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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신 예수는
사9,1-7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1. 2022년 성탄절입니다. 어김없이 금년에도 성탄절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성탄절의 은혜와 복이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탄절 인사를 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같이 주님 만나러 가요!’ ‘꺾이지 않는 성탄절의 마음 가지세요’ 오늘 기쁜 성탄절에 함께 은혜 받을 말씀의 제목은 ‘우리에게 나신 예수는’입니다. 우리에게 나신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오셨는지를 성경 사9,1-7을 통해 알아보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2. 먼저, 1-2절 말씀을 봅니다.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구원자로 오신 빛이신 예수님은 어두움 속에 있던 사람들을 그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게 하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 받던 자들, 멸시를 당하게 된 땅에서 살던 사람들, 흑암 속에서 절망 중에 살던 백성, 슬픔과 우울과 무기력한 상태의 그늘진 땅에서 거주하던 자 등으로 표현된 본문 말씀의 흑암 속 상황은 세상 사람들과 이웃 나라로 부터 이야기 거리와 우스갯거리로 조롱을 받으며 절망 속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지칭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망적 형편은 6,13절a에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당장도 서글프고 괴로운데 그 중에 90퍼센트가 없어지고 10퍼센트만 남아있는 상황이 되었을지라도 그 남은 인원도 다 절망과 흑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나중이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절망의 끝을 알 수 없는 삶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그 흑암과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바로 오늘 9,1-2절입니다. 어둠을 완전히 밝힐 큰 빛이 나타나 비추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6,13b에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는데,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와 같은 희망의 씨앗이며 그것은 모든 어둠을 밝힐 큰 빛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는 ‘거룩한 씨’를 우리에게 난 ‘한 아기’라고 하였는데 마1, 22-23에서 이 아기는 바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을 그 아기라고 가르쳐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복음의 말씀을 들어서 믿는 우리 모두는 사6,13의 ‘거룩한 씨’와 본문의 ‘큰 빛’은 바로 성탄절에 태어나신 예수님이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1,4-9에서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 창조에 함께 하셨으며 생명이신 분인데,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라고 하였으며, 이 빛은 사람들에게 오셔서 비추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큰 빛’, 그늘진 땅에서 흑암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 비추어 어두움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멘.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의 모습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2022년을 뒤돌아보면 평안보다는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더 많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솟아나는 대신 더 많은 인생의 짐과 어려운 현실에 발목을 잡혀 두려움과 한탄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형편이나 세상의 형편을 봐서는 평안도 기쁨도 감사도 찾아낸다는 것은 요원하게만 느껴집니다. 살아갈수록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칠흑 같은 시간을 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마음을 짓누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던 별, 더러운 마구간을 비추던 별을 보았습니다. 그 빛이 비추는 곳에는 진짜 큰 빛,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빛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심령에 이 빛이 비추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 빛으로 스불론과 납달리 땅처럼 어둡고 고통스럽던 나의 삶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습니다. 이 빛은 삶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고통의 멍에가 하나씩 벗겨줍니다. 눈만 뜨면 채찍질 하듯 내리치며 아프게 하던 삶의 문제도 하나씩 사라지게 합니다. 무의미하게만 보이던 하늘과 땅과 나무와 별과 달과 꽃이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지금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흑암 속에 밀어 넣은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그늘진 땅에 머무르게 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동방박사들을 따라, 목자들의 소리를 따라, 천사들의 말한 것을 따라 큰 빛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요. 조용히 무릎 꿇고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마음의 안테나를 높이 뽑아 주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래서 그 큰 빛이 심령 안으로 비추게 하십시오. 성탄절의 이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3. 다음, 3-5절입니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3-5절은 성탄절에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창성하게 하시고, 즐거움을 더하시며,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살라지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계속된 쓰라린 심판에 의해 감소되었었지만 이제는 다시 창성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창대하고 번성케 하시더라도 창성케 된 것들에 근거한 정욕적인 기쁨과 환락을 더하지 않으시고 영적 기쁨, 환경을 초월하는 초강력 기쁨으로 기뻐하게 하십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은총과 주의 은혜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큰 즐거움입니다. 마치 “추수하는 즐거움 같다”고 했습니다. 