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6. 27
2000년대 중반에 읽은 한 국내 문학상 수상작은 아픈 아내를 떠나보내는 중년 사내의 뒷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사내가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해 방광 비우기를 힘들어했다는 대목만 흐릿하게 기억난다. 방광에서 몸 밖으로 오줌을 내보내는 길목에 위치한 전립선이 부으면 마땅히 배설되어야 할 노폐물이 방광에 고일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광은 노폐물을 잠시 저장하는 창고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먼저 생명체가 물에 녹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나트륨이나 염소, 인과 같은 무기 염류를 논외로 치면 수용성 폐기물의 대부분은 요소와 암모니아다. 이들은 모두 질소를 함유하는 화합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장치가 동물 생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잠시 인체 생리학 교과서를 참고해보면 주로 요소의 형태로 배설되는 질소의 양은 하루 평균 10g 정도라고 한다. 굳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 몸은 “구관이 나가면 신관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6.25g의 단백질이 1g의 질소에 해당하기 때문에 10g의 질소를 벌충하려면 우리는 얼추 하루 평균 60g 정도의 ‘신관’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 소화 효소로 분해된 단백질은 스무개 아미노산의 형태로 우리 몸 안에 들어온다. 이 스무개 아미노산의 운명은 크게 세 가지로 갈린다. 우선 포도당처럼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거나 혹은 이산화탄소가 떨어져 나가면서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 같은 신경 전달 물질로 전환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동적으로 순환되는 단백질의 구성 요소가 되는 비율이 가장 높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약 200종의 세포는 영원히 살지 못한다. 120일을 사는 적혈구도 있지만 소장의 상피세포는 3일을 넘기지 못한다. 간세포도 반년에서 일년 사이에 새것으로 교체된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간이 매일 새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그저 허언은 아닌 것이다. 또한 물을 제외하면 이들 세포 무게의 절반 가까이가 바로 단백질의 몫이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동안 단백질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분해되는 것이다. 바로 그 역동성이 방광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질소 10g으로 나타난다.
질소를 순환하는 일이 포유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물고기는 질소가 한개 포함된 암모니아 형태로 노폐물을 처리한다. 암모니아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간에서 만들어지는 즉시 몸 밖으로 배출되어야 한다. 콩팥과 연결된 총배설강을 통해서다. 하지만 인간은 에너지를 써서 암모니아나 질소 노폐물을 요소로 바꿔버린다. 요소는 암모니아에 비해 독성이 적기도 하지만 질소가 두개 포함된 요소를 만드는 일은 또한 질소를 농축시키는 효과도 갖는다. 이런 방식으로 포유류는 물고기에 비해 노폐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이는 육상에서 사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물고기와 달리 하늘을 나는 새는 따로 오줌을 싸지 않는다. 이들은 콩팥에서 요산을 만들어 소화기관으로 직접 보낸다. 따라서 방광도 없고 똥오줌의 구분도 없다. 나는데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닐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포유류는 무슨 이유로 거추장스러운 기관 하나를 더 만들어 무거운 물을 차고 다니게 되었을까? 정온성인 포유류의 체온 조절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방광이 발달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오줌을 질질 흘리고 다니면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이 클 것이기에 방광에 오줌을 보관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은 방광이라는 중간 기착지 없이 콩팥이 외부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면 세균이나 기생충에 감염될 확률이 커질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면역계가 있는데 콩팥을 보호하기 위해 굳이 방광이라는 독립된 기관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해부학자들도 있다. 요관을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정자가 다치지 않게 산성인 오줌을 보관할 필요가 있어서 방광이 발달했다는 가설도 있다. 그렇지만 이 가설은 여성의 생식기관 해부학도 고려해야 일반화가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방광을 그저 항문의 괄약근쯤으로 여겨 인간의 사회적 품위 유지를 위해 진화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지에 오줌을 지리지 않기 위해 수천만년 전부터 방광이 진화해 왔으리라고 믿기는 쉽지 않다. 또 개나 돼지, 아니 원숭이가 애써 오줌을 참으리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1979년 벤틀리라는 미국의 과학자는 사막에 사는 포유동물이나 양서류가 체중에 비해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서 방광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저장된 무기 염류가 다시 혈액으로 흡수될 수 있기 때문에 방광이 삼투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럴듯한 주장이다. 이렇듯 방광에 대한 논의와 주장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방광은 물질대사 폐기물과 함께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하는 흥미로운 장소이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의 눈길이 좀체 닿지 않는 인기 없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여기저기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한데 나는 방광이 왜 거기에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