따로 없었다.
동료직원 덕분에 귀한 송이를 실컷 먹어 보았고, 팔공산에서 손수 딴 송이까지 맛보니 음식 중에서 송이만한 음식이 어디 있으랴! 하고 송이예찬론자가 된다. 송이란 녀석은 어떻게 먹어도 맛이 좋다. 불에 구워먹어도 좋고, 소금에 찍어먹거나 그냥 날로 먹어도 좋다. 게다가 송이가 들어가면 아무리 싸구려 음식이라도 고급음식으로 격상된다. 된장국에 송이가 들어가니 송이된장국, 버섯탕에 송이를 넣으면 그윽한 향과 더불어 음식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송이칼국수, 송이불고기, 송이전골, 송이비빔덮밥, 송이돌솥밥 등등
인적이 드문 심산 팔공산 소나무 밑 그늘진 곳에 바람과 비를 맞으며 신선하게 자란 송이를 씹는 촉감과 향기는 참으로 감미롭다. 그 무엇으로 그 맛과 향을 견줄 것인가! 중국요리가 많다한들, 프랑스 요리가 품위 있다한들 한국산 송이에 비할 것인가, 맛에 취하고 향에 반하다 보면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누군가 모양은 양물을 닮았고, 향은 성숙한 여인처럼 그윽한 내음에 가깝다고 했듯 순수하고 오묘한 맛이 천하의 진미라 할 것이다. 야생버섯의 송이는 ‘하늘이 내리고 신선이 먹는다.’는 말처럼 고귀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특히 송이는 인공재배가 안되고 항암효과와 면역력을 높이며 항균 성분까지 있다니 그 자체만 하더라도 최고의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송이는 25~50년 수령의 소나무에서 잘 자라지만 팔공산 일대 나무의 수령은 50년 이상으로 지나치게 우거지면서 송이버섯의 번식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서글픈 생각이 밀려온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송이의 생장 자연환경이 열악해 생산량이 저조하고 흉작이란다. 그러나 송이 제철이 돌아왔으니 올 가을이 다가기 전에 늘 같이하는 아내와 함께 귀하디귀한 송이 맛을 제대로 음미해 보아야겠다. 팔공산송이의 추억도 기릴 겸, 입안에 한가득 향기로운 감칠 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힐링도 하면서 말이다. 法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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