즉 눈물로 씨 뿌리는 수고와 오래 참음으로써 기다려 온 농부들이 기쁨으로 추수하는 즐거움 같으며, 군인이 위험한 전투 후에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큰 빛으로 오신 주님은 무겁게 멘 멍에를 꺾으시어 편케 하시고, 압제자의 채찍과 막대기를 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노동, 노동을 해도 그 대가를 받을 수 없는 노동, 하지 않으면 더 무서운 채찍과 막대기 세례를 받게 되는 노동은 바로 죄인된 인간의 몸에 씌워진 운명의 굴레입니다. 마치 미디안의 멍에가 기드온의 힘으로 이스라엘의 목에서 꺾여 나갔던 것과 같이 인간에게 씌워진 죄악의 굴레를 벗게 하십니다. 또한 더 이상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옷은 사라지게 되니 마치 불에 살라지듯 영영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성탄절에 오신 우리의 주님은 말구유처럼 보잘 것 없던 인생도 창성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의 것들에 구애 받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큰 기쁨, 바깥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영원하도록 솟아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하십니다. 수고와 슬픔뿐이었던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갈등하고 오해하고, 그래서 미워하고 원망하며, 그러다 종래에는 싸우되 죽기까지 싸우는 삶을 끝장내버리십니다. 이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마음으로부터 간구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진짜 성공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요? 누구는 김연아를 꼽습니다. 세계 피겨요정이라는 명예와 2008년 한 해 동안에만 50억원의 수입을 얻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누구는 가수 BTS를 꼽을 것입니다. 아마 누구도 그들이 성공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자는 성경의 요셉입니다. 그의 성공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성공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형제들을 의심하거나 미워할 줄 모르는 성공입니다. 종살이를 하면서도 원망보다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는 성공이요, 은혜를 베풀어주었건만 돈 한 푼 들지 않는 고맙다는 인사 한 번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성실한 태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성공이었습니다. 언제까지나 베풀기만 했지만 마지막까지 베푸는 사람으로서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요셉은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그것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고 한 사람의 아들과 형제로서 기뻐했을 뿐입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지만 총리대신이어서 기뻐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기뻐했을 뿐입니다.
성탄의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런 창성과 그런 기쁨과 그런 행복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치유를 받아야만 기뻐하는 기쁨, 많이 소유해야만 즐거워하는 즐거움,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행복해 하는 행복, 그런 것이 아니라 가지나 안 가지나, 높으나 안 높으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여전히 기뻐하고 행복하며 평안할 수 있는 복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에 막혀 있습니까? 창성케 하시는 주님을 붙드십시오.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기쁨을 잃고 감사를 잃었습니까? 참된 기쁨을 주시는 주님께 당신의 음성으로 물어보십시오. 이 성탄절은 그렇게 해서 창성하게 되고 기쁨을 얻으며 감사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6-7절입니다.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성탄절에 오신 우리 주님은 그 이름이 기묘자, 모사, 하나님, 아버지, 평강의 왕 등 다섯 가지나 됩니다. 사실 주님을 표현하기 위해 일만 개의 이름을 주님께 붙여도 모자랄 것입니다. 오는 세상과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시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님은 정사와 평강의 더함(플러스)이 무궁하고 그의 나라를 굳게 세워 영원토록 보존하실 것이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이 더욱 힘 있게 강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반드시 그렇게 하시겠다는 확고한 보장이며 보증입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뉴욕타임즈’는 20세기에 가장 창대한 사람으로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록펠러가 얼마큼 창대케 되었나 살펴보겠습니다. 록펠러가 그의 십일조를 계산하는 직원만 수십 명이 되었고 그가 세워준 교회만도 거의 5000개에 달한다는 것은 무척 유명한 일화입니다. 하지만 록펠러의 그런 외양만 보고 성공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록펠러의 성공은 그의 어머니가 일러준 훈계를 끝까지 잘 지키며 산 것이 진짜 성공이었습니다. 그런 성공이 영원토록 보존하실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성공입니다.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록펠러는 어머니가 자기에게 준 마치 십계명과 같은 말씀을 준행하는 은총을 받은 성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 가지 얘기는 많이 들어 아시겠습니다만 다시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①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보다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②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다. ③주일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하여야 한다. ④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사용하여야 한다. ⑤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름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⑥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⑦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⑧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⑨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안된다. ⑩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님 뜻에 맞고 주님 눈에 들도록 사는 것이 참된 성공이요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오는 세상과 지금 세상의 주인이시고 그 뜻대로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에 말씀을 통해 주님을 찾아오신 여러분, 이 은혜가 부디 깨달아지시기를 축복합니다.